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 展
전시 개요
전 시 명 이근배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
위원화초석일월연 渭原花艸石日月硯
일 시 2021년 6월 16일 (수) ~ 6월 27일 (일) (12일간, 매주 월요일 휴관)
장 소 가나아트센터 전관 (서울 종로구 평창 30길 28)
주 관 가나문화재단
출 품 작 총 100여점 (워원화초석벼루 60여점, 남포석벼루 40여점)
정조대왕사은연, 위원화초석장생문일월연, 남포석장생문대연 外
※ 행사 안내
* 시인 이근배와의 대화 : 2021년 6월 15일 (화) 오전 11시 / 가나아트센터 내 두레유
* Opening : 2021년 6월 16일 (수) 오후 5시 / 가나아트센터
전시 소개
가나문화재단 주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이근배 시인 등단 60주년 기념 벼루 소장품전
‘정조대왕사은연’, ‘위원화초석매죽문일월대연’ 등 명품벼루 100여점 출품
위원화초석 벼루와 남포석 벼루 중심으로 구성 – 한국 벼루의 진면목 소개
가나문화재단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이근배 시인의 벼루 소장품 전시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사천 이근배 시인의 등단 60주년을 기념하여, 시인이 반평생 수집한 한국의 옛 벼루를 공개하는 귀중한 자리이다.
이번 전시에는 시인의 방대한 벼루 컬렉션 중에서 엄선한 약 100여점의 명품 벼루들이 출품된다. 주요 출품작으로는 1973년 창덕궁 ‘명연전(名硯展)’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으며, 화가 김종학의 구장(舊藏) 이력으로도 유명한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과 가로 26cm, 세로 41cm의 큰 화면에 매죽문을 빽빽하게 채운 ‘위원화초석 매죽문일월대연’, 가로 21, 세로 40cm의 검고 큰 석판에 펼쳐진 화려한 조각솜씨가 일품인 ‘남포석 장생문대연’ 등이 있다.
시인 이근배 선생은 신춘문예 다관왕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연벽묵치(硯癖墨痴)’의 열혈 벼루 수집가로 유명하다. 할아버지의 남포석 벼루를 보며 자란 기억으로 벼루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어림잡아 1000점 이상의 벼루를 소장하고 있으며, 벼루에 관해 쓴 연작시만 80여 편에 이른다. 시인은 한·중·일 벼루 중에서도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문양,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 우리나라 옛 벼루를 으뜸으로 치며, 특히 남포석 벼루와 위원화초석 벼루를 가장 아낀다.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 전시 역시 녹두색과 팥색이 어우러진 신묘의 위원석에 생동감 넘치는 문양이 베풀어진 위원화초석 벼루와 다산 정약용이 으뜸으로 꼽았다는 보령의 남포석 벼루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옛 문인들의 文房四友 – 종이 · 붓 · 먹 · 벼루 가운데 오로지 벼루만이, 닳아 없어지지 않고 시대의 문화를 품으며 전해진다.
“벼루는 단순한 골동품이 아니라 선비정신이 깃든 문화의 한 단면입니다 …… 문방 문화는 한·중·일 세 나라가 공유하고 있지만 벼루의 대종(大宗)을 자부하는 중국의 당·송·명·청 어느 시대의 벼루도 그 규모나 회화성, 살아 움직이는 극사실의 조탁이 조선 개국 무렵 만들어진 이 벼루(위원화초석일월연)에 미치지 못합니다 …… 한국의 벼루는 청자, 백자 못지않은 우리의 자랑거리입니다.”라는 이근배 시인의 말처럼, 이번 전시가 한국 벼루의 진면목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위원화초석 장생문일월연〉, 조선 15-16세기, 24x34.1x2.5cm
〈위원화초석 매죽문일월대연〉, 조선 15-16세기, 26x41x3.4cm
〈위원화초석 기국농경장생문연〉, 조선 15-16세기, 20.2x30.2x2.4cm
〈위원화초석 월하매죽문연〉, 조선 15-16세기, 15.2x21.1x2.3cm
〈위원화초석 연화문일월연〉, 조선 15-16세기, 12x20.3x1.8cm
〈위원화초석 ‘은대원’명일월연〉, 조선 15-16세기, 13.7x7.4x1.4cm
〈정조대왕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 중국 단계연, 20.2x27.7x3.5cm
〈남포석 월송문연〉, 조선 18세기, 24x30x2.7cm
〈남포석 장생문대연〉, 조선 19세기, 21.4x39.4x3.3cm
〈남포석 장생문연〉, 조선 19세기, 18.5x31.5x2.2cm
수집가 소개
사천 이근배 沙泉 李根培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장학생으로 입학. 김동리, 서정주 교수의 지도로 소설과 시를 공부했다.
