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의 꿈, 초월적 조형의 미학
화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의 첫마디다. 우문(愚問) 같은 이 말은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할 노정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그가 천착해온 대중적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작가는 이해가 쉬운 구상적 형태와 아름다운 조형의 추상적 구성이 어우러지고, 평면적 회화와 입체적 조각이 유합되어 그만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토대로 한 작품을 제작해 왔다.
특히 지극히 사실적인 구상과 매우 단순한 추상을 한 화면에 병치함으로써 일상적 서정성과 조형적 심미성을 조화시켜 왔다. 여기에는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으로서의 고향과 자연, 일상에서 느끼는 향수와 삶의 원천으로서의 생명, 삶의 여정이자 자연적·사회적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길이 놓여 있다. 이를 통하여 작가의 삶과 정신을 만나게 된다.
작가의 그림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그가 좋아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가 즐겼던 ‘ 데페이즈망 (depaysement) ’으로 만들어낸 공간미다. 데페이즈망은 사물을 전혀 다른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새롭게 보이도록 하는 조형 방법이다. 작가의 그림에서는 바다에 있을 섬이 하늘에 떠 있거나,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산과 바다가 추상적 여백으로 나뉘어져 있다. 때문에 그의 화면은 초월적 자연과 공간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는 평평하게 펼쳐진 석영 알갱이의 화포 위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운 모래밭 같은 바탕의 마티에르(질감)가 형태의 잔잔한 시각적 움직임과 색채의 미묘한 순간적 변화를 연출한다. 이로써 작가의 그림은 그것이 놓인 환경에 따라 시각적 효과를 달리하는 느낌을 준다. 나아가 이러한 효과 위에 산과 바다 같은 자연 이미지가 더해지고, 다시 그 위에 나무줄기와 잎이 더해지면서 오묘한 초월적 공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기에 오방색을 입힌 씨앗을 화면에 붙여 같은 공간에서 조각과 회화가 조화를 이룬다. 오방색 씨앗은 마치 화룡점정처럼 그림에 생명을 부여한다. 이렇듯 작가의 그림은 구상과 추상, 회화와 조각이 융합한 새로운 조형예술이다.
작가 김동석의 이번 개인전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이 화두다. 이는 옛날 우공이라는 노인이 왕래를 막는 산을 옮긴다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다. 물론, 사람이 기계적 힘을 빌리지 않고 산을 옮기기란 쉽지 않다. 요즘이야 기계로 산을 없앨 수도 있지만, 우공이 살던 옛날에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날마다 흙을 파고 돌을 캐서 옮기다보면 언젠가는 산을 옮길 수 있다.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도 한 눈 팔지 않고 끝까지 해나가면 결국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우공이산을 꿈꾼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2년 전의 개인전에서 소개되었던 단색조의 회화와는 다른 차원의 조형성을 보여준다. 오방색의 씨앗을 제외한 이미지가 모두 단색조였던 종전의 그림과는 달리 이번에는 씨앗과 함께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산을 주제로 한 사계절의 이미지를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작품들로 전시된다. 이로써 단색조에서 느껴지는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 대신 활기차고 화려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가 서두의 우문(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대한 대답이거나 우공이산(예술에 대한 끈질긴 열정)을 꿈꾸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 김동석의 이번 전시회가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이천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