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작가의 인간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성聖과 속俗’이라는 키워드로 드러나며, 영상, 설치 등의 매체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대전산내 학살사건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2017년과 2018년에 독일, 폴란드, 체코 일대에 남아있는 나치 수용소와 T4 프로그램이 실행된 안락사 센터를 방문했던 작가의 기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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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는 대전 지역에서 벌어진 1950년대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들의 좌표를 제시하는 테이블형 플로터 작업 <이분법과 맹목성(2021)>이 설치된다. 2019년 작품 <그을린 세계>에서 레이저 마커로 가죽을 태웠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업은 도장 형태의 인두를 처음 선보였던 2009년의 프로토타입 작품 <The Monument>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가죽과 인두의 결합을 처음 떠올렸던 2008년의 중요한 지점을 복기하기 위함이다. 가죽을 인두로 지졌을 때 발생하는 ‘살이 타는 것 같은 냄새’와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유의미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인두라는 도구가 지닌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등이다. 

 

다른 쪽 공간에는 4채널 사운드 작업을 실험해 보았다. 작품 <습작 Etüde(2021)>은 시각성의 원죄와도 같은 재현이라는 덫과 윤리의 문제를 고민해 본 결과이다. 지난 십여 년간 나만의 속도로 꾸준하게 리서치를 하고 있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작업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를 방문했던 순간에 구체화되었는데, 현대 사회의 미디어가 내포한 시각성의 문제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심연 혹은 동굴과도 같은 지하 전시장을 벗어나 중층에 위치한 세미나실로 이동하면, 2019년 11월말에 임신 8개월차였던 작가가 출연한 영상 작품 <통로(2021)>가 상영된다. 이 작업은 출산의례를 4명의 참가자들의 가족 이야기와 함께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와 가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소중한 죽음을 품고 이 땅에 나왔다. 삶(俗)과 죽음(聖)의 교차는 열린 가능성의 상태에서 닫힌 관계로 이행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에 녹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