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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 전: 원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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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현의 회화 

자기 내면에 질서 의식의 성소를 짓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비평)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지만, 흔히 한국현대미술은 미군의 군홧발에 묻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의 <미술수첩>과 함께 미군을 통해 흘러들어온 <라이프지>가 당시 작가들의 사실상의 미술 교과서 역할을 한 것이다. 거기에 실린 현대미술은 주로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경향이었고, 작가들도 그 영향을 받았다. 작가 이태현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처음에 표현주의 경향의 인물화를 잠시 시도하다가 이후 곧장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가는 1962년 홍익대 미대 재학 중 동기생인 최붕현, 석란희, 문복철, 김영자, 황일지, 김영남(김현태) 등과 함께 <무> 동인을 결성했고, 국립도서관 화랑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당시 제작된 작가의 추상회화를 보면, 격정적인 붓질과 암울한 색채감정이 마치 태초의 원형적인 풍경이 그랬을 것 같은 풍경을 열어놓고 있다. 암흑과 혼돈에 해당할 검은 색조의 바탕 화면이 어떤 암시적인 색채며 형상을 화면 위로 밀어 올리는 것도 같고, 그 자체 생명이나 원형질로 부를 만한 무언가를 화면이 잉태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렇게 작가는 당시 세대 작가들이 그랬듯 소위 뜨거운 추상으로 형용 되는 앵포르멜의 회화 경향과 함께 작가적 이력을 시작했다. 


이태현 Lee Tae-Hyun, 공간 70-1 Space 70-1, 197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30.5×12



한편으로 한국현대미술과 관련해 1967년은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되는데, 제2회 <무> 동인전이 <현대미술의 실험전>이란 타이틀로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렸고, 아마도 이 전시가 기폭제가 돼 <무> 동인, <신전> 동인, 그리고 그룹 <오리진>이 연합 전시한 <청년작가연립전>(1968년 1월호 공간지에 관련 기사가 실림)이 열렸다. 당시 전시에서는 한국 최초의 해프닝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오광수 시나리오)이 열렸고, 국전 중심의 아카데믹한 회화 경향에 반대한 작가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 행진 그러므로 퍼포먼스를 벌인 것도 그 해의 일이다. 

그렇게 그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앵포르멜 회화 경향에 대한 자기반성적 사유와 비판이 있었고, 그 대안으로 그룹 <오리진>이 창립되었다. 앵포르멜이 소위 뜨거운 추상, 서정추상을 대변한다면, 그룹 <오리진>은 소위 차가운 추상, 기하학적 추상을 표방한다. 이처럼 그룹 <오리진>이 회화적 평면을 유지하는 한에서의 변화를 모색했다면, <무> 동인과 <신전> 동인 작가들은 아예 탈평면과 탈회화와 같은 더 급진적인 자기 변신을 꾀한다. 

당시 작가는 전시에 합판 위에 변기를 설치한 작업을 선보였는데, 기성품과 생활 오브제의 도입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네오다다(마르셀 뒤샹의 또 다른 변기 작품 <샘>으로 대변되는)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같은 해 제작된 또 다른 작업을 보면, 붉은색을 칠한 합판 위에 공업용 장갑을 배열한 작업(命 1967-A)이 있었고, 노란색을 칠한 합판 위에 군용 배낭과 방독면을 오브제로 설치한 작업(命 1967-B)도 있었다. 아마도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술의 당위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당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시대 감정을 반영한 작업일 것이다. 

이후 원작이 소실돼 2001년 원작 그대로 재제작했는데, 아마도 한국현대회화가 평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오브제를 직접 도입한 초기 시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화력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앵포르멜과 네오다다를 거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전위적인 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태현 Lee Tae-Hyun, 공간 70-2 Space 70-2, 197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30.5×13



그리고 이후 작가는 다시 평면으로 돌아온다. 작가 자신도 밝히고 있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회화는 평면이라는 생각에서다. 이후 같은 세대의 다른 작가들을 보면 보편적인 현상이고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온 자리는 작가가 처음 시도했던 앵포르멜의 뜨거운 추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와는 정반대의 중성적인, 가치중립적인, 무미건조한, 객관적인, 논리적인, 엄정한 경향성의 회화로서, 한편으론 미니멀리즘을, 그리고 다르게는 하드엣지를 떠올리게 하는 기하학적 추상이었다. 

