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명 : 2020 Art Chosun on Stage Ι 김근태 < 숨,결 > 展
- 장 소 : 조선일보미술관
- 기 간 : 2020.2.13(목)~2.23(일)
- 관람시간 : 월~일, 10:00 ~ 18:00 (휴관일 없음)
- 오 프 닝 : 2020.2.13(목) 16:00
- 주 최 : 아트조선, 조선일보미술관
- 문 의 : 02-724-7832
■ 전시소개
조선일보미술관 기획전 2020 Art Chosun on Stage Ι 김근태 < 숨,결 >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절제와 인내의 시간을 붓질이라는 행위로 모두 밀어내며 완성되어가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검고 흼의 단순한 색감 속 많은 색의 더함과 수 차례 붓질을 통해 덮어짐의 과정을 지나면 캔버스에는 작가의 흔적들이 오롯이 결들로 남게 된다. 들숨과 날숨을 참고 또 뱉어내는 작업 과정 속 작가는 수 많은 결들 위에 흠짐과 찢김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모두의 삶에 있는 상처를 굳이 덮어두지 않고 드러낸 이유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숨(호흡)은 가장 의도적이면서도 의도적이지 않은 생명의 행위이자 흔적이다. 돌과 흙은 호흡하고 숨쉰다. 백자가 그랬듯이 청자가 그러했듯이 그것들의 숨결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붓질 한번 없었을 것 같은 작품에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숨을 더할 때 붓질이 일어나고 그것의 흔적을 비로소 발견한다.
결은 희거나 검게만 보이는 작품 속에는 붓이 지나간 지난날들의 흔적이자 몇 겹이 덧칠되어 두텁지만 아주 얇은 붓이 지나간 시간 속 길들을 만들어낸다. 붓질로 만들어진 그 길들은 오늘의 시공간을 형성하고 보는 이들에게 작품 속 창의의 사고 영토를 허락한다.
2017년 이후 3년만에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좀 더 깊이가 깊어진 블랙작업과 화이트와 돌가루를 이용한 작업들 총 44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지난 2년간 독일, 일본, 베트남, 홍콩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히 전시를 이어갔다. 특히 지난 12월 베트남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현대미술교류전을 통해서 작가는 박서보, 이우환을 잇는 차세대 단색화 화가로 소개되기도 하며 주목할 만한 중견작가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전시의 평론을 맡은 케이트림 (미술 저술가, 아트플랫폼 아시아 대표)은 김근태의 작품은 “단순한 덜하기를 통해 단순화된 순수함을 추구한 것이 아닌, 매력 있는 조력자인 매체의 물성을 개입시켜 상호 대화하며 배우고 발견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그가 한 개인적인 공부이며 연구이자 깨달음이다. 그것은 명확해 보이는 언어 체계로 촘촘히 꾸며진 듯한 체계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의 확정에 덜 매달리는, 어떤 인간 경험이다.” 라고 평했다.
김근태는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그의 20대 시절은 군부통치의 격변기를 경험하며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간의 갈등과 충돌을 빚은 80년 초반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 젊은 화가들은 극사실주의같은 구상 회화, 그리고 민중미술 흐름에 많이 몰입되어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 당시 평론가들은 젊은 화가들의 사실주의적 미술이 기성 세대의 추상화에 대한 반전(反轉)으로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근태는 그의 동시대 조류였던 극사실주의나 민중미술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1980년대와 90년대를 주도했던 화풍과는 독립적으로, 개인적인 그의 성정(性情)과 관심이 이끄는 영역에 주목하였다. 그 영역은 사물의 물질적 속성의 세계였다. 정치적 관심이나 혹은 다른 연유로 형상을 그리던 당시 젊은 경향과 비교된다면 시각적 즉각성이 떨어지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김근태는 자신이 택한 길을 꾸준히 모색했고 그의 작업은 존재감을 획득했다.
