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영 (GuNaYoung) 개인전 _ 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
[ 존재의 서사 The Narrative of Existence ]
구나영 개인전 GuNaYoung solo exhibition
전시기간 : 2020. 4. 21 (화) - 2020. 5. 18 (월)
관람시간 : 평일 11:00am~06:00pm, 무료 관람
(입장마감 : 5:30pm / 휴관일 : 주말, 공휴일)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44길 5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B1
Tel. +82.(0)2.790.3888
구나영 작가평론
존재의 숲에서 만난 ‘生의 서사’
안현정(예술철학 박사, 미술평론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대상으로, 그렇게 쌓아올린 존재의 흔적들은 자아를 성장시켜온 인내의 표상이다. 성장하는 자아와 생의 순환, 구나영 작가가 보여주는 숲의 서사 속에는 시대정신(Zeitgeist, spirit of the time) 위에 내려앉은 예술가의 자기고뇌가 켜켜이 아로새겨져 있다.
형상 이면에 담긴 생의 미학
작가는 예술가의 더듬이(An artist's antenna)로 동시대 속, 삶의 편린(片鱗)을 노래한다. 시대에 담긴 진보적 생각들을 기존의 가치위에 올려내어 직관(直觀), 이른바 ‘미적 쾌(快)’를 기반으로 한 보편적 정신을 끌어내고자 한다. 여백인 듯 보이는 백색의 공간에도 작가의 흔적은 녹아있다. 노동으로 집약된 긋기의 흔적은 힘의 들숨 날숨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전환된다. 긋고 올려낸 흔적 안에 감성(emotional aesthetics), 의지(expression of will), 영혼(soul attraction)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은 끝일 수 없다. 창의성이 ‘탄생-성장-소멸’의 연결과정 속에서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별 작품을 하나의 명제로 정의내릴 수 없는 이유다.
작가는 구상의 합리성과 여백의 가능성을 허실상생(虛實相生) 속에서 녹여냄으로써, 희노애락의 다양성 속에서도 어느 한곳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와 ‘조화(調和)’를 실천한다. 나무가 모여든 화면과 무성한 덩어리로 치환된 상상의 숲 ‘팀북투 (Timbuktu)는 다차원적 공간처럼 세계 자체를 무한대로 확장시킨 우주적 공간이다. 원근법을 적용한 숲길의 재현에서 벗어나, 선대(先代) 화가들이 비밀스레 펼쳐놓은 시·공간을 관통하는 다시점(多視點) 방식을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동양의 전통 위에 서양의 합리성을 얹어낸 듯한 비범한 화면은 가시성과 비가시성 모두를 조망함으로써 소요(逍遙)와 무위(無爲)라는 ‘자연=생’의 법칙을 화면에 솔직하게 녹여낸다.
존재의 숲, 시·공간의 데페이즈망
작품들은 시기를 막론하고, 상식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케 하는 묘한 분위기를 담았다. 무수한 선으로 채워진 여백 아닌 여백과, 현명한 덩어리(玄黙)로 이루어진 대상 아닌 대상은 기이함을 넘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느낌마저 자아낸다. 이를 작가는 ‘이상경(理想景)’이라고 해석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세계, 그럼에도 현실과 맞닿은 듯한 낯익은 풍경, 마치 페이즈망(Dépaysement)의 언어처럼, 상식의 맥락에서 벗어난 낯설고도 친숙한 명상적 화면 속에서 우리는 깊이와 철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처음 작가는 화면 위에 아무 대상도 남기지 않은 생의 흔적만을 남겨두었다. 묵상하는 존재의 모습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초기 작업은 개입 없는 순수, 빈 공간을 의미로 채우는 무사심성(無私心性)의 세계로 요약된다. 칸트가 미적 대상(혹은 숭고적 대상)을 느낄 때 그 대상을 어떤 이해 관계없이 만족한다고 했던 ‘사심 없는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작가의 관점대로라면, 우리가 숲을 보고 느끼는 평범한 감정은 작가가 추구하는 미와 다르다. 작가의 미는 영원성을 추구한다. 흘낏 아무런 관심 없이 관조하며 바라본 ‘이상경의 숲’은 주변 상황 등과 관계없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경은 어떠한 역사적·정치적 의미와도 관계없는 순수한 아름다움, 바로 완성도 넘치는 예술성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시간으로 녹여낸 관조(觀照)의 흔적, 존재를 생으로 이름 짓는 작업
낮고 차분하게 숨을 고른 작가는 화면의 여백 위를 무수한 긋기로 채워 나간다. 선은 작은 가지로, 큰 나무로, 울창한 숲으로 번져 의미를 갖는다. 숲은 구상성을 띄지만 연결되고 중첩된 덩어리들은 작가의 시간과 만나 추상화된다. 이것이 구나영 작가를 구상화가 혹은 추상화가라는 틀에 박힌 계보로 분류할 수 없는 이유다. 작가는 개념미술의 계보를 동양적 감수성으로 해석하면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통해 ‘생의 미학’을 끌어낸다. 심상(心想)은 ‘숲’을 이루고, 숲은 ‘관조’의 대상이 되어 ‘깊이 있는 울림’을 남긴다. 그러하기에 작품 속 숲은 관찰의 대상이 아닌, 시간을 녹여내고 쌓아올린 교유(交遊)와 공존(共存)의 대상이 된다.
