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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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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화이트 가든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프롤로그


전시장 가득, 작가 김미지의 ‘하얀 정원’이 펼쳐진다. 하얀 정원?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천착해 왔던 〈블랙 가든(Black Garden)〉과 쌍을 이룬 또 다른 작품 〈화이트 가든(White Garden)〉이다. 두 설치 작품 모두 그녀가 ‘작품으로 낳은 이란성 쌍둥이’로 향후 그녀의 작업에서 새로운 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서막처럼 자리한다. 이번 설치 작품 〈화이트 가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무슨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가?


I. 정원의 시작: 삶의 애환(哀歡)에서 긷는 눈물 한 움큼


김미지의 〈화이트 가든〉은 기묘한 형상의 하얀 덩어리들이 구름처럼 천장에 매달린 채 공중에 부유하거나 깃털처럼 벽과 바닥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풍경을 만든 설치 작품이다. 그 사이에 각목으로 뼈대를 만든 유약한 ‘집 아닌 집’들이 투명한 랩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드문드문 놓여 있거나 서로의 몸을 포갠 채 쌓여 있기도 하다. 한쪽에 놓인 LS형 접이식 사다리는 여전히 작품이 설치 중이거나 조금 전에 설치를 마친 듯한 이미지를 만들면서 ‘서정적인 상상 풍경’에 일상의 ‘친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보태어 얹는다.


자세히 보니, 화이트 가든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재료는 핫멜트 접착제(Hot-melt adhesive)이다. 이것은 고체로 되어 있는 글루 스틱(Glue stick)을 글루건(Glue gun)으로 열을 가해 녹여서 접착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방식의 접착이 가능하다. 다만 결정화도가 낮고 미세한 접착력과 극성을 가지는 까닭에 대개 응고 이후에 접착 부위를 떼어내면 표면으로부터 쉽게 박탈되는 특이성을 지닌다. 표면 위에 헐거운 상태로 접착제를 올리면 쉽게 박탈하기 때문에 실물 캐스팅의 효과를 살린 껍질들을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영역에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 김미지가 이러한 핫멜트 접착제를 자신의 작업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는 엉뚱한 곳으로부터 왔다. 그것은 ‘우연이었지만, 운명처럼 귀결된 무엇’이었다. 동료 작가이자, 남편의 ‘날카로운 도구로 책을 해체하는 도서관 프로젝트’의 마무리 작업을 돕는 과정에서 이 재료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그녀는 보조 작업을 모두 마친 후 남편 대신 작업실 곳곳에 남은 핫멜트 접착제의 잔해를 치우게 되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쓰레기로 남은 핫멜트의 잔해가 햇볕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김미지는 육아와 가사로 헌신하면서 가족을 위해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이 장면 위에 투사한다. 아들이 성년이 되면서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순간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미지의 작업인 〈화이트 가든〉은 핫멜트 접착제 그 자체이기보다 핫멜트 접착제의 껍질과 잔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게다.


껍질 혹은 잔해! 그것은 용도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남은 잉여물이자 곤충의 허물처럼 버려진 무엇이다.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의 순간은 진피층(眞皮層)이 아물기까지 지속된다. 새로운 피부를 갖기 위한 고통은 감내할 만하지 않은가? 작가 김미지는 아예 이 핫멜트의 껍질과 잔해들을 자신의 작업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핸드폰, 목걸이, 화장품 등 그녀가 애지중지 모은 많은 것들을 핫멜트로 덮고 떼어 내어 그것의 껍질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사물에 감정이입하고 그것의 생명을 새롭게 하는 제의를 치르는 것처럼 그녀는 온종일 작업실에서 하얀 껍질들을 만든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연신 글루건을 사용하여 뜨거운 핫멜트를 밖으로 밀어내면서, 손과 발에 마치 훈장처럼 화상 자국을 남기면서 말이다.


