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서문
2021년 경남도립미술관의 《돌봄사회》는 재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 삶의 지속을 추구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돌봄’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다.
돌봄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유아 돌봄 교실’, ‘장애인 돌봄 센터’,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돌봄은 어쩐지 ‘특정한’ 대상을 위한 것인 듯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돌봄을 주고받는 경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사실 누구나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돌봄을 경험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개체라기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따라서 돌봄을 마땅히 요구하고 그에 응하는 상호의존은 본질적인 우리 삶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 중심의 근대 사회에서 수익으로 환원될 수 없었던 돌봄은 가치절하 되어 가족 내 보이지 않는 사적 활동으로 여겨졌으며, 주로 여성 가족구성원의 온전한 몫으로 치부되었다.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시장에 던져진 돌봄은 외주화, 상품화를 거쳐 저임금 노동으로 재생산되었고 취약계층, 이주자, 제3세계 빈곤층 등에 할당되었다. 돌봄은 무관심의 역사 속에서 배제되어온 존재들의 아픈 현실을 공유한다.
최근 전 세계적 전염병 창궐은 돌봄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여전히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방역현장의 의료진, 학교가 문을 닫는 날이 늘어나 방치된 취약계층 아이들, 집단감염에 쉽게 노출되는 각종 보호시설과 교정시설 등 가장 먼저 재난의 위험이 향하는 곳은 돌봄이 무너진 자리였고, 결국 이러한 위기는 모두의 일상적 삶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돌봄사회》는 이와 같은 비극적 상황에서도 예술이 우리를 중요하다고 여겨져야 할 것들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지평으로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믿고, 현대 사회에서 돌봄을 중심에 위치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돌봄 다학제 연구 집단인 ‘더 케어 컬렉티브’에 따르면 돌봄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인데, 이 능력은 이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과 생물체들이 번성하고, 지구도 함께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사회적, 물질적, 정서적 조건을 마련한다1)고 주장한다.
본 프로젝트는 더 케어 컬렉티브의 돌봄을 끌어와 여섯 명의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 돌봄 요구와 응답이 발현되고 있는 구체적 상황들을 주목함과 동시에 우리의 몸, 가족, 공동체 그리고 지구를 돌보는 실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할 수 있는지 공·감각적으로 인식해 보고자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고유한 문화적 조건과 역사적 배경에서 질병과 장애, 신체적 제한, 노동 불안정성, 이주 공동체, 차별, 혐오, 지구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을 교차하는 돌봄의 다층적 구조에 접근하고 있다.
전시는 현대 사회에서 질병, 장애와 같은 아픔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조건과 제도가 돌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에 어떠한 미쳐왔는지 그 현재적 징후들을 살피며 시작한다. 그리고 아픈 몸을 돌보며 인간의 근본적인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발현되는 돌봄이 가진 저항과 회복의 힘을 감각하기를 시도한다. 나아가 스스로를 온전히 돌보는 일상의 실천들이 어떻게 만연한 각종 혐오와 차별을 넘어 타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 타자와 돌봄을 주고받을 때 생성되는 정동(情動)을 추적하며 정서적, 신체적 공명을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조금 더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마주하고, 대화하고, 돌보며 함께 하는 삶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며 마무리한다.
《돌봄사회》는 동시대 미술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앎과 실천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본 프로젝트가 돌봄을 새롭게 인식하고 나아가 우리 자신과 더 넓은 세계에서 서로를 어떻게 돌볼 수 있는지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전시 구성
○ 4전시실 : 문지영, 요한나 헤드바(Johanna HEDVA), 임윤경
○ 소전시실 : 최태윤
○ 5전시실 : 조영주, 미하일 카리키스(Mikhail KARIKIS)
● 작가별 설명문
○ 문지영
문지영은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구조 내에서 주변화되고 타자화되는 존재들을 환기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가장 보통의 존재>와 <증명 불가능의 얼굴> 회화 연작으로 대표되는 그녀의 작업은 시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 그런 동생을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바쳐 돌봐온 엄마, 아픈 엄마를 돌보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들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전면에 걸쳐 표현된 인물들이 발산하는 유영하는 강한 기운과 육중한 덩어리감이 보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문지영의 회화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듯 평생에 걸쳐 겪은 가족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을 끄집어내어 정돈하는 그녀의 사적인 수행이자 질병과 장애를 규정하는 이분법적인 조건과 제도,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소수자를 향한 편견과 무관심(carelessness), 그리고 개인 또는 내부자의 몫으로 치부된 돌봄에 대한 저항이다. 문지영은 이번 《돌봄사회》에서 기존의 작업과 함께 또 다른 연작 <엄마의 신전>의 신작을 첫 공개한다.