그렇게 <미로> 시리즈가 선보인다(1972, 73년경). 패턴과 반복에 기초한 이후 작가의 작업의 모태가 되는 작업으로 볼 수 있겠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일종의 띠 회화 혹은 스트라이프 회화로 명명할 만한 경향성의 회화(1998년경)와, 기하학적 패턴과 격자구조의 변주가 두드러져 보이는 경향성의 회화(2001, 2002년경)를 선취하면서 예비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부분적으로 프랭크 스텔라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모더니즘 세대에 속한 작가로서의 자연스러운 상호영향 관계로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미로>라는 제목인데, 흔히 삶은 미로에 비유될 만큼 삶에 관한 한 미로는 가장 전형적인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서사적이고 재현적인 경우와는 비교되는 형식논리에 천착한 추상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현실 혹은 삶의 현장을 반영한다는 작가의 무의식적 의지가 표출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모든 의미에서 자유로운, 그 자체 완전한 추상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치 화면에 칼집을 낸 것 같은 일련의 작업을 제작한다(1976-85년경). 화면에 칼집을 낸? 루치오 폰타나가 실제 화면에 칼집을 내 회화적 평면을 공간으로 통하게 하면서 확장 시켰다면, 작가는 화면 위에 칼집을 그려 넣어 일루전 효과를 꾀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화면 위에 그려진 칼집의 틈새로 마치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일련의 그림 역시 비록 추상이지만 의미론적 메타포를 떠올리게 하는데, 암울한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보는 인상이다. 역시 작가의 시대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부지불식간 표출되고 반영된 경우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작가적 아이덴티티가 갖는 이중성 혹은 양가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으론 형식논리 위주의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서사적이고 재현적인 의미를 반영하는 리얼리스트로서의 인격이 공존한다고 해야 할까. 

이후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하나같이 <공간>이라는 제목을 붙이는데, 일루전으로 공간 확장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이 일련의 작업이 <공간>이라는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경우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작가의 작업은 일종의 공간에 대한 변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자체 실재하는 공간을 재현한 경우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공간, 이념적인 공간을 표상한 경우, 이를테면 자기 내면에 때로 피라미드 같고 더러 바둑판 같은, 논리정연하고 엄정한 질서 의식의 성소를 축조하려는 기획, 그러므로 어쩌면 자신의 이상을 표현한 내면 풍경의 한 경우로 봐도 좋을 것이다(헤겔은 예술을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면에 원형 패턴(1988-90년경)이 등장하고, 유기적 형상(1991-94년경)이 나타난다. 여기서 원형 형상 역시 질서 의식의 표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원형은 시점도 종점도 따로 없는 닫힌 구조가, 어디서 시작해도 어김없이 시점으로 되돌아오는 무한순환 반복 구조가 완전한 존재를 표상한다. 그 순환구조를 우주의 섭리와 같은 질서 의식의 또 다른 표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화면에서 원형 패턴은 칠흑같이 검은색의 바탕 화면에 선명한 노란색이 대비돼 보이는데, 보기에 따라선 핵이나 방사선에 대한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면 지나친 상상력의 비약이라고 할까. 

그리고 유기적 형상은 최초 원형 패턴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성되고 변주되는데, 그중 인상적인 경우로서 크고 작은 금속성의 기둥이나 막대 같은 형상이 주목된다.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옵티컬적인 경향성과 함께 일종의 그러데이션 기법이 적용된 경우로서, 빛의 질료가 감지되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서 옵티컬도 빛이고 그러데이션도 빛이다. 빛의 질료에 대한 감각적 이해가 작가의 회화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빛의 질료에 대한 관심과 함께,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이원성 혹은 이원 구조가 작가의 작업에서 또 다른 의미론적 지평(이를테면 하이데거의 대지와 세계, 은폐와 비은폐가 대비되는 것과 같은)을 열어놓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합판에 공업용 고무장갑 170x120cm. 1967-2001



