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아트스페이스 초대전 CAMERATA ART SPACE 2019
하 민 수
해마다 그날이 오면
HA, MINSU
WHEN THE DAY COMES
* 전시기간 2019년 7월 27일 토요일 ~ 2019년 9월 8일 일요일
* 관람시간 화요일 ~ 일요일, 12:00~18:00 (월요일 휴관, 목요일 예약관람)
* 전시장소 카메라타아트스페이스, 파주 헤이리
* 전시장르 복합매체, 설치, 영상
‘메타복스’, ‘30캐럿’, 그리고 ‘아트제안’에 이르는 여정
카메라타아트스페이스는 2019년 여름 전시로 2019년 7월 27일부터 9월 8일까지 하민수 작가 초대전 <해마다 그날이 오면>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동안 하민수 작가의 여정은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현대미술사의 중요한 흐름 –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그리고 작가의 현실참여 – 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 미술의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던 그룹 ‘메타복스’에서의 작업은 당대 주류를 형성했던 추상화의 미니멀리즘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두기를 통해 오브제를 메타언어로 삼아 탈모던의 대안의 제시하였습니다. 이 시기 등장하는 솜, 천, 바느질 등과 같은 비미술적 매체의 선택은 이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찾기로 이어지며 보다 구체화됩니다. 1990년대 본격적인 페미니즘 미술을 추구했던 ‘30캐럿’은 여성의 삶과 예술 간의 긴장감을 인식하며 작품제작의 원천으로 작동하도록 하였습니다. 일상의 도전에 직면하여 적극적인 그룹 활동으로부터 숨고르기를 하며 오롯이 자신과 마주했던 10여년간의 침잠을 깨도록 만든 세월호의 비극은 작가가 직접 사회와 소통하고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직면하도록 트리거가 되어 예술가들의 현실참여를 실천하는 ‘아트제안’ 그룹을 형성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9년 여름 카메라타에서 준비한 이번 하민수 작가의 초대전은 오랜 기간 다차원적인 미술 실천으로 응집된 작가의 역량을 차분하게 응시하며 삶과 예술이 그토록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민수는 회화적 시각성과 공예적 촉각성을 넘나들며 미적 거리두기와 경험적 다가서기를 반복해 왔다. 그 과정은 삶과 예술을 동일선상에서 고뇌하며 모두를 감내하는 동시에 거듭나기 위한 작가의 몸짓으로 보인다. 그러한 몸짓으로 점철된 하민수의 작품은 묵묵한 일상의 과업이자 창조의 신전에 바치는 경건한 제의적 유희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 박은영, <하민수 작품론 - 나비의 꿈: 삶과 예술의 이중주> 중에서 -
작가의 말
<해마다 그날이 오면>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오마주하는 의미로 지은 제목입니다. 또한 위안부 여성을 주제로 만든 작품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와 <그녀의 초상 -당신은 우리의 고운 누이이며 딸이며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 한국근대사 속의 여성들을 생각하며 역사 속의 어느 시점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던 과거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것은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그린 작품 <너희를 결코 잊지 않을게>에서도 마찬가지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잘못과 허물을 덮어 은폐하지 않고 기억하고 반성하며 현재의 삶의 가치를 선택하는데 기준을 삼아서 삶과 생명의 존엄함을 찾고자하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2018, sewing on the cloth, 269x115cm
전시 서문
하민수 회화론:
더 큰 아픔을 머금은 더 깊은 밝음, 더 따스한 온기
심상용(미술사학 박사/서울대학교 교수)
“예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그때까지 교육 받았던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었다.”
