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윤한종 개인전_Untreated Beings>
전 시 기 간: 2020.09.08(화)-10.29(목) / 오프닝 & 출판기념회 09.15(화) 오후 5시
관 람 시 간: 월-금 10:00 –18:00, 토 11:00-18:00 (*일요일 및 공휴일 휴관)
전 시 장 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일로 166 SPG Dream Bldg. 8층 아트스페이스 J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휴대폰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휴대폰 안에는 수많은 전자부품이 회로 위에 얹혀져 있고, 그 회로와 전자부품을 통하여 전기가 통하고 그 전기를 이용하여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제 그 전자부품이 궁금하지 않는가?
전자부품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윤한종 작가가 《Untreated Beings: 처리되지 않은 존재》전을 아트스페이스 J에서 9월 8일(화)부터 10월 29일(목)까지 개최한다.
윤한종은 30년 동안 산업현장에서 산업용 카메라와 조명을 이용하여 자동검사장치를 개발한 엔지니어이며, 작업 소재인 전자부품은 작가가 생업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익숙한 대상이다. 이번 전시는 전자부품을 이루는 물성의 색상에 집중한 Nature_본질 시리즈와 1만여개의 전자부품을 부식시켜 다양한 조명하에서 촬영하여 작품화한 Metamorphosis_변태 시리즈로 구성되었다. 특히 실제 크기의 전자부품 이미지 수십 만개로 구성된 작품은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평론가 이영준은 “작가에 의해 하나의 시리즈가 된 픽셀들은 관객의 눈과 상상력 속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궁극의 변형을 거치게 된다.”고 말한다.
■ 전시안내문
윤한종의 《Untreated Beings: 처리되지 않은 존재》는 본질과 변태 시리즈로 나누어진다. 작품의 대상은 작가가 생업에서 흔히 마주하여 익숙한 전자부품이다. 작가는 Nature_본질 시리즈에서 전자부품의 모습과 색상의 재현을 통하여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질문하고, Metamorphosis_변태 시리즈에서 수많은 전자부품을 부식시키고 다양한 조명하에서 촬영하여 무작위로 나열한 작업을 통하여 본질에 대한 반문한다.
■ 작가노트
‘본질’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 그 사물 자체가 되게 하는 원래의 특성’이다. 일반적으로 ‘본질’이라는 것은 그것의 진실, 진리, 대표성으로 인식되고 규정되는 듯하지만, 실상 본질은 그것의 목적, 물리적인 구성, 존재 이유, 행위의 동기 등 관점과 맥락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이 만든 사물에서는 사물의 색상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색상은 사람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적합한 것으로 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자부품은 기능과 성능이 색상보다 중요한 특징이며 본질이다. 하지만 본질의 의미가 ‘물질이 존재한 원래의 그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역설적으로 전자부품의 색상은 그 어떤 것의 의미에도 구속 받지 않는 물성의 본질적 표현이다.
‘처리하지 않은 존재’(Untreated Beings) 연작은 본질(Nature)와 변태(Metamorphosis)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다. 본질(Nature)에서는 아주 작은 전자부품의 원래의 모습과 색상을 ‘원래의 그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하였고, 변태(Metamorphosis)에서는 ‘원래의 그것이 아닌 대상이 전혀 다르게 변질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 속에서 대상의 고유 색상에 삼원색(三原色) 빛의 다양한 밝기에서 촬영하여 불규칙과 우연성을 고려하여 재현하였다.
본 연작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나의 원래의 그것, 원래의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원래의 그것이 아닌 다른 나는 어떤 모습인가? 등 실타래처럼 정리되지 않은 나의 본질에 대한 질문(質問)과 반문(反問)에 대한 유희적 탐구, 탐구적 유희로 진행해 온 과정이며 결과이다.
