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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전: Body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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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 Bodyscape
2021.9.8 - 10.31
갤러리현대






“무엇을 그렸을까. 
그렸다. 과연 너는 그렸을까?
그린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니.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 이건용, 작가의 일기 ‘피로의 스켓취’ 중에서(1963)

갤러리현대는 이건용(b. 1942)의 개인전 《Bodyscape(바디스케이프)》를 9월 8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개최한다. 작가가 1970-80년대 발표한 실험적 퍼포먼스와 기록 사진, 나무와 흙과 같은 자연 재료를 활용한 오브제 작품에 주목한 2016년 《이벤트-로지컬》전에 이어 갤러리현대에서 개최하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Bodyscape》전은 이건용이 최근 주력하는 동명의 회화 연작에 집중한다. 1976년 첫 발표한 <Bodyscape> 연작은 작가가 신체를 제한한 상황에서 간단한 선 긋기 동작을 수행하며 화면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제작 과정을 담은 절제된 흑백 기록 사진과 전시장의 관람객 앞에서 공연되는 등 “이벤트로서의 드로잉”이라는 속성 때문에 이 연작은 주로 '퍼포먼스'의 맥락에서 해석 및 평가되어 왔다. 《Bodyscape》전은 이 연작이 회화로서 지닌 매력과 회화사적 의미를 집중 조명한다. 갤러리현대 신관 지하부터 2층 전시장에는 신작 회화 34점을,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는 아크릴 물감, 연필,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로 완성한 종이 드로잉 작품과 판화 작품을 함께 선보여 ‘화가’ 이건용의 회화 세계를 폭넓게 조망할 것이다. 특히 <Bodyscape>의 아홉 연작이 모두 신작으로 제작되어 한 장소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전시는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의 주요 작가였으며, 1969년 ST(Space and Time 조형학회)를 결성하는 등 당대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작가는 ‘논리’라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통해 한국의 혼란한 정치 · 사회적 상황에 예술적 해석과 소통을 시도하는 한편, ‘미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다. 1970년대 중반 <이벤트-로지컬>이라는 주제와 제목으로 발표한 논리적이며 개념적인 일련의 퍼포먼스, 1980년대 나무나 돌 등 자연 재료에 개입해 사물의 본래 속성을 미세하게 변주한 설치-조각, 1990년대 개인적 문화적 역사적 서사를 배경으로 한 연극적 퍼포먼스, 한 화면에 구상과 추상적 요소를 결합한 포스트모던적 대형 회화 작품, 개인적 일상 오브제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은유한 설치미술, 2000년대 이후 변신의 변신을 거듭한 <Bodyscape> 연작까지, 그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매체에 국한 되지 않고 시대와 호흡하며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폭넓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체, 장소, 관계다. 그는 자신의 ‘신체’와 작품이 제작 및 전시되는 ‘장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메시지를 늘 작품에 녹여 냈다. 

<Bodyscape> 연작에는 신체, 장소, 관계에 대한 이건용만의 독창적 미학과 사유의 정수가 담겼다. 이 연작은 작품의 발표 시기와 내용과 형식, 방법론의 변주, 국영문 표기 방식 등에 따라 ‘현신(現身)’, ‘The Method of Drawing(드로잉의 방법)’, ‘Bodyscape(바디스케이프)’, ‘신체 드로잉’, ‘신체의 사유(身體의 思惟)’, ‘신체의 풍경’ 등의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명시적인 제목으로 명명되었다. 작품 제목에는 연작을 처음 공개한 연도인 ‘76’과 방법론을 구분 짓는 아홉 개의 번호, 제작연도가 따라붙는다. 1976년 이건용은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에서 총 아홉 가지의 방법론 중 일곱 가지의 ‘그리기의 방법(The Method of Drawing)’을 발표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는 화면의 뒤에서(76-1), 화면을 등지고(76-2), 화면을 옆에 놓고(76-3) 선을 그었다. 또한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하고 이를 하나둘 풀면서(76-4),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거나(76-5), 화면을 코 앞에 둔 채 양팔을 활짝 벌리고(76-6),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겼다.(76-7) 이밖에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만들거나(76-8), 두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점프하듯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날개 형상의 선을 드러냈다.(76-9) 