■ 작품과정 및 특징
작가는 1990년대 초반 경주 남산을 여행하며 본 석탑, 불상, 부조가 품고 있는 돌의 질감을 캔버스에 옮겨보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돌의 속성을 재현하기 위해 유화 물감을 그대로 쓰지 않고 돌가루(석분, 石粉)를 접착제와 섞어 독자적인 매체(medium)를 만들었다. 캔버스도 마포(麻布, 삼베)천을 쓰지 않고 9합 광목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대체 물감(석분+접착제)과 광목 캔버스의 결합이 바로 그가 원하는, 돌이 주는 꺼끌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창출하는데 가장 근접한 방법이다. 김근태는 물질적 속성을 캔버스에 전환하고 싶은 예술적 충동을 느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재질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그러면서 붓자국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형태적 단서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런 회화의 창작에 고심하게 된다. 작가가 이렇게 기존에 주어진 재질을 기계적으로 갖다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어떤 효과를 상상하며 새로운 대체 매체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돌가루와 접착제를 합성하여 사용했던 김근태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 석분과 러버(rubber) 접착제를 섞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 때 그는 예전에 재질을 만들었을 때 보다 더 묽게 만들어서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붓고 캔버스를 좌우 상하로 흔들어 우유 속에 종이를 집어 넣어 빼어내 흐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때는 캔버스 위에 부어진 질료의 상태를 예민하게 주시하면서 캔버스를 움직여야 한다. 질료의 마음과 작가의 노력이 서로 주파수를 맞추면서 접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 숨_2019_75 / 84x30.5 cm / Mixed media on canvas /2019 >
< 결_2019_04 / 90.7x90.7 cm / Oil on canvas / 2019 >
■ 작가노트
“이름 모를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 앞에 숨이 탁 막히곤 한다… (중략) … 그 커다란 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는 순간, 나로 모르는 사이 바람소리와 구름 한 점이 그 알 수 없는 처지를 벗어나게 하고는 한다. 글귀에 빠져들고 모양에 속은 어리석은 모습이 그 벽 앞에서 형태 없는 형태로써 한 줄기 빛으로 보여지고, 그 경계를 선과 색으로 옮겨본다. “
“백자의 흰빛이 좋아서. 나의 마음 비춰볼 수 있어서.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것, 그 밑바닥에 있는 걸 백자가 보여주니까. 종일 하늘을 날았지만 날아다닌 흔적이 없는 새처럼.”
“남산의 작은 불상들, 석굴암, 감은사지의 두 탑 앞에서 전율하며 나의 뿌리, 내 안의 DNA는 이거로구나 깨달았다. 태어날 때부터 내 몸이 알고 있었던 것,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정신의 미학, 그것을 구현하고 싶었다.”
-김근태 작업노트 중에서
< 결_2019_17 / 162x130cm / Oil on canvas / 2019 >
■작품평론
<김근태: 물감의 마음을 담은 연금술>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
칸딘스키는 내가 노랑일 때
성가시고 귀찮게 졸라대서 내게 고통스러운 날카로움이 있다고 토로했지만
그건 나의 수많은 변신중의 하나일 뿐이다.
작가의 스튜디오 안에서 나는 다양한 짝을 만나
시럽같이 또는 크림같이 변해서
붓질하는 손과 몸과 마음으로 스며든다.
순간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무형(無形)의 나를
어떤 자아(自我)를 지니도록 응질시킨 시간들.
나는 처녀성을 잃고 그는 매일매일을 잃었다.
우리의 손실은 의미로 마취되어
조용히, 캔버스 위에 남아있다.
김근태의 그림에는 물감만이 있다. 어떤 이야기나 화제가 없다. 작품과 연관시켜 어떤 은밀한 힌트를 주는 듯한 기재도 없다. 내 작품에는 이러이러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열렬하게 설명하는 요즘 미술의 ‘의미 잔치’에 비하면 너무 조용하다. 대신 그의 그림은 맘대로 느끼고 자연스럽게 오해하며 창의적으로 해석해도 되는 영토로 우리를 살짝 민다. 그림은 그가 움직인 붓질의 흐름과 멈춤, 그가 칠한 물감의 결과 두께, 캔버스 한구석에 남겨진 물감의 충돌과 파열에 눈을 돌리게 한다. 물감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그림에 돌아와 보면 – 그림은 우리의 시선이 잠시 바람을 피워도 참아주는 관대함이 있다 - 눈으로 확인은 되지만 곧바로 말로 전환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감의 물성(物性)이 빚어놓은 느낌이다.
