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종갑 초대전 《화전(畵田)》
전시개요
1) 전 시 명 : 《화전(畵田)》
2) 전시기간 : 2022년 2월 4일 ~ 2월 23일
3) 전시장소 :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평창동 111번지)
전시내용
금보성아트센터에서는 2월 첫 번째 전시로 화천의 길종갑작가의 《화전(畵田)》으로 문을 연다. 곡운구곡(谷雲九曲)의 작가로도 불리워지는 길종갑화가는 나고 자란 화천 사창리에 터를 잡고 특유의 강렬한 붉은 빛의 색채로 주변 풍경을 부감법으로 묘사해왔으며, 4.3미술제, 평화미술제, 광주40주기 기념전 등에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며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아 왔다.
또한 그는 낮에는 농사를. 저녁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30여년을 살아온 농부화가이기도 하다. 붓을 호미 삼아 캔버스를 땅 삼아 밭을 일구는 작가, 길종갑은 그림 속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딛고 서 있는 땅의 기쁨과 어둠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한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22년 신작인 9미터가 넘는 대작 <두류산 풍경>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작가의 삶의 터인 비닐하우스와 작업실을 중앙에 두고 두류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대작으로, 작가의 자연과 삶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찰나의 소박한 삶의 광경들도 소중하다”는 작가의 언급처럼 ‘소박’이라는 것. ‘구축’하는 법이라곤 없는 표현방식이 바로 길종갑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응주 평론가는 전시서문을 통해,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표현력과, 아픈 통찰,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화법이 길종갑작가의 그림의 터전이라고 보았다. 그 둘이 서로 제압할 듯 힘을 겨루지만, 늘 승리는 전자(前者)에게로 돌아가곤 했던 전장(戰場). 사랑과 슬픔이 싸운다는 것! ‘민중’미술 아닌 민중‘미술’의 한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라며 화두를 던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9m가 넘는 대작이 총 3점 공개되며, 3년동안 작업하여 완성한 12m의 작품 <화전(畵田) 도 전시될 예정이다. 꿈틀거리는 산하와 풍성한 색감의 풍광 이면에 담긴 역사성과 삶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리의 되돌아보게 하는 작가 길종갑의 전시에 모두를 초대한다.
전시평론
자연성, 길종갑 그림의 터전(畵田)
박응주 미술비평가
곡운구곡(谷雲九曲)의 작가.
엄밀하게는 2007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의 화가 길종갑에 대한 별칭이다.
원래의 곡운구곡의 전설의 내력은 이러하다. 1668년의 강원도 평강 감사로 부임했던 김수증(金壽增1624~1701)은 춘천을 거쳐 화천을 지나다 이곳이 최고의 경승임을 알아보고 은퇴 이후엔 화천군 사내면으로 이거해 와 자신의 호인 곡운(谷雲)을 따서 지촌천의 물굽이 아홉 개를 곡운구곡이라 칭한다. 김수증은 당시 화가 조세걸(曺世傑1636~1705)에게 실경으로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1682)를 그리게 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전해온다고 한다(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리얼리스트로서 길종갑은 자신의 태생지이자 유년을 보냈으며 지금은 팔순 노모를 모시고 고추, 배추, 토마토 농사를 짓고 사는 ‘구곡 전설’의 이곳을 그린다. 이번 전시에 내보인 곡운구곡도 계열로 볼 수 있는 작품은 <화음동기華陰洞記>(2011), <청람산靑嵐山>(2011), <곡운전도谷雲全圖>(2015) 정도인데, 이를 포함해 2011~2015년 사이 집중적으로 그려진 60~70여점의 구곡도들을 일괄해 말해본다면 한마디로 이 땅의 내력과 역사, 풍모와 영성(靈性)을 드러내 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내력과 역사라하여 매우 근엄한 표정을 지닌 무엇이리라는 예상과는 거리가 멀다. 언뜻 보면 ‘삼각지 그림’인 듯 보이는 찬란한 색조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 그림들은 유쾌함과 페이소스(pathos)의 밀고 당기는 역학이 작동하는 장이 되고 있다.