■ 평론
기계의 눈과 인간의 눈이 만나는 지점:
윤한종의 <Nature>시리즈와 <Metamorphosis>시리즈
이영준 <기계비평가>
매우 즉물적으로 보이는 윤한종의 <Nature> 사진 시리즈는 의외로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테크놀로지 시대에 인간이 기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도 그냥 테크놀로지가 아니다. 인간의 세포조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어서 어디까지가 인간적인 것이고 어디부터가 기계적인 것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를 말하는 것이다. 20세기까지의 기계들이 정밀화, 고성능화를 지향했다면 21세기의 기계들은 지능화와 집적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제 기계의 화두는 ‘성능이 얼마나 좋은가’가 아니라 ‘인간과 얼마나 잘 소통하여 인간의 감각에 파고들어 새로운 기계세상을 열 수 있을까’이다. 이제 인간과 테크놀로지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이런 판국에 인간은 테크놀로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 윤한종은 전자소자검사기를 이용하여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윤한종의 접근법은 소자검사기를 직접 만들고 파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계에 대해 정통하다. 그는 기계가 가진 힘을 이용하여 기계가 실토하게 만든다. 기계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초정밀접사로 바싹 다가가 찍은 소자들은 무한의 우주공간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공간을 배경으로 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돼 있는 모습이다. 윤한종이 쓰는 방식은 기계적 내러티브는 완전히 괄호 속에 넣어두고 오로지 무한히 검은 배경 속에 떠 있는 소자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면서 사진의 가장 고전적인 힘을 빌리고 있다. 그것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수록 대상은 더 초현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기계의 인간화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윤한종이 개발한 소자검사기는 철저히 자체의 논리로 돌아가는 기계이지 인간이 개입해서 작동시켜주는 부분이 전혀 없다. 오늘날 산업현장을 가보면 인간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는데 소자검사기도 마찬가지다. 윤한종이 한 거라고는 그 기계가 찍은 사진 중 하나를 크게 확대하고 색채를 강조한 것뿐이다. 즉 사물 스스로 자신을 대변하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사물들은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번쩍거리고 구불거린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기운이 원래 소자에 들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렌즈와 조명의 특성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지 자체의 특성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셋 모두가 합쳐진 기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사진들에서는 마치 분자 단위까지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듯한 신비감이 느껴진다. 이 사진들은 더 이상 전자회로의 소자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선의 연습을 위한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나를 실험하는 것이다. 기계는 사진에서 오로지 불량률만 찾아내지만 사람의 눈과 감성은 거기서 슬픔을 보기도 하고 우주를 보기도 하는 등 쉽사리 축소해 버릴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본다. 윤한종의 사진은 개별 소자들을 그런 스펙트럼의 세계를 향해 활짝 열어놓는다.
그런데 <Nature>시리즈와 또 다른 시리즈인 <Metamorphosis>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얼핏 보면 <Metamorphosis>시리즈는 단순히 <Nature>시리즈에 나오는 개별 소자들을 잔뜩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자들의 숫자가 아주 많아지니까 질적 변화가 온다. 변증법에서 말하는 양질전환의 법칙에 따라서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면 질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Metamorphosis>는 ‘변형’, ‘변태’, 혹은 ‘변신’이라는 뜻답게 개별 소자는 이 시리즈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너무 작아서 알아볼 수도 없고, 이미 하나의 거대한 전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개별성은 사라지고 만다. <Metamorphosis>시리즈에서는 어떤 변신이 일어나고 있을까? 일단 소자들의 색이 다 달라서 아른거리기 때문에 마치 아지랑이가 움직이듯 잘게 떨리는 듯한 광학적 착시효과(optical illusion)를 만들어낸다. 이제 소자는 더 이상 소자가 아니라 우주공간에 흩뿌려진 별들의 집단이나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 등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인다. 소자는 세포가 되기도 하고 분자가 되기도 하고 원자가 되기도 하는 등 자유롭게 떨리며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스스로 꾸며낸다. 그 스펙트럼이 보는 이의 망막에 닿으면 수만 가지 착시효과를 내며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러면서 기계미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뀐다. 흔히 기계라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고정적인 것, 인과적인 것을 생각하게 된다. 즉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듯이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라나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Metamorphosis>시리즈는 고정직이지도 않고 인과적이지도 않다. 기계의 인간화란 기계를 억지로 조작해서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기계의 인간화란 기계를 인간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철저히 공식과 계산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기계와 온갖 편견과 오류의 원천이 공존하려면 중간에 뭐가 있어야 한다. 윤한종의 시리즈들은 바로 그 중간지점이다.