- 하민수, 『빵의 예술, 영혼의 예술』전(2015) 인터뷰 중에서-
*
하민수는 그가 속한 시대, “자본이라는 거대한 우상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는” 피폐한 문명을 직시한다. 이 문명 안에서 사람의 인격은 쉽게 통계 수치로 대체된다. 여기서는 어떤 부조리한 희생이나 죽음도, 남겨진 가족의 울부짖음도, 군사 위안부의 청춘도 즉각 금전적 보상-그것도 매우 박한-으로 환산된다. 자본화할 수 없는 생명이나 삶은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시대의 고유한 ‘흑암(darkness)’이다. 하민수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하고서, 자신이 발기한 예술가 그룹 ‘ART 제안’의 첫 번째 북정마을 전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생명보다 늘 우선되는 큰 자본과 그것을 이루고 있는 조직은 우리의 가치관을 쉽게 휘두르는 최상의 권력이 되었고 개인의 꿈과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로서 하민수의 의식은 일찍이 예술가 그룹 ‘메타 복스(META-VOX)’에 가담했던 때부터 드러났다. 1985년에서 88년까지 4년에 걸쳐 활동했던 메타 복스의 노선은 현대미술의 당대적 경향에 대한 비판과 컨템포러리 아트의 대안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하민수의 회고에 의하면, 예술을 ‘물성’이나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미학적 환원주의를 경계하면서, 주체의 연장으로서 그리고 인간 경험의 표현으로 재인식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작가로서 하민수의 두 번째 여정은 1993년 그가 주도적으로 창립했던 여성 예술가 그룹 ‘30 캐럿’과 함께였다. 2000년 까지 7회의 전시회를 가지면서 꽤 긴 기간 활동을 지속했던 ‘30 캐럿’의 작가들은 자신들이 학습해온 남성우월주의적인 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각각의 작품 안에 여성으로서의 삶의 인식과 표현을 담아내고자 했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2019, sewing on the cloth, 130x200cm
‘30 캐럿’ 시대 이후로도 꾸준히 창작과 발표가 이어졌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칩거라 할 수 있을 얼마간의 시간이 그 뒤를 이었다. 하민수 자신의 회고처럼 그로선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한 뼈아픈 회의에 더해 삶의 무게마저 얹혀 졌던 실존 구간이었달까. 추구했고, 실험했고, 만들었던 시간들 전체가 덧없는 의미의 무덤처럼 보이는 상실감에 눌려야 했던, ‘그럼에도 왜 예술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번에야말로 전적으로 홀로, 그러니까 강의실이나 시류 담론들에의 편승이 제공하는 일체의 보호 장비 없이 혼자 묻고 스스로 답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그러했던 10여년의 칩거를 뒤로 한 채, 하민수로 다시 말하도록 했던 계기는 2014년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와 325명의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476명의 희생자였다. ‘더는 침묵해선 안 된다’는 각성이 그로 하여금 다시 붓을 들게 했던 것이다. 하민수의 주도로 ‘ART 제안’이라는 새로운 예술가 그룹이 잉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음하는 문명, 시대의 아픔에 대한 새로운 눈뜸이 하민수로 다시금 작업에 시동을 걸게 했던 것이다.
**
상실과 침묵에 양도되었던 시기를 지나면서 하민수의 태도는 이전의 메타 복스나 30 캐럿 시대의 그것과 사뭇 달라졌다. 세 가지 점에서 특히 그렇다. 먼저 삶과 예술의 이분법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예술론의 기틀이 한층 더 견고해졌다는 점에서다. 하민수는 예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그때까지 교육받았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시대의 정의에 등 돌리는 예술은 더는 예술일 수 없다는 인식이 더욱 결연해졌고, 정신성과 내적 가치의 추구와 동떨어진 채, 자본주의 이념의 꼭두각시로 변질되어버린 예술에 대한 반성은 보다 농밀해졌다.
거울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았는가?, 2014, sewing on the cloth, 113x205cm
두 번째는 부조리한 세상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의 변화로 인해, 삶과 예술의 일치에 기반하는 그의 예술론의 뉘앙스가 변했다는 점이다. 세계의 고통을 직시한다는 점에선 변함이 없지만, 이제 직시는 치유와 처방을 동반하는, 타자를 향해 열린 인식이다. 비판하되 보살피고, 아파하는 것에 머무는 대신 상처를 싸매는 고양된 인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의 출처는 무엇인가? 하민수에 의하면 그 답은 타자화된 여성 자체인 동시에 타자화에 대한 가장 온전한 극복이자 대안인 어머니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 어머니는 최근 타개하신 그녀의 어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고,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살아주었던 위안부 여성들이 그 안에 포함될 역사 속의 어머니들이다. 모든 존재는 어머니로부터 도래하기에, 어머니는 또한 그곳에서 죽음-주체의 최종적인 교정의 순간인-을 맞이하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로 인해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고립되어선 안 될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의 작품 <해마다 그날이 오면>(2019)은 그녀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만든 오마주 작품이다. 문명과 역사에 대한 위기의식의 한 가운데서, 하민수는 사랑의 원형(原形)에 가장 근사한 인격체로서 어머니를 불러낸다. 어머니의 사랑이 모든 ‘아버지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서구미학을 비판 없이 답습하도록 촉구해온 우리 컨템포러리 아트의 아버지 콤플렉스도 우리의 삶과 공동체로부터의 분리, 어머니 대지(大地)로서 자연, 뿌리 내림의 부재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도 말했듯 이 시대의 문명은 그 병이 깊다. 세월호는 마음 속에서 매일 침몰하고, 위안부 여성들의 과거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이다. 아이의 꿈과 청년의 희망마저 자본에 잠식되고, 뿌리 뽑힌 우리의 컨템포러리 아트는 뼈아프다. 하지만 하민수는 위안부 여성을 마음으로 품으면 만들었던 작품의 제목처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제안한다. 땅을 치며 회한에 젖어있기만 하기에는 인생이라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비판하지만 결코 희망을 양도하지 않는 것, 라르쉬 공동체(L’Arche community)의 창시자 장 바니에(Jean Vanier)의 표현을 빌자면 훈육하는 대신 식탁을 차리는 것이다. 하민수의 회화론은 이 불가사의한 희망과 초대의 형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형식은 서구의 형식주의 미학이 주창해온 엘리트적인 ‘양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그것은 세월호에 승선했던 학생들에게 건내는 하민수의 인사말 “너희를 잊지 않을께” 같은 사람의 온기(溫氣)에 의해 결정적으로 정의되는 형식이다. 하민수의 세계를 아우르는 정조가 바로 이 따스함이다. 절망이 가장 합리적인 반응임이 분명한 때조차, 기억하는 것 외엔 다른 어떤 힘도 없는 무력함의 한 가운데서 역설적으로 반응하는 새롭게 피어나는 어떤 역설이다.
