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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애 설치: Not Just Tiny But Abstract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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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OCI Young Creatives 선정작가 김신애(1984~)의 개인전
○ 공간에 대한 탐구를 집약 응축하여 시각적 간결성이 돋보이는 설치 중심 전시
○ 정보는 사물의 특성이 아니라 수많은 파악 시도, 일종의 사건과도 같음
○ 정보의 속성과 조형 요소, 실 공간이라는 소재의 접점을 절묘하게 연결
○ ‘그저 작기만 한 게 아니라, 확정적/절대적이지 않은 속성’을 암시하는 제목


[전시 소개]
‘정보화 사회’라는 용어는 익숙하다. 그런데 정작 정보에 대해선 별다른 인지가 없다. 정보란 무엇일까? 정보는 대상을 명징하게 규정할 수 있을까? 미술 작업으로 정보의 속성을 은근히 깨달을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바로 5월 16일부터 6월 8일까지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열리는 김신애 작가의 개인전 《Not Just Tiny But Abstract》. OCI미술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19 OCI YOUNG CREATIVES의 여섯 선정 작가 가운데 하나인 김신애의 이번 개인전은 ‘공간’이라는 미술 본연의 탐구 대상을, 그와 관련한 수많은 정보들을 극도로 간결한 조형으로 응축하는 과정을 내보임으로서 공간의 의미와 정보의 속성에 대해 되짚어보는 기회이다.


Scene #1  artbook  59.4×42㎝, 32p  2019


김신애는 수치나 좌표, 각도 등의 정보를 설치물로 변환하고 형상화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OCI미술관 1층 공간의 정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OCI미술관 1층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여러가지일텐데, 대체 어떤 정보를 다룬다는 것일까? 전시장의 면적, 높이, 변의 수, 모서리 길이, 꼭짓점의 수와 위치, 벽체 색상, 바닥 마감, 천장 재질, 공간의 부피…아무리 많은 정보를 아무리 자세히 다룬들 그것이 ‘정보의 전부’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모든 정보’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이미 정보의 선별이 필연적으로 일어남을 알아챌 수 있다. 정보는 선택적이다.

 

Scene #3  stainless steel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9


작가는 전시장 1층 공간을 몇 개의 층으로 분리한다. 공간은 길쭉하거나 통통한 몇 개의 사각형의 조합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들 사각형의 둘레는 꼿꼿이 펴서 스틸 막대로, 사각형의 각 변, 그리고 다른 사각형과의 교차점은 막대 표면의 마디로 변환한다. 둘레 길이 수치를 색상값 삼아 막대에 색을 입힌다. 미술관 천장과 벽면 둘레를 차곡차곡 쌓고 더하여, 공간을 이루는 수많은 직선을 ‘길이 총합’이라는 단 하나의 수치로 수렴한다. 이는 다시 동일한 길이를 지닌 작고 강렬한 색상의 실타래로 물질화, 형상화하여 전시장 벽면과 바닥이 만나는 어느 모서리 홈에 살포시 자리한다.

 
Scene #5  thread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19


책이라기보단 신문지에 가까운 크기의 아트북은 공간을 사방으로 더듬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벽과 천장, 보와 보의 교차로 나타나는 모서리의 길이, 수많은 꼭짓점의 위치와 개수는 알 수 없는 수치와 표시의 난무로 책장을 채운다. 이는 정보를 표기하는 기호이면서, 정작 기의의 무게는 흐리고 지우길 반복하여, 마침내 숫자나 문자를 닮은 어떤 ‘형태’처럼 책을 점령한다. 관객은 넘기기도 힘들 정도로 큰 책장을 펄럭거리고 구기며 정보가 물질화하고 체화했음을 시각과 촉감과 소리로 체험한다.