때로 그 껍질들이란 신명난 리듬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도 하다. 그녀가 춤추듯 허공에 글루건을 휘두르면서 실타래처럼 쏟아낸 핫멜트의 껍질이기도 한 까닭이다. 우리의 눈물이 슬픔의 순간뿐 아니라 기쁨의 순간에서 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핫멜트 껍질은 삶의 애환 속에서 지금, 여기에 소환된다. 그녀는 실용적 삶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것 없는 ‘싸구려 접착제로 사물들의 껍질을 만드는 일’을 신성한 창작의 노동으로 수행하면서, 오늘도 삶의 애환으로부터 눈물 한 움큼을 길어낸다. 때로는 애잔한 슬픔의 눈물로, 때로는 감격 가득한 기쁨의 눈물로 짓는 사물의 껍질들! 눈물로 지은 핫멜트의 껍질은, 그녀가 자신을 ‘보잘것없는 문학적 막노동꾼’이라고 지칭하듯이, 이제 시(詩)를 짓는 노동 시인의 마음으로 ‘어떠한 덩어리’를 만들어 간다. 지난한 노동이지만, 때로는 진지하고 때론 신명나게 말이다.


II. 움직이는 하얀 정원: 예술 정원의 주인공을 위하여


전시장 가득 구름처럼 매달려 있거나 깃털 혹은 솜털처럼 벽과 바닥에 내려앉은 덩어리들! 그것은 작가 김미지가 ‘슬픔과 기쁨의 눈물’로 짓고 핫멜트로 떠낸 사물의 껍질들을 굵은 와이어 위에 뜨개질하듯 붙여 나간 것이다. 반투명한 질료의 뒤편으로 드러나는 와이어 뼈대는 마치 식물의 잎맥처럼, 동물의 혈관처럼 자리하면서 이 기묘한 덩어리를 ‘껍질이라는 잉여의 존재’로부터 ‘생명력 가득한 무엇’으로 변환시킨다. 핫멜트 껍질들을 글루건에서 밀려 나오는 핫멜트로 다시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접촉의 잔해들은 ‘기묘한 덩어리 생명체’ 위에 새로운 피부를 입힌다. 구불구불한 굵은 와이어 뼈대, 솜털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접착제의 흔적, 껍질들이 뭉쳐지듯 만들어진 비어 있는 덩어리, 그것은 밖/안, 식물/동물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은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한다.


오늘도 작가 김미지의 〈화이트 가든〉은 기묘한 생명체를 품어 안고 돌본다. 그것은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잠재적 운동(mouvement virtuel)을 지닌 무엇이다. 관람자의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반짝이는 빛의 옵티컬 효과도 그러하지만, 관람자가 작품 주변을 둘러보면서 실행하는 ‘주항(周航 circum-navigation)’의 관람 행위 중에 발생하는 물리적인 부딪힘과 공기의 움직임에 의해서 작품이 실제로 운동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이러한 잔잔한 ‘실제적, 잠재적 운동’도 주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심적 효과를 낳는 운동성의 차원이 더욱 더 주요해 보인다. 그녀의 작품이 분명 시각에 호소하는 비주얼 아트이지만, 그녀가 만드는 풍경이 관객의 마음을 이끌고 심적 기제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가히 ‘마인드 스케이프(mindscape)’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 김미지의 정원은 지속적으로 변해 왔다. 정원이라는 단어가 특별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오후 2시 30분〉이라는 제명의 첫 개인전은 김미지가 가족을 위한 가사 노동을 마치고 비로소 작가라는 자신의 모습으로 마주했던 시간이자 자신만의 작은 작업실 주변 공간에 대한 탐구를 선보인 것이었다.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했던 〈미자의 뜰〉이라는 제명의 개인전은 ‘미지’라는 자신의 이름을 ‘미자’라고 하는 옛 세대의 이름으로 치환해서 모색했던 보편적 여성의 삶과 꿈을 선보인 것이었다. ‘뜰’이란 집에 딸린 빈터이자 마당이며 화초나 나무를 가꾸기도 하는 정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정원은 애초부터 뜰과 한 몸이라고 하겠다.