<Bodyscape> 연작이 완성되는 ‘그리기’의 전제 조건이자 필연적인 논리는 작가 신체의 한계 혹은 신체의 가용 범위였다. 이건용은 키, 양팔과 다리의 길이 등에 따라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고, 손이 닿는 만큼,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이동하며 마치 수행하듯 천천히 선을 화면에 남기며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화가는 모름지기 자기 앞에 현전해 있는 평면에 무언가를 그리지만, 저는 화면을 제 앞에다 놓고 제 신체가 허용하는 것만큼만, 화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을 그리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평면을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제 팔이 움직여서 그어진 선을 통해서, 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Bodyscape> 연작을 ‘발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작가의 신체가 가장 탁월하고 직접적인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었다. 1973년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자연의 나무를 뿌리와 지층 채 전시장에 옮겨 작품으로 제시하는 <신체항>을 완성하기 위해 파리 시내 곳곳을 움직인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몸을 예술의 매체로 쓰는 ‘행위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또한 비엔날레 현장에서 마주한, 캔버스의 프레임이나 물감 등 회화의 물적 토대를 새롭게 실험하는 작가들의 신선한 회화 작품도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작가는 회화를 하나의 ‘환영’으로 해석, 천에 주름을 만들어 물감을 뿌려 주름의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팽팽하게 펴서, 그림을 ‘환영’ 그 자체로 제시하는 <포>(1974-75) 연작과 <실내측정>, <동일면적>, <장소의 논리> 등 계획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신체 행위를 전개하는 <이벤트-로지컬> 연작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이후 발표된 <Bodyscape>는 작가의 신체를 세계와 만나는 매체로 활용하고, 그리는 행위를 정서나 감정의 표출이 아닌 신체의 제약이라는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신체항>이나 <이벤트-로지컬>의 연장선에 놓인다. 

1976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Bodyscape> 연작은 세계 미술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전복의 회화’다. <Bodyscape> 연작은 전통적 의미의 회화 제작에 따르는 인식 관계를 혁명적으로 전복한다. 그는 화면을 눈으로 마주하고 머리의 생각(개념과 아이디어)을 손으로 옮겨 그리는 전통적인 회화 방법론을 과감하게 폐기하며, 미술가로서 ‘그리는’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성찰한다. 이건용에게 ‘그린다’는 행위는 ‘신체의 표현’을 재설정하는 작업이었다. 이 연작을 통해 비로소 “신체는 지각자요 표현자”가 된다. 회화사적 전복성은 체제, 통제의 매커니즘의 전복으로도 확장된다. 화가로서의 일상적 행위인 그리기의 방법을 제한하는 금욕적 시도는, 197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을 지나온 작가의 역설적인 자기표현이기도 했다. 그는 “체제와 권력이 공공의 담론적 역량을 전유하고 무효화시킨 변질된 삶의 공간에서 나를 표현, 표기하는 방법과 각인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제의 메커니즘을 전복하는 길”이었다고 회고한다. 회화의 가장 기초적인 언어인 선 긋기를 신체의 지각과 존재의 확인이라는 철학적 사유로 확장한 <Bodyscape> 연작으로, 이건용은 1979년 리스본국제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Bodyscape> 연작은 1976년 발표된 이후 변신을 거듭해 왔다. 1970년대 작가는 나무판과 펜, 연필 등 단순한 재료를 택해 몸의 움직임과 그 흔적을 화면에 명료하게 기록했다. 그는 회화적 표현보다는 ‘선 드로잉’에 가까운 엄격하고 절제된 시각화에 중점을 두고, 스스로 측정기가 된 듯 제한된 신체의 조건과 작업의 내적 논리가 지닌 투명성을 강조했다. 또한 반복적인 행위들의 나열이 곧 하나의 논리적인 사건임을 증명하듯 사진으로 제작 과정을 남겼다. 1980년대 들어, 다양한 색상의 아크릴 물감과 붓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회화적 표현을 시도한다. 1990년대 <Bodyscape> 연작은 삶과 문화, 역사에 대한 작가적 인식과 해석을 주제로 삼은 <인간항> 연작과 결합한다. 한 화면에 <Bodyscape>의 방법론과 민족 및 문화사적 기호들이 결합하면서 총체적인 회화로 진화한다. 2000년대에 <Bodyscape> 연작의 화면은 사회적 이슈와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지하철의 여성,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장소 등의 사진을 캔버스에 프린트하고 그 위에 <Bodyscape>의 방법론을 펼쳐, 예술가의 신체-장소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의식을 심화한다. 2010년대 들어, <Bodyscape> 연작에서 작가는 신체를 제약하는 방식과 화면의 크기를 변주하여 변형된 형태의 <Bodyscape> 시리즈를 완성한다.

