2019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
2019 CRE8TIVE REPORT
전 시명 2019 CRE8TIVE REPORT
전시기간 2019. 1. 10 (목) – 2. 23 (토)
전시장소 OCI미술관 1, 2, 3층 전시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참여작가 김남훈 김민주 김수연 라오미 사윤택 안준영 이강훈 지희킴 劉文瑄
전시부문 서양, 동양, 영상, 설치 등 50점 내외
개막식& 협업 공연 2019. 1. 10 (목) 오후 5시
작가와의 대화& 협업 공연 2019. 1. 26 (토) 오후 3시 / 2019. 2. 13 (수) 오후 7시
○ 2018년도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들의 신작 위주, 한 해 결산전
○ 작가 각자의 작업사의 큰 전환점이 될 새로운 형식 도전, 내용적 확장 시도가 돋보이는, 패기와 모험의 작업 다수 출격
○ 특이 행동이나 증상으로서의 작업 행위, 메시지 전달 매개로서 자유롭게 변모하는 작업, 삶의 철학이나 일상 행동의 부산물로의 작업, 연상 놀이로 접근하는 작업 등 작업 자체를 다루는 다양한 자세와 서로 다른 탐구 각도에 주목
○ 분야 넘나들기 - 작곡가들과의 협업 결과물 공개 및 음악, 퍼포먼스 공연
○ 대만 관도미술관(關渡美術館)과의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가을을 불태운 Mia Liu(劉文瑄)의 ‘떠 있는 족자 작업’ 〈드로잉 대화〉 공개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하루 세 끼도 아침밥이 든든해야 종일 활기차고, 새해 벽두 몸가짐이 바르고 마음가짐이 푸근해야 한 해를 무사 건강히 날 수 있다. 올해를 시작하는 마음을 풍족히 채우고 눈을 호강시키며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머리를 워밍업할 그런 계기가 없을까? 바쁜 연초에 약간의 짬을 내, 검증된 작가들의 다양한 최신 작업을 감상하며 2019년을 꾸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1월 10일부터 2월 23일(휴일 포함 총 44일 간)까지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열리는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 《2019 CRE8TIVE REPORT》. OCI미술관이 지난 2011년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운영중인 창작 공간 지원 프로그램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8기 입주 작가 8명이 한 해 동안 쉼없이 준비한 작품 50여 점을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성과 보고의 장이다.
김남훈, 김민주, 김수연, 사윤택, 라오미, 안준영, 이강훈, 지희킴은 공개모집과 엄정한 심사를 거쳐 지난 4월부터 입주하여 줄기차게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촉매를 부여하고자 OCI미술관은 창작스튜디오 공간 뿐만아니라, 평론가 매칭을 통한 멘토링과 평문 진행, 서로의 작업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기회인 작가 워크숍, 선배 미술가를 스튜디오 초청해 조언을 나누는 VISITING ARTIST, 성과물을 중간 점검하고 대중 일반과 직접 소통하는 현장인 OPEN STUDIO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2018년 한 해를 알차게 꾸렸다.
틀에 갇히지 않는 것이 미술이라면, 예술의 다른 영역과 조우하고 서로 영감을 나눔으로 미술의 틀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입주작가들은 ‘빛과 소리의 조우’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가 그룹 ‘Soundouble’의 여러 작곡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진행해 왔다. 그 성과 역시 본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표현 형태와 내용, 연출 차원을 넘나들며 빛과 소리가 조우하는 장면을, 미술 작가와 작곡가의 상상력 교환이 협업 작품 곳곳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도할 기회이다. 전시 오픈 당일과 두 차례에 걸친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창작 음악과 연주,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다양한 공연 실황을 만끽할 수 있다.
틀에 갇히지 않는 것이 미술이라면, 예술의 다른 영역과 조우하고 서로 영감을 나눔으로 미술의 틀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입주작가들은 ‘빛과 소리의 조우’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가 그룹 ‘Soundouble’의 여러 작곡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진행해 왔다. 그 성과 역시 본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표현 형태와 내용, 연출 차원을 넘나들며 빛과 소리가 조우하는 장면을, 미술 작가와 작곡가의 상상력 교환이 협업 작품 곳곳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도할 기회이다. 전시 오픈 당일과 두 차례에 걸친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서, 창작 음악과 연주,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다양한 공연 실황을 만끽할 수 있다.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 작가전 《2019 CRE8TIVE REPORT》는 ‘보는 방법’에 대한 단상, 작가 각자의 시각이 특히 명확하게 드러나는 전시이다. 단지 다양함에 대한 강조를 넘어, 각각의 작업에 이입하고 사고에 몰두하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과 협업 관련 공연을 아울러,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소통과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 감상에 실질적인 도움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OCI미술관의 2019년도 첫 전시인 본 전시가 기해년 새해 벽두의 감성과 사고를 풍족하게 채우는 든든한 예술 영양 특식이 되길 바란다.
