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파도, 데이터
Night, Wave and Data
박세준
일상에서 나의 자아의 역할은 작가로서의 나, 남편으로서의 나, 아빠로서의 나, 미술 선생님으로서의 나, 아들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등으로 분화된 여러 가지를 수시로 오간다. 복수의 자아가 다발로 구성되어 있거나 다면화되어 있는 것처럼, 나는 의식 또한 여러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자기 안에서 상식을 공유하는 일상적 상태의 의식, 정서의 기복이나 동요와 같은 흐름, 꿈을 기억하는 것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의식의 층(layer)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루의 흐름은 이것들 사이를 오고 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레이어들 중 어느 한 가지 층에 집중하면 그것이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고, 또 다른 층들은 상대적으로 흩어지거나 옅어지곤 하는 것 같다. 나의 작업은 내가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세 가지 의식의 레이어들을 다룬다. 그것은 꿈, 정서의 흐름, 미디어(대중매체)이다. 나에게 이 의식의 층들은 중첩되어 있으며 동시적인 활동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전시의 제목은 이 세 가지 주제들로부터 각각 연상되는 단어로 치환한 것으로, 꿈은 밤으로, 정서의 흐름은 파도로, 미디어는 데이터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첫 번째 레이어인 꿈은 순발력 있게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휘발되어 버린다. 꿈을 탐구하는 것은 무의식을 탐사하는 것으로, 당황스러운 이미지들이 맥락도 없이 출현한다. 꿈에서 등장하는 것들의 이름이나 그 곳에서 나눈 대화들, 맴돌던 단어들을 가만히 두고 연상하다 보면 뜻밖에도 특정한 실제 현실과의 연결고리가 발견되기도 한다. 눈치 채지 못하던 현실의 이면이나 가려져 있던 중요한 단서들이 꿈을 통해 불현 듯 스치고 지나간다. 이것들은 자기의 중심을 향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레이어는 정서의 흐름이다. 이는 내가 겪었던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신경증적 경험이 동기가 되어 탐구하고 기록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감정의 단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것들을 몸의 자극에 집중하며 추상적인 패턴으로 기록한다. 그렇게 기록된 감정의 질감들을 재흡수 함으로써, 자아로부터 소외되어 원인모를 감정적 충동을 일으키던 신경증적 요소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세 번째 레이어인 미디어는 대중매체를 의미한다. 손 안에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대중매체에 둘러싸여 있으며, 사회 속에 있는 한 그것의 영향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나의 의식에 잔존물처럼 남아서 부유한다.
우리는 폭발적인 데이터와 이미지 물결의 시대 한복판에 놓여있다. 나는 자기 자신을 종종 시달리게 하는 부정적인 공허감이나 우울, 불안 등으로부터 스스로의 균형을 되찾고 회복할 내면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나 관념의 수동적 소비에서 벗어나, 정서의 흐름을 관찰하고 꿈을 탐구하면서 이들을 해석하고 음미하고 조합하며 바라보는 것은 그러한 내면의 공간을 능동적으로 구축하는 활동이다. 나는 그 곳에서 머물고 쉬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다시금 무엇인가 시도하고 창작해 보고자 하는 힘을 얻는다. 박세준 작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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