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6 ~ 2021-11-30
김명순
053.423.1300
김명순, 사색의정원, 130x97cm, Oil on canvas, 2021
상징을 통한 서정성의 밀도 있는 구축
윤진섭 / 미술평론가
김명순의 작품 특징은 짙푸른 하늘과 그러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순백의 나무다. 이 두 대상이 보여 주는 대위법이 가장 인상적이다. 사물과 사물 간의 관계를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처리하면서 그러한 사물들에게서 느끼는 작가의 상념을 밀도 있게 빚어내는 조형언어에 있다. ‘내 영혼의 빗장을 풀다’, ‘기억창고 속 그리움’, ‘사색의 정원’과 같은 작품들이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좌가 그려진 하늘을 배경으로 무수히 중첩된 흰색의 나뭇잎들이 화면의 넓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순결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데 있다. 초승달, 별자리, 말, 종이배와 같은 소재들은 작가의 기억에 저장돼 있는 모종의 추억들이 상징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념이나 추억들은 서사(narrative)로 명확하게 화면에 노출되지는 않는다.
사랑, 그리움, 설렘, 기대와 같은 감정들은 작품의 배면에 암시적으로 깔려 있다.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작품의 명제다. 그녀가 작품에 붙인 명제들은 달랑 지도 한 장을 들고 탐험에 나설 때처럼 무모하게 그녀의 내면으로 잠입해 들어갈 때 이정표가 돼 준다. 가령, ‘그대 창가에 부는 바람’이란 작품은 다음과 같은 작가의 상념을 접할 때 훨씬 더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다.
달빛조차 가만히 내려 앉는 밤 / 나의 뜨락에 조용히 날아든
그대는 누구인가? / 사색의 정원엔 오늘도 살가운 바람이 분다.
짙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화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흰색의 꽃, 그리고 그 꽃의 잎새에 걸치듯이 서서 등 위에 올라탄 노랑새를 바라보는 한 마리의 말을 그린 그림이다. 말의 등허리 저 멀리로는 초승달이 떠있다. 그리고 그 옆에 펄럭이듯 한 자락을 보이는 커튼. 그 천은 바람이 이제 막 살랑이며 방 안으로 들어온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김명순의 작품은 이처럼 조용히 읊조리는 한 편의 시처럼 정감적이다.
그래서 그 배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보는 자의 섬세한 감성이 요구된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음악적인 율조를 가지고 있고, 서정적이며 새, 말, 꽃, 달, 종이배와 같은 상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전하고자 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한 숲’은 흰색의 나무들이 어울려 형성된 숲을 배경으로 한 마리의 말이 서 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그래서 사실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매우 단조로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흰 색의 말에 주목해서 보면 그녀가 말을 통해 어떤 고독감과 같은 심리적 느낌을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이입은 그녀의 작품 도처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앞에서 그녀의 작품이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이 내면의 상징화는 사실 그녀의 작품 전체에서 발견된다. 바로 상징물의 단순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근자에 오면서 대상을 더 압축적이며 상징적으로 다듬고 축약하면서 화면을 섬세한 색의 울림으로 수놓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에 속한다.
의인화된 말과 새, 새장을 빠져나온 새, 흰색의 꽃무늬가 수놓여진 화사한 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 등등은 김명순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그것들은 화면 속에서 어떤 관계를 지닌 것 같다.
짙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리드미컬하게 얽혀있는 흰색의 나뭇잎들은 풍성한 이야기를 생성시키는 신비스런 원천이다. 그 속에서 작가의 정감에 가득찬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듯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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