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눈을 오래 마주보아야 합니다
2020. 7. 20 – 8. 7
김성혜 노시원 전인 하혜리 황예지
기획 | 노시원, 전인, 황예지
장소 | 온수공간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AM 11 - PM 7, 휴관없음
한낮의 지옥. 유령은 마를 날이 없고, 매일 갱신되는 죽음들. 죽은 건 너인데 어째서 내가 숨이 멎는 기분인가. 1) 어둠과 용암 붉은 조명 관념의 지옥은 탈각된 지 오래. 눈을 질식시킬 만큼 강한 빛이 여기 있다. 첨예한 것들을 쥐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쓸 수 없는데, 그렇게 돼 버렸다는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들을 음산하게 중얼거린다. 나의 생존이 우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날부터다. 돌이킬 수 없는 일별의 시간. 주검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오지 않은 죽음과 이미 와버린 죽음들이. 당신이 나였고, 내가 당신이었으니까.
죽어 있던(살아 있던) 과거는 소급적용 되고, 살아갈지도(죽을지도) 모르는 미래는 사후적으로 재구성된다. 언니가 저였고, 제가 언니였어요. 우리, 어떻게 이어져 있는 걸까. (불)가능한 시제를 체현하며 육체에 각인된 통증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거대한 집합적 몸. 몸들의 네트워크는 생과 죽음을 괄호 안에 넣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관념의 몸-언데드의 형상으로 부활한다. 끈적하게 뭉치기 시작하는 뼈 조각과 살점들. “이것은 우리가 거대하게 살아 있겠다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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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원은 역사 안에서 여성의 온전한 발화가 배제되어 온 궤적에 주목하고, 그 외력을 해소하기 위한 환경으로 무중력을 제안한다. 이때 몸은 어떤 인력으로부터도 귀속되지 않은 채 상공을 횡단하는 무수한 경로들을 추출해 낸다.
전인은 여성의 신체가 통과하는 몸짓들이 코드화된 이미지로 중첩되고 그 의미가 굴절되는 오독의 순간을 전복적으로 탐구한다. 거울 없이는 직시에 무능한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된 맥거핀이다.
황예지는 시간이 겹쓰인 풍경 속에서 생채기가 난 몸을 발견해낸다. 객관물에 정념을 부여하고 훼손된 신체의 징후를 포착하는 시선은 물론 부드럽고 연한 눈으로 읽힐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무언가를 꿰뚫기에는 충분히 날카로울 것. 황예지는 그간 섣부른 정동을 배제하는 것을 기록자의 자아로 여겨왔던 남성적 관행들과 길항하며 여성 사진가의 몸으로 상흔들을 어루만진다. 황예지는 무해한 짐승의 사려 깊은 동공을 가진 사진가다. 그렇다면 여기 또 하나의 짐승,
김성혜와 하혜리가 탄생시킨 괴형들은 또 어떠한가. 두 사람은 이 기묘한 형상을 한 짐승의 모체다. (누구도 상대를 압도하지 않으면서 무한히 루프(LOOP)되는 수평적 포옹들로 탄생한 몸. 유연함과 단단함을 존재론적 속성으로 새긴 몸. 이는 여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연대의 몸짓들이 축적되고 있음을, 휘발되지 않았음을,그 절박한 불투명함에 대한 물질적 증거로 기능하는 셈이다.
글 김예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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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유주(2018),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한다』, 서울: 문학과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