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가는
이유 없이
조정란, 누크갤러리 디렉터
아무런 이유 없이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쫓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쫓으며 두 작가는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한 공간에서 작업한다. 한 사람은 조각을, 다른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린다. 조각을 하는 이는 네모가 아닌 육면체 캔버스를 만들어 그림을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그는 왜 네모진 화면에만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다른 형태에 갇혀진 풍경은 어떤지 호기심을 가진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며 각자의 작업을 은밀한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
이정배는 커다란 도시의 자연풍경을 잘라내고 단순화시켜 추상적 이미지를 재단한다. 미술작품은 낯설어야 한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기억하며 필자는 낯선 이미지에 공감하고 어떻게 만들어진 형태와 색인지 유추해내는 재미를 이정배의 작업에서 찾는다. 직선과 곡선으로 결합된 면에 도료를 칠하고 고운 사포로 샌딩하기를 평균 150회 이상 한다는 그는 쌓여진 레이어가 주는 손맛이 작품에 깊은 맛을 구현하고 영향을 주리라 기대한다.
심리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진주의 그림은 삶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문과 기억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섬세하게 그려진 손과 여인에서 느껴지는 힘겨운 울림은 감춰진 작가의 깊숙한 기억을 더듬어보게 한다.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오브제들로 은유 된 이진주의 기억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의 가는 신경관을 자극한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다른 주제로 작업하는 두 작가는 오래 전부터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지한다. 그들은 상대에게 변형된 캔버스를 만들어 주고 작품의 배색을 의논하며 느낌을 주고받는다. 두 작가의 합작 ‘세 번째 공원과 파도’는 위에서 바라본 공원의 외곽선을 단순화 시킨 옅은 하늘색 도형과 파도를 연상케 하는 검고 긴 나무조각이 이진주의 실뜨기를 하는 예민한 손과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서로 연루되지 않은 각자의 작업이 의미 없이 합해졌을 때 만들어지는 색다른 조형적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작업은 완성된 상대의 작품을 걸어놓고 진행하거나 충분히 논의하고 계획하여 제작되었다. 이정배와 이진주의 작업은 서로에게 쫓아가는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다가간다. 그들이 부부로서 생활하고 작업하면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시를 통해 찾아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