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MMCA 소장품전 <이것에 대하여>
기간: 2020. 6. 2(tue) ~ 7. 26(sun)
장소: 대전시립미술관 제1-4전시실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주관 : 대전시립미술관
《이것에 대하여》는 국공립미술관 협력망사업의 일환으로 대전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이 협력하여 기획한 MMCA 소장품 전시이다. 전시는 MMCA가 개관 이래 수집해온 동시대 국제 현대미술 주요 컬렉션 가운데 해외 작가 35명의 예술적 실험이 두드러진 42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제목 ‘이것에 대하여’는 동시대 미술지형과 미술관 컬렉션의 각기 타임라인을 관통하는 예술적 실험정신을 주목하여, 러시아 아방가르드 시인 마야코프스키(Vladimir Mayakovsky)의 동명의 시집 『이것에 대하여』(1923)에서 빌려왔다.
그런 점에서 전시는, 소장 작품 자체가 갖는 역사적, 예술적 가치는 물론 ‘수집’이라는 행위가 포괄하는 다양한 맥락을 가시화하고자 시도하였다. 한국대표미술관이 수집한 동시대 국제 현대미술 소장품 전시는, 수집 당시의 동시대 세계미술지형과 한국미술지형의 아방가르드 정의와 쟁점이 평행하거나, 미끌어짐, 혹은 교차되는 흥미로운 국면을 엿볼 수 있으며, 이들 국면과 미술관의 지향점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계기도 드러낸다.
동시대 세계미술지형과 한국미술, 국제성과 정체성, 컬렉션과 전시, MMCA와 대전시립미술관, 그 교차로로서의 전시 《이것에 대하여》는, 공동체의 정체성에 기초하는 미술관 활동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하길 기대한다.
섹션 section 1. ‘동시대성’을 향하여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1945년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과제는 ‘동시대성’과 ‘국제성’의 직접적 성취였다. 일제 강점기 서양 현대미술과의 간접적 만남에 대한 한국미술계의 자의식은 1957년경 ‘현대미술협회’를 중심으로 한 젊은 예술가들이 시도한 폭발적 실험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동한 국제적 미술운동으로서의 유럽 앵포르멜(informel)의 한국적 전개인 1950년대 말 한국 앵포르멜 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섹션1에 소개되는 안토니 타피에스와 피에르 술라주의 작품은 한국 앵포르멜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대리석 가루나 모래 등으로 넓은 색면을 두껍게 만들고 그 위에 마치 낙서한 것 같은 선과 흔적을 남기는 안토니 타피에스의 소위 물질회화와 벨벳과 같은 검은 획으로 된 그래픽한 양식의 피에르 술라주의 물감얼룩 같은 회화 작품은, 포스트식민과 냉전이라는 복잡한 사회 정치적 자장 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현대미술과의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편, 1960년대 한국 실험미술과 1970년대 단색파 등은 1960년대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 운동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일명 ‘가난한미술’)나 미국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1970년대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 Surfaces)와 일정부분 비교되어 왔다. 전시에 소개되는 아르테 포베라의 중심인물인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거울’을 이용한 작품 <에트루리아 사람>(1976)은 삶이 반영된 예술을 꿈꿨던 1960년대 후반 한국 실험미술의 태도와 비교해 볼 때 흥미로운 지점을 시사한다. 클로드 비알라와 장 피에르 팡스망의 작품은 쉬포르 쉬르파스가 실천했던 실험성을 호소력있게 전하고 있다. 특히 비알라는 캔버스의 나무틀을 떼어 버림으로써, 종래의 화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바꾸었고, 화포를 장대로 받쳐 걸거나 상 위에 펼쳐 놓거나 직물처럼 접어서 개어 놓음으로써 회화와 벽지 장식과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였다. 이들의 반(反)회화, 반(反)예술적 실천들은 한국 현대미술 운동의 실험적 성격에 따라 선별, 접속, 수용되면서 전개되었다.
섹션 section 2. 모더니즘의 안과 밖
반회화, 반예술적 실천은 특정한 유파나 주의주장(ism), 세대를 뛰어넘어 냉전체제 분단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 호소력을 지닌 실험적 방식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적 비판의식이 눈길을 끄는 마티유 메르시에의 <드럼과 베이스>와 호주 출신의 작가 찰리 소포의 그리드적 배열이 흥미로운 개념적 회화 설치 작업 <수박씨>는 모더니즘의 안과 밖을 드나드는 베허 부부의 유형학 사진과 함께 몬드리안으로 표상되는 그리드적 규범에 대한 재고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삐딱하게 제안하고 있다.
섹션 section 3. 형상성의 회복 이후,
앵포르멜과 단색화로 이어지던 추상 일변도의 주류 미술계가 지닌 관념성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은 1980년대 한국미술계에 형상성 회복의 시도로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1960년대 초부터 파리, 런던, 뉴욕 등지에서 부상한 신구상회화(Nouvelle Figuration) 운동의 국내 소개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프랑스 신구상회화는 1981년 개관한 서울미술관(서울 구기동 소재)을 중심으로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질 아이요와 에로의 작품은 당시 한국미술지형에 형상성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켰던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에 소개되던 이들의 작품은 민중미술작가들을 비롯하여 1980년대 한국미술계가 회복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나를 가늠하게 한다.
1990년대 한국 미술지형에 불어 닥친 변화와 성장은 특정한 개념을 중심으로 집단화하지 않았으며, 이전과는 달리 미술운동에 기대어 미학을 표방하지 않았다. 문화다원주의의 기치아래 모더니즘 시대가 신화화했던 기존 가치의 해체가 다양한 미술적 실천을 재촉하였다. 사진, 낙서 등의 마이너 매체의 부상과 차용과 패러디, 키치 등의 새로운 내용적 전환의 부각되었다. 전통미술의 소개와 방법을 계승하면서 만화와 같은 대중적 감각으로 변모시킨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2011)과 기하추상의 형태를 ‘패러디’하며 그 신화와 체계를 비판하는 피터핼리의 <타임코드>(2001), 안드레스 세라노의 오줌 속에 잠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1988)을 찍은 사진 등은 동시대 세계미술에 대한 한국미술계의 감각과 시각의 단면을 드러낸다.
섹션 section 4. 평행하는 세계
후기산업사회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미술의 국제화는 가속화되었다. 글로벌 경제로 세계가 연결되고 이러한 발전은 국제 아트페어, 비엔날레 등의 국제미술제를 급증하게 하였으며 세계화를 전면화하였다. 소비에트연방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환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부상,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아랍 대 이스라엘이라는 중동분쟁의 세계적 여파 등은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연계된 국제사회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섹션4에서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카셀도큐멘타, 베니스비엔날레 등의 국제 미술제를 통해 주목받아 온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중동 지역 출신의 작가 왈리드 라드, 사이먼 놀포크, 콘스탄티노 시에르보, 요게쉬 바브와 러시아 태생의 안톤 비도클 등의 비서구권 작업이 소개되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된 국제사회의 출현은, 역설적이게도 특정한 지역과 장소에 대해 의식적으로 인지하게 했으며,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의 특징적 태도 중 하나가 되었다. 특정한 지리적 위치와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작가들의 작업이 보이는 정치적, 문화적, 미학적 문제들은 적어도 세계가 평행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