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 전시 개최
조선시대 양반의 공예품, ‘갓’과 ‘활과 화살’을 통해 살펴보는 당대 미감과 사회적 가치 주목
국가무형문화재 전통공예 ‘궁시장’, ‘갓일’ 장인 조명, 30여 점의 작품 소개
현대 미술 작가 5인의 공예, 영상, 회화, 조각, 설치 등의 10여 점의 신작 소개
우란문화재단(이사장 최기원)은 9월 23일(수)부터 12월 16일(수)까지 우란시선 전시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를 우란1경에서 개최한다.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는 과거의 우리 생활 속에 당연하게 존재해왔던 공예의 쓰임과 가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이되는 상황에 주목한다. 원형을 지키고자 하는 힘과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힘의 충돌과 공존이 일으키는 가치들을 살펴보며, 결국 공예를 통해 사람 그리고 그들이 이루는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조선시대 문무文武를 갖춘 양반兩班의 일상 속에 자리했던 ‘갓’과 ‘궁시弓矢’를 바라보고, 당대의 추구했던 미감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이 갓과 궁시가 유교적 공동체 내에서 형성되어 정착된 물질문화라는 것에 주목하여 시대적 배경을 짚어보고자 한다.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는 장인의 공예품과 이를 둘러싼 시대와 사회, 전이를 작품으로 풀어낸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여 시간의 흐름과 세대의 공존을 보여주고자 한다.
갓은 말총과 대나무로 만들어져 은은하게 비치는 투명함과 겹침으로 나타나는 무늬와 곡선이 특징이다. 남성의 도구였지만 ‘정꽃’과 ‘뒤새’로 멋을 내고, 옥이나 호박으로 만든 갓끈으로 장식을 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창영(갓일) 보유자와 박형박(갓일) 이수자의 작품을 통해 시대와 형태에 따라 변화해왔던 갓을 선보인다.
유연한 곡선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활과 강하고 빠른 지향성을 가지는 화살은 태초와 다른 쓰임과 가치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작되고 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김윤경(궁시장) 전수조교의 전통 활과 유세현(궁시장) 전수조교의 전통 화살을 통해 무기와 심신수련의 도구를 넘어 조형성이 돋보이는 공예품으로서 만날 수 있다.
이지원 정연두의 영상작품은 세종대왕 시대를 이끌었던 두 학자. 최만리, 신숙주의 생각들을 들으며 그들이 산책하는 시점으로 들어가 보길 제안한다. 보수적 가치와 새로움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오는 두 사람의 갈등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세대 간의 갈등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같은 생각과 다른 맥락은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옛 선현의 산책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신익균 작가는 무기의 역할을 했던 활과 화살이 시대와 환경적 조건에 따라 적응하며 변화되는 모습 즉, 무기가 미술이 될 때의 순간을 포착한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원래의 존재 이유를 고집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들과 계속되는 변화에도 살아 남는 것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김보민 작가는 영국인 버튼 홈즈가 조선의 거리를 찍은 흑백 기록 영상에서 추출한 장면을 회화로 그려내어 역사적 전통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타자의 시선으로 그려진 작업들은 시공간의 물리적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특히, 망건을 쓰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분할하여 그린 작품들은 갓들과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소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실학자 정약전이 남긴 『자산어보』를 소재로 조선의 류서類書에서 생물에 대한 형태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서술 및 분류하여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작품을 통해, 성리학에서 실학으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비로소 문자에서 벗어나 물질을 직접 만나고 다루었을 당대 학자의 경험을 사변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전시는 공예품에서 출발하여 결국 시간과 시대, 그리고 세대가 변하면서 바뀌게 되는 사람의 모습과 생활의 변화, 사회적 가치의 전이와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무리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고 한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유교가 지시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지고, 자신을 바로잡고 다스리는 태도 등 어떤 가치들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대를 거듭하며 되새길수록 힘을 가질 수도 있다.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 어둠이 찾아오지만, 이내 곧 다시 밝은 빛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현재이지만, 내일의 과거이면서 동시에 어제의 미래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세대를 잇는 매개체로서 공예품을 바라보며 과거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과 생각들 속에서 현재를 찾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우란문화재단은 전통공예를 재조명하고, 새롭고 실험적인 공예의 발판을 마련하여 전통공예의 전승과 저변 확장, 그리고 동시대의 시각 문법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전통공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동시대적 가치를 가늠하며 오늘날의 시대적 맥락속에서 얻은 공감으로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 생활과 이어지는 전통의 가치를 역설하고자 한다.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수사를 벗어나, 전통 역시 당대 생활의 일부이자 일상 속의 새로운 발견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사전 예약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이용할 예정이며, 9/21(월) 9시 오픈 예정이다. 추후 관람방식은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전화(070-4244-3665) 또는 홈페이지(
www.wooranfdn.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