구나영 작가는 ‘삶’의 모든 인식, 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자체를 추구한다. 그것은 작가가 우리 모두의 인생에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생이란 ‘지금-여기’의 관계를, 존재가 실재성을 갖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살아있음은 ‘생성-진화-창작’으로 이어지고, 작품을 접한 우리들은 ‘직관-체험-실천’을 통해 그 모두를 의미 있게 만든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본질은 우리 모두의 비밀스러운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을 넘어, 작품을 통해 치유와 긍정의 미학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의 숲에는 응축된 감정덩어리들이-‘조화와 중용’, ‘관계의 메타포’, ‘뮤즈적 예술’ 등과 만난-다양한 서사성이 우리 앞에 자리한다. 작품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넘어 생을 의미 있게 정의하는 것, 작가-작품-감상자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의 미학’을 통해 공존과 조화의 세계로 모두를 인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미술을 만들고, 생의 모든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존재의 숲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긍정적인 얼굴과 만나게 된다. 그어 내려간 선을 좇아 작품 안을 유영하다 보면, 과거가 그려놓은 삶의 서사를 하나하나 밟아나가게 된다. 현재의 풍요로운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열정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Artist GuNaYoung
‘A narrative of life’ encountered in the forests of existence
Ahn HyunJung (doctor of art philosophy, art critic)
An artist GuNaYoung sings every part of life in the contemporary times with the artist's antenna. She tries to derive the universal spirit based on an intuition, so called 'aesthetical pleasure' by lifting up progressive ideas in the age onto the existing values. The artist's traces are reflected in white space which just looks like empty and meaningless space. The traces of drawing filled with her labor are transformed into many different looks depending on inhalation and exhalation. She contains emotional aesthetics, expression of will, and soul attraction in the traces of drawing and putting up. That's why one work cannot be ended with it: Creativity is circulated in the processes connected with ‘birth-growth-extinction.’
She puts into practice ‘moderation’ and ‘harmony’ which is not biased towards any direction in a diversity of all sorts of emotions-joy, anger, love, and pleasure by melting representational rationality and possibilities of empty space into truth and falsehood, and coexistence. Timbuktu, an imaginary forest which is expressed with a canvas packed with dense trees and a bushy mass is a cosmic space to expand the world to infinity like multidimensional space. Extraordinary canvas in which the Western rationality is placed on the Eastern tradition honestly portraits a law of 'nature=life' of leisure and doing nothing, by viewing both of visibility and invisibility. ‘Forest of existence’ series have contained a subtle atmosphere to make one arbitrarily interpret surrounding environments getting out of common sense and stereotypes. Blank spaces filled with numerous lines and objects composed of wise masses make an impression like an unsolved puzzle beyond a feeling of weirdness. The artist interprets it as a utopia. Her early works are summarized in a world of satisfaction without any private interest to fill empty spaces with meanings and purity without intervention. When Kant feels an aesthetic object (or sublime object), he said he was satisfied with it without any interest, which is associated with ‘a disinterested world.’ From the artist's point of view, when we look at a forest and feel beautiful, it is not true beauty. On the other hand, it can be said that 'a utopian forest' glanced without any interest is a world of true beauty which has no relationship to surrounding circumstances.