Scene #1 내지  artbook  59.4×42㎝, 32p  2019


벽면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를 따라 이어진 홈의 폭은 20mm. 이 20mm는 온전히 홈이 독점하는 정보는 아니다. 전시장 홀 가운데에 놓인 책상은 20mm짜리 검정 각파이프로 다리를 짰다. 전시 제목의 ‘Abstract’는 정보의 이러한 공공재를 닮은 속성을 암시한다. 정보는 절대적이지 않다. 가변적이다. 비어 있는 잔과 같다. 물 담으면 물잔, 술 담으면 술잔이다.
 



Scene #3평면도 구획 정보  OCI미술관 1층 전시장 공간을 이렇게 ‘막대기화’ 한다

정보를 흔히들 마치 대상 자체인 양 착각하곤 한다. 김신애가 전시장을 드나들며 발췌한 정보는 모두 그가 직접 실측한 것들이지만, 반대로 그 수치들이 OCI미술관의 실제 공간을 온전히 규정하지는 못한다. 미술관 공간 고유의 성질이라기보단 이 순간의 ‘스냅샷, 그림자, 흔적, 소문’이라고 보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정보는 대상의 부스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멀찍이 떨어져 그걸 가리키는 화살표일 따름이다.


《Not Just Tiny But Abstract》  전시 전경


비뚜름히 접힌 종이는 원래 가장자리였을 붉은 선분이 종이 안쪽으로 들어와 새로운 사각형을 낳는다. 전시장 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의 홈은 미술관 외장에 쓰인 붉은 벽돌 색상으로 물들어 있다. 안팎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관계가 또다른 정보를 무궁무진 발산하는 것이다. 정보는 대상의 특질보단 대상과 또 다른 대상, 대상을 이루는 요소 사이, 혹은 대상과 그것을 파악하는 주체 사이의 관계에 가깝다. 그 결과물은 주체, 시간, 맥락, 대상, 그 밖의 수많은 것들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정보는 내용이라기보다는 ‘파악 시도’와 같은 ‘사건’인 셈이다.


Scene #1 내지  artbook  59.4×42㎝, 32p  2019


멀리 보아 김신애에게 조형이라는 건 결국 정보 표기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끝없이 순환, 치환될 가능성을 늘 품고 있는, 혹은 이미 그 과정에 있는 수많은 사건들인 것이다. 그런 맥락을 새끼줄 삼아 정보, 사건, 조형은 모두 한 굴비 두름에 자연스레 엮인다. 이번 개인전은 그런 굴비 두름을 짜지 않고 담담히 늘어 놓는, 조곤조곤 자린고비 전시라 하겠다.

 
《Not Just Tiny But Abstract》  전시 전경


[작가 약력]

김신애(1984~)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독일 뮌헨미술대학교에서 Diplom 및 Meisterschüler(Klasse.Prof. Olaf Nicolai)를 취득했다. 공간, 차원, 조형 요소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각각의 속성, 그들이 이루는 관계, 이들에서 수렴 가능한 정보의 특성 등을 간결하면서 다채로운 조형으로 전이하는 작업을 한다. 2019년 OCI미술관 개인전 《Not Just Tiny But Abstract》에서는 OCI미술관 실제 전시 공간의 정보를 조형화하여, 정보의 속성을 엿볼 기회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김신애 (1984~)
Kim Shinae

shinaekim.com
mail@shinaekim.com

학력
뮌헨미술대학교 Meisterschüler (Klasse.Prof. Olaf Nicolai) / Diplom, 뮌헨, 독일
홍익대학교 회화 학사


주요 개인전
2019 Not Just Tiny But Abstract, OCI미술관, 서울
2017 +z : for 59 dots by impulse signal, T002 59.0 sec., Karin Wimmer contemporary, 뮌헨, 독일
2015 위옆옆아래,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13 "48°09′04″ N 11°34′53″ E 29°49.28′ N 5°44.05′ W", Akademiegalerie, 뮌헨, 독일
2012 Visual Ordernity, Weltraum, 뮌헨, 독일
2011 Zwei Sonnen, raum02, 뮐도르프, 독일


