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 개인전
구나, 박진흥, 한상진, 홍란
2020. 02. 08 ~ 2020. 04. 26
Open 10:00 ~ Close 18:00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개관)
박수근미술관 내 현대미술관(2관), 박수근파빌리온(3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박수근미술관은 오는 2월 8일부터 4월 26일까지 박수근미술관 내 현대미술관과 박수근파빌리온에서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14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인 구나 <쌍둥이의 목차>, 박진흥 <쉼, 일상>, 한상진 <소요(逍遙)-흐르는 풍경>, 홍란 <사실, 캐모마일 티는 효과가 없어.> 전시를 개최한다. 2019년 한 해 동안 양구에 머물면서 박수근 선생의 예술혼을 기리며 준비한 전시를 통해 구나, 박진흥, 한상진, 홍란 네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구나, 화이트 본 White bone, Mixed Media, 500(w)x70(h)x1(l)cm, 2019
구나, 화이트 본 프롬 어드레스 White bone from address, Mixed Media, 82(w)x7(h)x70(l)cm, 2019
구나_쌍둥이의 목차
너는 나의 목소리를, 나는 너의 목소리를 앞에 두고 따라간다. 다툴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느림 속에서 너는 어느 날 빛을 타고 사라진다. 너의 목소리만이 나의 유일한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당연한 반복은 멈춘다. '몸짓을 시작하자.' 아이보리 계곡에 복숭아뼈가 담긴다. 센티멘탈 로그인, 이제 긴장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너는, 어둠이 드리우자 하야면서도 상큼 드러나는 살구 빛 얼굴로 둥글게 서있다. 나는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폭포와 같이 흘러내리며 서있다. '마침내 너와 나는 사이가 생겼구나.' 그 사이는 흐릿하지만 긴장감이 넘쳤고 그것이 서로를 기쁘게 만들었다.
티타임, 서로를 바라보기보다 스스로를 내려본다. 너는 목 위에 자리 잡은 어깨, 밖으로 향한 곡선의 뼈, 길이가 어중간한 두 팔… 그렇다면 바스락거리는 하얀 언덕, 부서질 것 같은 지진, 에머랄드베이지 물빛… 그 것은 나이다. 헤픈 에러, 너와 나는 또 다른 우리로 풍경이 되어 간다.
'랄라아' 두 목소리로 리듬을 이룬다. '툭툭' 두 몸짓으로 힘을 만든다. 유일한 목소리로 하얀 것을 듣고 유일한 몸짓으로 유약함을 잇는다. 유일한 쌍둥이, 유일한 풍경, 그럼 다시 센티멘탈 로그인.
박진흥, 쉼-5월 꽃가루 안에서, 혼합재료, 60x36cm, 2019
박진흥, 쉼-아픈 날(옹이같은 삶), 혼합재료, 38x24cm, 2019
박진흥_쉼, 일상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쉼을 얻고 싶어 한다.
화가인 나는 팔이 쉬고 있을 때 쉼의 기쁨을 얻는다.
나는 화가이기 전에 인간이다.
다리를 뻗고 있어야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혼이 쉼을 취할 때 쉬고 있다는 행복감에 빠져 든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팔이 없는 대신 영혼과 다리가 쉬고 있는
나를 그린다.
비로소 나는 하루가 깔려 있는 화폭에 내 삶을 그려 본다 완벽한 쉼이 꿈으로 인도하듯.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노인, 빨래터에 앉아 오순도순 수다를 떨며 빨래하는 여인들, 골목에서 공기놀이를 하는 어린 아이들. 이 모습은 지난 날 박수근선생님이 그 시간 속에 바라보는 일상 이였다. 수십 년이 흐른 나의 눈에 펼쳐진 일상은 지하철, 버스, 카페,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우리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은 원시시대 돌도끼와 같은 원초적인 힘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돈을 사냥을 하고, 사냥한 짐승으로부터 가죽을 얻듯이 옷을 쇼핑하고, 먹이를 구하듯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동굴에 벽화 그리듯 셀카로 본인의 삶의 기록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은 원시시대 돌도끼처럼 이 시대에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도구이기도하지만 때론 “케렌시아” 와 같이 현대인들에게 쉼을 가져다 주는 또 다른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친구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영화나 게임을 하듯...
지금 이시대의 쉼.
* 케렌시아 : 스페인어로 케렌시아(Querencia)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한다.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하며, 최근에는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나만의 휴식처를 찾는 현상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
한상진, 풍경 안에서 from landscape, 광목천 위에 수묵드로잉, 79x159cm, 2019
한상진, 스침-몸의 풍경, 풍경의 몸 flitting, 종이 위에 수묵 드로잉, 각 42x29.7cm, 2019~2020
한상진_소요(逍遙)-흐르는 풍경
나의 작업은 바깥에서 이뤄진다. 여기에서 밖이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이고 지시적인 언어의 내부가 열리는 장소이다.
양구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 그리고 사물들은 주로 이해관계를 벗어난 낯선 풍경들이며 그 속에서 이뤄지는 작업은 나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여는 교감을 바탕으로 한다.
새벽과 해질녘 풍경은 모호한 이미지들이고 비와 안개 눈의 풍경처럼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변화하고 흐르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며 달라져간다.
흐르는 구름과 바람의 속삭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이미지들은 단순한 풍경의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풍경과의 접촉을 견지하며 몸의 흔적으로 나타나는 수묵 드로잉이 되어가고 구체적인 형상으로부터 멀어지는 불확실한 어떠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 작가노트 中
홍란, 자극적인 맛_1 a stimulating taste_1, Oil on Canvas, 50x50cm, 2019
홍란, 자극적인 맛_2 a stimulating taste_2, Oil on Canvas, 50x50cm, 2019
홍란_사실, 캐모마일 티는 효과가 없어.
난생처음으로 정신 치료를 받을 때, 의사는 나에게 약 대신 캐모마일 티를 섭취하는 것을 권유했다. On my first mental treatment in my life, my doctor advised me to take chamomile tea instead of medicine.
물처럼 부드럽게, 꽃처럼 격렬하게
이미 많이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좌절과 무기력함,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불확실한 미래와 아등바등 버텨내며 살아가도 변하지 않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고 원망하기만 하며 이대로 절망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 강박적인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 원동력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심연이 표현되길 바랐다. ‘모든 화가는 결국 자신을 그린다’고 하는데 이번 나의 작업들은 얼굴을 그린 자화상이 아님에도 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나를 언제라도 부술 수 있을 것 같던 사람들은 항상 가까운 곳에서 나타나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미술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생태계 먹이사슬 최하에 위치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그만큼 잔인해 보였고, 추악한 일들이 만연했다. 그것들을 바라보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정리할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복잡하게 엉켰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얻게 된 개개인의 마음속의 어두움들은 쉽사리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염증으로 자리했다.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적인 상처로 인한 심리적인 장애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병들어가는 어둠을 인지하고 아픔과 슬픔을 계속해서 감각하려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위로를 건네며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을 끌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