Mia Liu Dialogue among The Four Gentlemen pencil on ink drawing, rayon and mesh fabric 940×50㎝ 2018
전시 벽글 | 기해년 첫 상차림
세 끼 중 아침을 가장 든든히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란 말도 있지요. 말처럼 쉽지 않지만, 황제는 못 되어도 시리얼 정도는 챙겨 먹는 게 몸에 대한 예의 아닐까 싶습니다. 임금님들이 격무를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도 든든한 수라상이었을 것입니다.
푸짐하기 이를 데 없는 반찬 가짓수로 상다리를 핍박하는 상차림을 두고 종종 “임금님 수라상 같다”라고들 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수라상은 대개 12첩 반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밥, 국, 탕, 찌개, 찜, 전골, 김치, 장류를 제하고 세어 꼬박 열두 가지 반찬에, 겹치는 재료가 없었다 하니 얼마나 푸짐할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실제 수라상은, 괜한 그릇을 쪼개고 또 나누어 가짓수만 잔뜩 늘린 여느 한정식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입니다. 楪(첩/접)은 접시를 뜻하는데, 말이 반찬이지 이미 열두 가지 단품 요리들이 방석 삼아 첩을 깔고 상에 걸터앉아 회합하는 수준이었다 하니, 대개 떠올리는 ‘그저 숱한 반찬으로 무장한 밥상’과는 차원이 다른 상차림이었으리라 가늠할 만합니다. 임금님은 새벽녘 초조반상으로 속을 푼 뒤, 아침 느지막이 이 첫 수라를 맞았다 합니다.
《2019 CRE8TIVE REPORT》는 새해를 여는 전시, OCI미술관의 2019년 첫 전시입니다. 일 년의 아침을 채우기 위해 여덟 입주 작가와, R1211 국제 교류를 통해 한국에서 가을을 난 대만의 Mia Liu 작가가 합심하여 차린 아침상입니다. 마트에 가니 크랜베리, 현미, 아몬드, 그래놀라를 비롯 각양각색의 시리얼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리얼조차 그럴진대, 여러분들의 수라에 들일 첩들은 작가들이 곁에 쭈그려앉아 한 해를 꼬박 조린 것이니, 각각을 가히 일품요리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 전시가 올해 아침을 든든히 채울 시리얼이, 아니 수라상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서문 | 메마르기 십상인 물줄기가 / 모이면 바다를 본다
사실 ‘레지던시 입주’의 의미는 ‘물리 작업 공간 확보 및 비용 절감’과 같은 숫자 논리보다, ‘맥락이 생기고, 나 역시 그 맥락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이 훨씬 크다. 짧으면 두어 달, 길어야 간신히 연 단위인 입주와 이사의 반복 역시 작가에겐 한편으로 비용이다.
작가들은 입주 동기로 서로 인연을 맺고, 함께 작업실을 꾸려 나가고, 보고전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공유하고 일 년간 장기 레이스를 펼치며, 지칠 땐 널브러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대책을 상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방으로 튀는 아이디어나 자극이야말로 작가 생활을 잇는 원동력이다. 모여서 큰 강을 이루어야 멀리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더 풍부한 맥락을 작가에게 안길 방도를 늘 궁리한다. 평론가 매칭, 워크숍, 중견 작가 초대 시간, 오픈 스튜디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러하다. 《2019 Cre8tive Report》는 그 맥락이 한 데 모이는 강어귀와 같은 전시이다. 강줄기를 되짚으며 여덟 군데 발원지를 하나씩 들여다 본다.