그녀의 초상 - 당신은 우리의 고운 누이이며 딸이며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2017, sewing on the cloth, 80x50cm (각각, 총 그림6점, 설치1점)
세 번째는 세상을 마주하는 그의 인식이 더 첨예할수록 그의 회화가 더 밝고 따스해진다는 것이다. 어두운 문명이기에 색조는 더 밝아져야 한다. 아플수록 톤은 절망을 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타자화된 여성의 노동으로 간주되었던 재봉질이기에, 그것이 구현하는 곡선과 직선들은 그 자체로 치유적이다. 바느질은 여성의 노동인 동시에 어머니의 노동이었기에 그 땀들에는 따스한 호흡이 깃든다. 이 모든 요인들에 기대어 이 세계는 거리를 두고 세상을 직시하던 것에서 세상의 고통을 보듬고 함께 아파하는 대안의 인식을 벼른다. 직시하는 것과 함께 아파하는 것은 관계의 측면에서 전혀 차원이 다르다. 직시는 지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자칫 고립한 ‘나’를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유치한 행위일 수 있는 반면, 함께 아파하는 것은 결코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 세계의 끝은 더 큰 아픔을 머금은 더 깊은 밝음이요 더 따스한 온기일 터이다. 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세부 묘사가 생략된 채 부드러운 윤곽선으로 서술된 여인은 언제까지라도 더 꿋꿋하게 견디어 나갈 것이다. 어떤 바람도 더는 그녀를 흔들지 못할 것이다.
하민수 작품론:
바느질로 새긴 사랑의 흔적
박은영(미술사가)
하민수는 1980년대 후반 미술 동인 ‘메타복스(Meta-Vox)’의 중심 멤버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메타복스’는 당시 한국 추상미술의 미니멀리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오브제(사물)를 메타언어로 삼아 탈모던의 대안을 제시하려 했던 한국 포스트모던 미술의 선도 세력이었다.
‘메타복스’ 활동 초기에 하민수는 천이라는 재료와 숫자의 이미지를 사용해 오브제와 기호의 문제에 천착했다. 흰 무명천, 솜, 접착제, 안료 등 재료들의 접합과 이완의 관계 속에서 숫자들이 은근히 드러나는 작품들에서는 강력한 상징기호인 숫자가 재료의 강한 물질성에 파묻혀 약속된 의미가 흔들린다. 사물은 물론 기호에 대해서도 관념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의미의 물질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의 놀이를 통해 작가는 대상을 해체하고 내면화하고 다시 개방하면서 오브제와 상징과 이미지의 어긋난 조우를 유도한다. 한편 구겨지고 찢기고 채색된 직물들로부터 새, 강, 동물과 같은 이미지가 서서히 형성되기도 하는데, 그 이미지는 대상의 ‘재현(구상)’이 아니라 ‘비정형(informe)’ 가운데 맺어지는 파편화한 ‘형상’으로서 물질적이며 본능적인 것에 가깝다. 기존의 미적 논리가 완결성, 완전성, 고정성을 전제로 한다면, 이러한 작품들은 불완전성, 가변성, 공예적인 것, 촉각적인 것을 나타내며 여성성과 깊이 관련된다.
