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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드로잉 39, GR1: 목줄 없는 개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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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드로잉센터 공모 당선작가 개인전 
“Into Drawing 39”展 (작가 GR1) 개최

● 소마드로잉센터 공모 당선작가 개인전 “Into Drawing 39”展 개최 
● 익명성을 전제로 작가의 생각을 시각화하여 선적인 요소를 가미한 그라피티 전시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재기) 소마미술관은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드로잉 전시를 지속적으로 이슈화하고자 매년 공모를 통하여 선정된 작가들의 전시회를 “Into Drawing”이란 이름으로 개최합니다. 올해는 “2018년 드로잉센터 작가공모”에 선정된 작가 3인의 개인전으로 진행됩니다. 금년 “Into Drawing”의 첫 번째 전시는 8월 30일부터 9월 29일까지 “목줄 없는 개들 (Dogs without Leash)”라는 부제로 선보이는 지알원의 드로잉(그라피티) 작업으로 구성됩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외부의 공공 영역에서 익명성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라피티 작업을 미술관이라는 공간 속으로 끌어 오는데, 미술관의 벽과 캔버스에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 변칙적인 드로잉의 형태를 구축함으로써 거리미술이라는 큰 집합 속에 새로운 발견과 색다른 기록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본 전시는 소마미술관 메인 전시(조각_조각)와 함께 관람 가능합니다.

전시 개요

 ㅇ 전 시 명 : Into Drawing 39
               목줄 없는 개들
               (Dogs without Leash)
 ㅇ 전시기간 : 2019. 8. 30(금) ~ 9. 29(일)
 ㅇ 전시오픈 : 2019. 8. 29(목) 오후 5시
 ㅇ 주최․주관 :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
 ㅇ 전시장소 : 소마드로잉센터 전시실
              (소마미술관 2관 3전시실)
 ㅇ 전시작가 : 지알원
 ㅇ 출 품 작 : 드로잉 60여 점


전시 소개

▶ 익명의 그라피티로 부치는 소통의 변주

 예술의 목적이 사물을 재현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되었다. 현대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한다기보다는, 보이도록 만드는 것에 주목한다. 이 말은 예술의 목적이 사물의 사물성을 획득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려 하지 않고, 예술작품 자체로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예술이 창조성을 강조하는 근거는 이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예술의 목적이 사회와의 관계 속에 있기보다는, 예술 그 자체가 지향하는 목적이 우선한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긍정한다면, 현대 예술은 예술작품 자체 내에서 예술의 고유한 자율성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경험적 현실로부터 자신의 내용을 이끌어온다는 점에서 사회와 완전한 분리되기 어렵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예술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세계를 함유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회적 현실을 거부하고 그로부터 자율성을 갖기도 하지만, 부정적 관계를 통해 현실적 계기들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런 견해에 의존해서 작가의 작업 방식의 밑그림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는 도심의 거리에서는 벽들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기록하는 데 주목하고, 작업실에서는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고 말한다. 마치 영화 <마스크>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스크를 쓰고 초인적인 힘이 생기면서, 온갖 소동을 피우는 스탠리의 모습처럼 작가는 거리가 고요해질 시간이 되면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거리로 나서듯이 말이다. 거리는 그에게 작업실 자체이며, 예술적 소통의 장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업은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주변의 소소한 이미지들을 그라피티(Graffiti)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언뜻 보기에 힙합 문화에서 접할 수 있는 기호인 빠른 비트가 담긴 음악과 랩, 그리고 흑인문화 특유의 강렬한 리듬의 춤 이미지들이 오버랩되면서, 대중과의 호흡을 감각적으로 심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그 문화 현상의 배후에 깔린 차별과 소외의 역사성을 기억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비판 의식만으로 접근하기에 그의 작업 방식은 다양하다.

