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4(수) - 12.9(월)
Open:12.4(수) PM. 6:00
갤러리 인사아트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6 T. 02-734-1333
관람시간 : 수-월요일 10:00 A.M. ~ 7:00 P.M.
신체적인 역동성 및 질감표현을 신념하는 행위의 미학
신항섭(미술평론가)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또는 인상주의와 같은 재현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소재나 대상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미적 감흥을 어떻게 해서든지 빠른 시간에 캔버스에 옮겨놓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어쩌면 미적 감정이 비등하는 순간에 캔버스에 정착시키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리라. 하지만 처음 받았던 인상이나 감동이 약해지기 전에 단숨에 작업을 마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재현적인 작업은 어차피 오랜 작업시간이 요구되므로, 처음 마주했던 인상이나 감흥을 그대로 전하기는 사실상 힘든 일이다.
신홍직의 작업은 재현적인 표현양식이 안고 있는 이와 같은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원용했다. 대다수의 작품은 단 한 차례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여러 날을 두고 보며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시작한 지 몇 십분 또는 몇 시간 만에 속사로 완결된다. 대작일 경우에도 하루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의 작업실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벽과 바닥에 둘러싸여 있는 작품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강렬한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열기가 온몸으로 전해져오는 듯싶다. 유난히도 큰 팔레트를 비롯하여 큰 붓과 나이프, 물감 튜브 그리고 여기저기 묻어 있는 물감 등이 작업과정의 열기를 그대로 전해준다. 작업중인 이젤 위의 캔버스와 마주하면 힘차고 거칠며 빠른 손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물감의 질감이 시선을 압박해온다. 두터운 질감은 요동치듯 사뭇 격동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게 한다. 자잘한 붓 터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유채작업에 익숙한 눈에는 완연히 다른 시각적인 인상이 놀랍기만 하다.
풍경이든 인물이든 정물이든 소재 및 대상을 가리지 않고 두터운 질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형태에 앞서 유채물감의 색깔과 질감이 먼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격렬하게 펼쳐지는 물감의 존재감은 앵포르멜의 한 지류로 생각될 정도이다. 이렇듯이 격정적인 신체적인 힘을 이용하는 표현기법과 마주하면서 언뜻 고흐를 떠올리게 된다. 순색의 물감을 튜브에서 나오는 상태 그대로 듬뿍듬뿍 찍어 바르듯이 그려나간, 고흐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신체적인 힘의 역동성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또한 신체적인 힘에 의탁하여 내면세계를 격정적으로 쏟아내는 뭉크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재현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실주의 및 인상주의 계열 작업과는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른 표현주의 성향임을 말해준다. 표현주의적인 작업방식은 형태묘사에 중점을 두는 재현적인 그림과 달리 내면세계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물감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에다 그 자신의 표현감정을 덧붙여 힘찬 신체적인 힘으로 밀어붙인다. 이는 내면을 표출하는데 긴요한 신체적인 힘의 화법이다. 이를 통해 형태나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시선을 압도하는, 감각적이고 직설적이며 주관적인 조형언어가 제공하는 감정의 샤워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잠재된 욕망을 자극하는 미적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채물감을 사용하는 유화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단시간에 끝내는 것은 소재 및 대상과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의 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는 일반적인 유채화 작업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 물감이 마를 새 없이 튜브에서 나온 순정한 물감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입장이다. 일테면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는 혼색과정마저 생략하겠다는, 가장 순도 높은 채색기법인지 모른다.
작품을 보면 여러 가지 색깔의 물감의 덩어리가 뒤엉키는 가운데 서서히 형상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어찌 보면 유채물감이 가지고 있는 기름성분과 찰진 진흙과 같은 물성의 존재감이 강조됨으로써 상대적으로 형상에의 의지는 미약해 보일 지경이다. 따라서 유채물감의 물성과 신체적인 힘을 사역하는 감정만이 표현의 주체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앵포르멜과 유사한 속성을 보여주지만, 그의 작업은 대상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앵포르멜 미학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작품은 소재 및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형태를 의식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부분적으로 보면 무엇인지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이미지로 채워지고 있기에 그렇다. 작품 전체상을 통해서나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형태묘사보다는 작업하는 순간의 감정표현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느 작품이거나 재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적조작에 의한 비현실적인 풍경이 아니라 현실에서 취재된 이미지라는 얘기다.