주요 단체전
2018 Spiele mit der Ewigkeit, 그림미술관, 베를린, 독일
스카겐의 건축 어제와 오늘, Skagen Odde Naturcenter, 스카겐, 덴마크
2017 nachspiel, 베를린 한국 문화원, 베를린, 독일
  one on one, Institution für Alles Mögliche, 베를린 독일
2016 아마도 예술공간 제4회 에뉴어날레 목하진행중, 서울
 Zimmer frei, Hotel Mariandl, 뮌헨, 독일
  conceptual, Karin Wimmer contemporary, 뮌헨, 독일
2015 Debutanten, 바이에른 정부 과학 연구 미술부서 신진작가 당선전 및 카탈로그 발표, 뮌헨 독일
2014 True Lab, Gallery Eigen + art Lab, 베를린, 독일


수상 / 선정
2018 2019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서울
     ONSDAGSSKOLEN 건축 리서치 레지던시, 스카겐, 덴마크
2015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신진작가, 서울
2014 바이에른 정부 과학 연구 미술부서 신진작가 당선과 카탈로그 지원금, 뮌헨, 독일 


전시 전경


[전시 서문]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170cm, 60kg, 손가락 발가락 각 10개? 머리둘레, 목 길이, 피부 면적, 점의 개수? 어떤 정보가 나를 규정할 수 있을까?

그림자, 흔적, 소문을 마치 대상 자체인 양, 혹은 그것을 온전히 규정하거나 대변하는 양 착각하곤 한다. 정보는 산발적이다. 정보는 지엽적이다. 정보는 대상의 ‘부분’에도 미치지 못하며, 기껏해야 그걸 또다시 지시할 뿐이다. 정보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터질 숱한 사건이다. 정보는 인지의 빈곤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빙산의 일각. 서로 다른 수많은 일각을 끝없이 볼 뿐이다. 흡사 ‘전설’을 대하는 듯하다.

OCI미술관 전시장에, 전시장 ‘일각’이 있다. 김신애는 서로 다른 몇 개의 층으로 공간을 썰고, 홀쭉하거나 나부죽한 사각형의 조합으로 환원한다. 사각형의 각 변은 막대 마디로, 길이는 색상값으로 형상화한다. 미술관 천장과 벽면 둘레는 실타래 감듯 포개어 단 하나의 수치로 수렴(추상화)하며, 이는 다시 동일한 길이의 실타래로 물질화한다. 반쯤 접은 종이는 전에 없던 선분을 붉게 품고 있다. 평면도 위에 떠올린 사각형과, 종이를 펴자마자 간데없을 이 선분은, 전시장과 종이를 파악하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문지만 한 아트북은 공간을 더듬는 제한적 인지로 가득 차 있다. 면면이 잇닿은 모서리의 길이, 수많은 꼭짓점 좌표와 개수가 난무하며 서로의 무게감을 흐려 댄다. 정보는 특질이라기보다는 ‘파악 시도’라는 사건에 가깝다.

‘Abstract’는 공공재 같은 속성을 암시한다. 사과는 세잔의 그림에 들어앉을 수도, 윗동아리를 치고 제사상에 올라갈 수도, 미국의 휴대전화 제조사 로고로 박힐 수도 있다. ‘10m’가 마을버스 길이, 가로등 높이, 어쩌면 OCI미술관 1층 짧은 폭쯤 될는지도 마찬가지이다.

김영기 (OCI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전시 전경


[평론]


