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2021년 기획전
달: 일곱 개의 달이 뜨다
- 기 간 : 2021. 03. 26 ~ 11. 28
- 장 소 : 돔하우스 전관
- 참여작가 : 김영원, 안규철, 연봉상, 이강효, 최단미, 한호, 허강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한치 앞을 예견 할 수 없는 상황과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불안과 고독은 보통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관람객이 없는 미술관은 상상 할 수 없지만 초유의 펜데믹 상황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며 긴 시간 우리의 삶과 생사의 위기의식을 가중시키기고 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전례 없는 사회 문화적 위기상황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담아 낼 것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새로운 도약과 전환 기회로 삼고자, 친숙한 소재인 ‘달’을 주제로 자연친화적 치유의 예술을 선사하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주탐험이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도달할 수 없는 꿈과 무한한 상상의 대상이었던 ‘달’은 이제 더 이상 그 풍부한 상징적 가치보다 탐험의 ‘목표 지점’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의 기준점으로 평면화 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대상이자,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소재이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달’을 작품의 주요모티브로 차용한 동시대 예술가 7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인간, 예술 그리고 달의 관계, 예술가들의 다양한 중의적 해석과 창의적 시도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강효
이강효는 대형 옹기위에 15세기 유행했던 분청사기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산수와 달>은 청주의 작업실이 아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에서 제작되었다. 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분청을 바르고 불에 구워 나온 도자를 다시 해체시켰다. 해체된 조각들은 또 다른 조각들과 이어 붙이기를 반복하며 작가의 손에 의해 깨져 비워진 공간들을 채워나갔다. 완성된 작품은 독립적 개체로 보아도 아름답지만 산과 둥근 달의 형태의 도자기를 유기적 관계에 놓이도록 펼쳐 놓았을 때 옛 선조의 병풍 속 산수가 현대 도자로 재해석 된 듯 장관을 이룬다. 클레이아크 돔하우스 투명한 아치 아래에 서서 작가가 도자라는 매체를 통해 그려낸 자연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김영원
인간은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와 같은 작은 존재라 했던가? 달은 관념적 대상으로 인류 서사에 존재하지만 그 달빛 아래 서있는 우리는 스스로 존재가치를 찾아야 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중력 무중력>은 김영원의 초기 작품으로 현실과 이상을 중력과 무중력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작품에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한 청년시절 작가의 고뇌가 담겨져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이상과 다른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이상 속 또 다른 자아(自我)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작품을 마주한 관객이 그 시절의 작가의 감성과 마주하며 소통하는 것에는 누구나 좌절의 순간 나약한 나를 마주해본 개인적 경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 내가 해결 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이 중력과 같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이를 극복해 나가는 힘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공감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으로 나약한 존재로서 마주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된다. 좌절의 순간, 작가가 느꼈을 법한 공허와 상처, 그리고 그 순간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던 굳은 의지에 대한 공감이, 지쳐있던 마음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
최단미
최단미는 그리움이라는 결핍의 정서를 달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치유한다. 작가에게 ‘그리움’이란 특정 대상을 보고 싶은 감정이 아닌 미처 그 대상이 무엇인지 인식하지도 못한 결여의 감각을 통칭한다.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 달이 찻잔, 선물상자, 우산, 화분, 풍선과 같은 일상의 소품과 나란히 둘 수 있는 거리에 함께하고 싶은 대상으로서 표현되었다면 이번에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에서는 달은 공간적 거리가 느껴지는 곳에 배경으로 존재한다. 달이 내어준 공간에서 나비가 날아가기도, 비닐봉지가 부유하기도 한다. 나비의 날개 짓은 달을 향하지만 결국은 그 끝에 다다르지 못한다. 밤하늘을 떠다니는 비닐봉지는 제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공기를 담아 쌓아올린 비닐봉지 탑은 결국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 모습은 결국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삶의 배경에 늘 달이 있다.
안규철
'보름달이 뜨면 우리는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거실 바닥에 누워 발코니 창으로 밀려들어오는 달빛 아래서 알프레드 브렌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나타를 듣곤 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풍경 속에서 달은 자신의 궤도를 따라 어느새 저만큼 옮겨가 있곤 했다.'