김근태는 미술대학 과정을 마치고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 젊은 화가들은 극사실주의같은 구상 회화, 그리고 민중미술 흐름에 많이 몰입되어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 당시 평론가들은 젊은 화가들의 사실주의적 미술이 기성 세대의 추상화에 대한 반전(反轉)으로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근태는 그의 동시대 조류였던 극사실주의나 민중미술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그의 작업을 평할 때 단색화 작업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단색화 경향에 대해 당시 그가 어떤 특별한 공감대를 느꼈었는지 또는 단색화 작가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는지에 대해 필자가 물어 보았지만 그의 대답은 모두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의 작업 경향은 거의 개인적인 선택에서 나왔던 것이 분명하다. 김근태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주도했던 화풍과는 독립적으로, 개인적인 그의 성정(性情)과 관심이 이끄는 영역에 주목하였다. 그 영역은 사물의 물질적 속성의 세계였다. 정치적 관심이나 혹은 다른 연유로 형상을 그리던 당시 젊은 경향과 비교된다면 시각적 즉각성이 떨어지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김근태는 자신이 택한 길을 꾸준히 모색했고 그의 작업은 존재감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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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대체 재료의 발견과 합성
김근태의 노력은 1990년대 초반 경주 남산을 여행하며 본 석탑, 불상, 부조가 품고 있는 돌의 질감을 캔버스에 옮겨보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돌의 속성을 재현하기 위해 유화 물감을 그대로 쓰지 않고 돌가루(석분, 石粉)를 접착제와 섞어 독자적인 매체(medium)를 만들었다. 석분 자체를 물감으로 쓰면 최상이었지만 캔버스와 융합하게 하려면 접착제가 필요했다. 캔버스도 마포(麻布, 삼베)천을 쓰지 않고 9합 광목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대체 물감(석분+접착제)과 광목 캔버스의 결합이 바로 그가 원하는, 돌이 주는 꺼끌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창출하는데 가장 근접한 방법이라고 김근태는 느꼈을 것이다. 석탑이나 부조가 취했던 형태보다는 자연의 일부인 돌로 만들어져 있는 대상의 어떤 느낌을 추구했다. 그 세계는 물질계의 짜임에 바탕을 두면서 물질이 결정화된 구체적 형태에는 굳이 얽매이지 않는 유동적인 세계이다. 김근태는 이런 세계의 물질적 속성을 캔버스에 전환하고 싶은 예술적 충동을 느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재질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그러면서 붓자국이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형태적 단서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런 회화의 창작에 고심하게 된다.
작가가 이렇게 기존에 주어진 재질을 기계적으로 갖다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어떤 효과를 상상하며 새로운 대체 매체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는 노력 자체가 창작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관객은 모르는, 물질과의 실험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된다. 나는 모든 훌륭한 작가는 발명가적 기질과 역량을 가진 이들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있다. 작품이 전달하는 삶의 진리나 의미는 작가들의 이러한 물질과의 씨름과 실험을 통해서 구현된 추상적 보석과 같다. 훨씬 나중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이 보석의 빛을 실현하는데 바쳐진 구체적이고, 지저분하고, 비논리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시간들을 다 자세하게 복원해서 정보를 회수하듯 되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은 그래서 평론가의 펜이 추적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작가가 어떻게 자기만의 ‘독자적인 대체 물감’을 혼합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 대체 물감을 캔버스에 ‘어떻게’ 칠했는지를 관찰하면 작품의 핵심이 더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예를 들어 캔버스나 하드보드 표면에 박수근이 일궈낸 돌의 표면 같은 까끌거림이 없이 그가 그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말년까지 경주의 돌조각을 탁본했다는 박수근은 캔버스에 제소(gesso)를 발라 프라임 작업을 한 후에 바탕칠을 했다. 