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풍경, 온 몸으로 앓다
: 정철교 개인전에 부쳐
박신의(미술평론가, 경희대학교 교수)
정철교의 그림에는 어떤 찰나적 순간의 섬광이 번뜩인다. 바닷가 마을을 그려낸 풍경은 오후 어느 시간 강렬하게 내려쬐는 땡볕의 ‘절정(絶頂)’을 그렸을 때처럼, 혹은 하늘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내리는 의외의 상황처럼 기이하고도 낯선 모습이다. 그 기이하고도 낯선 모습은 겉으로 비쳐지는 화려함과 달리 불안한 조짐과 징후를 화면 가득 배어나게 한다. 선연한 색채로 표현된 빛과 그림자의 대비도 그렇지만, 인적이 끊긴 마을의 적막함 자체에서 그런 징후는 더욱 강하다. 마치 위급한 상황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생하면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정지된 상황이 영겁의 시간대로 고착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화면 가득히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자못 표현주의적 색채로 읽혀지는 그의 풍경은 화가가 살고 있는 공간 속에서 겪는 어떤 ‘이명증(耳鳴症)’ 혹은 ‘신열(身熱)’ 같은 것이다. 그러한 증상은 마을의 집과 도로, 버려진 폐선, 언덕바지와 소나무, 심지어 하늘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로 한적한 포구 마을이 서서히 무너지는 풍경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리라. 대부분의 마을 풍경에는 멀리 원자력 돔과 송전 철탑이 보이고, 인적 없는 골목길과 낮은 집들 사이로 전선들이 어지럽게 드리워져 있다. 또 금이 간 담벼락과 바닥은 생채기처럼 붉은 선으로 확연하게 그어져 있다. 붉게 칠한 가늘고 굵은 선들은 하늘에도 그어지고, 고압전선으로 가르며, 땅 아래 그림자로 흘러내리고, 건물 담장 사이로 틈새를 만들어가면서 마을 전체를 점령해 간다. 화가는 붉은 선을 휙 지나가는 바람처럼, 꿈틀대는 짐승의 몸짓처럼, 소리 없는 ‘절규(絶叫)’처럼 처절하게, 허망하게 그려 제낀다.
어쩌면 벌써 주민이 떠나갔을 빈 공간은 차라리 ‘백일몽(白日夢)’의 순간으로 와 닿기도 한다. 특히 망연하게 배치된 두 개의 빈 의자는 원전의 ‘존재’와 풍경의 ‘부재(不在)’를 동시에 설명하는 도구로 강하게 어필한다. 사람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 마을은 이미 그 자체로 비현실의 공간이다. 화가는 그 곳이 마치 눈뜨고 꾸는 꿈인 양, 아니면 몽유병자의 풍경인 양, 가위 눌린 상태의 또렷한 무의식이 펼쳐지는 현실인 양 그렇게 그려내고 있다. 화가가 살아가고 있는 이 바닷가 마을은, 그런 점에서 현실이자 비현실이고, 존재이자 부재이며, 고향이자 재앙이고, 자아이자 타자이며, 안이자 밖이며, 이미지이자 실체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 그 자체를 풍경은 슬퍼하고 아파하며, 어루만지며, 기억하고, 노래한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골매마을과 신리마을은 신고리원전 건설로 인해 풍경의 일부가 고장 난 곳이다. 마을 주민은 이주를 해야 하고, 그들의 터가 헐리게 될 것이며, 졸지에 정처(定處) 없는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3, 4호기로 이주해 신리마을로 왔던 주민은 새롭게 건설될 5, 6호기로 다시 이주를 해야 하니 이중의 유랑이 되는 셈이다. 마을이 터전을 잡은 지 400여년이 되는 이 곳. 신당(神堂) 옆에 마을의 역사로 서있는 두 그루의 곰솔은 수령 450년은 족히 될 높이 18m의 장신(長身)이다. 화가는 그 두 그루의 소나무를 붉은 윤곽선으로 그렸다. 강렬하게, 거칠게, 몸부림치듯 나무 몸통의 피부와 껍질을 가르고 푸르른 솔잎을 감싸며 윤곽선을 이어간다. 소나무는 곧 떠나게 될 사람들의 예감을 상징하고, 그 예감으로 인해 스스로 불안하고도 불편한 진실을 열병으로 온 몸에 열꽃이 난 것처럼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소나무만이 남아 마을지기의 역할을 지속하게 될까?