Episodic Space

Episode #1 
이 문장은 동그라미로 시작해서 점으로 끝난다. 하나의 문장에는 다양한 선과 모서리가, 또 여러 형태의 집합과 여집합이 존재한다. 문장의 점과 선, 형태를 그리며 시작한 이 글은 의미 전달체로서의 문장이 아닌 존재 자체로 경험의 요체가 되는, 그러니까 문장의 선과 점이, 그 형태와 구도가 직관적으로 경험을 촉발시키는 망상적 장면을 떠올려본다. 아무것도 없는 모니터 화면 위 깜박이는 커서를 응시하다가 쓰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자기 번복과 논쟁의 흔적으로 새겨지는 문자의 집합. 그 집합은 제한된 의미가 아닌 순간적 사건의 정서적 군집으로 인지될 수 있을까? 특정 의미나 내러티브에 봉사하지 않겠다는, 외부로 향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글의 이중성은 애초에 설득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눈으로 대상을 본다. 하지만 그 대상의 인지는 주로 의미체계 내에서 이뤄진다. 지금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것의 직선과 곡선, 꺾임과 모서리, 공간과 구조에 몰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의미 전달을 위해 쓰여진 글을 형태가 아닌 의미로 읽어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글을 읽는 듯한 인지의 과정을 대상에 상관없이, 그러니까 대상이 어떤 의미를 전제했느냐 혹은 하지 않았느냐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시키고 있는지 의심해볼 수 있다. 마치 습관처럼 대상을 의미로 기억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수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눈앞의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모든 대상이 결국 의미체계로 수렴된다면 눈앞의 대상은 그 자체로 온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인지되지 않는 대상, 의미화할 수 없는 대상은 그 존재성도 부정당해야 하는가? 

하나의 대상을 특정해보자. 지금 서있는 전시장. 말끔하게 정리된 벽과 단단한 바닥 그리고 높은 천장, 그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텍스트를 읽고 있는 관객들. 그것이 전시장이 공개하는 물리적 환경이자 일반적 행위이다. 하지만 별다른 게 없어 보이는 그 장면에는 습관적 인지패턴이 포착하지 못하는 무수한 대상과 세계들이 존재한다. 만약 전시장에 여러 관객들이 있다면 혹은 오프닝과 같은 행사가 진행 중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상상해보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 대화가 뿜어내는 동경과 실망, 동의와 조소, 누군가의 가방 속 노트북과 먹다 남은 음료수, 행사를 위해 전시장에 비치된 의자와 테이블, 그 위에 아무도 먹지 않아 말라버린 빵과 과일, 아직 공간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한 페인트 입자들, 그 입자의 냄새에 취한 벽 뒤의 벌레, 또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는 감기 바이러스와 그 옆에서 분열하는 세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들까지 포함한다면 실로 무한한 세계가 하나의 대상-공간에 펼쳐진다. 이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또 고립되며 전시장이라는 하나의 대상, 세계를 구성한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이해, 정리되는 눈앞의 세계는 인간의 인지 범위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점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pisode #2
이 종이는 앞뒤로 면을, 위아래 양 옆으로 선을 갖는다. 얼핏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종이의 옆 날은 나름의 면적을 가지므로 선이 아닌 면으로 봐야 한다. 종이는 선과 면이 아닌 아주 얇은 덩어리로 존재한다. 종이뿐 아니라 3차원의 세계에서 인지되는 대부분의 선과 면은 면적과 부피를 갖는 얇고 긴 덩어리 혹은 그 부분이다. 어쩌면 선과 면은 개념으로만 혹은 수학적 수치로만 존재하는 허구의 대상일지 모른다. 

그럼 다시, 지금 서있는 전시장.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점과 선을 상상해본다. 개념과 수치로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시성의 신화를 위해 새워진 공간을 인지해보려 한다. 먼저 전시장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길이를 측정한다. 하나의 공간에는 여러 높이가 존재한다. 보가 지나는 곳과 2 층까지 뚫려있는 곳, 그리고 천장에 있는 조명 레일, 냉방 장치, 그 외 여러 용도로 만들어진 구멍 등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의 여러 높이들을 기록하고 이를 L1부터 L7까지, 총 7가지로 정리 분류해 본다. 그리고 각 높이와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점을 헤아린다. 여기서 말하는 점은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 예를 들어 공간의 모서리, 천장의 보와 벽이 만나는 곳, 천장에 뚫린 직사각형의 꼭짓점 등이다. 그렇게 전시장의 높이들, 또 같은 높이의 모든 점들을 기록 분류한 후 이를 일종의 데이터로 변환해 책으로 엮는다. 전시장의 높이-선을 기준으로 점들을 기록해 가상의 면을 만들고 이를 차곡차곡 쌓아 볼륨-공간을 갖는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감각 가능한 공간의 점과 선은 실제 면과 볼륨으로, 또 다른 공간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비슷한 접근이 추가된다. 전시장 도면 위에 삽입 가능한 사각형을 그려보고 그것의 총 길이를 컴퓨터 프로그램 상의 색상 값으로 변환시켜 같은 색의 입체를 만든다. 또 천장에 뚫린 정체 모를 사각형 구멍, 그리고 벽과 바닥 사이에 존재하는 긴 틈의 감각을 영상으로 송출한다. 전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선의 길이를 측정하고 같은 길이의 실을 뭉쳐 공간 한 곳에 위치시키는 등의 행위도 가능하다. 