현실적인 풍경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재현적인 형식이 분명하다. 국내외 여행지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인상 깊었던 풍경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말해준다. 실재하는 대상물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재현성과 연결되는 듯싶지만, 표현기법이나 그 결과물을 보면 표현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운다. 실제로 마주했던 풍경에서 느끼는 미적 감흥 및 감동을 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관적인 해석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개별적인 형식을 위한 특정의 조형언어를 만드는 일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다만 전체상에서 그만의 조형적인 특징이 드러나고, 그럼으로써 개별적인 형식이 만들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작업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여러 형태의 감정변화를 가감 없이 그대로 붓이나 나이프가 아닌 손으로 캔버스에 정착시키는 방식에 매료되었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첫인상과 그로부터 오는 미적 감흥 및 감동 그리고 표현욕구 등을 물리적인 힘으로 표출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표현행위의 순수성, 즉 잘 그리겠다는 생각을 버린 채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에 도달하는 작업방식을 즐기고 있었음이 역력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계산되지 않은 자발성, 즉흥성, 직관성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순도 높은 표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작업방식으로는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통한 개별적인 형식을 만들어가기란 용이하지 않다. 신체적인 힘과 격정적인 제스처 그리고 감각적인 터치만으로는 개별적인 조형언어를 성립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형식을 위해서는 형태의 변형이나 왜곡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표현행위 자체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 여러 면에서 여유가 생기면서 개별적인 형식을 의식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자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최근 작업에서는 개별적인 형식미에 대한 관심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증표는 전체적인 이미지의 간결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개별적인 형식의 의식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신체적인 힘에 의한 격렬한 운동성을 절제함으로써 역동성이 현저히 약화되는 대신에 전체적인 이미지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이게 된 것이다. 호흡이 느려지고 신체적인 힘이 억제되는가 하면 속도감도 느슨해지면서 이전보다 한결 부드럽고 여유롭고 순화된 화면으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난비하는 듯싶던 운동성이 약화됨으로써 형태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묘사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여전히 신체적인 힘이 주도하는 가운데, 호흡이 길어짐에 따라 구체적인 형태에 대한 감각도 적극성을 띄는 형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렇듯이 최근 작업에서 드러나는, 단순하고 간명한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새로운 작업은 개별적인 형식의 가능성이 높여주고 있다. 신체적인 힘과 속도감을 앞세웠던 이전의 작업방식과 비교하면 호흡을 조절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따라서 터치에도 여유가 생기고 느슨해지는가 하면 형태해석 또한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물론 세부를 보면 여전히 추상성이 강하지만 전체상에서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읽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형태미가 명확히 읽혀진다.
한동안 신체적인 제스처와 그로 인한 거칠고 힘찬 운동성 및 율동 그리고 질감표현에만 집중함으로써 개별적인 형식 자체를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작업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표현기법이 익어가고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그 자신만의 조형어법과 형식에 시선을 돌리기에 이른 것이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업이 추구하는 중심적인 표현방식은 그대로 지켜진다. 힘찬 신체적인 힘을 신뢰하면서 동시에 질감표현을 중시하는 조형적인 패턴은 여전하다.
신홍직
1960 경북 성주 출생
1977 17세부터 본격 미술 수업(부 신창호 사사)
1983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24회
2019 갤러리인사아트(서울)
2019 오픈스튜디오(신홍직 작업실, 부산)
2018 갤러리인사아트(서울)
2017 해운아트갤러리(부산)
2017 갤러리 art K 개관기념초대전(부산)
2016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
2014 부산 공간화랑(부산)
2014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
2012 부산 공간화랑(부산)
2012 이시아 갤러리(대구)
2011 가나인사아트센터(서울)
2011 해운대아트센터(부산)
2009 두산위브더제니스 갤러리초대
2008 ‘오늘의 작가상’ 수상기념전(부산시청)
아트갤러리 청담 초대전(청도)
2007 맥화랑 초대전(부산)
2004 경향갤러리 개관기념초대전(서울)
파라다이스호텔 파라디아 명품관 초대(부산)
2003 포갤러리 초대전(부산)
2002 현대아트홀 초대전(울산)
2001 롯데화랑(부산)
1999 롯대화랑(부산)
1997 현대아트홀(부산)
1995 현대아트홀(유화) 타워갤러리(소묘),(부산)
수상
2012 제24회 봉생문화상 수상
2008 제7회 오늘의 작가상 본상 수상(부산미술협회)
아트페어
2016 아트부산(부산공간화랑), 벡스코
2015 아트부산(부산공간화랑, 단독출품), 벡스코
주요작품소장
헌법 재판소, 러시아 헌법 재판소, 부산시립미술관, 부산고등검찰청,
영담한지미술관, 해운대컨트리클럽, 일본나가사키현청사,
고려제약(주), 삼성전자, 부산시장 관사, 대구백화점,
동아대학병원, 부산아시아드 골프클럽, 울진군청, 부산시청,
노보텔, 동아대 대신 요양병원
E-mail. hongjiksh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