바탕칠에 사용한 물감은 기름을 충분히 섞어서 썼으며, 층과 층 사이가 충분히 마르도록 기다렸다고 한다. 마지막 맨 위의 표면은 기름을 매우 적게 섞은 물감으로 마무리를 하고, 대담한 스케치로 그림을 끝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박수근의 그림은 화강암의 재질을 연상하게 한다는 평을 받는다. 박수근은 최종적인 시각적 상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유화 물감의 점도(粘度), 촉촉함, 유동성을 식별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know-how)를 축적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려지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선화(線畵)는 캔버스나 하드보드에 층층이 쌓인 물감이 모여 합성해 낸 질료의 마음과 모습과 호흡하며 공존하는 것이지, 절대로 홀로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색화 세대에 속했던 윤형근의 작품도 테레빈을 섞은 묽은 물감이 없이 그의 검은 그림을 생각할 수 없다. 1970년대 초반 윤형근은 유화 물감에 테레빈을 대량 섞어서 물감을 마치 물에 갈은 먹처럼 묽게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이 유동성있는 흐르는 물감의 속성 때문에 그가 캔버스에 내려 그은 검은 빛의 붓질 주변에 자연스러운 번짐이 생겼다. 검은 기둥 주변에 불규칙하게 번지며 꽃 핀 녹슨 철의 레이스(lace)는 재질의 속성에서 비롯된 묘미이며, 윤형근의 검은 기둥 그림은 그가 만들어낸 물감의 묽은 정도와 핵심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
아마도 김근태가 재질, 물질의 세계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문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 물질의 세계는 구상이냐 추상이냐의 차원과 상관없이 창작하는 작가들이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세계이다. 돌가루와 접착제를 합성하여 사용했던 김근태는 2000년대 초반에 들어 석분과 러버(rubber) 접착제를 섞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 때 그는 예전에 재질을 만들었을 때 보다 더 묽게 만들어서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붓고 캔버스를 좌우 상하로 흔들어 우유 속에 종이를 집어 넣어 빼어내 흐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지난번보다 물기를 더 촉촉하게 하여 물감이 캔버스 표면에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매체를 변경한 것이다. 따라서 이 때는 캔버스 위에 부어진 질료의 상태를 예민하게 주시하면서 캔버스를 움직여야 한다. 질료의 마음과 작가의 노력이 서로 주파수를 맞추면서 접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김근태는 자신이 원하는 효과나 결과가 무엇인지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대략,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절반의 확실성을 마음에 갖고, 그가 만든 재료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관찰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김근태의 작품은 어느 정도의 확실성과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어우러지며 일어난 사건이다.
따라서 그가 부은 매체가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자리잡은 곡선과 자태는 반쯤은 매체가 ‘자기 마음’ 대로 하고 싶어서 나온 결과이고 반쯤은 김근태의 몸이 움직이며 조절해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상상할 수 있다. 김근태는 아마 이 연작을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다루는 재질의 변덕과 고집, 매력을 매우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시각 미술의 세계에는 그야말로 이 세상만큼 넓고 다양한 물질들이 있으므로 한 작가가 평생의 작업 기간 동안에 알게 되는 재료는 무한한 물질계 속에서 아주 작은 범위에 속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제한된 소박한 양(量)의 재질에 대해 너무나 깊고 친밀한 지식을 갖게 된다. 결혼을 하여 평생을 같이 한 커플이 서로에 대해 나의 몸이나 마음만큼 잘 알게 되는 경지와 비슷하다. 그래서 “작가가 쌓는 ‘지식’은 의사같이 수천개의 병의 증세와 과정, 기존의 예(例), 약의 종류등을 기억하고 알아야 하는 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지식이다.” 색도 마찬가지다. 여러 색이 존재하지만 보통 작가마다 자기가 쓰는 색들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작가가 쌓게 되는 지식은 방대한 양(量)을 사전처럼 집적하는 차원의 지식이 아니라, 제한된 재질을 갖고 그 테두리 안에서의 극미한 차이가 나는 다양한 결합을 이룩하며 성취하게 되는 “뉘앙스”(nuance)에 관한 지식과 깨달음이다.