위 시도는 상상적 세계인 점, 선, 면을 실제 대상-전시장을 인지하는 경로로, 또 다양한 인식의 태도를 환기시키는 장치로 설정한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기록 분류한 선과 점들은 여러 의미장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형태적 매체적 전환을 맞는다. 우선 높이와 그 점들은 원래 위치에서 탈각되어 책 안으로 재배치된다. 마찬가지로 전시장의 본래 길이는 색상 값으로 그리고 다시 조형적 구조와 질감을 갖는 덩어리로 변형된다. 또 공간 속 선의 가변성은 거창하지 않은 미세한 움직임을 드러내는 영상으로 재생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점, 선, 면의 세계에서 돋아난 현재의 인지를 허구적인 것, 상징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야 할까. 실제와 허구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지각일 뿐 두 세계 모두 분명히 존재하는 실재는 아닐까. 

Episode #3
그리고 이 종이는 비스듬히 접힌다. 하얀 종이가 반으로 비스듬히 접히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종이는 접히면서 또 다른 면과 선을, 공간과 입체를 만들어 낸다. 접힌 두 개의 면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드러나고, 하나가 되지 못한 면들은 공간과 볼륨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접힌 두 개의 면을 구분해내는 선은 일종의 흔적이다. 종이가 접히지 않았다면, 접힌 면이 사라져버린다면 그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선은 사건을 통해 출몰하는 아주 작고 추상적인 세계이다. 때때로 점과 선은 특정 이론과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한한 세계로 정리되어버리곤 한다. 어떤 대상이 무한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순간 관련 사고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녹아버린다. 종이를 접는 행위는 그렇게 무한의 세계로 다가오는 대상에 특정 관계를 가설하려는 시도이다. 전시장의 여러 물리적 환경적 요소를 점, 선, 면의 성질로 해석하고 이를 데이터로 변환해 시각적 형태와 매체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은 관계로 도드라지는 특별한 관점으로서의 대상-전시장을 공유한다. 하얀 종이를 비스듬히 접듯 점, 선, 면이라는 무한의 대상을 실제 세계로 특정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얼핏 공허하게 또 건조하게 다가오는 행위들은 전시장에 가설 가능한 다양한 인지의 단면을 공유하며 그것이 언제든 다른 사고로 전환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행위에서 전체, 총체의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공간의 모든 높이와 길이를, 점과 면을 기록하는 과정은 대상을 전체로 묶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를 포괄하고 그 정황을 시각화하기 위한 행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결국 전시장의 사건(episode)이란 급진적이고 유일무이한 발생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와 통제된 기호로 전달되는, 대상의 다양한 성질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관계의 축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상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습관적 사고가 은폐해왔던 세계를 재발견하는 길은 쉽게 대상화될 수 없는 것과의 관계를 설정하며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 공간에 무수하게 그려지는 상상적 선과 점들은 전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도, 자기만의 신화를 축성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것은 쉽게 감각되지 않지만 결코 의미 없는 세계가 아니다. 확인했듯 그 세계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 지속적으로 재발견되는 거대한 세계, 전시의 사건은 그 세계를 남김없이 소비하지 않는다. 다만 절제된 사고와 축적된 관계로 전달할 뿐이다. 

권혁규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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