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를 전공한 이창원 작가는 전통 조각에 대해 고민하며, 1990년대 후반 독일로 떠나 뮌스터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했다. 이후 여러 해 독일에 머물며 ‘빛의 반사 Reflection’ 를 활용한 ‘평행한 두 세계 Parallel Worlds’ 라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구축했다.
설치 작품을 근간으로 하는 이창원의 예술은 평행한 두 세계의 상호 대립과 긴장으로 형성된다. 그 일차적 세계는 이미지가 파생되어 나오는 현실의 세계로서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보고 접할 수 있는 비 미술적 사물들이 속한 세계이다. <리플렉션 이미지 Image of Reflection> 작품의 경우 백색의 블라인드 구조물과 그 위에 얹어 놓은 커피 가루, 찻잎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명을 비추면 찻잎의 높낮이와 형태에 따라 반사 이미지의 이차적 세계가 발생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분절된 구조물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풍경화나 인물화로 탈바꿈한다. 이때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한 일차 공간과 그로부터 탄생한 이차 공간 사이에는 형태적, 또는 본질적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으며, 평행한 두 세계 사이에 이창원의 예술 작업이 개입한다.
이창원은 이 두 세계 사이의 거리를 가능한 한 멀리 두기 위해‘모델과 이미지’의 불일치를 내세운다. 극히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모델과 이미지는 실체와 그림자의 관계로서 최대한 가깝고, 서로 닮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예술은 그 둘을 매개하는 거울처럼 둘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창원은 예술의 상징물인 거울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둘 사이를 가깝게 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오히려 멀리 떨어지게 하는 분리자로서 기능함을 제시한다. 이것은 원본과 복사물 사이의 위계가 사라지고 원본으로부터 새로운 다른 실체가 파생되는 현대 사회의 현상이 이창원의 예술 세계에서 펼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행 세계 Parallel World>, <기여화광 氣如火光 Vapour like Fire Light>, <성스러운 빛 Holy Light> 등의 작품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작품을 구성하는 보도사진, 광고 전단지, 또는 플라스틱 용기들은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환경 속에 투영된 이미지와 평행하게 대치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완전히 해방된 자유로운 변화와 창조에 맡겨진 새로운 예술적 이미지로 변신을 거듭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표면적으로 체험하는 예술성과 경이로움이 실로 흔해 빠진 일상에 근원을 둘 수 있음을 지적한다. 더욱이 작품이 전하는 이 같은 충격은, 원본과 이미지라는 두 세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강렬하게 제시되는 것이다.
하나의 사물이 고정불변하다거나, 하나의 진실이 아집과 편견에 의한 환상일 수도 있음을 밝히는 이창원 작가의‘평행한 두 세계’는 그의 예술 세계를 지탱하고 관통하는 일관된 힘이며 희열의 원천이다. 아울러 이 파격적 해석에 참여함은 바로 새로운 창작의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아우르는 이창원 작가의 중간회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