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랑(원혜경 대표) 에서는 2019년 12월 4일(수)부터 21일(토)까지 풍부한 시적 상상력과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서양화가 정 일 (b.1958) 의 개인전 ‘Reminisce' 전시가 열린다.
정일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유년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함축해 놓은 듯, 아련하고도 추억이 깃든 느낌을 전해준다. 그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일상 속 익숙하고도 소박한 소재들이 화면 안에서 자신만의 문학적 기호와 상징이 되어 부유하고 있다.
성인이 되고 더 큰 꿈을 향해 떠났던 외로운 파리 유학 시절에 다시금 펼쳐 들었던 생 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는 작가에게 큰 영감이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작품 속의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의 화폭에는 왕관을 쓴 왕자와 공주, 보아 뱀과 코끼리를 삼킨 모자, 피아노, 바이올린, 꽃, 새, 촛불 우산, 의자, 테이블 등의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새는 과거 파리에서 처음 말을 나누었던 구관조 ‘가스통’의 모습에서 착안하였고, 우산은 학창 시절 우산을 놓고 친구와 싸웠던 기억을 되살려 화폭 속에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해 내었다. 이처럼 작가는 일상 속에서 느낀 개인의 내면적인 경험과 감정을 그림 속에 녹여 몽환적인 색채와 함께 동화적인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권태로운 삶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작가의 마음을 늘 들뜨게 하고, 황홀한 꿈속으로 인도한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앞으로만 내달려가던 메마른 감성에 부드럽고 포근한 향기를 전해주고 잊어버렸던 추억 속의 기억을 한 장씩 꺼내 보게도 해주었다. 그에게 어린 왕자가 선사해 준 것은 유년 시절의 순수함과 아름다움, 자유로움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 갈망으로부터 타협해야 하는 현실의 순간에서 벗어나 잠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캔버스 위에 펼쳐 놓는다.
이번 신작들에서는 기존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여왕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여왕의 모습을 한 여인은 누군가의 연인이다. 특히 작가에게는 자신의 아내를 담은 것이다. 늘 자신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애정을 쏟는 아내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표현하면서 자신 또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며 더없이 아끼고 사랑해주고 싶은 애정의 마음을 담아 존재감 넘치는 여인의 모습으로 대변하였다. 그림 속의 여인은 17c 프랑스 여인들이 착용했던 드레스와 부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마치 레이스 위로 행복한 꿈을 수놓은 듯하다. 그러한 삶이 펼쳐질 무대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작가는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도 피아노와 같은 악기연주와 음악을 즐기고 사랑한다. 그리고 음악으로부터 또한 많은 영감을 얻고 그의 작품 속에도 늘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번 근작에서도 합주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바이올린, 피아노와 노래하는 새의 구성 등을 보면 화면 속에 부유하는 도상들이 연주로 흘러나온 선율의 리듬을 느끼며 하모니를 이루어낸 완결로 보여진다. 다채로운 색상과 작가가 성실하게 쌓아 올린 두터운 마티에르는 화면을 더욱 풍요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채워준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동화적 이미지를 통해 어린 시절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의 지친 마음에 행복 충만한 시간을 제공 해 줄 것이다.
Reminisce 73x91cm Oil on canvas 2019
[ 작가 노트 ]
다시 만난 어린왕자
정 일(경인교대 미술과 교수,화가)
아침햇살이 부서지듯 모든 색채가 나에게 안겨 방에 들어찼다. 문득 또 다른 5월의 봄이 온 세상에 가득해진다. 늘 같은 듯 하면서도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와주는 봄을 생각하니 소원해진 친구와의 만남처럼 반가움으로 가득하다. 그동안 무엇이 바빠서 그랬는지 이젠 계절 앞에 서면 점점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찬 생각이든다.
또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20여 년 전에 다시 만났을 때보다도 더 신비스럽지만 낯설지 않은, 내 마음속에 간직해 왔던 나만의 동화 속 마을처럼 평온하고 낭만적인 그런 곳에 그대로 있는 듯 했다. 마치 관계가 소원했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의 반가움처럼, 그리운 애인과 마주칠 때 듬뿍 나누는 사랑처럼 겉치레를 떨쳐버리고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다. 어린 왕자가 무슨 마음에서 메마른 언덕 위에 서있는 나에게 기쁨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는, 나의 섬에 향기로운 바람을 가져다 주어 꽃이 다시 일어나 춤추게 하였고 나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다시 찾게 해 주었다.