작가의 작업은 긴장 관계 속에 놓여 있는 듯 보이는데 이것은 제한된 공간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기 때문이다. 확정적 전시공간이 아닌 공공의 영역을 기획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익명으로 활동을 한다는 것, 모든 전시 기획이 항상 새롭게 전개된다는 것, 예술가의 반복적 일상을 거부한다는 것, 이 같은 태도에서 그의 작업은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긴장감은 작가의 작업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거리에서, 혹은 캔버스 위에서 은밀하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거리에 알 수 없는 태그를 남기거나 어느 이름 없는 벽면에 그라피티를 무심코 그려 넣은 행위는 고정적 예술에 시비를 거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거리의 그라피티에 합류하는데, 이런 행위가 바로 작가가 외부 사회와 소통하는 특정 방식이고, 끝없이 변화를 추동하면서 보는 이를 긴장시키는 그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예술작품은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고, 누구나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예술을 향한 그의 지론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 방식은 거리에서 소통하는 예술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리에 남기는 그의 태그는 소통의 기호이기도 하다. 그는 한편으로 예술작품에 선뜻 접근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이 때문에 그의 그라피티는 거리에서 출발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흔한 벽면들에서 시작된다. 그의 그라피티는 이 나라의 현재를 사는 한 청년으로, 시민으로서 말해야 하는 것들, 말할 수 있는 것들, 때로는 비판과 부정을 향하기도 하는 의식의 자유로움을 향한 표현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일관된 모노톤의 작품이다. 작가가 벽보로 사용하는 재료는 얇은 회색의 갱지인데,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물성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치 수묵으로 표현한 듯 동양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부 작업은 그레이톤으로 표현된 밑 작업 위에 화려한 색으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는데, 안내판의 색감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거리의 안내판에서 착안한 제작 의도 또한, 그의 예술이 사람과의 소통, 사회적 소통을 지향한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거리에 남겨놓은 그라피티 작품들이 거리가 아닌 실내 전시공간에 걸리게 된다는 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지 궁금하게 만든다. 거리에서 자라난 그라피티가 떼어져 전시공간에 설치되면서, 그라피티의 미적 지평을 변모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작가의 창작은 대부분 외부의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데, 공공성의 공간만큼이나 익명성을 전제로 표현된다. 이 때문에 그는 미술관으로 옮겨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익명성이 위협받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아마도 장소의 이동은 그의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지만, 기존의 창작 행위의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제한받을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게 될 이번 전시를 통해, 함축적 공간을 미적 영역으로 변모시키는 작가의 예술적 확장능력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변주라는 역설적 미학의 신선한 충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수민 (소마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드로잉 단상 

1.
90년대 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그림 그리는 것과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래피티 작업은 당연한 수순 같은 것이었다. 2000년 3월 처음 스프레이를 잡고 낙서를 하며 받았던 재미와 강렬함 때문인지 그 이후 거리 위에서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하며 많은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체포되어 몇 번의 재판을 받기도 하며 나는 10대와 20대를 보냈다. 
나의 모든 생활 습관 양식 등 모든 것이 그래피티라는 문화적 관습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면 길을 걷거나 어딘가로 이동할 때에는 항상 스티커 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일종의 tag(사인,표식)을 방문한 장소에 남기는 행위를 계속해서 한다거나 불법적 작업을 하였을 때 작업이 눈에 띌 수 있는 장소 등을 메모장에 적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을 오래된 습관처럼 반복해서 해왔고 이 습관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 되고 있는 중이다. 
 
2.
태깅(Tagging)이라는 행위는 그래피티 문화가 처음 태동될 때 주로 단색으로 작가들의 사인을 빠르게 그리는 행위를 말한다. 모든 그래피티 작업의 기초가 바로 이 태깅이라는 행위인데 현대의 작가들에게 이 태그는 점점 더 양식화 되고 추상화 되었으며 더욱 빠른 작업을 하기 위해 스티커나 스텐실 등으로 대체 되기도 하였다. 이 문화에서 배제된 타자들에게는 암호처럼 한번에 알아보기 힘든 이런 문양들은 그래피티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읽고 이해한다. 이런 양식화 된 거리의 사인, 태그들이.. 선을 긋는 행위, 즉 드로잉의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드로잉의 사전적 의미인 입체의 표면 위에 ‘선으로 긋는다’ 라는 행위를 이러한 태깅들이 가장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리 위에서 즉발적으로 일어난 이러한 낙서의 나열에서 질서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3.
그래피티 작가들은 자신만의 고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서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런데 이런 정체성은 익명성과 불법성 위에서 만들어진다. 
구속과 제한을 벗어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그래피티 라이팅(Writing)의 강한 중독성과 작가들의 세계에서 잠재적으로 얻게 된 명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태거들은 흥미를 잃지 않은 채 수년이고 태그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본질적으로 보면, 태그 활동은 도시 전체를 놀이터로 삼는 일종의 게임과 같다.(애너 바츠와베크, ‘그라피티와 거리미술’, p17 인용) 
 
■ 지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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