그 그림의 시작은 생생한 물감덩어리의 투척으로부터 시작한다. 혼색이라고는 그 자신 체질적으로도 몰라 순진무구한 유아나 어린애의 감각과도 같은 것으로서다. 그 색은 화폭과 파렛트에 짜여져 있는 물감으로부터라기보다는 저 대상, 이미 천지간에 가득 차 스스로 웅성거리고 있는 색의 천지로부터, 일순간에 몰려와 자기 먼저 그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왁자지껄함으로부터 생겨난 (화면의) 명랑함 혹은 두서없는 유쾌함이다. 예컨대 ‘삼각지 그림’ 같은 화면의 명랑함이란 산은 높고 물은 깊으며 그 매혹적인 풍경 안에 살아봤으면 하는 감정을 유발하는 식의 잃어버린 낙원을 환기시키는 시각적 호소력을 말함이다.
그런데 잘 보면 그것은 실경산수이다. 서양화 물감으로 그려진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이 잘 구사된 동양화적 실경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그림 안에서 갓을 쓴 선비가 길을 지나가며, 현대의 관광객이 관광투어를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장쾌한 풍경화로 어김없이 간주할 수밖에 없는 대폭의 그림 앞에서 오래 세세히 보지 않으면 필히 놓치고야 마는 화면 귀퉁이 어느 한쪽에는 산을 파헤치는 공사가 벌어지거나 이미 완공된 터널과 고가도로를 통해 승용차가 질주하고 있기도 하다. 군데군데 숨은그림처럼 자리한 ‘흠집’들. 이 흠집들의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현미경을 필요로 한다. <화음동기華陰洞記>를 보자. 화음동은 김수증이 정치적 고난을 피해 은거한 길종갑 자신의 마을을 경유하는 사내면 삼일리, 사창리 계곡 일대에 대한 명명이다. 그러나 애닯은 정조는 겨우 그 이름에나 희미하게 남아있을까. 화음동의 수목은 유난히 밝은 원색으로 반짝이며 이산, 저 계곡 각각들은 부분들은 있되 전체는 없다는 듯이 화면 안에 저마다 할거(割據)하고 있어 화면은 파열되기 일보 직전이다. 이제 그 안으로 더 들어가 보면, 거기에 최소한 사람 130명, 차 12대, 경운기 1대, 오토바이 2대, 트렉터 1대는 물론 웅크린 형상이나 서 있는 인골(人骨)이 화석화된 바위나 암벽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곡운구곡 중 3곡에서부터 9곡까지 조망할 수 있다는 <청람산> 정상 꼭대기에는 삿갓 쓴(아마도 김시습을 지칭하려는 듯) 고대인을 뒤따라 오른 두 사람의 현대인 등반객이 있으며, 그 그림 중경(中景)의 현대식 교량 양켠으로는 고대인과 현대인이 나란히 늘어선 행렬 또한 발견하게 된다.
현대의 과도한 개발 욕망을 질타하는 고발인가. 아름다운 풍경 그 아래에는 우리가 간과했던 시간이 누적되어 있으며, 그 시간은 비극도 고단한 삶도 모두 피할 수 없는 문명의 수레바퀴 자국의 흔적이라는 듯이 말이다. 만추의 강원도의 가을 산악이 내지르곤 하는 쩡- 소리 나는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실경과 엄밀한 원근법적 대비율에 따라 개미만큼 작아져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어쩌면 감당할 만한 화면 귀퉁이의 약간의 불편한 장면들이 환기하는 충돌. 그 사이가 길종갑 곡운구곡도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이다.
마치도 매혹적인 색과 율동의 비경(祕境)이라는 노스텔지어 속에 독자와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제안하려는 것처럼도 보이는 이것은 그가 ‘작은 것들의 역사’, ‘수평적인 순수한 사람들의 형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그 자신의 정신성의 형식의 작동을 통해 이 땅의 내력과 스민 역사의 체취와 징후를 냄새 맡는 방식과 범위를 필자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시선의 방식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을 뿐인데, 그것은 그토록 ‘과도한 촉수’로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주의력 과잉이라 말해볼까. 실경에서라면 보일 리가 없는 강 물줄기를 끌어오고(<신풍속도>2008), 시선의 장소로부터 최소한 3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음 직한 먼 거리의 원경에 보이는 가로와 건물(‘안녕히 가세요 화천군’과 ‘어서오십시오 철원군’), 그리고 그 너머까지도 그려내고(<수피령>2011), 흡사 푸른 계곡의 청옥빛 물속에서는 노니는 물고기라도 그릴 양이다(<청옥협>2015).
