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3 ~ 2020-08-29
구상희
02.725.2930
Trace of Sans,10x10cm,10x60cm,2020002-1
[작업노트]
Trace of sans 1
더 이상 대상은 존재하지 않고, 실체는 왜곡되어 시뮬라크르로 존재할따름이다. 사물을 붙이고 뜯어내고, 문질러냈다.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대상은 미끄러져간다. 그들의 체온만이 그 자리를 지킬 뿐이다. 이제 사물의 낱낱은 흩어지고, 벗겨지고, 퇴색되었다.실체를지우기 위한 무한의 반복.광기의 몸부림. 소리는 지워졌고, 글자는 바래고, 찢기고, 깎여져, 이제 망각의 강을 건넌다.사물은 부재한다.남은 것은 그들이 스쳐간 흔적들뿐이다.부재의 흔적. 현전과 부재가 공존하고, 안과 밖이 작용하며, 경계는 의미를 잃었다.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그것은 없는 것이다.주변이 중심이 되고, 광기는 이를 타고 넘는다. 흐르고 묻히고 범람한다. 분절된 생명력은, 담장을 타고 넘는다.선과 악의 경계를따라 흐른다.
구애받지 않는 질료. 목적없이 생명을 따라 흘러 영토를 벗어난다. 언저리에서 생명을 되살린다. 작품과 틀은 분리와 합체를 반복한다. 중심과 주변이 경계를 잃었다. 대상과 시뮬라크르의 혼재.
부재와 현전의 교차. 그것은 들어오고 섞이고, 교차하고, 다시 나간다.
안과 밖은 하나가 되었고, 안에서 밀려난 부재는 주변을 타고 다시 안으로현전한다. 모든 구성들이 이접과 통접을 거듭하며, 생명력을이어간다. 망각과 유령은 사라지고, 작품과 틀 위에 타자가현전하며 부재한다.
Trace of sans 2
이작업의 시선은 타블로를 타고 넘어 주변으로 흐른다. 그리고 소외된 공간인 구석과 모서리에 함께 한다. 오브제로 사용되기 위해 채집된 예술신문은 현대예술시장의 부정이며, 신문의허구를 말하는 동시에 작가가 가고 싶은 목적지이고 욕망의 양가성이다. 중심지향적인 우리 인간 사회의모순을 주변부의 아름다움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고, 주변의 흐름은 무의식을 시간성으로 나타내고자 함이다.
[평론]
구상희-화면의 경계에서 서식하는 그림
박영택 (경기대교수,미술평론가)
구상희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크기의 나무 박스를 제작한 후 정면과 측면에 각각 회화적장치를 얹혀놓았다. 우선 미술을 다루고 있는 신문 기사를 화면에 콜라주한 후 부분적으로 밝은 색의 물감을칠해 덮었다. 이미지와 문자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지우는 한편 의도적으로 특정 문자와 이미지를 강조하고있다. 그 다음은 프레임을 따라 여러 색깔을 거느린 각각의 물감을 나란히 배열해서 부착시켰다. 이는 사각형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림은정면과 측면 모두에서 발생된다. 물감을 마치 가지런히 흘려 일정한 크기, 두께를 지닌 물질로 표면을 채워 넣은 것은 정면에서 보여주는 붓질의 표현적 제스처와는 달리 물감의 본래 상태를그대로 응고시키고 있다. 회화적 재료인 물감이 스스로 조각적인 상태를 만들어 보인다. 동시에 그것이 선, 면을 이루고 회화의 내용을 만든다. 또한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틀, 용기에 채우고 있다는인상도 든다. 사실 화면이란 일종의 그릇에 해당하기도 한다. 화면을물감을 담고 있는 용기로서 이해한다면 회화는 물감을 채우는 다양한 방식을 선보이는 일련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색을 지닌 물질, 물감을 화면의 측면에 고드름처럼매달리게 했다. 중력의 법칙과 시간의 경과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물감은 경계 부근에서 긴장감 있게 멈춰섰다. 바닥을 향한 물감들이 수직으로의 경로를 보여주다가 모서리에서 순간 멈춰선 형국을 연출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물감은 주어진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생을 마친다. 회화는화면 바깥에서 존재할 수 없다. 반면 이 작업은 화면의 바깥을 부단히 모색하는 동시에 그 접점에서, 경계에서 사는 물감, 회화의 존재를 보여준다. 중앙과 측면, 중심과 모서리 모두가 회화적 영역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화면만이 아니라 전시 연출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사각형의화면들을 전시장의 벽면과 벽면이 만나는 모서리, 구석을 사이에 두고 부착하기도 했다. 한 벽면 끝에 자리한 화면이 꺾인 벽면을 타고 다시 다른 화면으로 연장되는가 하면 새삼 전시장의 벽이 아닌모서리에 시선을 주목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나무로 이루어진 화면/시각형의 박스 전체를회화적 영역으로 다룬다. 우선 정면에는 미술 기사를 다룬 신문을 부착했다. 신문은 종이라는 물질인 동시에 이미지와 문자를 내장하고 있는 시각적 오브제다.납작한 평면의 오브제가 화면의 피부에 붙어나간다. 그 위에 밝은 색 톤의 물감으로 부분적인붓질을 가했다. 회화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 추상적이고 표현적인 붓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진과 문자를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안겨주기도 한다. 고흐나 알렉스 카츠의 그림 일부가 보이고 영문 텍스트로 쓰인미술관련 기사가 불현 듯 드러난다. 