1961년부터 1964년 사이 경향, 서울, 조선, 동아 등 여러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시조, 동시 등이 당선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추사를 훔치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달은 해를 물고」 장편서사시집 「한강」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한국대표명시선 「살다가 보면」 기행문집 「시가 있는 국토기행」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가람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편운문학상, 월하문학상, 고산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심훈문학대상, 한국시인협회상, 만해대상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서울예대, 추계예대, 재능대, 신성대 등에서 초빙, 석좌교수 등으로 시창작 강의를 했다.
월간 <한국문학> 발행인 겸 주간, 계간 <민족과 문학> 주간, 계간 <문학의 문학> 주간, 간행물윤리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과 문학분과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대 초빙교수, 2019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제39대)을 맡고 있다.
전시 서평
한국미학 재발견: 위원 · 남포석 벼루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
1.
발견도 어렵지만 재발견도 못지않다. 대뜸 말하지만 한국미학은 재발견⦁재평가 역정(歷程)의 곡절을 거쳤던 장르가 적지 않았다. 청자의 아름다움은 안타깝게도 강점 일본식민주의자의 눈을 거쳐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이 이 역정의 시발이었다면 시발이었다.
가나문화재단 주관의 이번 위원석(渭原石)과 남포석(藍浦石) 벼루 전시회 또한 한국미학 재발견의 추가 장르로 기록될만하다. 위원석 벼루는 조선 전기에 평안북도(오늘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자강도) 위원군의 위원강 강돌에서, 남포석 벼루는 19세기 이래 충청남도 남포군 남포면(오늘의 보령시 남포면) 성주산에서 주로 채취한 벼룻돌로 만들었다.
2.
벼루로 말하자면 전통시대는 생필품이었다. 짧은 글이었을망정 먹물에 붓을 찍을 적에 그걸 얻던 장치, 하드웨어였다. 글쓰기 직업의 선비가 ‘일생일연(一生一硯)’을 말하기 훨씬 이전이었다.
우리의 대표 전통문화였던 선비 문화는 그 행세로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따졌다. 이 가운데서 종이(紙)⦁붓(筆)⦁묵(墨)은 소모품이었음에 견주어 벼루(硯)은 돌⦁도기⦁토기⦁나무, 심지어 쇠 등으로 만든 인프라 스트럭춰였다. 해서 시절의 급변으로 모필(毛筆)이 펜촉, 연필 등으로 대체되어 버린 현대에 이르러 옛 선비문화의 물적 기반은 오직 벼루만 남았다. 옛 선비⦁서화문화를 떠받치던 기간(基幹) 하드웨어였기 때문이었다.
해도 하드웨어였던들 실용이 빠지고 나면 벼루 그 존재는 장차 사라지지 않고 어쩔 것인가. 가까이 끼고 살았던 글 문화의 필수품도 용도가 사라져버리자 폐기 직전의 고물이 될 신세였다.
그렇게 버려져 가던 것이 귀물 대접의 문화재로 격상된 것은 실용성 대신 조형예술성으로 평가받고부터였다. 실용성은 사라졌지만 천만다행으로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았고 감격했고 그리고 사모아야 직성이 풀리던 집념의 밝은 눈이 있었던 한 그건 벼루로선 일전(一轉)이요 일신(一新)할 운명이었다.