이 초능력 시력은 단발령을 넘는 갓 쓴 노인이나 금강산을 유람하는 선비들이 등장하는 소정 변관식의 그림을 우선 떠올리듯 동양화에서는 물론 낯선 방식은 아니다. 대상의 이야기를 가장 잘 전해줄 방식을 위해 시선은 얼마든지 대상에게로 가까이 이동할 수 있었던 예술적 정리(定理)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길종갑의 초능력 시력은 이런 방법적 외양만 같을 뿐이라는 사실이 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말을 들어본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자 하는 느낌만 생각하고 ‘그려야겠다’ 생각 들면 물감으로 바로 시작하곤 하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가는 방향이 있더라. 그 미묘한 것들, 예를 들면 어릴 때부터 붙잡혀온 문제들에 대해 뭔가를 쏟아내듯, 안 보이던 게 보이면서 그것에 빨려든다”고 했다. 또 “작은 것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그린다는 사실에 대해, 자꾸만 애착이 가더라”고도 했다.
그 ‘과잉’에 대한 다소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그의 그림에 ‘발언’하는 자의 지각이라기보다는 어떤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자의 관능적 촉각이 있던 이유라고 말해 보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는 원근법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여 흐릿하게 들려와서는 안 될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뚜렷하게 들린다. 수평의, 순결한, 맨살의, 여성성의 보폭(步幅)에서야 가능한 촉각 말이다.
수직의 위계가 이 세상을 통할하고 있는 한 길종갑은 끝이 없는 번민에 시달릴 것이다. 아름다움과 비루함, 낙원과 고단함,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사이에서. 그가 맨살로 세상과 마찰하면서 냄새 맡기로 했던 결과물, 이것도 세상이요 저것도 세상일의 하나였던 질곡, 그것이 곡운구곡도들이었던 셈이다.
맨살, 혹은 나체
그는 언젠가 사진가 조문호의 사진 속에 벌거벗은 몸으로 인화되기도 했다. 그 때문은 아닌데, 나는 하나같이 높고 험준한 강원도 산악과 그의 맨살이 닮았다고 느낄 때가 더 빈번해지고 점점 더 확정적으로 그렇게 생각되는 듯하다.
<풍속도-산치성山致誠>(2009)을 읽는다. 왼편 하단, 아마도 6.25 전쟁의 상흔인 듯한 ‘학살’의 장면이 있다. 바위란 바위는 거의 인골이 석화한 것이며, 강제노동과 살인, 학살, 발가벗겨진 사람들, 공포, 동물도살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음화들로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리 첫눈엔 식별되지 않는다하더라도 결국엔 이내 알아차리게 된, 명랑하고 찬란한 빛 속에 폭발적인 색들로 제 존재를 뽐내는 만산홍엽의 비경은 결국 처참하고 어둡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날것의 생의 가면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있다. 자연을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인간 세계의 흔적의 층을 얘기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따라서 독자가 맞는 사태는 결국 이 그림의 주제는 무엇이다!고 꼬집어 말할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형식을 이탈하는 어떤 표현, 그저 ‘표현’에만 자신의 몫은 할당됐을 뿐이라는 듯 작가는 그림을 어떤 ‘수행(修行)’적 행위로 질러놓고 떠나왔기 때문이다. 천지신명(天地神明),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사물은 이미 신에 속해 있음을 예증할 뿐이었기에 화면의 경계가 어디에 있고 한 사물의 생과 멸은 그 자체로 생과 멸인가? 강렬한 회의를 드러낸, 그런 도치된 경험들의 변신(變身) 이야기가 길종갑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정(淨)한 마음과 준비로 산신(山神)과 천신(川神)에게 동물을 잡아 제(祭)를 올려 인간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산을 오르고 오르다 돌이 되고 바위가 된 정령들과 제물신의 축제가 공존하는 카오스, 미메시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문명화된 우리에게는 이미 낯선 비문명(非文明)의 세계다. 