문지영, 가장 보통의 존재, 2015, 캔버스에 유채, 130.3x162.2cm Jiyoung MOON, The Ordinary, 2015, Oil on canvas, 130.3x162.2cm
“엄마는 늘 기도를 했다. 이유 없이 더딘 자식을 위해, 숨 돌릴 틈 없이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는 아픈 손가락 때문에. 어디로 이사를 가든 엄마는 자신만의 신전을 차렸다. ...(중략)... 남들보다 더디고, 어딘가 조금은 이상한 동생의 말과 행동들의 원인은 전생의 업보가 되었다가, 방향이 틀어진 누군가의 원한 때문이기도 했다가, 알 수 없는 신적 존재의 노여움이 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내 부모는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구했고, 마음을 다한 기도와 정성부터 굿, 고사, 제사까지 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애를 썼다. “내년부터는… ”,“이듬해에는…”,“이것만 해결하면…” 희망과 절망이 널을 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끝엔 오롯이 자신만을 탓하는 엄마가 있었다. ...(중략)...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평생 자신을 탓해야 했고, 돌봄 노동으로 인해 늘 쪽잠을 자면서도 집안에 도움이 못된다며 엄마는 죄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도뿐이라서, 이것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리도 매달린다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도 속에 정작 자신은 없었다.
엄마는 오늘도 기도를 한다. 엄마의 절박한 매달림에도 늘 침착하고 음전하던 성상의 모습이 엄마의 얼굴에 겹친다. 엄마의 기도 속에 오늘은 엄마를 위한 기도가 꼭 있었으면 한다.” - 작가노트
○ 요한나 헤드바
요한나 헤드바는 LA와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저술가이자 예술가이며 점성술가다. 헤드바에게 따르면 우리의 ‘몸’은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이고, 글쓰기는 체화된 언어로서 목소리를 통해 글은 피와 뼈로 이루어지는 몸을 갖는다. 달리 말해서 그(they)에게 글쓰기는 단순히 종이 위의 글자를 얹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몸적인 수행인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를 중심에 두고 텍스트, 이미지, 영상,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헤드바는 우리 몸과 돌봄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돌봄사회》에서 헤드바의 대표적인 텍스트 <아픈 여자 이론>과 둠 메탈 기타와 목소리 퍼포먼스 <씻김>을 공개한다.
요한나 헤드바, 미네르바 뇌의 유산, 2020,
출판: 스밍 스밍 & 울프맨 북스, 일러스트: 이사벨 알부커크, 저작권: 스밍 스밍 북스
Johanna HEDVA, Minerva the Miscarriage of the Brain, 2020, published by Sming Sming and Wolfman Books.
Illustrations by Isabelle ALBUQUERQUE. Courtesy Sming Sming Books
질병과 장애와 같은 아픔을 개인적 경험으로 치부하기보다 일상적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그렇다면 돌봄은 자연스레 나눌 수 있는 공동의 몫이 될 수 있을까? <아픈 여자 이론>은 많은 사람들이 연대를 위하여 거리를 행진할 때 만성질환으로 인해 자신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설 수 없었던 그의 비극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은행 창문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매우 정치적인 질문으로 시작되는 <아픈 여자 이론>은 고질적인 신체 조건들을 안고 살아가는 배제된 존재들의 경험과 이해를 논하는 한편, 현대 사회에서 질병과 장애를 규정하고 돌봄을 가치 절하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능력주의적 체제에 도전하는 날카롭고도 본능적인 외침을 담고 있다.
본 전시는 <아픈 여자 이론>을 책의 형태로 제작하여 소개하고 있다. 종이에 나열된 헤드바의 단어들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충분한 여백을 통해 감각적 상상력을 일깨우며, 마치 그의 가장 내밀한 몸의 내부로 이끌었다가 통과시키듯 비디오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헤드바의 퍼포먼스를 보다 섬세하고 생생하게 엿보게 한다.
