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수 개인전 : 동구리 20년
■ 전시개요
전 시 명 <동구리 20년> 권기수 개인전
장 소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 (서울시 종로구 평창20길 14, 1층)
기 간 2021. 11. 19(금) . 2022. 01. 20(목) (매주 일, 월 휴관)
참 여 작 가 권기수
출 품 작 회화, 조각 40여점
오 프 닝 별도의 오프닝 리셉션은 없습니다
■ 전시내용
- 화가 권기수의 기호화된 인격체 ‘동구리’ 탄생 20주년을 맞아 그 근원과 내력을 살펴보는 전시
- 한국 팝아트 1세대 작가로 알려진 권기수의 표현주의적 수묵 형식의 신작 소개
- ‘동구리’ 캐릭터 작업을 통해 대중의 익명성을 탐구해온 화가의 20년 그 내면의 자화상 공개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은 화가 권기수의 기호화된 인격체 ‘동구리’ 탄생 20주년을 맞아 2021년 11월 19일(금)부터 2022년 1월 20일(목)까지 권기수(b. 1972) 개인전 <동구리 20년>을 개최한다. 대중들에게 권기수는 ‘동구리’ 작가로 유명하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언제나 미소 짓고 있는 ‘동구리’는 그의 작품에 메인 캐릭터로 항상 등장한다. 무지개를 건너기도 하고 대나무에 매달려 있기도 하며,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기도 한다. 화려한 색감과 유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문화상품으로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어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천진난만한 귀여운 모습이 아닌 유쾌하나 냉소적이고 거친 ‘동구리’를 보여주려 한다. 20주년인 만큼 권기수가 ‘동구리’를 어떤 의미로 만들고 그려왔는지 그 동안 숨겨왔던 그의 내면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Untitled 150x210cm soomuk, joomuk, acrylic on hanji 2021 (무제 Untitled 150x210cm 수묵, 주묵, 아크릴, 한지 2021)
Untitled 210x150cm soomuk, joomuk, acrylic on hanji 2021 (무제 210x150cm 수묵, 주묵, 아크릴, 한지 2021)
네오팝 아티스트로 알려진 권기수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화선지와 먹 대신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을 이용하여 여백이 없는 밝은 화면과 두꺼운 아웃라인, 평면성이 두드러진 그의 작품은 장르와 형식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동구리’가 행위를 하고 있는 배경은 동양화에서 상징성을 가진 소재인 대나무 숲과 매화, 파초, 보름달, 쪽배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동양화의 정신에 풍자적 요소를 사용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의 무릉도원에는 많은 ‘동구리’들이 서로 소통 없이 앞만 보고 획일적인 웃음을 보이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지만 마치 SNS 가상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의 모습처럼 어딘가 고독해 보인다. 타인의 시선과 긍정에너지를 강요 받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소외감 느끼는 우리의 모습과 ‘동구리’는 많이도 닮아 있다.
Untitled 76x144cm soomuk, joomuk, acrylic on hanji 2021 (무제 76x144cm 수묵, 주묵, 아크릴, 한지 2021)
Untitled 210x150cm soomuk, joomuk, acrylic on hanji 2021 (무제 210x150cm 수묵, 주묵, 아크릴, 한지 2021)
평창동에 위치한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에서 개최되는 <동구리 20년>은 팝아트 작가라는 그의 수식어와 낯설게 표현주의적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빠른 붓 놀림과 거친 붓 자국, 자유롭게 흐르는 물감 자국을 이용하여 검은 먹이 가진 물성의 에너지를 시각화하였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에서 ‘동구리’는 정형화 되어있지 않은 날것의 형태로 작가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동구리’는 권기수가 인물 드로잉을 빠른 속도로 그리기 위해 연습하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001년 즈음이었다. 즉흥적으로 빠르게 그려낸 ‘동구리’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관객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고 절규하는 듯 보인다. 흐르는 물감을 그대로 두어 ‘동구리’ 위로 눈물 또는 피처럼 흘러 내려 번져있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여 관객들에게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Untitled 73x143cm soomuk, joomuk, acrylic, oil pastel on hanji 2021 (무제 73x143cm 수묵, 주묵, 아크릴, 오일 파스텔, 한지 2021)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그의 작품과 달리‘동구리’만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화려한 무릉도원은 없고 하얀 여백으로 비워두거나 금색을 칠하여 ‘동구리’만 주체로서 강조된다. 마치 비잔틴 시대 황금으로 표현된 성당의 아이콘처럼 인물에게만 시선이 머무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황금색 모자이크 성상들처럼 위엄 있고 전지전능한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유약한 내면을 그대로 노출한 채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다. 권기수가 20년 동안 그려낸 ‘동구리’는 예쁜 미소 짓는 아이콘이 아닌, 불안하고 상처받는 군중 속의 한 사람 바로 권기수 자신인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20년을 기념하여 작가가 특별히 제작한 2m 크기의 ‘황금 동구리’ 입체 작품이 출품될 예정이다.