갤러리현대의 개인전 《Bodyscape》에서 팔순을 넘긴 노장의 신체가 남긴 유연하며 때로는 격렬한 몸짓의 흔적을 생생하게 확인한다. 제작 과정의 엄격한 통제와 우연성의 개입이 충돌과 조화를 동시에 이루며,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회화적 색감과 표현의 향연이 펼쳐진다. 전시장 1층에서는 화면의 뒤에서 손이 닿는 영역만큼 상단에서 하단으로 자연스럽게 선이 그어지고 색색의 물감이 화면 위에서 결합해 흘러내리는 ‘76-1’, 2층에서는 화면을 보지 않고 등지고 서서 사방으로 선을 그으며 작가의 신체 부분만을 여백으로 남는 ’76-2’와 화면 옆에 서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남긴 둥근 선의 조합이 ‘하트’를 연상시키는 ’76-3’이 한 장소에 놓인다. 또한 ’76-2’와 ’76-3’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가로 5m가 넘는 대형 작품도 공개한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Bodyscape> 연작 총 아홉 가지가 새롭게 제작되어 관람객과 만나며,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는 아크릴 물감, 연필, 색연필 등을 활용해 다양한 선 드로잉을 실험한 종이 작업과 판화 작품을 공개한다. <Bodyscape> 연작 중 화면을 보지 않고 뒤에서 그리는 ’76-1’의 변주인 이 작품들은, 캔버스에 그려진 정제된 작품들과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선이 그려지는 바탕은 대량 생산된 소비 제품의 포장재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포장 박스를 지속해서 수집하고, 박스의 모양을 살려 재단한다. 이렇게 마련된 밑바탕에 화면을 보지 않고 뒤에서 그리는 ’76-1’의 선들을 긋는다. 그는 디자인과 실용성을 위해 만든 포장 박스가 오늘날 동시대적 삶의 메커니즘을 여실히 드러내는 요소라 설명한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선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버려진 박스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1970년대 시작된 이건용의 신체-장소-관계에 관한 사유와 탐구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온라인 예약 링크
문의) 02-2287-3500




작가에 관하여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만 여 권의 장서를 읽으며 문학, 종교, 철학, 인문학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 배재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듣게 된 논리학 수업을 통해 현대철학을 접했다. 이를 통해 실존주의, 현상학, 언어분석철학에 눈떴고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에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저서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실린 문장인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에 대해 골몰하며 논리와 언어학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69년 S.T(Space and Time 조형학회)를 조직해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번역해 토론하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전위적 미술 활동을 전개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신체항>을 중심으로 입체(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1975년 <실내측정>과 <동일면적>을 시작으로 <달팽이걸음>, <장소의 논리> 등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행했다. 1976년부터 현재까지 <Bodyscape>라 불리는 신체 드로잉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건용은 갤러리현대(2016, 2021), 부산시립미술관(2019), 4A아시아현대미술센터(2018), 국립현대미술관(2014)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몸 짓 말》 (경기도미술관, 안산, 2021),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근대미술관, 도쿄, 일본;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싱가포르, 2019),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대구미술관, 대구, 2018), 2016년 부산비엔날레 (부산시립미술관),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1973년 파리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 국내 기관과 미국 라초프스키컬렉션, 영국 런던 테이트 등 해외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갤러리현대

1970년 4월 4일, 인사동에 ‘현대화랑’으로 첫발을 내디딘 갤러리현대는 고서화 위주의 화랑가에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파격적 행보이며 미술계 흐름을 선도해 왔다. 이제는 ‘국민화가’로 평가받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세상에 빛을 보았고, 김환기, 유영국,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등 추상 미술의 거장과 함께 전시를 개최하며 단색화 열풍이 일기 오래전부터 추상미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흐름에 발맞춰 호앙 미로, 마르크 샤갈, 장 미셸 바스키아, 크리스토 부부 등 해외 거장의 미술관급 전시를 열며 미술계 안팎의 화제를 모았고, 1987년부터 한국 갤러리 최초로 해외 아트페어인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한국 미술을 해외 무대에 소개하는 선구적 역할을 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곽인식, 이승택, 박현기, 이강소, 이건용 등 한국의 실험미술을 주도한 작가들의 작품도 갤러리현대에서 많은 관객과 만났다. 이 밖에 김민정, 문경원, 전준호, 이슬기, 양정욱, 김성윤, 이강승 등 동시대 미술을 이끄는 중견 및 신진 작가를 지속해서 발굴 및 소개하고 있다. 각각 1973년과 1988년 창간된 미술전문지 『화랑』과 『현대미술』은 한국의 동시대 아트씬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로 남아 있다. 서울 삼청로에 갤러리현대와 현대화랑이라는 두 전시장 이외에,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에 한국 미술을 알리는 플랫폼인 쇼룸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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