전시장에 함께 선보이는 <씻김> 라이브 퍼포먼스 비디오는 헤드바가 2018년부터 전자기타와 목소리를 사용해 투어로 돌고 있는 솔로 퍼포먼스의 기록인 LP 《물고기 자리 네 번째 하우스에 든 블랙문 릴리스》의 일부다. 헤드바는 2018년 4월 세상을 떠난 헤드바의 어머니를 애도하는 의식이자 콘서트로서 이 퍼포먼스를 시작했으며, 목소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샤머니즘 의식과 판소리의 발성법을 참조하기도 했다. 영상 속 헤드바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뼈대만 남은 폐허의 구조물 앞에서 신비롭고, 슬프지만, 뜨거운 소리로 여전히 비가시적인 모든 존재들을 위로한다.
○ 임윤경
임윤경은 일상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모습을 관찰하고, 이러한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을 사회적, 문화적인 맥락에서 새롭게 환기하는 작업에 집중해왔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는 미국 뉴욕과 한국 서울, 경기 등 지역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3세 이하의 아이 돌보미로 일했던 5명의 여성들이 10년 후 자신들이 돌보던 아이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형식의 작품이다. 2012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작가가 미국 휘트니 미술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1년 간 뉴욕에 체류하며 단기 아이 돌보미로 일했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의 참여자들은 모두 작가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던 돌봄 노동자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의 돌보미들은 비교적 젊은 여성인 반면 한국의 돌보미들의 경우 중년의 여성들이 많다. 이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지만 생계를 위해 친자식과는 떨어져 지내며 고용주의 아이와 함께 가사까지 돌보고 있다.
임윤경, 너에게 보내는 편지, 2012/2014, TV 모니터 5대, 헤드폰 5대, 의자 3개, 방석 2개, 아크릴 칸막이 부스 5개, 가변크기
Yoonkyung LIM, Letters to you, 2012/2014, 5 TV monitors, 5 headphones, 3 chairs, 2 seating cushions,
5 acrylic screening booths, dimensions variable
특별한 대본과 편집 없이 대부분 원테이크로 촬영된 이 영상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모국어가 아닌 돌보던 아이의 언어로 담담하게 메시지를 전하며 아이들을 '너'로 지칭한다.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은 그 아이들뿐만 아니라 3세 이전의 기억이 거의 없는 우리이기도 한 것이다. 관람자는 일인용 칸막이 구조물 안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아이 돌보미들과 일대일로 마주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다름을 인식하거나 혹은 공감하거나 또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았을 자신의 아주 어린 시절을 상상할 수도 있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는 돌봄을 자본화되고 서비스화된 노동의 영역에 한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에서 돌보미라는 직업에 얽힌 국가 또는 경제 논리, 규정화된 가족 구조, 성별화된 역할 등에 대해 질문한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가 시작된 2012년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임윤경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 최태윤
최태윤은 과학, 기술, 사회, 인간관계의 시학을 탐구하는 예술가이자 교육자, 활동가로서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다수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기획하고 참여해왔다.
그는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컴퓨터 코드, 하드웨어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또는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협업하며, 공공장소에서 스토리텔링을 위한 기반을 형성하는 그의 예술적 실천은 상냥함, 포용, 정의, 함께하기, 생각 연결하고 나누기를 주제로 삼으며 예술과 기술 내 접근성과 포용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최태윤, “Interweaving Poetic Code”, CHAT(센터 포 헤리티지, 아트 앤 텍스타일), 홍콩, 사진 저작권: CHAT, 전시전경
Taeyoon CHOI, “Interweaving Poetic Code”, CHAT (Centre for Heritage, Arts and Textile), Hong Kong, Courtesy CHAT, exhibition view
《돌봄사회》에서 공개하는 드로잉들은 그가 다양한 도시를 오가며 겪었던 홍콩 시위, 전 세계적 코로나19 창궐,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교차하고 있다. 최태윤은 이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 사회의 양상 속에서 지속가능한 삶과 공동체적 연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하며 나름의 답변을 찾는 과정을 일기와 편지의 형식으로 공유한다.
최태윤, 허그미, 2020, 종이에 마커펜, 61.5x46.5cm, 사진: 이종철 Taeyoon CHOI, Hug me, 2020, Marker drawing on paper, 61.5x46.5cm, photo by Jongchul LEE
<내면을 바라보기>, <관대함을 찾아서>,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하는 것(>에서부터 <신체 중립>, <서식지와 연결하기>, <‘정상’이 되기>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업은 이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not selfish care) 스스로를 돌보는(care of self) 노력이 타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결국 그가 자신 안에서 변화의 시작점을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상호의존과 돌봄을 삶의 중심에 두는 첫 걸음으로서 자신 안의 모순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돌봄의 언어로 스스로와 화해하기를 제안한다.
