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 14th 개인전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2019-04-12 ~ 2019-05-12
갤러리 세줄
opening : 4.12(금) 5pm
gallery open : 월 - 토 ( 10am - 6pm) / 일 (1pm - 6pm)
갤러리 세줄 :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40
2019 정보경 개인전
균열을 내다
-상처에서 증상으로-
아포토스(atopos).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아토포스’(소크라테스의 대화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부여한 명칭)로 인지한다. 이 말은 예측할 수 없는, 끊임없는 독창성으로
인해 분류될 수 없다는 뜻이다. ( ··· )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매혹시키는 그 사람은
아포토스이다. 나는 그를 분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내 욕망의 특이함에 기적적으로
부응하러 온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투적인 것(타인들의
진실)에도 포함될 수 없는 내 진실의 형상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담론> 중에서-
Y: 요즘 당신의 작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낯선 이미지가 화면에 마치 실재의 귀환처럼 등장하고 있는데, 먼저 이런 변화의 계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설명해 달라.
J: 삶에 변화가 있었다. 개인사에 다사다난한 질곡이 있었지만, 그런 상황을 생각보다 그다지 당황하거나 곤혹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나에겐 일종의 환상의 도피처인 그림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싶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내 삶에서 화가라는 포지션이 중요했고, 그저 어떤 화가가 될 것인지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거기엔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인간, 그러니까 윤리가 빠져있었던 것 같다. 윤리는 도덕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어떤 존재로 살아야하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는 거였다. 이제 겨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내 삶과 예술에 대한 뼈저린 회의와 성찰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Y: 화가로서의 삶보다 인간으로의 삶, 예술적 가치보다 인간적 가치에 대해 더 숙고하게 되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때 해볼 수 있는 생각들이 그런 것이다. 즉 왜 작가여야 하는가? 그 중에서도 왜 그림인가에 대한 섬세한 질문 말이다.
J: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반성이나 성찰이 부족한 습관적 노력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일, 분명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맹목적으로 성실했고, 사회와 예술계에 순응적이었고, 은폐된 진실 혹은 진리에 대해 궁극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몇 가지 계기로 나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에 서 있어야하는지에 대한 검열의 시간이 도래했다. 사실 좀 겁나고 두렵지만 대면해 볼 생각이다.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112.1x145.5cm(80F), oil on anvas, 2019(002)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259.1x181cm(200P), oil on canvas, 2019(004)
Y: 사실 당신 작품의 매력은 마치 마티스와 르누아르가 그랬던 것처럼 안락한 소파와도 같은 역할 혹은 세상 모든 고단함을 포용할 대지모의 역할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휴식을 위한 그림이자 그림 같은 그림이랄까. 시대정신을 담보한, 그림을 넘어선 지점을 보여주는 그런 그림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아마 당신도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 그림에는 일종의 내 마음대로 그려도 된다는 자발성과 자기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어쩌면 관객들로 하여금 당신의 작품에 집중하고 선택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아니었을까?
J: 굳이 내 작업을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안락소파’같은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술이 주는 그런 위안이 내겐 엄청난 쾌락이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의식적으로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고 수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예술로 먹고산다는 건 예술가에겐 유혹이자 안주일 수 있기 때문에, 아마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무의식적인 자각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엔 예술가의 고통에 대해 침묵했고, 그런 류의 작업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예술가의 책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인 김수영이 말한 것처럼 잠수함의 토끼, 그러니까 자신의 앞선 죽음으로써 잠수함의 공기가 희박함을 먼저 알리는 토끼처럼, 예술가는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위치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역할을 감당해야한다는 예술가의 조건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Y: 이와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당신 작업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괴리가 상당히 큰 편이다. 예컨대 예전엔 감각적인 역동의 에너지를 담보한 작가를 선호했다면, 요즘은 아이 웨이웨이나 피터 도이그 같은 작가의 작품에 공감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는가?
