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6 ~ 2019-12-15
이은지
02.333.0246
전시 서문
고요한, 곧 다급한, 다시고요한
이은지의 <숨 참기>
숨을 참으면 호흡기의 들숨과 날숨은 멈추고 이내 고요한 폐색감이 머리를 가득 감돌며 숨 못 쉬는 이를 위태롭게자각시킨다. 이때 숨을 급히 내쉬면 안도감이 헐떡이며 전신을 파고들고,다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 다급하게 숨구멍 안팎으로 흩어진다. 우리는 목을 죄어오는시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 시간에 서서히 적응한다. 다시고요해진다.
작가 이은지의 작업실 한 켠에는 선풍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고, 바람은종이 반죽으로 뒤덮인 구조물 표면을 건조시키고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종이는 낱장이기도 파편이기도곤죽이기도 굳은 덩어리기도 하다. 우리는 알고 있는 종이의 기원은, 말리고펴서 쓰던 여러 기록매체들, 당시까지 종이라 불렸던 견직물과 나무껍질 등을 액상화한 뒤 건조시킨 합성지를말한다. 식물성 섬유질 조직들을 부수고, 물에 불린 뒤, 다시 말리는, 종이가 제작되는 이 각각의 과정은 이은지의 작업 각각의모습을 이룬다. 어떤 작업에서 먹색의 수목(樹木)은 평평한 한지 표면 위에 구현되어 있다. 어떤 작업은 짓이긴 종이반죽을 굳힌 것인데, 그 표면의 질감은 화강암과도 같고, 형상은나무 밑둥을 닮았다.
재현의 대상이 자연물인 경우 그 의미는 자주 영원성이나 불변성을 은유하곤 한다.그러나 이은지의 작업 안에서 섬유질 조직들은 부숴지고 불리고 마르며, 조직 위에 안착된먹색의 자연물도 종이와 함께 부숴지고 불리고 마른 뒤 다음 작업이 된다. 즉, 작가는 이전의 작업들을 찢어서 다음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모든 완제품이 재료가 되고마는 제지술은 작업의 방편이 되기도 하고 은유가 되곤 한다. 이은지의 모든앞선 작업들은 모든 다음 작업들의 질료가 되기를 예비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한지와 종이죽으로 만든나무와 바위는 천하태평하게 조망되는 수동적인 풍경이 아니라, 언제든 다음 풍경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시간대에 대한 어떤 응답’이다. 그 응답은 무채색이다. 평면이건 입체건 종이의 매끄럽고 거친 표면위에 안착된 무채색은, 작가가 마주한 조건에 계속 응고해서 작업이 된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응고된 바를 분쇄해서 다음 작업으로 이어간다. 작가는이 과정에서 ‘차츰 자라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숨결이 잦아들다가, 분쇄되고 위태로워지다가 다시 들이쉬고, 다시 숨결이 차츰 고요해지는 과정. 숨을 참아보는 일련의 과정은제지술의 실재이기도 은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업이 시간대별로 반응해오는, 그래서 적응해가는 일이기도 하다. 고요하고, 곧 다급하고, 다시 고요한 과정의 시간인 것이다.
글. 이문석
작가 소개
이은지는 2013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 학위를, 2017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제강이 춤을출 때(갤러리175, 중간지점, 2019), 땅따먹기 'n'P(오퍼센트, 2019), 2019 PERFORM - Linkin out (일민미술관,2019) 등 전시에 참여하였다. 현재 을지로에 위치한 중간지점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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