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남의 얼굴전 <집>
성남의 얼굴전은 올해로 12회를 맞이하는 성남큐브미술관의 대표적 지역 주제 기획이다. 역사, 문화, 예술, 생태, 환경 등 다각적인 도시 지형을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연구와 발굴을 통해 지역의 미술 지형을 살펴보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성남은 급격히 늘어나는 서울의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국가 주도의 도시계획에 의해 세워진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0년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빠르게 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든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처럼 서울의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고, 그렇게 늘어난 서울의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주택, 식수, 전기 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기반시설이 한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60년대 후반 서울은 인구 분산을 위해 청계천 일대의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며 살고 있던 주민들을 광주 대단지(현재 성남시 수정구, 중원구)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주민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시설조차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이주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7~80년대에도 서울의 인구 집중은 계속되었다. 강남개발을 통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서울의 면적을 확대하였으나, 주택난은 여전하였으며, 부동산 투기로 집값 또한 높아져만 갔다. 80년대 후반 주택난과 부동산 안정을 위한 신도시 계획으로 분당과 일산이 제1기 신도시로 개발되게 되었으며, 2000년대 판교신도시까지 개발되어 지금의 성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남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작가들의 경험과 기억, 생각을 소환하여 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각자가 느끼는 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집에 대한 동경과 소망, 아련하고 따뜻한 옛집의 기억,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집에서의 삶,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집 등 이번 전시에서의 집은 개인의 거주지에 국한하지 않고 조금 더 확장된 의미로의 집을 담아내고자 했다. 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 도시가 생성되듯이 집과 마을 그리고 도시는 각각이 다르지 않은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건축물로 특정 지역에 위치한 공간이 아닌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물이다.
김덕용은 오래된 나무 판재나 고가구에서 나무 조각을 구해 작품의 바탕을 만든다. 조각보를 만들 듯이 하나하나 다듬고 이어 맞추는 작업에서 김덕용의 작업은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무 위에 단청기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내며, 때론 나전칠기 방식을 빌려 자개를 붙여나간다. 작가 특유의 한국적 감성이 담겨있는 작업방식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시간성을 가진다. 전통기법과 오랜 시간을 간직한 재료는 아련한 향수와 함께 친근하고 따뜻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노동식은 솜과 스티로폼을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자연을 만든다.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라는 <님과 함께>라는 노랫말처럼 푸른 초원과 가을의 들녘의 작품 속 모습은 삭막하기만 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고자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투작가의 유년시절 속 기억과 감성들은 ‘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되살아나며, 동화적 상상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전달한다.
이돈순은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도시를 담아낸다. 못을 합판에 박아 만든 작품 속 거대한 포크레인은 단순히 오래된 집을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가족, 친구, 이웃에 대한 기억도 함께 철거하는 것 같다. 영상작업에서는 철거가 진행 중인 생경한 풍경의 골목길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기록한다. 저벅저벅 깨진 유리 조각을 밟으며 걷는 골목길은 불편하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옛것들이 버려지고 사라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상엽은 성남의 도시풍경을 픽셀(pixel)화 한 듯 점, 선, 면으로 보여준다. 간결한 면 분할과 색면으로 이루어진 도시는 마치 컴퓨터 속 디지털화 된 풍경처럼 기하학적 모습을 하고 있다. 작품 안에서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 자동차, 비행기 등은 원근법이 생략 되어져 있다. 작가의 다각적 시점으로 포착된 도시의 풍경은 현대사회에서 소비되고 상실해 가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투영하며 회화가 가지는 본질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스며든다.
이선민은 성남시 태평동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이주 여성들을 다룬다. 2013년 ‘대륙을 횡단하는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캄보디아 여성 3명의 일상을 담은 기록물이다. 성남시에는 인구 약 3%에 해당하는 2만9013여명의 외국인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동정, 불편, 위협, 무시 등 보이지 않는 심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작가는 다름과 차이에도 소통과 공감을 통해 그들과의 거리를 줄여나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효영은 분당구 하얀마을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삶의 모습을 기록한다. 작가는 2016년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선들을 이야기한다. 신혼의 달콤한 과는 거리가 있는 조금은 구질구질하게 보이는 현실의 모습을 담아낸다. 아파트라는 형식의 같은 주거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같지만 다름을 가진다. 작가는 삶의 모습은 좋고 나쁨과 아름답고 추함이 혼재되어있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유한이는 생성되고 사라는지는 도시에 주목한다. 작품 위 촘촘히 그려진 그리드 격자선 위로 건축물이 세워지듯 형태를 이룬다. 벽돌 하나하나가 올라가 집이 만들어지듯이 견고히 쌓아 올린 레고블록은 집이 되고 도시가 된다. 레고블록의 조립과 해체는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생성과 철거의 과정을 거치는 도시의 모습과 닮아있다. 작가의 삶의 모습을 투영하듯 끊임없는 구축과 해체, 상실과 복구의 과정을 담아내며 임의적이고 잠정적인 삶을 그린다.
장은의는 집 안팎의 흔한 일상의 소소한 기록을 담아낸다. 그래서 작품은 작가 주변의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동생이 자주 바라보았던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의 풍경, 이사를 위해 짐이 다 빠져나간 집안의 풍경 등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순간은 작가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유의미한 존재로 각인된다. 작가로 살아가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예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듯 그림을 그려나가는 행위를 즐기듯 작가로서 삶을 담아낸다.
최경아는 장소에 대한 기억, 감정, 경험 등을 작업으로 기록한다. 자주 이사를 했던 작가는 떠나온 장소 또는 머무는 장소에 대해 기록하듯 작업으로 옮긴다. 낯선 공간은 시간에 따라 점차 익숙한 공간으로 변모하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체험과 경험들은 작가의 시각을 통해 작업의 주재료로 사용되며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위도와 경도로 표시 된 작품 속 공간은 작가의 기억과 감정의 파편들이 공존하며 모호하게 보이지만 작가의 자유롭고 유연한 생각과 감정들이 느껴지는 듯하다.
서랍장 깊숙이 넣어두시고 힘드실 때면 꺼내 보시던 어머니의 주택적금통장, 아버지의 지갑 속 고이 접혀있던 주택복권 한 장은 그 시대를 방영하고 또 보여주는 집에 대한 우리의 소망과도 같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삶이 변화했듯이 집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 또한 빠르게 변화시켰다. 집은 어떤 이에게는 단순한 거주지로, 어떤 이에게는 꿈이며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또 어떤 이에게는 재산을 늘리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이번 전시가 바쁜 일상에 잠시 잊고 있던 가족, 이웃, 친구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