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미술 허리세대 작가의 신작제작을 지원하는 전시를 기획하여 작가의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왔다. 올해 참여 작가인 홍이현숙(b.1958)은 가부장적 사회와 시선에 저항하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몸을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이야기해왔으며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다.
《휭, 추-푸》는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던 지난 작품과 연장선에 있으면서 비인간 동물을 주제로 그들과의 공생을 꿈꾸고 시도한다. 이는 인간중심적 이원론에서의 자연의 해방 및 연대를 주장하는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과 그 맥락을 같이하면서, 그동안 겪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의 감각을 구현해야하는 예술가의 고민 또한 반영한다.
《휭, 추-푸》라는 독특한 제목에서 ‘휭’은 바람의 움직임이나 소리, ‘추-푸’는 수면 등에 거칠게 부딪이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사실 ‘추푸’는 케추아어(남아메리카 토착민의 언어)*로 ‘철썩’, ’어푸어푸’ 등 의성어, 의태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언어들은 특정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용하기 어려운 인간의 그것과 달리, 상황을 설명하는 몸짓과 각종 소리를 통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교감의 매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휭, 추-푸》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를 통해 작가는 한정된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다른 존재를 정의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시선을 교환하려 시도한다.
공멸과 공생 사이에서 위태로운 현재, 그래서 미래를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에 홍이현숙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와의 새로운 연대와 공생이 가능한 장소를 예술을 통한 상상으로 열어 보고자 한다.
*’추푸tsupu’는 『숲은 생각한다 How Forest Think』(2018)(에두아르도 콘 Eduardo Kohn 지음, 차은정 역, 사월의책)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