J: 좋아하는 작가와 내 작업이 반드시 관련이 있고, 영향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내가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알고, 그 제한과 한계 내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사실, 세계적인 작가와 동료작가로부터의 영감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자극받고 고무 받는 동시에 정신적인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들로부터 전이된 창조적인 전율은 내 작업에 또 다른 드라이브인 것만은 확실하다.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193.9x130.3cm(120F), oil on canvas, 2019(005)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112.1x145.5cm(80F), oil on canvas, 2019(011)
Y: 이번 작업은 좀 생뚱맞게도 낯익은 풍경에 해골, 새, 사슴과 같은 낯선 대상이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드러난다. 한편으론 총자국, 벌레와 같은 것들은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모티프들은 당신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배반의 이미지일 수 있겠다. 그것을 각오하고 그렸다는 건, 엄청난 자기부정과 관객부정이라는 이중부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
J: 내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것이 허상이었고, 허약한 나르시시즘이었다면, 얼마든지 나를 바꿀 용기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나는 아직 그림과 맞장 뜰 실존적 힘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부정은 예술가에겐 운명처럼 지워진 존재론적 미션이다. 그러기에 지속적으로 나의 한계를 알고, 때론 한계를 밀어붙이면서 살아남을 것이다. 예수가 나(진리)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정하고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웃음).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구태의연한 동어반복을 하는 자신에 대한 회의와 성찰 없이는 앞으로의 나의 작업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Y: 그럼에도 여전히 낯익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타협의 지점이 있어 보인다. 아직은 정보경식 고유의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예컨대 배경은 그대로이고 그곳에 해골, 총, 죽은 사슴, 벌레와 같은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미미크리(mimicry), 마치 곤충이나 동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을 쓰는 것 같은 느낌말이다.
J: 맞다. 나는 여전히 이전의 습관대로 그리는 방식을 단박에 포기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여전히 일관성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길들여져 있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그린다는 것은 현재로선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삶이 달라져야 하고, 그 다음에 그림도 자연스럽게 달라져야할 것 같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값없이 누려온 방종에 가까운 자유, 맥락 없이 무작정 그려내기만 했던 도발적 도전 같은 것들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일이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여하튼 이런 자기 파괴의 충동이 현재의 나를 매우 자극시키고 고무시킨다. 나는 나의 삶과 작업이 어떻게 달라질지 무척 흥분되고 기대된다.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91.0x116.8cm(50F), oil on canvas, 2019(015)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72.7x90.9cm(30F), oil on canvas, 2019(017)
Y: 삶이 달라지고 싶다면, 예술부터 달라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미술사에 뒤샹이 일으킨 위대한 지각변동은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삶이 되는 차원의 모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매우 유사하게 느껴지는 이 말에는 사실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예술이 삶이 되는 것이 더욱 더 깊고 넓은 창의적 스펙트럼을 살게 한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J: 생각을 바꾸면, 예술이 달라지고, 삶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나는 몸을 부대껴 감각적으로 그림에 접근하는 사람이었지, 생각을 사유의 경지까지 밀어붙여서 그림을 그린 적은 없었다. 감각만으로도 내가 가야할 길이 너무 멀고 지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감각의 극단으로까지 나 자신을 밀어붙이지도 못한 것 같다. 만약 내가 감각의 극한으로 나를 몰고 갔다면, 거기에는 감각을 넘어선 환각의 세계, 또 그것을 넘어선 사유의 세계와 만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Y: 그것이 바로 세잔으로부터 비롯된 20세기 주지주의 미술가들이 천착한 감각과 사유의 결합이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과 철학자 질 들뢰즈이다.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베이컨의 작품을 얼마나 탁월하게 분석해냈던가! 이 책에 따르면, 베이컨이 재현을 포기하고 그리고자 한 것은 ‘감각’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하는 감각’이었다. 이로써 탄생한 작품의 효과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촉각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순히 그의 그림의 형태와 색채의 유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를 관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괴함이 만들어낸 히스테리컬한 힘에 착목하고, 감각과 사유를 통합하여 그림을 보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마치 베이컨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를 두고 들뢰즈는 ‘회화의 히스테리’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라캉의 표현대로라면, 히스테리는 상징계에 균열을 내는, 즉 기존의 미술사를 전복시키는 실재의 귀환인 셈이다.