화가의 표현주의는 그런 식으로 소나무가 몸을 뒤틀어 불안을 이야기하듯, 풍경 전체를 그렇게 이질적이고 불규칙하게, 혹은 역설적인 모습으로 그려간다. 나사리 해변 풍경을 그린 작품에는 육지로 쑥 들어온 포구를 따라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포구에는 출항하지 않은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모든 풍경은 포구마을의 원래 모습을 폐허가 된 성소(聖所)처럼, 그리고 현재의 공간과 불화(不和)하는 ‘과거의 공간’이 되는 순간을 담는다. 화가는 마치 인적 없는 거리를 순례자처럼, 혹은 불안함을 온 몸으로 앓는 환자처럼 배회했으리라. 훼손된 현실, 그 안에 내가 있다. 그리고 내 안에 그 현실이 있다. 화가는 훼손된 현실을 치유하기 보다는 스스로 훼손된 실체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에게 증상은 사회적 실체이고,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그 증상이 치유되기 위해 내 자신이 증상이 되어 앓는다. 따라서 풍경은 실존적 결단의 방식이다.
정철교의 풍경은 열정적이고 강렬한 기운을 먼저 느끼게 하지만, 내면에는 무언가 낯설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내심 안쓰럽고 쓸쓸한 마음이 들게 한다. 어쩌면 화가는 그런 풍경을 통해 화가의 역할을 묻는지도 모르겠다. 일반적 의미의 바닷가 풍경이 아닌 시간이 자발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그려낸, 게다가 아무도 없는, 마치 대피령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로 모두들 모습을 감춰버린 것 같은 찰나, 그 순간의 ‘아무도 없음’이라는 막막함을 호소하는 풍경을 통해 화가란 무엇인가를 묻는듯하다는 것이다. 그가 감지하는 불안은 곧 원전에 잠재하는 위기적 징후를 알아채는 인식론이며, 자신이 곧 풍경이자 풍경이 곧 자신이 되는 감정이입의 방식이다. 그래서 화가란 온존한 사회와 현실을 기리기보다는 불안한 침묵이 흐르는 고장 난 사회와 현실을 아파하는 일에, 그리고 불안과 파괴의 징후에 자신을 철저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그 본연의 역할을 부과하는 것 같다. 화가는 불안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역할이 아니라 불안을 함께 겪는 환자인 것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화가의 책무가 실제로 예술을 살아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축적된 고통의 기억’이고, 화가는 ‘나도 모를 아픔’을 윤리적으로, 병 없이 앓는 자이다.
그래서 화가는 불화의 풍경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것일까. 정철교는 이전에도 자신을 그려낸 자화상 작업을 지속해 왔다. 자화상 작업은 자신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자신이라는 터득된 진리의 다른 표현이리라 짐작하는 가운데, 이번 풍경에서도 그러한 어법이 작동한 듯하다. 다만 고장 난 풍경, 불화의 공간에 최소한의 ‘화해’를 말하기 위한 것으로 그려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화가가 그 곳에, 그 기억에, 그 불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현실은 우리들 삶과 오롯이 만나게 되기 때문에 말이다.
사라진 골매마을풍경100호P 2018
정철교 (鄭哲敎) Jeong, chul - kyo
1953 경북 감포 생
부산 동래고등학교 졸업(49)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졸
부산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졸
개인전
2019년 제17회 정철교 개인전 서생풍경 전(정철교 집 외3곳)
2019년 자하미술관 초대 ‘불타는 풍경,피돌기의 초상’ 전(자하미술관)
