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서길헌, 서용인, 서홍석, 유 벅, 이정아,
이정원, 전성규, 전항섭, 지원진, 진은정, 황세준
불 켜진 고요한 방은 여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모든 일들이 밝은 대낮에 밖에서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이야기의 방에서 또다른 이야기가 된다. 다시 이야기되는 이야기들은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만의 방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밖에서 보면 어딘가 진열창에 박제된 인형들의 무언극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보면 이야기들에 주어진 불빛을 통해 벌어진 이야기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눈길의 창문을 열어놓고 있다.
아직까지 몸을 받지 못한 이야기들은 유령처럼 바깥을 떠돈다. 수없이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야기의 방에 들어와 이야기가 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 이야기는 이야기의 방에 들어와 비로소 몸을 갖는다. 헐벗은 이야기의 몸에는 알록달록한 옷들이 입혀지고 따듯한 온기를 얻은 이야기들은 제 나름의 표정으로 다시 살아난다. 모든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통해 활기를 띠고 되살아난다.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일은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를 맡는 일과 같다. 이야기는 단지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들은 빛과 조명의 약속 안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방식으로 보일 때 뼈와 살을 받아 두발을 딛고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기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이 겪은 이야기에 자기만의 뼈와 살을 입힌 여러 개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한다. 이야기들은 눈길을 받을 때 되살아난다. 눈길. 시선. 불 켜진 방. 밝은 방. 큐브 루시다.
‘큐브 루시다’라는 명칭은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와 현대에 와서 종종 갤러리의 개념으로 쓰이는 ‘화이트 큐브’에 대한 ‘오마쥬’이다. 따라서 큐브 루시다는 의도적으로 조명을 밝힌 밝은 전시장이자 그러한 특별한 공간의 조명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여러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밝은 시선을 은유한다.
작년에 이은 두번째 그룹전시가 될 올해의 ‘큐브 루시다_2’전은 ‘이야기의 방’이라는 부제를 더해 그 의미의 확장을 꾀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