김남훈 영고성쇠(榮枯盛衰) 3D printing PLA variable installation 2018
김남훈의 작업 중 하나이자 최근 개인전 제목인 “단지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뿐이야”는 특정한 어딘가에 자리한, 그래서 다른 지점을 더듬어 자신을 찾는 그의 시각을 적절히 대변한다. 그의 눈길은 볕과 같아서 쥐구멍을 즐겨 향한다. 작고, 보잘것없고, 소외되고, 하찮고, 사소하고, 잊히고, 밀려나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을 주목한다. 건물과 땅의 갈라진 틈을 청테이프로 치료하고, 알아줄 이 없는 허공에 신호를 밤새 깜박인다. 길에 난 잡초를 주인공으로 발탁하고, 날벌레의 최후를 국립묘지처럼 오와 열을 맞춰 모신다. 어느 담벼락에 주름살처럼 돋은 ‘금’은 그에게 수십 시간 3D 프린터를 돌리고 모서리를 다듬어 마치 위인의 전신상을 캐스팅하듯 공들여 남길 ‘특종’이다. 잘게 쪼갤수록 고해상도가 되듯, 그 시선의 가닥이 미미하고 섬세할수록 좀 더 미세한 쥐구멍에 잘 들어갈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작은 쥐구멍에 들어찬, 외면된 많은 사연을 단지 스캔하려던 것 뿐이다.
김민주 심경 ink and color on Korean paper 70×200㎝ 2018
김민주의 산수풍경은 ‘상상이 섞인 풍경’이라기보단 차라리 ‘풍경이 섞인 상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다. 여기서 ‘상상’은 작가의 ‘생각 나뭇가지’의 생김새, 곧 전반적인 심리 상태나 개인의 독특한 사유 메커니즘을 뜻한다. 그는 산수와 현대 풍경의 접점들을 더듬어 찾고, 자연스레 중첩을 시도한다. 형태와 의미 양면에서 현실과 이상의 절충, 합의, 단일화된 형상을 제시함에 주목하자. 이 ‘이상’은 현실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창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나뭇가지와 같은 이미지로의 전이와 같은 일종의 ‘일탈’까지도 포괄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담아낸 것’과 ‘휘저은 것’의 융합이다. 물리 공간을 호출하는 이미지와, 사유의 내용이나 리듬을 풍경 형태로 전이한 일종의 생각 얼개, 생각의 생김새 사이에 접점을 내어 버무린다. 이러한 양면성은 그 정도와 내용이 다를 뿐, 전통 산수와 자연스레 공유 혹은 그를 계승하는 속성이다. 때문에 넓게는 동시대의, 좁게는 그만의 ‘산수’라 여전히 칭할 만하다.
김수연 SP10 oil on canvas 290.9×197㎝ 2018
보이고 잡혀야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 좋게 보면 가감없이 냉정히 임하는 셈이지만 한편으론 현실, 현상, 실재에 늘 얽매이는 기분도 들 것이다. 김수연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작업을 확장하는 자기 방편을 찾아내었다. 우선 검증 안 된 상식, 미신, 옛사람들의 허무맹랑한 상상과 가당찮은 시도에 주목한다. 오래된 상식 백과에 등장하는, 영 불안한 생김새에 얼마 날지 못할 듯한 비행선, 썩 신뢰가 가지 않는 천체 모델은 좋은 소재가 된다. 도감이나 사진 속의 본 적 없는 동식물을 만난다거나, 춘화첩(春畫帖) 등 낯선 곳에서 입수한 색다른 모티프 역시 그의 확장에 힘을 보탠다. 방법론에서도 확장과 탈피가 두드러진다. 소재를 ‘적당한’ 입체 모형으로 제작하고, 그것을 모델 삼아 그려 낸다. 일반적으로 회화는 입체에 해당하는 정보량으로 평면의 결과물을 내지만, 이와 반대로 김수연은 그림, 사진, 설계도 등 평면의 정보량으로 입체를 확보하고, 대상의 부분이 시점 전체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각도와 배치를 새로이 한다. ‘시선의 미장센(mise en scene)화를 통한 다방면의 원본 극복 실험’이라 정리해도 좋을 법하다.