어떤 유명한 서양 사람이 “예술가는 정신연령이 10세 미만이어야 한다.”고 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가 미술학도였을 때 비슷한 꿈을 꾸었다. 60살까지 열심히 그림 공부하고 그 이후부터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남의 흉내 내지 않고 재미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어린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어른이 되는 자연스러운 순리 속에서 어떤 법칙과 이론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마주하며 힘들거나 권태로울 때 다시 생각나는 건 머나먼 어렸을 때의 그 꿈이 아닌가 싶다.
그새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예전에는 존재에 대한 열망과 갈등으로 괴로움의 밤을 지새웠던 적이 많았는데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존재 보다는 소유에 대한 집착에 사로 잡혀있음에 .... 짙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스러운 감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거리낌 없이 나만의 스타일대로 살고 싶었다. 나는 아이러니컬한 과거와 미래의 떨쳐버릴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다시금 지나온 나의 이야기를 되감아보았다. 어른의 세계에 와서 다시 떠올려보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해」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일지도 몰라」
이런 구절들을 다시 곱씹어보니 꽤나 마음이 훈훈해지는 듯하다.
어린 왕자 통해 바라보는 나의 그림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세계, 어쩌면 흔히 동화(童話)라 불리는 세계라 생각하며 「어른 동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화면 속 사물들의 우연한 만남으로 하나의 story가 짜여지고 모든 이미지가 서로 어우러져, 상징적인 이야기로 연출되는 꿈이나 몽상의 세계, 동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략)
난 그렇게 살고 싶다. 유행처럼 주류를 형성하는 언어나 특정한 논리에서 벗어나 나만의 고유의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꾸면서......
아름답고 맑았던 세상이 점점 회색 빛에 가까워져 이젠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 서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 고단함과 무게감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느껴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그림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나는 나의 그림이 어느 누구인가에 ‘행복과 마음의 치유를 주길’ 바란다.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약간의 축복과 편리 속에서 점점 심화되어가는 인간성의 상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한 예감, 극도로 빨라진 정보화는 우리에게 가면 갈수록 잊혀가는 소리, 향기들에 대한 아쉬움을 갖게 한다. 이렇게 각박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어른이 되어있는 자신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어린 날의 아이와 같은 꿈을 솔직하고 편안하게 자유스러운 시어로 「가슴으로 그려진」 나만의 이야기를 그리게 된다면 그게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 아닐까.
멀어져가고만 있는 어린 날의 꿈을 아름다운 동화로 되살려 놓고 싶다. 나의 실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울지 모르나, 나는 나의 가슴 속 내면의 이야기를 벅찬 기쁨으로 그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하늘의 별들 속에
나만의 ‘어린 왕자의 별’은 항상 빛나고 있을지니 ..
Reminisce 73x91cm Oil on canvas 2019
[ 작가 약력 ]
정 일 ( 1958~ )
198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86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1990-91 독일 Kassel ; Gesamthochschule 수학
1992-97 Paris에서 작품활동
현 재: 경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개인전
2019, 2007, 1992 선화랑, 서울
2018 인사갤러리, 서울
2017 이정아갤러리, 서울
2015 송아당갤러리, 서울
2014 갤러리WE, 서울
2011 갤러리H, 서울
2010 아베뉴갤러리, 서울
2009 문화랑, 서울
2008 예화랑, 서울 외 다수
단체전
2019 시가 있는 그림전, 서림화랑
화랑미술제 ,인사갤러리, 서림화랑
부산아트페어, 인사갤러리, 서림화랑
KIAF, 인사갤러리
사랑하소서, 갤러리1898
small wonder, 인사갤러리
2018 제45회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정기전, 갤러리 1898
특별한 선물전, 선화랑
KIAF, 인사갤러리
환경을 위한 시선들, 상상과공간, 지노리움 미술관
광주 아트페어, 김대중 컨벤션룸
2017 선화랑 개관 40주년기념전, 선화랑
시가 있는 그림전, 갤러리서림, 서울
작은 그림 전, 프린트 베이커리 삼청 플래그샵, 서울
아름다운 여행, 슈페리어갤러리 제 1전관
9人9色성탄 선물전, 2448 MOON파인아트
블루 아트페어, 시타딘 해운대호텔 부산 17,18F
충무 아트페어.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 외 다수
Winter tree 130x160cm Oil on canvas 2018
Reminisce 45x53cm Oil on canvas 2018
Reminiscing chair 130x160cm Oil on canva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