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1 ~ 2019-02-28
나예심, 박현철, 소빈
062-221-1807/8
전시설명
광주롯데갤러리는 설 명절이 있는음력 정월을 맞아 전통의 감성이 깃든 기획전시를 진행한다.
2월 1일부터 28일까지 한달 여 간 치러지는 본 전시의 주제는 <깊어질수록 꽃이 되는>이며, 나예심(천연염색, 자수), 박현철(한복디자인, 침선), 소빈(한지조형) 작가가 참여한다.
3인의작가가 다루는 작업이란 물들이고 바느질하고 옷을 짓고 또는 한 겹 한 겹의 종이로 형상을 만드는 일이다. 모두 사람을 위한 작업이지만, 긴 시간이 소요되는 작품에선 수고로움 이상의 생의 다양한 감정들이 묻어난다.
천연염색 한 천에 자연의 모습을 수놓는 나예심의 바느질은 차(茶)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문화에서 차를 마시는 일이란 단순히 차를 음용하는것 이상의 몸과 마음의 수양을 쌓는 일이다. 나예심은 수행의 가치를 담은 찻자리를 보다 의미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에 관심을 두게 되어 바느질을 시작하게 되었고, 작가는 현재 본인의 작업을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 설치작업”으로 규정한다. 나예심은 모시, 삼베, 무명, 광목, 명주 등의전통 천에 감물과 먹물, 쪽물을 들이고, 물들인 천에 조각천을 덧대어 수를 놓는다. 단순화된 패턴으로 자리한 조각천은 수줍게 뜬 달이 되었다가 쪽빛 강가에 수양버들드리운 기다란 나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함초롬 꽃이 담긴 화분으로,때로는 황금빛 은행나무 감싸 안은 따스한 뜰로 분하기도 한다. 조각천의 간결한 모양새는 사실적 묘사를 절제한 바느질과 어우러지며 정갈한 기운을 자아내는데 현대적인 미감과 전통의 멋이 공존한다. 이번전시에서 나예심은 다실을 재현하며 가리개와 발, 방석, 다포, 찻수건, 찻상보, 잔받침등 일상을 풍요롭게 가꿔 줄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열네 살에 시작한 손바느질이 동기가 되어 한복 짓는 작업을 하는 박현철은 세간의 표현처럼 ‘청년 옷쟁이’이다. 자연의색을 담은 듯 편안한 눈맛을 선사하는 박현철의 침선은 손수 옷을 만들어 입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에서 시작되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입었던 옥색 치마 저고리가 문득 생각나 독학으로 그 옷을 재현하던 것에서 시작된 작가의 침선은 올해로 12년째에 접어들었다. 표주박생고사, 숙고사 등의 고급 원단과 함께 생초, 산탄, 순면까지다양한 원단으로 우리의 전통 한복을 짓는 박현철은 옷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고 옷에서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게 되는 옷은 일생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함께 하게 된다. 옷에서 사람의 성정과 인품이 배어나오는 것처럼 옷쟁이 또한 허투루 바느질 하지 않는다. 옷을 의뢰한 이들을 위해 작업의 길일을 잡고 행복을 기원하는 작가는 껴묻거리된 복식을 보며 옛 사람의 흔적을 연구하기도 하며 옷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옷들은 배냇저고리,당의, 원삼, 도포, 삼회장저고리 외 다채로운 전통 복식을 선보이며, 출생, 예식, 평상복까지 우리 생의 주기와 함께 하는 옷의 매무새를 두루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짙은 감수성을 바탕으로 시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여온 소빈은 이번 전시에 기존의 한지인형 작품과 함께 고서를 다룬 근작을 선보인다. 소빈의고서 작업은 고문서의 낱장 낱장을 별도의 화학적 접착제 없이 물로써 이어 붙이고 건조하는 작업이 선행된다. 이후오래된 종이 위에 배접하듯 올려놓은 염색 천 조각을 바느질로 고정시키는 과정은 한지조형 작업 못지않게 집중력을 요한다. 고서 위에는 주로 좌선(坐禪)한사람이 자리한다. 형상은 세부적인 디테일이 아닌 단색의 덩어리로 표현되었는데 간결한 실루엣이 돋보인다. 유백색의 빛깔로 익어갈 달 항아리 안에 좌선한 이, 그 위엔 가득찬 만월이 떠 있고 차고 기우는 달처럼 영글은 과실나무도 함께 있다. 작품 <어디로 가는가>에는 백목련을 향해 긴 팔을 뻗은 사람이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혹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처럼, 꽃잎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뭉툭한 손의 표정에서 살아감에 대한 번민이 읽혀진다.
세 작가의 작품에서 읽혀지는 주된 키워드는 ‘사람’이다. 짙은 쪽물 들인 천에서 아득한 밤하늘의별빛을 찾기도 하고, 자연의 빛깔을 담은 옷에선 사람의 살결과 호흡이 느껴지기도 한다. 발그레한 볼에 물끄러미 자리한 인형은 유년시절을 상기시키며 그 옛날 그 녀석 그리고 우리 엄마와 아버지를 기억하게한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혹은 쓰이는 작이 아닌 생의 애수와 정이 스며있는 작업에서 새해의 나를, 내 소중한 이들을 다시금 다독일 수 있다면 좋겠다.
전시명인 <깊어질수록 꽃이 되는>은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모진계절 견뎌 내어 짧은 시간 동안 개화하는 꽃처럼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그 과정 또한 아름다운 것임을 음력 정월에 새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나예심_무제_90x80cm_삼베에 염색_2018
박현철_도포_화장80cm 반품27cm 기장120cm_명주,산탄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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