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내 작은 방〉展
전시 기간 │ 2022년 1월 4일 ~ 9월 18일
전시 장소 │ 라 카페 갤러리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
관람 시간 │ 오전 11시~오후 10시 *매주(월) 휴관
오시는 길 │ 경복궁역 3번,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문의 전화 │ 02-379-1975 인스타그램 @racafe_gallery
*라 카페 갤러리의 전시 관람은 무료입니다
■ 전시소개
“여기가 나의 시작, 나의 출발이다”
박노해 사진전 〈내 작은 방〉
새해를 여는 박노해 시인의 새 사진전이 1월 4일부터 열립니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라 카페 갤러리의 20번째 전시 〈내 작은 방〉展은 세계 민초들의 일상과 영혼을 방이라는 삶의 터전에 맞춰 펼쳐냅니다.
사막과 광야의 동굴집에서부터 유랑 집시들의 천막집과 몽골 초원의 게르, 인디아인들이 손수 지은 흙집과 귀향을 꿈꾸는 쿠르드 난민 가족의 단칸방까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첫 번째 방인 엄마의 품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방인 한 평의 무덤까지.
박노해 시인이 흑백 필름카메라로 기록해온 37점의 작품은 ‘방의 개념’을 드넓은 세계와 깊은 내면으로 확장시켜 사유케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방의 시간’이 길어진 지금, 한 인간에게 가장 내밀한 공간인 방의 의미를 새겨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급진하는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독립된 장소, 내 영혼이 깊은 숨을 쉬는 오롯한 성소를 찾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박노해 사진전 〈내 작은 방〉展에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할 마음의 빛을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 작은 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내 작은 방은 내가 창조하는 하나의 세계.
여기가 나의 시작, 나의 출발이다.”
― 박노해
■ 작가 소개 | 박노해
1957 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상경해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 27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 7년여의 수배 끝에 안기부에 체포, 24일간의 고문 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3 감옥 독방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출간했다. 1997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 7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비영리단체 〈나눔문화〉(
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2010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12년 만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2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 상설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현재 20번째 전시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 33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2014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다른 길』을 출간했다. 2019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하루』,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길』을 출간했다. 2020 첫 번째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를 출간했다. 2021 『걷는 독서』를 출간했다. 감옥에서부터 30년간 써온 한 권의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오늘도 시인의 작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기르며 새로운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 전시장소 | 라 카페 갤러리 Ra Cafe Gallery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명소 서촌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는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좋은 삶의 문화공간입니다. '나눔문화'는 박노해 시인이 2000년에 설립하여 정부 지원과 재벌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국경 너머로 평화를 나누고 우리 사회의 생명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대안 삶의 문화를 꽃피워 왔습니다.
라 카페 갤러리는 2012년 4월, 종로구 부암동에 처음 문을 열어 9년간 19번의 박노해 사진전을 개최하였고 지금까지 28만명이 다녀가며 ‘도심 속 순례길’이 되었습니다. 2019년 6월, 경복궁역 인근 통의동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 대표 작품
빛의 통로를 따라서 Gondar, Ethiopia, 2008.
에티오피아의 고대 문명을 이어받은 성채 도시 곤다르.
세월만큼이나 깊은 어둠은 빛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우리가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떠나려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이다.
오늘 현란한 세계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일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눈동자가 길이 되리니.
내가 삼켜낸 어둠이 빛의 통로를 열어 줄지니.
해맑은 아침 미소 Palaung village, Kalaw, Burma, 2011.
깊은 산마을에 여명이 밝아오면
나뭇단과 샘물을 지고 오는 건 소녀의 일과다.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던 엄마는
우리 딸 장하다고 애썼다고 웃음으로 맞아준다.
미소 띤 대화 속에 생명의 바람이 이는
‘담소풍생談笑風生’의 아침이다.
미소는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힘이니
서로에게 다정한 눈빛 한번, 해맑은 미소 한번,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가 눈부시다.
손수 지은 인디고 흙집 Samthar village, Uttar Pradesh, India, 2013.
기품 어린 자태의 그녀의 방에 초대를 받았다.
인디고와 흰빛으로 단장한 흙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무와 꽃밭이 있는 정갈한 마당과 아름한 방이 있다.
누군가의 방 안에 초대받는 건 위대한 허용이다.
누군가를 내 방에 초대하는 건 위대한 포용이다.
그의 방을 보면 그의 안이 비춰 보이기에.
자수를 놓는 소녀 Drosh, Khyber Pakhtunkhwa, Pakistan, 2011.