J: 나의 회화는 억압된 강박적 세계에 대한 일탈로서의 히스테리컬한 스트로크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히스테리컬한 충동의 극한으로까지 밀어붙이는 내공이 내게는 없었다. 얼마 전 읽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충동은 본능이 아니라 쾌락과 관련하여 인간에게 허용된 ‘위반’의 유일한 형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충동은 희열과 향유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예전보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적이고 미학적인 개념에 관심이 많아졌고, 내 작업과 연동해 생각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작품은 좀 더 심플하게 이미지를 덧붙이는 방법을 통해 이미지의 쾌락을 위반하는 방법을 시각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한계 내에서 기존의 이미지에 또 다른 이미지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해체와 파괴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91.0x116.8cm(50F), oil on canvas, 2019(018)
안락의 그늘 the other side of comfort, 112.1x145.5cm(80F), oil on canvas, 2019(021)
Y: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하자면, 당신의 작업은 확실히 충동이라는 역동이 핵심이다. 마치 조증의 상태에서 자동기술적으로 그려진 것 같은 자발성과 활기의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당신의 작업은 오랜 시간 침잠하거나 관조할 것을 거부하고, 색채의 현란함과 공격적인 스트로크만 보도록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것은 앞서 말한 베이컨의 작품이 다다른 지점, 즉 해체와 통합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충동이라는 역동과 조화라는 관조가 길항작용을 한다는 측면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J: 나는 누군가 내 작품을 진지하게 볼 것을 거부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사유의 일천한 레이어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혹은 응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저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유희충동의 발현으로만 화면과의 관계를 맺어왔던 것 같다. 아직 체험하지 못한 감각세계와 미지의 사유세계에 대한 진입이 내게 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언젠가 당신이 아직 쓰여 지지 않은 시가 최고의 시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런 말이 내겐 여전히 위로가 된다(웃음).
Y: 예전에 자기 작업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게 즐겁다고, 자기그림에 대해 꽤 만족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런 작가들을 좀 의심하는 편이다(웃음). 진리는 고통 속의 쾌락, 즉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주이상스(Juissance)의 상태에서 배태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율배반은 얼마나 윤리적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성한 불만족과 창조적 회의라는 말을 좋아한다. 미술사의 아주 지독한 작가들인 피에르 보나르의 자기그림 덧칠하기 에피소드와 죽기 전날까지도 자기 작업에 대해 엄청나게 회의했던 세잔과 같은 작가들을 보면, 미의 궁극에 도달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불안과 절망이 그대로 느껴져 전율하게 된다. 이런 신성한 불만족이야말로 예술가에겐 매우 중요한 역동이 아닌가?
J: 진정으로 동감한다. 언젠가 당신의 책에 인용된 괴테에 관한 글을 메모해놓았다. 한번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위대한 예술가가 긴 인생의 최후까지 창조적인 상태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자질이 필요한 것 같다. 그는 한편으로 삶에 대한 비정상적인 예민한 의식을 유지해야 하며, 결코 흡족하지 않아야 하며, 삶에 만족하지 말아야 하며,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해야 하고, 그것을 가질 수 없을 때는 절망해야 한다. 불가사의한 무거운 짐이 밤낮으로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는 위로 받지 못할 벌거벗은 진실들로 뒤흔들려야만 한다. 이 신성한 불만, 이 불균형, 이 내적 긴장 상태가 예술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많은 이류시인들은 젊은 시절에만 그것을 가진다. 워즈워스는 절망할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그의 시적 힘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흔히 역동적 긴장들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 사람이 원숙함에 다다르기 전에 그를 파괴시켜 버린다.”(험프리 트레벨얀이 쓴 괴테에 관한 글 중에서)
Y: 지금까지 당신의 그림이 세상의 진리를 가리는 베일 혹은 표피 같은 역할을 했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출품되는 작품은, 라캉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포함한 기성사회인 상징계에 균열을 내는 실재의 귀환 같은 것으로 치부해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라캉주의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동시에 일종의 강력한 증후(증상)이자 풍크툼이기도 하다. 이렇게 균열을 내는 이유는 진정한 삶과 예술창조를 위한 공백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마어마한 열망이라고 해석해도 되겠는가?
J: 그렇다. 이제 나의 그림을 지울 때가 되었다. 지금은 이미지의 영도에 도달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미지의 영도란 롤랑 바르트의 용어인데, 모든 판단으로부터 빠져나가는 지점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미지를 지우되 어떻게 하면 매혹적인 방식으로 지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지운다는 것은 텅 빈 공백에서 새로운 창의적인 무언가가 생성된다는 믿음의 반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되기’의 실현이라는 과제가 바로 내 앞에 있다.
Y : 미술평론가 유경희의 얼터에고
J : 작가 정보경의 얼터에고
이 글은 지금까지 몇차례에 걸친 작가 정보경과의 인터뷰와 평상시에 일어났던 간헐적인 소통 그리고 서로 스미고 겹쳤던 시공간의 레이어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나 나누었을법한 가상의 인터뷰이다. 사실 모든 해석은 오독이라는 전제하에, 대화의 오독과 오류를 줄이기 위해 두 사람의 분신(alter-ego) 간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정보경의 작업에 관한 필자의 상상과 예측으로 풀어낸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미학적인 인터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전시는 강원도와 강원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