○ 조영주
조영주는 파리, 베를린을 거쳐,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다수의 국내외 전시를 통해 퍼포먼스, 설치, 사진, 비디오, 사운드, 무용 등의 작업을 선보여 왔다. 사회적, 문화적 구조 내에서 한 명의 개인이자 여성이며 작가로서 현실적 고민들을 작품으로 변환하여 많은 이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고 다양한 발화점을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 그녀의 최근 작업이다.
귀국 후, 그녀는 자신의 육아 경험과 돌봄 노동을 중심으로 한국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여성주의’적 이슈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동시에, 예술사에서 다루어진 여성 신체의 이미지와 무의식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동시대의 몸의 이미지에 대해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조영주, 휴먼가르텐, 2021, 폴리우레탄, 스폰지, 적외선 램프, 가변크기, 사진: 노경
Youngjoo CHO, Humangarten, 2021, Polyurethane, sponge, infrared lamps, dimensions variable, photo by Kyung ROH
<휴먼가르텐>은 ‘정원’ 또는 ‘놀이터’를 의미하는 ‘가르텐’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돌봄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설치 작품이다. 돌봄을 제공하는 자(caregiver)와 받는 자(care-receiver) 서로의 신체는 맞닿고, 그 순간 서로의 에너지를 감각하게 되는데, 이러한 신체적 공명은 그들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영주는 기꺼이 작품 내부의 공간으로 관람객을 초대하여 이들로 하여금 작품 내부에 들어가 앉아서 쉬거나 스스로를, 또는 옆 사람을 돌볼 수 있게 하며 돌봄 노동의 과정에서 감각할 수 있는 신체적인 경험을 함께하고자 한다. 또한 전시 기간 중 <휴먼가르텐>은 조영주의 라이브 퍼포먼스 <인간은 버섯처럼 솟아나지 않는다>의 무대가 되어 신체성과 그것의 모호성, 다의적인 지점들을 실험한다.
물리적 접촉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는 요즈음, <휴먼가르텐>은 타자와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신체적 접촉의 의미를 사유하고 인간 삶의 상호의존적인 다양한 맥락에서 확장가능한 상호성을 길러내기를 유도하고 있다.
○ 미하일 카리키스
미하일 카리키스는 리스본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리스계 영국인 예술가다. 그는 소리, 특히 인간의 목소리를 조각적인 재료로 이해하고 표현적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소리에 대한 미하일의 연구는 사회 구조적으로 종종 등한시 되는 존재들의 소리를 증폭시키는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가 선보이는 시청각 설치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사람들의 관심, 존엄성, 부드러움을 일깨움과 동시에 실천과 연대의 대안적인 방식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개인 또는 지역사회 공동체와의 협력하여 집단성의 역학을 조율하고, 참여자와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자기 결정력과 가능성을 일깨우는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미하일 카리키스, 맹렬한 사랑, 2020,
오디오-비디오 설치, HD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스피커 6대, 서브우퍼 2대, 가변크기, 13분 20초
Mikhail KARIKIS, Ferocious Love, 2020, Audio-Video installation, HD single-channel video, color, sound; 6 speakers,
2 subwoofers, dimensions variable, 13min 20sec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되는 <맹렬한 사랑>은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계절을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상상적 미래의 시공을 보여주며, 고난과 역경 앞에서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미하일은 이번 작업에서 미국의 현대 음악 사상가 폴린 올리베로스와 기후위기 대응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회 운동가이자 작가인 캐나다 작가 나오미 클라인의 글을 참조하고 영국의 젊은 대학생, 환경 운동가들, 그리고 합창단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극한의 날씨와 생물 소리를 표현한 즉흥 합창연주가 어두운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한편, 영상 속 인물들은 물을 찾아 땅 속 깊은 곳에서 모이거나 혹독한 날씨를 피할 수 있는 땅을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불과 몇 주 전에 완성되었는데, 당시엔 누구도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 감염병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미하일은 서로가 단절되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재고하도록 하는 지구적 재앙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맹렬한 사랑>을 통해 집단적 관심과 돌봄의 필요성과 힘을 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 더 케어 컬렉티브, 정소영 옮김, 『돌봄선언』, 니케북스, 2021, p.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