질료가 주는 의미: 한국성인가 보편성인가
김근태는 이 연작이 백자와 분청을 통해 받은 영감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분명히 백자나 분청의 표면에 보이고 느껴지는 ‘질료적 현실’과 비슷한 어떤 것을 재현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을 해설한 윤상진은 앞서 1990년대 말엽에 만들었던 작품들도 석탑과 불상을 보며 어떤 예술적 충동을 받았다는 점에 근거하여, 김근태의 작품과 한국 예술 유산과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의 긴 역사의 시간을 음미하고 호흡해 온 작가는 한국적 미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내재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의 단서가 된 한국 과거 예술 선례와의 연계성에 무게를 두는 이런 해설은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 그러나 ‘한국적’이라는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그의 작품이 “자연에 대해 철저하게 순응하는 한국적 정신” 혹은 “자연적 관조를 존중하는 한국적 자연주의”라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때, 그의 작품의 의미는 과도한 개념에 스스로 좌초한 난파선같이 된다. 왜 그럴까. 그런 해설을 읽거나 들으면 우리 마음 한구석에서 “과연 한국인이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관조하는 내재적 본성이 있다는 게 정말 사실인가?”라는 솔직하고 적나라한 의심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김근태가 백자나 분청의 표면과 유사한 상태를 회화에 전이해서 재현해 보려고 했다 하더라도,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의 재료는 애초에 기대했던 느낌과는 약간 다르거나 거리감이 있는 ‘자기만의 성질’을 보이며 뜻밖의 의미를 건네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윤상진이 말한 자연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한국적 정신을 김근태가 백자나 분청을 보면서 운명적 향취처럼 느꼈다 하더라도, 작업실에 돌아와 그 느낌을 캔버스 위에 포착해 보려고 할 때는 이미 그 향(香)은 거의 모두 날라가고, 자신이 다루는 재질의 직접적인 체취와 고집이 그에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김근태는 재질과 씨름하면서 재료의 합성과 상태의 변화, 건조하면서 생기는 뜻밖의 반전등을 경험하면서 어떤 ‘의미’를 경험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석분과 접착제를 섞었을 때 완전히 부드러운 명주 결처럼 섞이지 않고 약간 투박하게 섞이면서 희미하게 고운 돌가루가 군데군데 존재감을 드러내며 용해되지 않을 때, 그렇게 된 농도를 보면서, 전체적 흐름에 완전히 허무하게 무명(無名)으로 묻히지 않는 자그마한 돌가루 알갱이의 존재적 힘이 잠시 작가의 눈과 손에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물 흐르듯 유동기가 많게 만들어진 석분을 부었을 때, 아래 위로 분할된 면의 경계점을 자기 마음대로 무시하고 흐르는 물질의 모습을 보며 경계 나누기의 허상이나 한계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늘어진 포물선 같은 재료는 유약이 흐른 듯 한 연상을 주면서 우연성이 주는 예술의 행운을 느꼈을지 모른다. 재질의 모습이 세상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묘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그는 느꼈을 것이다. 인간의 시각 경험은 생리적으로 인지(認知)와 연동되어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인식과 승인, 재발견으로 이어지며 인간으로서 세계를 알아가는 기본적 지식으로 전환, 축적된다. 작가는 재질과 더불어 이런 보편적인, 직관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느낄 것이다. 이런 ‘보통의’ 의미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밀하다. ‘자연을 관조하는 한국적 자연주의’같은 구절은 재질을 다루는 작가가 경험하는 의미가 아니라, 먹물 평론가가 활자로 구현한 의미일지 모른다. 그것은 너무 대단하고 너무 특수하다.