혹독한 환경의 아프가니스탄 국경 마을.
엄마가 죽고 일찍이 살림을 맡은 소녀가
저녁 빵을 구울 아궁이 불을 피우고
장에 내다 팔 커튼에 자수를 놓는다.
“엄마가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는데….
자수를 놓을 때면 엄마 목소리가 들려와요.
젊고 건강할 때 많이 배우고 익히렴.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더 많이 도와주렴.
젊을 때 젊음을 아낌없이 써야만
사람도 꽃으로 피어난단다.”
내 영혼의 동굴 Wagnat village, Jammu Kashmir, India, 2013.
계엄령과 휴교령이 내려진 카슈미르의 아침.
어른들의 긴장 어린 두런거림에서 빠져나온 남매는
전기도 없는 어둑한 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 줄기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 걸터앉은 누나는
글자를 모르는 동생을 위해 책을 읽어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깥세상과 아득한 별나라와
고대 신화 속으로 멀고 먼 여행을 떠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쿠르드 비밀 공연 Al Qamishli, Syria, 2005.
나라를 잃고 떠도는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 쿠르드.
시리아 정부의 감시를 피해 모인 심야의 비밀 공연에서
감춰둔 전통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한다.
지금 이 방은 쿠르드인들의 해방공간이자 독립운동 현장.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는 억압받고 추방당한 자들이
작은 방 한 칸에서라도 몸부림치며 자유를 부르짖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젊음은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고 저항하며 길을 찾는 것이니.
운전기사의 '트럭 아트' Lowari Pass, Pakistan, 2011.
폭음이 울리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산악도로
‘로와리 패스’를 긴장과 피로 속에 달려온 화물기사.
“집에서 잔 날보다 이 차에서 잔 밤들이 더 많았지요.
나의 방이고 일터이고 제일 오래된 친구랍니다.”
자신의 몇 년 치 월급을 들여 태양과 별, 산과 호수,
꽃과 나무를 그려 넣고 성전처럼 정성스레 장식했다.
그는 따뜻한 짜이 한 잔으로 몸을 녹이더니
금세 흙먼지 낄 트럭을 언 손으로 닦아준다.
이 일이 비록 밥을 버는 일이지만
그 모든 시간이 내 소중한 인생이고
이 인생길의 주인은 나 자신이기에.
햇살과 바람의 집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불타는 사막의 더위에도 흙집 안은 시원하고 쾌적하다.
모래폭풍이 불고 나면 수북이 쌓인 모래를 쓸고 닦고
다시 손으로 흰 회벽을 칠하며 정결함을 유지한다.
마당엔 커다란 그늘나무와 꽃들을 심고 가꾼다.
햇살과 바람이 드나들고 세월만큼 나무가 커나가는 집.
작지만 구성이 잘되어 여백미와 편안함이 느껴지는 집.
건물과 물건이 아닌 사람이 주인으로 생동하는 집.
엄마의 등 Patacancha, Cusco, Peru, 2010.
안데스 만년설산 자락의 감자 수확 날.
엄마는 뉘어놨던 아이가 추위에 칭얼대자
전통 보자기 리클라로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우리 모두의 첫 번째 방은 엄마의 등.
찬바람 치는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믿음직한
그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서려 있어,
나는 용감하게 첫 걸음마를 떼고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선 청년이 되어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으니.
사랑, 그 사랑 하나로 충분한 엄마의 등은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탄생의 자리이니.
하늘을 보는 아이 Jaipur, Rajasthan, India, 2013.
길어진 그림자가 이 세계의 경계를 넘어
심연에 가닿는 듯한 석양의 시간이 오면,
하루 일을 정리하는 식구들 사이에서
아이는 홀로 지붕에 올라 하늘을 바라본다.
점점이 밝아오는 별빛이 눈동자에 반짝이고
작은 몸 안에 고요히 무언가가 스며든다.
아이들에겐 혼자만의 비밀스런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무얼 꿈꾸는지,
자기 안에 살아있는 신성이 깨어나는 시간,
어둠 속 별의 지도를 읽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탁자가 놓인 풍경 Turkey, 2005.
집안의 풍경을 단번에 바꿔버리는 것은
공간의 중심에 탁자 하나를 놓는 것이다.
편안한 의자에 사랑하는 이들이 둘러앉고
계절의 꽃과 따뜻한 햇살이 비추이면,
여기는 신선한 기쁨과 풍요로 초대되는 자리.
지상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자리.
내 마음의 방 Cappadocia, Turkey, 2005.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다니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