이것은 안규철 작가가 가족들과 함께 추억하는 달이다. ‘개념미술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만 눈길이 가 있던 작가에게 달은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소재였다. 수많은 시인과 작곡가와 화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달은 그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이것은 2010년 초반 작업에서 드러나게 된다. ‘달을 그리는 법’은 백남준 아트센터의 기획전 <달의 변주곡>에서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 백남준 작가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이자, 가장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보름달의 모습을 재현하는 형태의 설치예술이다. 수십 개의 작은 거울에 반사된 빛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달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서로 다른 수많은 달을 불러내는 신호가 된다.
연봉상
토하 연봉상은 전통적인 장작가마에서 도자기를 소성해내는 도요기법을 고집하는 장인이자 전통도자개념을 답습하지 않고 전통옹기제작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황토를 유약에 섞은 다음 독특한 질감을 만들고 유약의 이중시유 기법을 발전시켜 자신만의 도예제작 방식을 구축해온 예술가다. 작품의 형상은 마치 우주행성 같기도 하고 달의 표면을 닮은 도자 작품은 한 폭의 회화작품처럼 풍부한 색감을 품고 있어 감상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색감은 장작가마 소성을 고집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블루문 등 달과 우주를 상징하는 기(器) 형태의 신작과 반야심경 글자 한자 한자를 작은 조각판으로 수없이 제작해 하나의 대작으로 완성한 2005년 작품도 선보인다.
허강
허강은 ‘달’을 소재로 입체와 설치, 영상작업을 오가며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온 작가다. 특히 ‘유라시아 달빛 드로잉’은 달빛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선으로 드로잉하자는 취지로 시작하여 실제로 중국, 몽고, 러시아, 폴란드, 독일 란데부르크 문 앞까지 횡단한 거대한 프로젝트이자 대형 퍼포먼스다. 유라시아 대륙은 이념적인 면에서 한때 단절되었지만, 대자연은 산과 강이 만나 아름다운 경관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다시 문화의 끈을 이어가게 한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달빛아래 낯선 이국의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하는 계기를 제공하며 예술 가치와 예술가의 에너지를 실감하게 하였다. 유라시아 달빛 드로잉 의 마지막 여정인 브란데부르그문에서는 축하공연과 함께 조각보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 통일을 염원 하는 노래를 합창하며 기나긴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였다. 이번전시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진행한 달빛 드로잉 프로젝트 편집 영상을 감상 할 수 있으며, 흡사 실제 달이 살포시 강가에 내려앉은 형상의 설치 작품도 전시된다.
한호
‘영원한 빛-천지창조’는 빛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매개 행위이며, 천장이 높은 내부 공간 전체에 그려진 빛 그림이 서서히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이다. 80㎝크기 공의 표면에 타공한 별과 새, 나비, 물고기, 동물 등 꿈의 이미지는 공의 내부에서 발광하는 광원과 전기모터의 느린 회전력에 의해 현실에서 탈출하는 상황처럼 반복적인 꿈의 환영으로 벽과 바닥, 천장에 발현된다. 이 작업은 천지창조에 관한 빛과 시간, 공간의 조직을 통하여 인간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기억과 꿈과 현실의 해석을 환영적인 공간 상태에서 은유한다. 작가는 어두운 작품 공간 속으로 관객이 입장하여 그 속을 이동하며 몰입 상황에 처하는 방식의 설치미술을 제시하면서, 관객 자신이 작품의 일부이고 우주세계의 일부라는 존재적 인식을 깨닫게 하고, 이를 통하여 오랜 인류의 사유와 심상, 문명, 삶과 죽음의 변화가 이어지는 역사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파노라마적 사유의 시각화를 설계한다.
올해는 백자대호가 ‘백자 달 항아리’라는 공식명칭으로 불린지 11년이 되는 해이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조선시대 사기장의 손에서 탄생한 백자대호는 후대에 ‘달 항아리’로 불리어지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처음 ‘달’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가 누구인지 밝혀진 바 없지만 추상화가 김환기(1913~74)화백과 미술학자 혜곡 최순우(1916~84)선생 중 하나라는 추측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각별한 달 항아리 사랑은 그들이 남긴 작품과 글에서 여실이 드러난다. 사진가 구본창, 도자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승희 작가 역시 백자 달 항아리의 미감을 재해석하고 사진과 평면도자라는 매체로 특유의 미적가치를 발현하였다. 이번전시에 소개되는 7명의 작가들 또한 서로 다른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렇게 오랜세월 우주 혹은 달이라는 소재가 인공지능 시대로 급변하는 지금 현실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한 답을 이 전시를 통해 찾아 보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