재질의 의미에 대해 유행해 온 평론계의 오해가 또 하나 있다. 재질의 마음을 다루는 김근태는 “석분의 속성을 존중했다”라고 설명한다. 내가 기대하고 목적했던 대로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양보하고, 매체의 마음대로 하게 하면서 매체와 일종의 타협을 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원했던 예술적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은 물질의 고집을 어느 정도 내버려둬야 하는 시간인 셈이다. 작가들은 이런 재질을 체험하며 체념과 양보의 의미를 떠 올릴 것이다. ‘이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의하는 진리를 확인할 것이다. 또한 작가들은 개체의 개체다운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필연적인 세상의 도(道)가 될 것이라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도 재료의 물성을 통해 투영해 볼 것이다. 어떤 정당이나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찬반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길에 관한 생각을 품게 된다. “석분의 속성을 존중했다”라는 말에는 이러한 보다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생각과 의미들이 순간적으로 살아 숨쉰다. ‘체념을 하는 한국인의 순응적 자세’는 그야말로 지나친 개념의 허영에 가깝다. 김근태의 작품은 창조를 실현하는 인간의 보편적 문맥에서 탄생한 보편적으로 가치있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 그것을 ‘한국적’이라는 개념으로 치장한다면 보편성을 상실한 폐쇄적인 문화의 미이라로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붓질의 ‘덜하기’와 붓질의 ‘격려’를 하나로 모아서
김근태의 작품에는 석분을 이용한 작품 이외에 유화 작업이 있다. 석분을 가지고 작업하던 시기에는 붓자국을 최소화하려고 하면서 붓질로 만들어진 인위성을 침잠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석분 작업이 불러 일으키는 자연스러움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놓친 것’이 있었다. “(세밀함을 놓쳤고) 분청에서 귀얄 무늬의 경우 붓자국에는 역시 놓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이 요소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재료를 찾다가 학생시절 다룬 유화를 다시 선택하게 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김근태는 유화에 린시드 오일(linseed oil)이나 테레빈(turpentine)을 섞지 않고, 코팅 미디엄을 섞어 균일한 농도(버터와 같은 된 농도)를 맞췄다. 석분 작업을 할 때와 동일하게 원하던 효과를 위하여 재질의 물성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가 기대했던 느낌은, 붓질이 내보일 수 있는 인위성을 억제하면서도 동시에 분청의 귀얄 무늬가 전하는 붓자국의 매력을 드러내는, 논리적으로는 상호 모순된 개념을 실현해 보려는 것이었다. 붓자국의 ‘억제’와 붓질의 ‘격려’라는 역설을 하나로 결합해 보고자 하는 예술적 의도였다.
그의 유화 작품을 관찰해 보면 이런 요소들이 잔잔하게 드러난다. 그가 언급한 분청의 귀얄 무늬는 수수비나 동물 털로 만든 붓으로 백토물을 찍어서 쓱 칠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은 일부러 애써 고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 시원스럽고 자연스러운 바탕결을 창출했다. 김근태의 유화에서 보이는 붓결과 유사한 느낌이다. 붓으로 만든 수평선같이 흐르는 길에는 물감의 버터 같은 성질 때문에 약간의 윤기도 흐르고, 특정한 점도로 인해 단순한 선(線)이 아닌 약간의 입체적 느낌이 묻혀있다. 이 고른 붓결을 바탕으로 몇 개의 미니 ‘드라마’가 그림에 나타난다. 그 중 놓칠 수 없는 것은 몇 겹의 칠이 보인다는 점이다. 어떤 때는 표면 밑에 거의 비치는 듯한 흔적을 통해, 물감 층과 층이 부분적으로 충돌한 자그마한 사건을 통해, 어떤 때는 캔버스의 밑 가장자리에 마치 여러 번 읽은 책의 접혀진 페이지 모퉁이 같은 물감 층들이 살짝 보인다. 캔버스 전체를 물감 층으로 다 막지 않고 마치 관객이 보지 못한 작업의 현장을 살짝 남겨 보여주며 관객에게 조그만 상상의 창(窓)을 열어 놓는 듯하다.
김근태의 유화 작업에서 보여지는 이 같은 붓질의 ‘덜하기’와 인위적 ‘격려’의 결합은 한국현대미술의 많은 작가들이 작업 과정에서 주목하는 보편적 주제이다. 필자가 아는 한, 언어적으로 상호모순으로 보이는 이 두 느낌을 하나로 응축하려는 노력이 작가들의 ‘실재 작업’의 주요한 화두이다. 작가들은 이 역설을 결합시켜 자연스러움과 작가적 노력이 ‘은밀하게’ 하나로 녹아 든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고, 예술적 노동이란 그 결합의 비밀을 발견하고 정복하는 노력이자 씨름이다. 김근태에게 그가 합성한 대체 물감과 그 매체의 물질적 속성은 이 언어적 역설을 봉합해주는 데 일조하는 구체적 생물(生物)이다. 그러나 그 생물은 홀로 움직일 수 없고 김근태의 물리적 개입을 통하여 느낌과 의미를 지니는 예술 작품으로 탄생된다.