작가는 가독성의 체계를 지닌 신문을 의도적으로 망실시킨다. 지우고 덮고 문지르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신문을 부재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그러나 부분적으로 남겨둔 곳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의 토로 같기도 하다. 작가에 의하면그 같은 방법론은 “현대미술에 대한 허구이자 부정이며, 동시에본인이 가고 싶은 목적지이고 욕망의 양가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표면보다도 사실 측면에 방점이 놓여있는 듯하다. 본래 화면은 정면과 네 측면 그리고 뒷면, 이렇게 6면체의 박스로 이루어졌다. 통상 그림은 정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정면성의 법칙’은서구미술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역사였다. 동시에 그 정면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프레임이다. 액자, 액틀이라고 불리는 프레임은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인 평면성과천으로 이루어진 물질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다. 외부세계를 충실히 재현해왔던 회화라면 실제 세계를 보는듯한 환영을 벗어나게 하는 물질의 흔적이 시각적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기에 액자가 이를 막아서는 것이다. 동시에액자는 화면에 난 소실점에 관자의 눈을 맞추기 위해, 그의 시선/신체가그림의 정중앙의 자리에 서도록 하는 틀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것은 일상의 벽과 회화적 공간을 분리시키는장치이기도 하다. 한편 현대미술에 와서 재현에 대한 극복과 추상미술과 사물성에 대한 논의 속에서 화면과액틀의 관계는 매우 중요해졌다.
작품을에르곤(ergon)이라 하고 액자를 파레르곤(parergon)이라부른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를 전개한 이가 자크 데리다이다. 그는 ‘파레르곤이 작품의 외부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따라서움직이면서 작품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에르곤과파레르곤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이러한 논의에 힘입어 파레르곤은 어느 한쪽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어느 한쪽으로부터 배제되지도 않는 이중적 지위를 갖게되었고 이후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관계를 다루는 일련의 작업들이 출현했다. 액틀과 좌대가 사라진 현대미술이등장하는가 하면 화면의 중심부를 벗어난 이질적인 영역에서 또 다른 생을 모색하는 여러 시도들이 감행되고 있다.
구상희 또한 프레임에 물감이 올리고 그것들이 작품의 내부로 개입하는 듯한 형국을 연출한다. 화면의 모서리 내지 프레임에서 그림을 발생시킨다. 작품의 프레임을따라 물감을 흐르게 하면 물감의 속도, 움직임이 프레임이 끝나는 지점으로 몰려가서 순간 멈춰서버린다. 각각의 색을 지닌 물감은 주어진 프레임에 의해 불가피하게 흔적을 남긴다. 결과적으로프레임이 그림을 완성하는 주체가 된다. 프레임을 따라 흐르는 줄무늬,색띠를 만드는 것은 물감의 상태, 낙하의 속도, 중력의법칙 등이 결합되면서 가능한 것이고 그것은 종국에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인 상태로 마감된다.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를 최소한으로 하고 주어진 프레임의 조건과 자연법칙에 의해 그림을 만들고 있다고도 볼 수있다. 결국 작가는 화면의 중앙에서 배제된 측면에서 역설적으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는 에르곤과파레르곤, 작품의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한편이 둘이 서로 불가피하게 결합되어 있거나 교차하는 듯한 형국의 연출이 된다. 작가에 의하면 ‘에르곤이 생명을 다한 파레르곤에서 다시금 작품의 생명이 시작되어 흐르는 생동감과 생명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의도라고 한다. 이는 결국 ‘중앙을해체하고자 하는 것’이자 ‘모서리와 구석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구상희는 이러한 여러 인식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박스형 화면을 선택했으며 작품 역시 전시장의모서리에 걸거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했다. 그를 통해 벽, 공간이작품의 구성요소로 불가피하게 개입되고 있다. 또한 다섯 면을 지닌 화면을 접하는 한편 기존에 익숙했던회화의 공간과는 다른 장소들이 우발적으로 펼쳐지는 상황을 목도하게 한다. 나로서는 프레임을 따라 흘러가는물감들이 멈춰선 긴장된 그 자리가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모서리에서 또 다른생을 만들어나가는 회화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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