기계적으로 보면 <Nature> 시리즈는 소자들을 정지해 놓고 고배율로 찍는 관찰의 시선을 구현하고 있다. 흔히 반도체 웨이퍼를 검사할 때 이 기법을 쓴다. 반도체 칩은 지름 300mm 정도되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흡사 판화의 에칭기법을 닮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웨이퍼는 수없이 많은 깨알만한 반도체 칩을 품게 되는데 이것들을 다 검사하기 위해 정지카메라를 쓰게 된다. 카메라는 7배에서 최대 12배에 이르는 고배율로 웨이퍼의 표면을 훑으며 불량을 찾아낸다. 즉 윤한종은 이 카메라의 눈을 빌려 자신의 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Nature> 시리즈에서는 시간이라는 축은 정지된 채 작동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치밀하게 뚫어지도록 들여다 보는 시선만 존재한다. 반면 <Metamorphosis> 시리즈에 쓰인 방법에서는 소자들을 마구 훑고 지나가는 시간의 축이 강력하게 작용한다. 0.6mm에서 3.2mm에 이르는 소자들을 1분에 최대 8천개까지 검사하는 시스템에서는 재빨리 사진 찍고 재빨리 판단하는 것이 생명이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사진들은 전체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결함을 나타내는 픽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사진 하나의 크기는 VGA급인 640×480의 해상도를 갖는 30kb에 지나지 않는다. <Metamorphosis> 시리즈는 그렇게 나온 이미지들의 시간의 축을 평면 위에 펼쳐놓은 것이다. 이미지들은 무작위로 나열되어 적게는 10,000개에서 많게는 700,000개의 모자이크를 이룬다. 제대로 조립되었다면 잘 기능할 다양한 전자기기가 됐을 소자들은 이 시리즈에서는 이미지의 픽셀로 변환된다. 각각의 소자들은 윤한종의 손에 의해 화학적으로 부식시킨 것이기 때문에 원래 가지고 있지 않은 색깔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Metamorphosis> 시리즈에 나오는 소자들은 더 이상 소자가 아니라 색의 단위, 혹은 점묘파 화가의 수많은 점을 닮기도 한다. 그것은 오늘날 사물이 실체성을 잃고 이미지로 변환되버리는 오늘날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보는 이에게 <Metamorphosis> 시리즈는 알 수 없는 거대한 픽셀들의 현란한 군무로 보이겠지만 윤한종은 각각의 소자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사진 찍은 검사기 시스템의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고 있다. 결국 <Metamorphosis> 시리즈에서 작가의 지식과 관객의 무지식(혹은 무지)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설사 작가가 관객에게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를 다 설명한다고 해도 관객은 이해할 수 없으니 작가와 관객 사이에는 깊은 이해불가능의 심연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그때 관객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감상 이외에는 없다. 결국 감상의 눈으로 보면 메커니즘의 산물도 아름다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Metamorphosis> 시리즈는 어떻게 보면 점묘파 회화를 닮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를 닮기도 했다. 김환기는 뉴욕에서 이 그림을 그릴 때 온갖 그리움의 상념을 담아 점 하나하나를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점들은 다들 뭔가 사연을 품고 있는 듯 하다. <Metamorphosis> 시리즈를 이루는 소자들의 픽셀들에도 사연은 많다. 그것은 철저하게 기계적인 사연들이다. 저항은 전기의 흐름을 막고, 콘덴서는 전기를 응축하고, LED는 빛을 낸다. 각각의 소자들은 회로의 어디에 꽂히는가에 따라서 다른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런 기능들이 하나하나 맺혀서 소자와 픽셀의 사연이 된다. 그런데 수 만개 수십 만개의 사연은 무엇이 될까. 여기서부터 관객의 몫이다. 수십 만개의 픽셀의 합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몇몇 픽셀을 골라서 뚫어지게 볼 수도 있다. 전자회로에 들어가는 소자에서 시작해서 검사기라는 복잡한 시스템의 시선에 갇혔다가 작가에 의해 하나의 시리즈가 된 픽셀들은 관객의 눈과 상상력 속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궁극의 변형을 거치게 된다. 그게 <Metamorphosis> 시리즈의 열려 있는 의미다.
◆ 작 가 약 력 ◆
윤한종 (Hanjong Yoon, 尹 漢鍾)
[학력]
2018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전공 석사
1989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계산학과 학사
[개인전]
2020 《Untreated Beings》 아트 스페이스 J, 성남
2019 《Invisible Beings_보이지 않는 존재》 루시다 갤러리, 진주
《Invisible Beings_보이지 않는 존재》 반도카메라 갤러리, 서울
2018 《Invisible Beings_보이지 않는 존재》 인사아트센터, 서울
NoW Advanced Exhibition부문 선정작가전《Invisible Beings_보이지 않는 존재》 갤러리 나우, 서울
[단체전]
2019 《INTERSECT – Science, Belief, and the Environment》 FOTOFEST Silver Studio, 휴스톤, 텍사스, 미국
《7th Different Dimension》 주립 노보시비르스크 미술관,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공간기억》 김중업 건축박물관, 안양
《사진의 유희와 정신》 류가헌, 서울
《정물II_representing》 아트 스페이스 J, 성남
2018 한국-우크라이나 2018 동시대전 《노출》 아트 스페이스 AkT, 키예브, 우크라이나
《사유와 시선》 사진공간 눈, 전주국제포토페스티벌, 전주
《Photo May》 홍익현대미술관, 서울
2017 《제16회 동강국제사진제, 국제공모선정작가전》 동강사진박물관 야외전시장, 영월
《Post Photo》 토포하우스 아트센터, 서울
《Pneuma》 류가헌, 서울
2016 《High Light》 벽과 나 사이 갤러리, 서울
《수원빛그림축제전》 빛나는 갤러리, 수원
《Post Photo》 홍익현대미술관, 서울
《사진의 환영과 유희》 류가헌, 서울
2015 《Who Are We?》 류가헌, 서울
[수상]
2019 파리사진상(Px3), 금상, 은상, 파리
토쿄 국제사진상(TIFA), 은상·동상, 도쿄
2018 모스크바 국제사진상(MIFA), 동상, 모스크바
토쿄 국제사진상(TIFA), 은상·동상·장려상, 도쿄
2017 제16회 동강국제사진제 국제공모전, 동강국제공모전 선정작가, 영월
제8회 갤러리 나우 작가상, NoW Advanced Exhibition부문 선정작가, 서울
모스크바 국제사진상(MIFA), 3개 부문 은상, 모스크바
2016 수원빛그림축제, 공모전 선정작가, 수원
2015 서울-뉴욕 사진축제, 장려상, 서울
[출판]
2020 《처리되지 않는 존재-윤한종 사진집》 눈빛출판사 (ISBN 978-89-7409-500-0)
2018 《보이지 않는 존재-윤한종 사진집》 눈빛출판사 (ISBN 978-89-7409-477-5)
[소장]
2019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