역시 사람이 있었다. 여기 그간 모아온 옛 벼루를 선보이는 사천 이근배(沙泉 李根培, 1940- ) 시인이 주인공 한 사람이다. 시력(詩歷) 60년 금강경축을 맞은 이 나라의 계관시인이다. 국가적 대사를 노래하는, 영국의 공식 직책을 일컫는 ‘계관시인’이란 제도는 우린 갖지 못한 줄 내가 모르는 것 아니나 당신의 나라사랑을 노래한 시 모음(『백두대간에 바친다』, 2019)의 출간에다, 작금에는 우리 예단(藝檀)을 상징하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에 오른 이에 대해 능히 입에 담을만한 애칭이다.
3.
옛 문물에 오래 관심을 가진 이들이 그러했겠지만, 나도 단편적으로나마 명연(名硯)을 배관(拜觀)했던 옛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글전용이던 1970년대 말의 『뿌리깊은나무』, 1980년대 초반의 『샘이깊은물』 월간지에 기고 또는 편집 자문으로 참여했을 적에 그 창업자 한창기(韓彰璂, 1936-1997)가 잡지에도 소개했던 당신 소장품 ‘위원화초석포도문일월연(渭原花艸石葡萄文日月硯)’, 그리고 1970년대 중반 그때 한창 골동품 사랑에 빠져 있었던 서양화가 김종학(金宗學, 1937- )의 사간동 집에서 당신 수집품 하나였던 정조임금 하사의 단계(端溪) 벼루 일명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賜恩硯)’의 내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적 있었다. 이 둘이 또한 사천의 수장품이 되었다가 이번 전시에 출품된다니 내 기대감을 부풀게 한다.
그 사이 우리 벼루에 대한 대접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듣자하니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여주는 벼루는 오직 한 점이라 들었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당신의 붓을 적셨던 벼루라며 짐짓 ‘부수적’으로 전시할 뿐이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에 우리 문방사우 문화의 모습을 벼루를 중심으로 보여주었던 경우(권도홍, 『문방청완(文房淸玩)』, 대원사, 2006)가 짜임새 있던 벼루 도록으론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4.
이번 가나문화재단 주관의 벼루 전시는 위원석과 남포석 벼루가 주종이다. 특히 위원석을 통해 우리의 특출했던 조형성을 낱낱이 보여줄 것이다. 해와 달, 새와 나무, 뱃놀이, 밭갈이 등의 농경사회 풍경이 마치 세필화로 그린 듯 전개되는 조형은 감탄불금이다.
이제 우리 전통미학의 재발견 역사에서 벼룻돌도 더하게 되었다. 일본사람의 앞선 사랑으로 미시마(三島)라 부르던 것을 고쳐 잡아 분장회청사기 곧 분청(粉靑)이라 이름을 바로 세운 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지의 전시에서 찬사를 받았고, 작가 이름이 없다고 대수롭잖게 여겼던 민화는 수묵화 일변도 조선회화사에서 그 대척(對蹠)인 채색화로 모시고도 남는다는 것이 사계의 공론으로 익어가고 있다.
5.
그러고 보니 1960년대에 우리 민화에 빠졌던 조자용(趙子庸, 1926-2000)이 수집품을 국내외에서 전시하기 시작하자 혜곡 최순우(兮谷 崔淳雨, 1916-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했던 좋은 말이 생각난다. “(나라) 박물관이 못하는 것을 한 구안(具眼)이 좋은 일했다” 취지의 찬사였다.
혜곡이 우리 현대 문화재학에서 특출했던 혜안인 것이 당신의 스승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 1905-44)의 착안 작명을 이어 받아 분청의 현대적 재현에 애썼고, 박물관장으로 있는 동안 우리의 목기, 보자기 등 민예품을 문화재로 격상시켰다. 그런 당신이 살아서 사천의 벼루 수집품을 보았다면 분명 “나라가 해야 할 일을 해주었다!”고 고마워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