사윤택 메모, 기록 위에 접합 드로잉 oil on paper 37.9×45.5㎝, 10pcs 2018
사윤택의 최근 작업에 목격되는 시각적 단서 중 하나는 텍스트 기록의 흔적과 모식도이다. ‘흔적’인 이유는, 형식이 텍스트일 뿐, 주변의 드로잉이나 모식도, 휘갈긴 연결선 등과 뒤얽혀 하나의 이미지로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구의 나열이나 불분명한 맺음은 순간의 몰입을 생생히 전달한다. 그 내용은 마치 꿈의 전개처럼 자유롭게 흐르고 전환하기 일쑤인 바 온전한 이해는 욕심이겠으나, 감상자 각기 눈에 띄는 단서를 건지기엔 충분하다. 반면 순간의 포착이나 중첩된 형상은 상당 부분 진술의 성격을 겸한다. 즉 이미지와 텍스트 각각뿐만 아니라 이미지화한 텍스트, 텍스트화한 이미지까지 4개의 축으로 진동한다. 단지 ‘시간’, ‘동작’과 같은 키워드에 가두는 것은 무리가 있다. 깜박이는 건 입장과 생각과 상황이다. 모든 인식 주체는 같은 순간 각자 서로 다른 우주를 대하며, 그 우주는 종종 서로 교차한다. 또 다른 차원에 접속하는 듯한 순간의 오묘함이야말로 매 순간 다른 우주와 조우하는 사건에의 말초적 감응이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미묘한 느낌은 그 순간 무언가 맞닿은 때문이 맞다. 그 ‘연속적 불연속성’을 회화로 포착하려 한다.
라오미 청계바다 color on Korean paper 130×194㎝ 2018
청계천에서 금강산을 구경할 순 없을까? 라오미는 이러한 환상을 실현한다. 2010년 폐관한 청계천 바다극장은 사라져가는 것이면서, 사라진 것을 부르는 ‘무대’의 속성을 동시에 갖춘 오묘한 공간이다. 또한 그는 20세기 초반 한국의 대표적 무대미술가 우전 원세하(雨田 元世夏, 1903-1970 )의 무대 연출에 주목한다. 이에 영감을 얻어, ‘금강산’이란 ‘환상 섞인 실경’을 유람하는 이야기를 회화와, 설치, 오브제, 음악, 아카이브 영상 등의 다양한 형식의 조합으로, 폐관한 극장을 배경 삼아 마치 하나의 입체적 무대처럼 풀어낸다. 무대란 일종의 공인된 환상이다. 곁에 없는 것을 부르는 통로이다. 그것은 지나간 추억, 낡고 뒤처진 옛 것, 소외/방치되어 잊힌 것일 수도 있고 욕망, 염원, 다가갈 수 없는 것, 이상향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무대로서의 금강산은 ‘합의된 소환’이며, ‘볼 준비가 된, 일시적 현실 공간’이란 점에서 실제 금강산과도, 일반적인 금강산 그림과도 차별화한다. 그리고 ‘무대 그림’이 무대 소품이나 배경으로서의 그림을 뜻한다면, 그의 그림은 ‘무대 그림 그림’이라 부를 만 하다.
안준영 넘어설 수 없는 ink on paper 109×78.8㎝ 2018
종이가 찢어지도록 동심원을 그어대거나, 맹렬히 다리를 떠는 사람이 종종 있다. 심적 압박이 특정한 동작으로 표출하는 순간이다. 안준영은 강박, 신경증, 불안, 초초와 같은 심리적 부하를, 자세나 동작을 넘어 특정 대상, 구체적 형상으로 투사한다. 양, 죽은 새, 곤충, 인체 골격, 최근엔 신체 장기에 이르는 일련의 형상들은 그 자체로도 무미건조하고 황폐하며 섬뜩하지만, 그에 더해 표면 구석구석마저 ‘동심원’이나 ‘다리 떨기’가 능숙하게 무르익은 듯 촘촘한 펜 선 해칭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그어도 아무리 떨어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그 속성은 나약함, 불안과 주저의 이미지와 박자를 맞춘다. 무엇이 그를 옥죌까? 몸을 둘러싼 비가역적인 기제로 그는 시간과 기억을 더듬는다. 시간은 피할 수 없이 다가오고 떠난다. 기억은 통제를 벗어나 상황을 재소환하고, 불안 강박 그리고 초조의 감정까지 재조성한다. 이런 비가역적 일방성에 주목하여 최근 그는 형식 다각화를 시도한다. 드로잉 작업이 정적이며 기법과 형상, 대상의 속성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단편 영화 작업은 상대적으로 동적이며 상징과 분위기, 내용 전개에 무게를 둔 형식이다.
