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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순: Layers of time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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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이배 수영전시관에서는 2019년 9월 7일부터 11월 3일까지 ‘Layers of time' 라는 전시제목으로 교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배상순 작가의 회화, 도자,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관계‘의 담론에 천착해 온 작가의 작업은 끊임없는 고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역사적 배경 위에서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관계의 정체성을 표현한 ‘고르디아스의 매듭’, ‘관계의 형태’, ‘선의 울림’ 등 기존 회화작업들에 사진과 영상작업이 가미되어 근대사에 있어 한일관계의 복잡한 상황을 작품으로 선보이고자 한다. 첨예한 대립각에 서 있는 두 나라의 현 시대적 상황에서 ‘관계’라는 담론으로 풀어낸 예술작품을 통해 갈등을 인간적으로 해소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관계에 관한 작가의 기존 작업들은 문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추상적이고 명상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선(몸)과 선(몸) 사이에 집중하여 화려하기보다는 절제된 색채로 역동적이면서도 정적인 회화로 접근해 왔다. 이후 그 파장과 깊이를 더하기 위해 작가는 타인의 삶으로, 시차와 국경을 넘어 우리의 근대사 속에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역사적 배경 위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개인과 사회 간 관계에 남겨진 내면의 갈등을 풀어내고 재해석하고자 한다. 관계와 역사 속 흐름에서 기인한 수 만 번의 붓질은, 억겁의 시간으로 이어진 존재들의 묵묵한 아우성을 대변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작업들은 기존 작업방식에 더하여 최근 4년에 걸친 리서치를 기반으로 현장 인터뷰와 실질적인 만남을 통해 시차와 국경을 넘어, 보편적 인류애에 접근하는 더 탄탄한 구조를 갖춘 사진과 설치작품들로 전개된다.

배상순의 회화작업은 선화(線畵)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가능한 한 ‘無(무)’에 가까운 흑백 화면에서부터 출발한다. 검은 벨벳 위에 청먹과 흰색 젯소(gesso)를 바르고 그 위에 먹선과 목탄으로 그린 검은 선과 덩어리 형태의 작업과 역시 검은 벨벳 위에 흰색 젯소를 희석한 물감으로 가늘고 가벼운 선을 세필로 수없이 반복하고 중첩한 유형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여백에 생긴 구멍들은 무한한 심연이 펼쳐지는 회화의 한 유형으로 또 짐작할 수 있다. 작품들은 원래 인체 데생으로 출발해 추상화한 선들로 몸의 윤곽선에 기초하면서 유기적인 선의 운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회화적 환영을 현실에 전개한다면 그녀의 작업은 특정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묵언과 집중과 일념을 그대로 회화로 재현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작가의 작업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위의 결과가 만들어 놓은 형이상학적 결과물이다. 보는 예술을 체감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예술로 전환시킨 검정 벨벳 작업들은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해석에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개개인의 이야기에는 관계를 형성해가는 치열한 삶의 과정이 담겨 있다. 추상적이고 문학적인 매듭이나, 실, 도자기 같은 오브제작품을 토대로 리서치 프로젝트에서 얻은 강렬한 기억과 경험을 쌓아가며 관계나 삶을 바라보는 나의 변화된 시각이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벨벳 작품은 수없이 되풀이하여 그려야만 그 이미지가 드러난다. 수만 번의 붓질은 지워지지 않고 생존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아우성처럼 들리고, 70여년이 지난 후에야 어렵사리 자신의 이야기를 한 구절씩 드러내는 희미한 존재들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과거의 자신과 주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가진 이들의 잔잔한 고백은 침묵의 시간만큼 묵직한 울림으로 남는다. 그들조차 떠나고, 소리 없이 남아 있는 물체들, 만든 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70여년을 시간을 보내오며, 수만 겹의 잎사귀를 새로 만들어내고 새로운 이들을 맞이하고 지내온 나무, 그리고 불의 흔적을 안은 오래된 성벽의 터진 돌조차도 꽃이 되고, 숲이 되어 내 사진 작업으로 재탄생했다고 나는 믿는다.’

배상순 작가는 1971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1997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2002년 도쿄 무사시노미술대학원을 수료, 2008년 교토시립예술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현재까지 교토를 거점으로 작업하고 활동하고 있다. 영국 로얄컬리지오브아트(판화전공) 교환학생을 거치며, 2005년과 2008년에 일본 모리미술관 「현대미술의 전망- 새로운 평면의 작가들」에 선정되어 전시한 바 있다. 특히 2015년 대전문화재단의 지역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한일근대사에 관한 사진과 영상작품을 선보였으며, 일본의 ‘한창우 철 문화재단’의 지원금으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과 대전의 근대사에 관한 작품을 선보였다. 2019년 국제사진예술제인 ‘교토그라픽KG+’에 선정되어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들의 스토리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전시와 아트페어를 통해 유럽, 미국, 홍콩, 인도 등 국제적으로 작가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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