그렇게 마침내 이런 이원성 혹은 이원 구조가 극명한 편인, 마블링 기법을 구사한 일련의 작업을 보자(1995년부터 어쩌면 현재까지도 지속 변주되고 있는). 앞서 작가는 중성적인, 가치중립적인, 무미건조한, 객관적인, 논리적인, 엄정한 경향성의 회화, 그러므로 기하학적 추상을 그린다고 했다. 그런데, 마블링은 생리적으로 이와는 정반대다. 마블링은 철저하게 우연성에 내맡겨져 있다. 마블링이 우연히 만든 패턴은 그릴 수도 반복할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다. 마블링이 만든 패턴은 패턴이 무색할 만큼 비정형적이고 비결정적이다. 그 우연성, 그 비정형성, 그 비결정성이 패턴과 반복에 바탕을 둔 기하 추상의 생리와 대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이 어떻게 대비되는가. 그리고 그 대비구조로부터 어떤 유의미한 의미가 추상 되는가. 작가는 마블링이 만든 우연적인 화면과 그 위에 얹힌 기하학적 형태를 하나의 화면에 중첩 시켜 대비시킨다. <공간>으로 나타난 작가의 주제 의식을 빌려 말하자면 마블링이 만든 화면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흑암의 공간, 혼돈의 공간, 태초의 공간, 카오스의 공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 중첩되는 기하학은 원래 수학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성과 질서, 논리와 개념을 의미한다. 

니체는 예술가의 충동으로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그 예로 든다. 아폴론적 충동이 질서를 추구하는 충동이라면, 디오니소스적 충동은 질서 이전의 혼돈상태를 상징하며, 이로부터 건강한 생명력의 무분별한 분출을 추구한다. 창작 주체의 인격 속엔 이 두 인격이 산다. 그 축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서 저마다 다른 회화적 양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회화적 양식이 가능해지는 스펙트럼이고 유격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마블링과 기하학, 우연과 필연, 개념 이전의 암시적인 상태와 개념화된 화면,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 작가의 이원성 혹은 이원 구조는 종래에는 이런 질서와 혼돈, 질서와 생명,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대비로 귀결되고, 궁극에는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합치된 카오스모스로 귀착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재차 자기 내면에 질서 의식으로 축조된 자기만의 성소를 짓는 한편, 예술창작의 원동력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그림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합판에 군용방독면과 군용배낭 140x70cm.1967-2001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결정적이랄 수 있는 기하학적 패턴의 상세를 보자(본격적인 경우로 치자면, 아마도 2000년대 들어서부터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면서 변주되고 있는). 대개는 점과 막대 문양이 전면화하면서 변주되는 것인데, 작가의 작업이 시작되는 최소한의 단위원소, 모나드, 단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최소 단위 원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경우의 수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대개는 점이든 막대든 하나의 단위원소가 반복 병렬되면서 전체적인 하나의 패턴을 만드는데,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나, 패턴과 반복으로 나타난 하나의 틀(암묵적인 규칙이라는 틀?)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혹은 환원주의 패러다임을 자기화하면서 변주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패턴에서는 전통적인 미의식이나 생활철학의 수용도 엿보이는데, 작가의 그림에서처럼 기하학적 패턴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전통적인 창살 문양을 연상시키고, 생활철학으로 치자면 전통적인 팔괘의 도입이 연상된다. 주지하다시피 팔괘는 동양의 역(易)의 기호로서, 역을 구성하는 64괘의 기본이 되는 8개의 기본형을 말한다. 세상만사와 이치를 그 기본형의 변주로 다 표시하고 설명(그러므로 표상)하는 동양 고유의 우주론이고 존재론이고 생활철학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기하학적 형식과 구조를 빌려 작가가 자기 내면에 짓는 질서 의식의 성소는 이런 동양철학의 원형에 가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그러므로 어쩌면 먼 길을 돌아 종래에는 자신이 유래한 본연에 당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작가는 모더니스트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덧붙여 강조하고 싶다.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준칙인 패턴과 반복은 보기에 따라서 코로나19의 무한복제에 대한 시대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작가는 추상회화로 나타난 기하학적 형식 속에 현실을 반영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시대정신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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