이강훈 부유하는 표상_03 paint on wood panel 225×660㎝, variable installation 2018
군맹무상群盲撫象은 이강훈에게 좋은 작업 동기가 된다. 맹인들이 아무리 떠들어야, 코끼리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디에서도 답은 정해지지 않고 표류한다. 생각도 제각각 다르고, 서로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길도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고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의 작업 속 크고 작은 기하학적 형상은 각도와 거리, 조명에 따라 평면 실루엣으로 보이기도, 강렬한 입체감을 과시하기도 하며, 모양새에 답을 정하지 않고 부유한다. 각각의 형태는 공간 위에 덧없이 떠 있는 개별적, 독립적인 개체로 보이다가도, 조금 물러서 전체를 한눈에 담으면 어느 순간 그 외곽선이 암시하는 소실점을 따라 거대한 하나의 체계를 차리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반투명한 형체를 공중에 매다는, 본격적 공간 설치와 더불어, 음향, 조명, 센서를 적극 활용해 감상자와 실시간 감응하는 체험형 인터랙티브 작업을 선보인다. 감상자는 저마다 이미지와 실체의 경계, 주관과 객관의 경계, 개별 경험 사이의 간극을 맛본다. 단일한 조형을 개별 체험으로 분해하는 작업인 셈이다.
지희킴 겹의 기호들 2 gouache, ink on paper 131×232㎝ 2018
기억은 대상이나 상황의 모든 정보를 다 기록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주된 ‘이미지’만을 간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억은 흐려지기도 하고 과장 축소 왜곡을 반복하며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하곤 한다. 그런데 기억이 담은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을 애써 호출하기보단, 그 기억의 생김새와 색상, 맛과 점성, 질감, 모양, 냄새를 펼치면 어떠할까. 기억이 이미지라면, 지희킴은 ‘이미지의 이미지’를 더듬어 낸다. 어항의 물고기는 곰으로, 곰은 다시 텁텁하게 흘러내리는 기억의 색상으로 변모한다. 거듭 다시 잇닿는 기억의 이미지는,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펼치는 이미지 놀이로 진화한다. 서사의 파생물 중 하나가 기억이라면, 그의 놀이는 그것을 가장 반서사, 비선형, 비 순차적으로 사방에 색색들이 착즙한다. ‘책 드로잉’ 시리즈를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벌이는 최근의 작업들 역시 정형화한 형태와 선형/순차적 내용 전개를 지닌 책의 틀을 깨는 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레지던시 운영의 보람과 기쁨이라면 작업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여 좋은 결실을 선보이는 것이 첫째요, 한정적인 입주 기간을 마치고도 여전히, 아니 더욱 순탄하고 활발히 더 좋은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를 바라보는 것이 그 둘째일 것이다. 첫 번째에서 그칠 게 아니라 부디 두 번째 기쁨과 보람으로 옮겨 가기를, 강어귀와 연안을 넘어 인근 해역과 대양으로 퍼져나가는, 예술계의 큰 물줄기가 되길 늘 기원한다.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음악가 협업 공연
산수별곡 山水別曲 / 첼로, 피아노, 플룻 3중주 / 19. 1. 10 (목) 17:00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시선과 열망, 이미지를 곡에 담았다. 시청각적인 정취를 체험하도록 은근하면서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작가 김민주 | 작곡가 손영웅, 신창용
차원회랑 次元回廊 / 무용 퍼포먼스, 2채널 테잎 / 전자음악 실연 / 19. 1. 26 (토) 15:00
기존의 평면 이미지의 기조를 오브제화 시켜 공간 안으로 끌어오는 한편으로, 센서를 통해 이를 사운드, 조명과 연동시킴으로써 타감각 이미지와의 복합과 융합을 시도한다. 착시와 착청의 공감각을 경험하는 인터랙티브를 지향한다.
작가 이강훈 | 작곡가 손영웅, 신창용
느리고 장중하게 Adagio / 첼로, 피아노 2중주 / 19. 2. 13 (수) 19:00
모든 것이 빠르게 잊혀 가는 현대인의 삶에 느리고 장중하게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노래. 총 4개의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가 아다지오(Adagio)를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한다.
작가 라오미 | 작곡가 신예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