Untitled. 130x20x200cm. Iron, Gold leaf, Urethane paint. 2021
작가가 20년동안 숨겨놓은 내면의 자화상을 공개하는 전시 <동구리 20년>은 장르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확장하는 작가 권기수의 저력을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시는 2021년 11월 19일(금)부터 2022년 1월 20일(목)까지 평창동에 위치한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작가소개
권 기 수
1972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권기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전통 수묵화 형식을 따르기 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1999년~2002년 장지에 수묵으로 ‘동구리’라는 기호화된 인격체를 탄생시켰다.
2003년 이스라엘 Jerusalem Center for Visual Arts의 레지던스에 초대된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iGoogle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2015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장학재단 중 하나인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미국 Concordia College에서 방문 교수를 역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국내 대표 미술관과 상하이 Long Museum, 샌프란시스코 Asian Art Museum 등 해외 주요 미술관에도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오스트레일리아 Asia-Pacific 트리엔날레, 상하이 MOCA, 일본 MORI ART Museum, 런던 Saatchi Gallery, 뉴욕 MAD 미술관, 뉴욕 UN 본부, MOCA 타이페이 등 다양한 곳에서 국제 전시를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 하고 있다.
■ 전시서문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동구리 20년>
주먹질은 해도 뼁끼질은 하지 말라는 소백산 아래 산골에서 그는 환쟁이 소년이었다. 그 산촌 사람 중 한 명인 아버지는 뼁끼질을 하고 다니고 있는 아들이 어떤 대학이 갔는지 설명하기도 어렵고 해서 누가 물을라치면 그냥 대처에 있는 학교에 진학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칠십 년대 초반 산골 농촌이란 아직 30,40년대와 별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깥 구경을 한 사람은 월남파병 군인이나 사우디 같은 데를 갔다 온 노동자들 정도가 고작이었다. 궁벽한 곳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지경 밖으로 나가질 않고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땅은 잠시라도 사람이 떠나 있으면 온전히 건사할 길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팔자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림에 관해서 그는 고향을 떠날 때까지 달리 선생이란 존재가 없었다. 누구에게 아예 배우질 않았다는 게 아니라 미술대학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데쌍’dessin을 학원에서 거듭 익히는 정도였다. 하물며 뼁끼질하는 소년 주제에 선배들과는 다른, 새로운 그림에 도전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분명한 건 지역 그림대회에 나간 그가 대부분 입선에 그칠 정도로 제도권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학원도 열심히 다니질 않았고 수상권에 들 수 있을 만한 꾀도 없었다. 이상한 건 그때 대상을 받거나 한 친구들 중 지금까지 그림 그리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그는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 동양화과에 붙었고, 기대와는 달리 이내 거기서도 그다지 환영 받질 못했다. 수묵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전통 수묵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일은 내키질 않았다. 그저 시커먼 그림보다 자기 방식대로 그리고자 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적어도 다들 이전부터 해왔던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함께 그림을 도모해보자 했던 벗들이 시나브로 그를 떠나고 있었다. 교수들은 희다 검다 말이 없더니 곧 그의 작업에 관심을 주질 않았다. 소싯적처럼 그는 다시 선생이 없었다. 세상에는 재능 있고 명망 높은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따르고 배우고 모실 스승이 없었다. 대학원까지 들어가서 사람과 길을 찾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그는 아무 이름이 없었다. 아무도 그를 몰랐다. 누가 그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의 그림에 관심을 주는 이는 더구나 없었다. 그는 화가였지만 정작 화가가 아니었다. 이 무렵 그가 부질없이 한 행위는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노래 한 곡이 끝나면 그림을 함께 끝내는 습관을 길 들이는 일이었다. 무슨 대단한 경지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경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그림을 놓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어떤 계획도 없이 붓을 들고 환을 치다가 노래와 함께 한 작업을 마쳤다. 아직 그는 어떤 존재도 아니었고 그림도 모종의 열망 따위를 품고 있지 않았다고 해야 옳다. 붓을 들어 먹을 치는 동안 그림 그린다는 사명감도, 대학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도, 그림으로 돈 한 푼 벌지 못한 채 굶고 있다는 초라한 생각도 다 내려놓았다. 지독스럽게 반복하는 붓질을 하는 동안은 묘한 해방감 같은 게 일렁거렸다. 그뿐이었다. 배운 모든 것을 내버리기라도 하듯 그는 붓질만 했다. 석삼년 뜻 없는 작업을 거듭하던 어느 날 시커먼 먹빛 사이에서 어떤 존재 하나가 숨어 있다가 나타났다. 그건 분명 그가 그린 것이었지만 굳이 그걸 그리려고 의도하질 않았던 것도 맞다. 누군가 전시회를 하자고 제안해 와서 그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있을 때 그게 문득 드러났다. 나중에 ‘동구리’라고 이름 붙인 어떤 존재였다. 동구리가 세상에 출현하면서 비로소 그 또한 미미한 이름을 얻었다. 화가 권기수다.