김근태의 작품에 함축되어 있는 이러한 의미의 뉘앙스는 결코 설명하기 쉽지 않다. “추상화에는 복잡한 세계를 어떤 근본적인 단순한 이미지로 집약하고 축도(reduction)하는 특성이 존재한다”라고 하거나 혹은 “추상 작품은 사용된 매체의 물질적 속성에 의존한다”라고 어느 한 쪽으로 간편하게 몰아서 단순화 할 수 없는, 다중적 의미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다중적, 복합적 의미를 지켜나가는 예술론은 작가의 실재 창작 과정을 훨씬 더 깊이 반영하지만, 매끄럽게 언어화되질 못한다. 명확성을 얻으면 뉘앙스를 잃는다. 예술에 있어서 뉘앙스는 부수적 치장과 화장이 아니라 본질이며 태토(胎土)이다. 김근태의 작품은 단순한 덜하기를 통해 단순화된 순수함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매력있는 조력자인 매체의 물성을 개입시켜 상호 대화하며 배우고 발견한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그가 한 개인적인 공부이며 연구이자 깨달음이다. 그것은 명확해 보이는 언어 체계로 촘촘히 꾸며진 듯한 체계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의 확정에 덜 매달리는, 어떤 인간 경험이다.
■작가약력
김근태 KIM KEUN TAI (1953)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학과 졸업
[개인전]
2017 미술이 철학을 사유하다, 조선일보미술관
2016 DISCUSSION, 통인옥션갤러리
2012 Discussion-wall, 고도갤러리
2010 Discussion - Nature, 대우갤러리
2004 Galerie Konrad Munter, Meerbusch, Germany
Georg-Meistermann - Museum, Wittlich
Stadtmuseum Siegburg, Germany
Stadtmuseum Oldenburg
2002 Discussion - Nature 예맥화랑, 서울
Expo paris-Seoul Maison des Metallos. Paris
2000 담론-백자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전, 성곡미술관, 서울
1997 Discussion Or Encounter, 사비나갤러리, 서울
1988 청년미술관 서울
[그룹전]
2019 한국-베트남 현대미술교류전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베트남국립미술관, 하노이
‘淡’ 전, WhitestoneGallery, 홍콩
한국현대미술작가전, 주홍콩한국문화원, 홍콩
2018 한국의 후기단색화전, 그룹전, 리안갤러리, 서울,대구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전, 평창
2017 3인3색전, 그룹전, 초이앤라거갤러리, 독일, 일본, 한국
한국미술의 풍경, 그룹전, 금산갤러리/동산방화랑, 서울
2017 더로드, 2인전, UNC갤러리
2인전, 갤러리담
2004 The Exhibition Project “Zugvogel
2007 내일의 작가들 성곡미술관
1996 예우 40주년 기념전, 서울
1995 오늘의 한국현대미술작가전, Seoul
1993 제 12회 한국미술청년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3 한국-호주 현대미술교환전, Pholten, Autria
1992 Seoul Spec Contemporary Fine Art Festival, 서울
1992 제 11회 한국 예술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1 제 10회 한국 예술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0 Chung-Ang Modern Art Festival, 서울
1990 서울vecter전 관훈미술관
1985 서울방법전
1988 Seoul Contemporary Art Festival, 서울
1988 Seoul-Worlds Contemporary Arts Exhibition, 서울
1982 종이작업36인전 관훈미술관
1981 한국미술청년작가회전
1981 양상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아트페어, 옥션]
2018 Untitled Miami, 초이앤라거갤러리, 마이매이
HONGKONG ART CENTRAL , UNC갤러리, 홍콩
2017 홍콩크리스티옥션
ARTNET 옥션
2017 KIAF, Gallery Francoise Livinec,COEX
Art Elysées Art Fair, Gallery Francoise Livinec, Grand Palais, 파리
2003 Discussion - Nature, MANIF8!03, 그룹전, 서울아트센터, 서울
2002 EXPO Paris-Seoul, Maison des Métallos, 파리
1998 Discussion - Nature, MANIF4!98, Seoul Arts Center, 서울
[소장처]
성곡미술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하나은행 外 다수
■ 인터뷰 영상
◈ TV CHOSUN 이웃집화가 시즌2 출연 [ 2019.09.21(토) / 2019.09.28(토) / 2019.10.05(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