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19-03-21 ~ 2019-04-19
강상우, 노현탁, 신정균, 이영주
무료
02-790-1178
통제할 수 없는 의외의 상황 앞에 설 때 의식은 자기성찰에서 나아가 타자(他者)를 향해 흘러가기도 한다. 특정 사건이나 현상을 두고 무기력이나 공포,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것을 향한 의식의 화살은 더욱 뾰족해지고 화살의 궤적은 뚜렷해진다.
『삼국유사』에는 경문왕의 귀가 자라난다는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던 복두장이가 대나무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여이설화(驢耳說話)가 있다. 대밭에서 자신의 치부가 울려 퍼지는 사실에 화가 난 경문왕은 대나무를 모두 베고 산수유를 심었다. 새로 심은 산수유나무에서도 기어코 새어 나와 퍼지던 경문왕의 비밀처럼, 때로는 외부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사건과 상황들이 뿌리 깊게 사고를 지배하여 떼려야 뗄 수 없이 일상 곳곳에서 내비쳐진다. 대나무숲의 상징성은 오늘날 국내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금 불거졌다. 온라인 속 서로 다른 집단의 대나무숲 계정에서는 주로 내부 고발이나 사회 현상의 폭로가 일고 있다.
이 전시는 최근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시각예술 전시의 풍경―즉각적 사유들이 중첩되어 작품에 포개지고, 전시장에서 발화된 후 이미지와 텍스트로 박제되기도 하는―에 '대나무숲'의 기능을 비추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청량한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비밀을 간직해주기도, 흩뜨리기도 하는 대나무숲에서는 외부 자극에 의해 변화를 겪고 있거나 이미 변형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흩날린다. 이와 함께 소환된 아메바란, 좁게는 타자나 일시적인 현상을, 넓게는 국가나 문화에 의한 자신의 변형을 예리하게 인지해온 네 명의 작가들을 말한다.
참여작가 강상우, 노현탁, 신정균, 이영주는 일련의 주제 의식으로부터 불가항력적인 변형을 겪는 인물의 감정과 상태, 나아가 정체성을 꾸준히 관찰해오는 작업을 지속한다. 이들은 자신의 탐지 체계를 곤두서게 한 특정 사건이나 현상을 대나무들 틈새로 드러낸다. 자극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공통으로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시장 곳곳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단세포 생물 아메바처럼 때로는 타자에 기생하고, 어떤 때는 다른 존재를 포식하고, 혹은 모양을 변형시키거나 분열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사건, 사고, 현상 안에서 생존해간다.
풀숲을 헤매듯이 전시공간의 지상, 지하층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네 작가가 각각 반응하는 자극의 강도와 속성이 다양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반응이 시각물로 구현되기까지의 속도, 자극과 반응 사이의 밀도 또한 제각각으로 드러난다. 한 달이라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사라지고 마는 이 섬세하고 촘촘한 사유과정의 집합체는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발화하며 감상자를 기다리거나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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