대략 2000년 어름이었다. 1999년이라고 해도 좋았고 2001년이라고 해도 그만이었다.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 무렵 시간은 불투명한 액체처럼 헝클어져 있거나 한데 뭉쳐 있으니까. 그때 그는 어디서 쓰러져도 홍길동이었고 연유 없이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한 임꺽정이었다. 동사무소 문서신청 작성 본보기 양식에 박혀 있는 한낱 그런 존재였다. 동구리가 똑 그랬다.
동구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존재다. 동구리는 익명이다. 익명으로 존재하고 익명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처에 기거하지만 아무 데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 근대사회 이후 대중의 익명성을 나타내는 존재는 그렇게 출현했다. 조금 고상하게 말하자면 부존으로써 존재,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동구리다. 늘 함께 하지만 함께 살지 않는, 다른 한편 굳이 찾지 않아도 거기 있는 존재다. 어디 있거나 어색하지만 어울리고, 고독하지만 기쁘고, 슬픈 듯하지만 현재를 희미한 존재로 살아내고 있는 흰 얼굴 인간 형상이다.
동구리는 남자이고 여자이고, 성별이 없다. 머리털이 열 가닥 돋은 별볼일 없는 하찮은 운명으로 그는 21세기 대낮에 나타나서 권기수의 그림에 은닉되어 있거나 별 표정 없이, 또 목적도 이념도 없이 서성거린다. 그렇다고 동구리는 그림 중심 소재도 아니고 주인공은 더욱 아니다. 그는 권기수의 모든 그림에 거처할 따름이다. 그는 철저히 익명이다. 한국 회화 사상 처음으로 작가의 그림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도형화, 기호화된 인격체가 동구리다.
동구리의 얼굴 모양은 원형으로 동그랗고, 단추구멍 만한 눈, 삼각뿔 모양을 한 코에, 입 모양은 길게 벌어졌지만 웃는지 우는지 실은 알 수가 없다. 그는 모든 그림에서 무엇인가 하고 있지만 무엇인가 하고 있질 않다. 때로 관조하고, 때로 빤히 쳐다보고, 때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서 동구리는 딱히 주제에 영향을 줄 만한 어떤 작용을 달리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그래야 동구리다. 귄기수 그림을 보는 사람이 어렵지 않게 동일시를 이뤄내는 지점이 여기다. 거기서 관객은 익명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름 또한 그렇다. 맞춤법을 잘 모르는 표기를 한 양 동그리가 아니고 동구리다. ‘동그리’보다 발음하기 좋고 그저 동구리 만큼 조금 다를 뿐이다. 동구리는 권기수 그림에서 기표signifiant다. 기의signifie는 없거나 모른다. 그래서 동구리다.
처음 그림이라는 형식을 갖고 동구리가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곳도 밥집이다. 그는 근사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존엄을 갖추고 나오질 않았다. 월전미술관 별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밥집 콩두 바람벽이 동구리 탄생지다. 권기수는 거기서 동구리가 특유의 얼굴을 내미는 전시를 처음 열었다. 그해는 2002년이었다. 월드컵 경기에 몰입한 채 함께 몰려다니고 있는 거대한 군중 틈바구니에서 동구리는 소리 없이 태어났다.
그가 이윽고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지만 동구리는 나이를 먹거나 하질 않는다. 이 전시는 스무 살 동구리의 내력을 밝히고 탐구하는 자리이자, 동구리와 대화하는 동구리들의 잔치다. 그리하여 이름없는 자들의 이름을 부른다. 동구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