2018년 제16회 개인전 예술 지구 P 초대 ‘ 내가 나를 그리다 ’전 ( 예술지구 P )
2017년 제15회 개인전 ‘ 서생 , 西生 그 곳을 그리고 그 곳에 펼치다’ 전 (정철교집 외 4곳)
‘ 고장 난 풍경 전 ’ ( art k 갤러리 )
2016년 제14회 개인전 ‘ 서생 , 西生 그 곳을 그리고 그 곳에 펼치다’ 전 (정철교집 외 9곳)
갤러리 아리오소 초대 ‘ 고장 난 풍경 전’ (갤러리 아리오소)
2015년 제13회 부산 KBS 방송총국 개국 80주년 기념 ‘ 정철교 초대개인전(KBS 부산아트홀)
정준호 갤러리 초대 ‘붉은 여름’ 전 ( 정춘호 갤러리 )
제12회 마린갤러리 초대‘ 고장 난 풍경’전 (마린 갤러리 )
2014년 제11회 갤러리 아리오소 초대 ‘ 뜨거운 꽃’ 전 (아리오소 갤러리)
2013년
제 10회 개인전, 갤러리 이듬 초대 ‘열꽃이 피다’ (갤러리 이듬)
제 9회 개인전, 부산 프랑스 문화원 초대 ‘고장난 풍경전’(부산 프랑스 문화원 아트스페이스)
2012년 제 8회 개인전, 갤러리 이듬 초대 ‘정철교 그림전’ (갤러리이듬. 이듬스페이스)
2011년 제 7회 개인전, 소울 아트 스페이스 기획 ‘내가 나를 그리다’ 전, (소울아트스페이스)
2009년 제 6회 개인전 ‘내가 나를 그리다’ 전, (갤러리 이듬)
2003년 제 5회 정철교(1971~1975) 그림전, (웅상 아트센터)
2001년 제 4회 정철교 조각전, (웅상 아트센터)
1992년 제 3회 정철교 조각전, ( 갤러리 누보)
1991년 제 2회 나우 갤러리 기획 정철교 조각전, (서울, 나우 갤러리/부산 ,갤러리 누보)
1990년 제 1회 정철교 조각전, (부산 , 갤러리 누보/밝은 터 갤러리/서울, 나우 갤러리)
단체전
2019년, hommage전 (부산대학교 아트센터)
2018년, 제22회 상하이 아트페어 ( 상해 포동 세계박람회 전람관)
제10회 아시아 환경미술제 ( 울산 문화예술회관)
‘핵 몽 2 ’ 전 ( 부산, 민주공원 전시실 광주 , 은암 미술관 )
2017년 ‘ 색채의 재발견’ 전 ( 뮤지움 산 )
2016년 ‘ 핵 몽’ 전 ( 부산, 카톨릭 센타 전시관 울산, G & 갤러리 서울 , 인디 아트 홀 공)
2015년 아트스토리 기획 ‘ 명륜동’전 (갤러리 움)
포항 시립미술관 기획 ‘ 지금 , 여기’ 전 ( 포항시립미술관 )
2014년 ‘이런 생각 저런 표현’ 전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민중 미술 ‘ 잠수함 속의 토끼’전 (스페이스 닻)
yoko kami jio, 정철교 2인 초대전 (일본 요코하마 ATELIER-K갤러리)
킴스 아트필드 미술관 기획 ‘ site & memory' 전 ( 킴스 아트필드 미술관)
2013년 이듬 특별 기획전 ‘색으로 읽는 그림전’(갤러리 이듬. 이듬 스페이스)
부산 키워드전(미부 아트센터)
휴양지에서 만난미술, ‘토끼와 거북이전(양평군립미술관)
뮤지컬 친구제작기념 부산 -홍콩미술교류전( 부산 영화의 전당)
2012년 센텀 호텔 아트페어(갤러리 um)
2011년 백스코 아트페어전(금산화랑,부산화랑협회)
2010년 갤러리이듬 ‘블루오션전’ 아트갤러리 u 이전 개관전,
2009년 S,h 컨템퍼러리 아트페어전(중국 상해, 금산화랑)
the head전(킴스 아트필드 미술관)
기류전, 포인터 현대 미술회전, 한국 미술 청년 작가회전, 서울 39인의 방법전, 아시아 현대 미술제, 부산청년 비엔날레, 서울, 부산, 대구, 전주 현대 미술제, 부산 시립 미술관 기획 ‘물성과 의미사이에서’ 전, 프랑스 까로스 미술관 기획 On the side of the Light 프랑스 전, 바다미술제, 아시아 현대조각전, 오늘의 지역 작가전등
소장처
해운대 추리문학관(1992), 부산시립미술관(1999), ‘사람은 혼자다’ (55점)
거창군 가조면 ‘김 상훈 시비’ 제작(2004), ‘향파 이 주홍’ 흉상조각제작(2005)
사람 산 –가족이야기(하단 당리동 동원 청산별가아파트)
‘왕관 (부산대학교교정.2005), ‘향파 이 주홍’ 시비 및 동상제작(합천, 새천년 생명의 숲 2006)
‘오 영수 갯마을 문학 비’ 건립(부산 기장군 일광 별님 공원, 2008)
넥센 타이어 창녕 사옥 , 부산 외국어 대학, 부산 해운대 종합사회복지관
신암마을 폐가 100호P 2018
충돌주의100호P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