나를 들여다 보다, 2014, sewing on the cloth, 168x124cm
오브제의 여성적 측면을 통해 기존의 미학에 도전했던 하민수는 1990년대 들어 바느질로 일상적 소재들을 새기면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경향의 작품세계를 전개한다. ‘30캐럿’전, ‘여성, 그 다름과 힘’전, ‘99 여성미술제’ 등에 참여하면서 동시대 여성 작가들과 호흡을 함께 한다. 바느질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생산성과 장식성을 드러내온 수공예적 제작방법이며, 격동의 역사 속 고통스런 여성의 삶과 한을 함축한다. 하민수는 바느질과 함께 전통적인 소재나 형식을 도입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동양과 서양을 융합한다. 무수히 엇갈리는 재봉선처럼 시공간의 짜임 속에 변화해온 여성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작품에 등장하는 옛 여인의 낡은 흑백사진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작가 자신과 동일시되고 과거 어머니들이 애용하던 자개 화장대는 이제 화가의 분신인 젊은 여인을 비춘다. 이처럼 모성의 계보를 상기시키는 일련의 작업들은 가부장적 체제의 누적된 시간 속에 가려진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하민수의 작품에서는 가느다란 재봉선들이 풀리고 얽히며 모호한 가운데 형상을 이룩해 나간다. 거미줄 같은 그 선들은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상과 계속되는 노동의 흔적으로, 헤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이자 숙명처럼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구속의 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선들은 부단한 창작의 근원이요 질긴 생명선이며,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비상의 끈이기도 하다.
자유함 앞에서, 2012, sewing on the cloth, 96x127cm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2000년대 이후 삶의 조건이나 원형, 근원과 같은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일상의 고단함과 일탈의 욕망을 일종의 예술적 유희로 전환시키면서 모든 상반된 요소들의 균형과 조화를 통한 궁극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때론 혼란스럽게, 때론 달콤하게 다가오는 하민수의 작품에서 일관된 주제는 일상에서 문득 마주하는 자아, 그 존재에 대한 치열한 탐색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죽음을 내포하므로 작품의 저변에서 작가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는 화두와 항상 대면한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물이나 나비의 형태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형상화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물과 나비는 죽음과 동시에 새 생명, 즉 세례나 부활에 이어진다. 하민수의 작품 곳곳에서 얼핏 날아오르는 나비들은 숨겨진 자아이며 삶의 굴레에서 이탈한 죽음의 모습이고 또한 재생에 따른 영혼의 자유를 암시한다.
2010년대 들어와 하민수는 개인적인 표현을 넘어 사회문제에 대한 탐구와 발언으로 작업의 폭을 확장한다. 예술가 그룹 ‘아트 제안’을 결성하고 위안부 문제, 세월호 사건 등 우리 시대의 당면한 이슈들을 고유한 언어로 풀어나간다. 그런데 하민수의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들은 어떤 사건의 고발이나 직접적인 비판이 아니라 전쟁, 재난, 이산 등 혹독한 경험을 한 여성이나 희생자, 즉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을 형상화한 작품 <너희를 결코 잊지 않을게>에서는 희생된 아이들을 연상시키는 앳된 인물들이 수직으로 드리운 커튼 같은 조각들과 겹쳐 아련하게 묘사되었다. 멀어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시선이 생사의 끔찍한 현장을 오히려 리드미컬한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인물들은 윤곽만 남고 모호한 베일에 가려 누구를 특정할 수 없이 일반화된다. 그들은 이웃, 친구, 가족이며 심지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주체와 타자의 동일성을 인식하며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하민수가 예술을 통해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은 최근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는 작품인데, 그동안 하민수가 실행한 다양한 작업내용이 응축돼 있다. 어머니의 한복에 무수히 재봉질을 해 완성한 것으로, 어머니의 개인적 삶은 물론 근현대 역사 속 여성의 일상, 노동, 고난, 희생과 같은 한국 어머니들의 삶의 의미가 녹아있다. 작품 앞에 서면 한복의 조직 속에 재봉실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잿빛 무언의 세계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느질의 흔적은 끊어질 듯 연결되며 여린 듯 단단히 얽혀있다. 재봉질 소리는 거칠지만 힘차게 묵묵히 이어진다. 그것은 쉬지 않는 생명의 힘이며,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투박하고도 고운 삶의 소리다.
안전지대로부터 나올 용기, 2013, sewing on the cloth, 122x83cm
오랜 시간 하민수는 회화적 시각성과 공예적 촉각성을 넘나들며 미적 거리두기와 경험적 다가서기를 반복해 왔다. 그 과정은 삶과 예술을 동일선상에서 고뇌하며 모두를 감내하는 동시에 거듭나기 위한 작가의 몸짓으로 보인다. 하민수의 작품은 묵묵한 일상의 과업이자 사회에 대한 반응이며, 결국 삶의 시간 속에 기억으로 각인될 사랑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