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0 ~ 2020-03-15
김예슬, 박승환, 유순영
010-2047-0222
전시소개
The forest house
김예슬
기억,회상그리고추억속에머물다
나는 사라진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난 그래’ 라고 분명하게 정의할 순 없지만, 지금의 나는 추억에 꽤나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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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육 남매가 살던 그 곳은 수풀집이라 불렸다.
평생을 수풀집에 머물던 할머니는 내가 열살이던 해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이제는 할머니를 만났던 시간보다 떠나보낸 시간이 더 길어져 버렸지만, 난 아직도 15년전의 그때가 생생하기만하다.
주말마다 할머니집을 가기위해서는 집안이 시끌시끌 했고 한달에 한번은 보양탕집에 들러 한솥 사가곤했다.
그때의 내가 하는일이라고는 할머니 집 작은방에 앉아 뒹굴고 오빠와 잔디밭을 뛰노는 것이 그저 전부였다.
이 모든게 소중했다 라는 건, 항상 대상이 사라진후에야 알아차리게 된다.
할머니가 떠나고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곳을 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온몸을 뒹굴던 그곳은 신발을 신고 긴팔옷으로 온몸을 감싸야 겨우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사실, 변한것 보단 방치일지도 모른다.
숨막히는 공기와 잔뜩 쌓인 흙먼지를 제외하곤 15년전 그대로인 그곳은 굉장히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할머니가 쓰시던 침대 위에서 금방이라도 할머니가 손 흔들며 일어나실 것만 같았다. 10살의 나를 반겨주던 할머니가 더욱더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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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생각나는 사람 혹은 기억하고싶은 물건, 공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어느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은 나만이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존재를 기록하고자 했다.
Friend
박승환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같이 자고 같이 씻고 같이 놀았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같이 지냈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는 너무 일찍 나에게서 떠나갔다.
그의 처음 빈자리는 크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삼일 사 일째 되는 날 눈앞이 멍해진다.
하나의 슬라이드 필름 영화같이 그와의 추억이 눈앞에 빔을 쏘듯이 선명해진다.
잊을만하면 나의 꿈속에 찾아와서 안부를 묻는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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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어머니의 노란 상자
유순영
몇 해 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치료받으면서 삶의 영원성을 처음 의심했다. 정신보다 몸이 먼저 근원의 물음을 일깨워 준 셈이다. 죽음을 의식하면서 의미 있는 일로 현재를 채워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았다.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과수원 집 딸인 나는 어릴 때부터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살았다.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이 마냥 좋기만 했다. 여름이면 나무 그늘에 앉아 시집을 읽었다. 모두 꿈 많던 소녀시절의 기억이다. 아버지는 셋째 딸인 내게만 첫 복숭아를 따 주셨다. 땀 흘려 일하시는 중에도 빨간 딸기를 이파리에 싸서 내미셨다. 아버지의 애정표현은 과일의 달콤함만큼 멋졌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이 그립다. 아버지가 가꾸어 놓으신 과수원이 내겐 행복의 공간이었다. 돌아가신 후에야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았다. 아버지의 과수원을 비로소 찬찬히 돌아보았다.
생전의 아버지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노란 상자는 그대로 남았다. 무심코 지나치던 사물에서 아버지를 발견한 것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과수원을 떠나지 못하셨다. 홀로 된 어머니는 과수원의 일을 도맡아 하신다. 아버지의 노란 상자가 나무 사이에 여기저기 놓여 있다. 힘들면 앉아서 쉬는 의자가 되고, 일하다 간식을 먹는 탁자가 된다. 가끔 먼 산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쉼터이기도 하다. 두 분은 그렇게 만나고 있다. 어머니의 모습은 안타깝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버지의 감정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두 분을 향한 연민은 곧 나의 문제이고 어머니의 모습은 나의 미래이다. 과수원의 노란 상자는 계속 이어지는 가족사의 연결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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