그녀의 정원은 〈미자의 뜰〉에서, 〈블랙 가든〉으로 그리고 〈화이트 가든〉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이미 그녀가 10년이 넘는 중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파주로, 제주도로 예술적 여정을 찾아 삶의 거처를 이주했던, ‘고단하지만 소중했던 작가의 유목적 삶’과도 겹쳐 있다. 설치 속에서 드문드문 놓여 있는 랩으로 둘러싼 집들은 작가의 이러한 노마딕 여정을 상징처럼 드러낸다. 전시장 안에 여전히 작가가 있었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려는 듯 하나의 사다리도 설치되어 있다. 꿈에 이르는 사다리일까?


흥미로운 것은, 주위의 풍경과 일상을 회화로 담은 이전의 〈오후 2시 30분〉, 〈미자의 뜰〉이라는 제명의 전시에 소개되었던 작품과 달리, 그녀의 〈블랙 가든〉이나 이번의 〈화이트 가든〉 설치작은 외려 그녀가 개인전으로 발표하지 않았던 〈내 생에 봄날은 간다〉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모색되는 것이라 할 만하다는 것이다. 옷이나 하이힐 등 작가 소유의 오브제 위에 짧게 자른 투명 낚싯줄을 붙이고 그 끝에 조각난 낱장의 텍스트를 붙이거나, 구두 모양의 와이어 위에 무수한 케이블타이를 묶어 꽃 자수 조각을 꽂아 만든 당시의 ‘설치적 조각’ 형식과 그것이 함유한 내러티브는 이번 전시에서 변형된 형식과 내용으로 확장되어 가시화된다.


누구에게나 잠시 있을 ‘생의 봄날’이란 한순간이다. “내 생의 봄날은 간다”고 노래했던 정일근 시인의 시처럼, 당시 작가 김미지는 회한, 자조, 달관이 뒤섞인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유사한 제목의 작품 안에서 풀어 놓았다. 다만 김미지의 〈블랙 가든〉이나 이번의 〈화이트 가든〉 설치작이 〈내 생에 봄날은 간다〉 연작과 다른 점은 작품의 규모를 전시 자체로 확장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지나가는 세월을 붙잡고자 하는 회한이나 자조’보다는 ‘지나가는 시간과 함께 부단히 작업에 임하고자 하는 예술적 결단’을 비추고 있다는 점이다. ‘움직이는 예술 정원’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김미지의 결기에 찬 다음의 작가 노트를 살펴보자.


 “난 이 작업을 해 오면서 내게 최면을 건다. 최고의 정원사로 최고의 농부로 화가로 나를 한껏 치켜세운다. 난 그 속에서 온전히 작가로의 삶을 만끽한다. 정원을 만들면서 난 스스로 당당한 작가로서의 존재성을 그곳에서만큼은 느낀다. 세상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고 흐뭇해한다. 누가 말한다. 인간의 가장 인간적 행위가 예술이라 한다. 난 오늘도 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나를 놓아둔다. (중략) 그동안 내 삶에서 내가 주인공인 적이 없었다.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내로 그렇게 살아왔다. 일상의 싸구려 재료지만 전시장에서만큼은 내 삶이 주인공이 되어 눈부시게 아름답게 만들어 보여주고 싶다.”


에필로그


작가 김미지에게는 추운 겨울, 입김으로 손을 녹여가며 작업을 했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 심적,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었을 때, 예술적 결기로 일어섰던 작가 김미지의 분신이 이곳 전시장에서 ‘화이트 가든’으로 펼쳐진다. 그것은 핫멜트의 껍질로 만들어진 꿈의 덩어리를 안은 ‘무빙 화이트 가든’이다. 여전히 ‘꿈에 이르는 사다리’를 펼친 정원이다.


전시장 가득, 펼쳐지는 작가 김미지의 ‘하얀 정원’에서 관람자는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일상 속 자신을 작품 속에 투사한다. 그리고 망각 속에 묻어 두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새김질하듯 꺼내어 보고 작가 김미지의 ‘화이트 가든’ 안에서 서로 위안을 주고 희망을 얻는 중이다. 우리가 그녀의 최근작을 ‘무빙 화이트 가든’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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