The artist does not observe any objects around her but by melting and building up time, she interacts with people's lives she sees. She tries to pursue every perception of ‘life’, and the reasons why we must exist. Life means relationships of ‘here-now’ and the process in itself that a being has her substantiality. For this reason, she does not stop drawing lines. Being alive or living leads to production-evolution-creation, and makes all the processes of intuition-experience-practice meaningful. Thus, her works cannot be divided into stereotyped categories of representational or abstract ones. She is an artist who draws 'aesthetics of life' through working processes while she interprets the pedigree of conceptual art with her Eastern senses.
구나영
주요 개인전
2020 < The Narrative of Existence > (아트스페이스 루, 서울)
2019 < Sedimented Times, Distilled Emotions > (갤러리가비, 서울)
2018 < Spectrum of Emotions > (갤러리도스, 서울)
2017 < BLACK - be not seen > (메이크갤러리, 서울)
2017 < Walking in the Forest of My Mind > (갤러리정_신사점, 서울)
2016 < Flowing Woods > (갤러리이마주, 서울)
2016 < CHACONNE > (혜화아트센터, 서울)
2015 < SPECTRUM > (갤러리정, 서울)
2015 < Song of Life > (갤러리1898, 서울)
2015 < PORTRAIT > (갤러리H, 서울)
2014 < Mid Dream Landscape > (스페이스 선+, 서울)
2014 < The Forest of Existence > (1 Gallery, 서울)
2014 < MINDSCAPE > (유중갤러리, 서울)
2013 < DENSE FOREST > (이랜드스페이스, 서울)
2012 < LUCID DREAM > (노암갤러리, 서울)
2012 < TIMBUKTU > (미술공간현, 서울)
주요 수상
2015 갤러리H 신진작가
2014 정문규 미술관 ‘신예작가 발굴지원 프로그램’ 선정작가
2014 스페이스 선+ 신진작가
2013 유중아트센터 신진작가
2013 이랜드문화재단 3기 공모작가
(초대 개인전 16회 / 단체전 50여회 / 국내외 아트페어 다수)
blog.naver.com/artistgunayoung
facebook.com/gunayoungartist
instagram.com/artistgunayoung
구나영 (GuNaYoung) < 견뎌내는 시간들 (Enduring times) [ 191212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 ink, acrylic on Hanji), 64.5 × 75cm, 2019
구나영 (GuNaYoung) < 견뎌내는 시간들 (Enduring times) [ 191219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 ink, acrylic on Hanji), each 45 × 67cm (×4ea), 2019
구나영 (GuNaYoung) < 생존 (Survival) [ 191226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 ink, acrylic on Hanji), each 59 × 59 cm (×2ea), 2019
구나영 (GuNaYoung) < 견뎌내는 시간들 (Enduring times) [ 191206A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 ink, acrylic on Hanji), 65 × 89 cm, 2019
구나영 (GuNaYoung)
< 견뎌내는 시간들 (Enduring times) [ 191206B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ink, acrylic on Hanji), 65 × 89 cm, 2019
구나영 (GuNaYoung) < 견뎌내는 시간들 (Enduring times) [ 191106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ink, acrylic on Hanji), 56.5 × 89.5 cm, 2019
구나영 (GuNaYoung) < 견뎌내는 시간들 (Enduring times) [ 191014 ] >
한지에 먹과 아크릴 채색 (Oriental ink, acrylic on Hanji), 56.5 × 89.5 cm, 2019
구나영 (GuNaYoung) 개인전 _ 전시전경 (Installation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