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0-12-23 ~ 2020-12-29
김봉경
무료
+82.2.737.4678
갤러리도스 기획 김봉경 ‘홍곡’
2020. 12. 23 (수) ~ 2020. 12. 29 (화)
전시개요
■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갤러리도스 기획 김봉경 ‘홍곡'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 전시기간: 2020. 12. 23 (수) ~ 2020. 12. 29 (화)
부조리의 초상
갤러리 도스 김선재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기에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소외와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죽음과 고통이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라는 조건은 이처럼 인생이 부조리한 것임을 갑자기 인식하게 되는데서 시작한다. 김봉경은 죽음의 고비를 겪으며 절망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그에 대한 열정을 작품으로 품어낸다. 옛 동양화의 전통적인 채색기법과 형식을 유지하되 내용은 현대인의 비극을 동물에 빗대어 상징하고 표현함으로써 불안한 내면세계와 현실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작가는 동서양을 막론하여 역사와 철학, 고전, 종교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항상 존재한다. 작가에게는 고통을 통해 실존을 경험한 계기가 있었다. 고통을 논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실체로 드러난 자신의 존재를 느꼈는가에 있을 것이다. 느닷없는 사건으로 충격과 의문이 생길 때 인간은 세계와 나, 타인과 나, 그리고 나 자신과 나 스스로에 대해 단절을 느낀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들이 돌연 낯설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 바로 부조리의 시작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절망이 공존하는 세계에 처한 인간의 고독한 운명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둔다. 이질적인 대립 속에서도 상호작용을 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김봉경 작품에서 드러나는 큰 특징이다.
동양에서는 동물그림을 소재적 분류로 영모화라고 한다. 영모화는 의미대로 동물의 털을 묘사한 그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으며 뛰어난 관찰력과 정확한 묘사력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 또한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마치 동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 세밀한 표현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벽사와 길상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를 넘어 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작가의 개인적인 의미와 독창적인 상징성까지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작가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실존에 대한 주제를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의 형식을 빌려 좀 더 친근하게 우리에게 전달한다. 오랫동안 이러한 우화적 표현은 인류사와 예술사에 있어 그 시대를 반영하는 매개체로 역할을 해왔다.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순수하고 진실한 것의 구현이 동물이며 상상력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는데 유연한 소재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동물의 행동과 표정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는데서 예술은 시작된다. 김봉경은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주관적인 해석을 통하여 동물을 표현한다. 작가 스스로를 작품에 투영하여 나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우화의 현대적 변용을 꾀한다. 특히 작품을 관통하는 법고창신의 정신은 옛것을 취하되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하며 그려내는 것이 현 시대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칠게 일렁이는 파도에도 불구하고 큰 고래가 보여주는 숭고한 유영처럼 작가는 묵묵히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존재, 57.5x26cm, 비단에채색, 2017.jpg
홍곡(鴻鵠)
■ 작가노트
어느 누구나 자신의 삶이 특별한 가치가 있으며 어떤 대단한 일을 미래에 이룰 수 있으리라 희망찬 상상을 한번쯤 해본 적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좌절의 순간이 오거나 심지어 세상과 단절되는 고독한 시간이 인생에 들이닥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맞닥트릴 때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한순간 별볼일 없이 비참해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만 같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시간은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란 생각에 “나 자신”은 거대한 음울 속에 몸을 숨기고 세상을 주시하며 또다른 시간을 준비한다. “큰 기러기와 고니” 라는 뜻인 “홍곡(鴻鵠)”은 위와 같은 본인의 주제의식을 담고있다.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기 위한 구상에 들어갔을 때 본인은 여러 고전과 역사, 문헌 등을 통해 앞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흔적 속에서 많은 모티브와 영감을 얻었다. 우화(寓話)의 형식을 빌린 비유, 고전적인 형태의 도상이 작업 속에 드러나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동양회화의 영모화(翎毛畵)가 벽사(辟邪), 길상(吉祥)등의 목적으로 그려진 것과 달리 본인은 삶에서 느끼게 되는 비정함을 동물의 형태를 통해 드러내어 “나 자신”을 담은 애틋한 모습으로 담아보고자 했다.
이같은 도상을 회화의 양식을 통해 완성하기 위해서 본인은 보수적인 기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리고자 하는 소재들의 특성상, 섬세한 표현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동양화 염료와 종이로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본인은 비단 위에 그리는 견본채색의 양식을 선택하였다. 이전부터 명말청초(明末淸初)에 활약했던 화가들의 치밀한 묘사, 일본 근대의 화가들이 보여준 채색기법에 강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이들이 보여준 기법의 장점들을 절충하여 본인 나름의 화풍을 만드는데 주력하였다.
세상으로부터의 고립 속에서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던 사람들의 흔적은 이미 수많은 역사와 예술의 형태로 남아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알려준다. 사람은 세상에 휩쓸릴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고독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때야 자신의 위대함을 오롯이 드러낸다. 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세계, 그것을 의연한 태도로 버티어 나가는 “나 자신”의 모습. 본인은 그런 삶의 태도를 일련의 작업을 통해 드러내보고 싶었다.
첫눈(初雪), 26x50cm, 비단에 수묵채색,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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