그러나 그것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위생화된 우리가 이미 지나왔거나 밀쳐내 왔던 우리의 자연성(自然性)이었기 때문일 수가 있다. 길종갑 그림 속의, 모든 것이 다 중요해져 원근법적 질서를 파괴하며 동시에, 일시에 확 밀려 들어오는 모든 세부들의 동시적 범람, 이 사태에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술자체의 운동’, 즉 시선(시각)이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상황(사태)을 인지하고 메시지의 내용이나 색조의 뉘앙스를 합산하여 감각의 내용으로 삼는 식의 미술적 형식으로 추출하는 미술의 운동을 파열시키기에 이른다. 그저 물결치는 색들의 현란한 명 혹은 멸, 그 어떤 위계에도 포획되지 않는 이 삽화와 저 삽화들의 동시적 병렬이 하나의 판에 동시에 거주하고 있다는 데로부터 오는 파열인 셈이다. 완전히 미술이라는 양식 범주로 형식화되지 않으려 버팅기며, 자신이야말로 미술 바깥으로부터 유래한 순수 미술일 수 있다는 자신의 권리를 완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불가항력적인 정신성의 지평 같은 것이 확보되는 순간이다. 그것이 “기원이 곧 목표였던” 자연성이라는 살갗의 힘, 길종갑의 나체가 행사한 위력이었다.
화전(畵田), 화전(畵戰)
<장삿날葬事->(2008-11). 한 망자의 장삿날의 풍경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이 역시 길 복판에 들어선 상여 행렬, 유족들의 상복 차림 정도만이 눈에 인지될 정도일 뿐, 그와 대비랄 것도 없이 세상은 밝고 영롱한 빛의 색들로 현란하다. 슬픔의 이편, 청옥의 계곡에서는 물놀이를 하며, 야외 화로에 고기를 굽고 먹고 마시는 행락객들이 역시 깨알같이 등장해 있다. 생(生)도 사(死)도 그의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지점, 모두를 삼켜버리듯 대자연 스스로의 영고성쇠(榮枯盛衰)라는 불가항력의 폭력성, 아름다움의 잔인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장하는 날>(2011). 화가 자신의 생활이 있다. 그를 ‘농부화가’라 칭하는 말이 있다. 다소 어정쩡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별칭이기도 하다. 한때와 현재에 이르기에도 농삿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던 곡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삶을 그린다. 그에게 삶이란 앞서 <장삿날>에서 읽었던 그 삶의 무효성! 대자연의 영고성쇠라는 폭력성 앞에서의 생과 사의 무력감, 나아가 무효성에로까지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엄살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그런 무효성이 이들 생활의 기록류 작품들에까지 지배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 이번 전시작은 아니지만 필자가 일견한 <토마토 가게2>(2009)에 대해서 약간의 에두른 설명을 부기해보고자 한다. 여기서의 토마토 가게 할머니 사장(아마도 화가의 모친일 것으로 예상)은 그늘막으로 쳐놓은 파라솔 아래서 흡사 ‘무적의 마징가 제트’ 조종사 할머니처럼 묘사되었다. 이토록 당당한 그림을 나는 드물게 보았다. 그에게 그림의 ‘소재’는 아무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듯만 보였다. 어떤 결정적인 미(美)나 결정적 사건을 그림다운 소재라고 알고 있는 헛된 상식들과는 대비되면서 말이다.
그가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알고 있는 사건은 ‘비교될 수 없는 생의 당당함의 순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는 이유다. “찰나의 소박한 삶의 광경들도 소중했다”고 그는 어딘가에 적었다. ‘소박’이라는 것. ‘구축’하는 법이라곤 없는 길종갑 양식이라 이름 붙여 볼 만하다. 2018년 <엄마의 정원>이라는 제명의 개인전에서 이 양식은 실현되었다.
‘그림다운 그림’, 그런 것을 그리고자 하는 감수(感受)라는 수동성과 지극히 찬란한 곳에는 지극한 슬픔이 배어있곤 하더라는 아픈 통찰, 그 둘 사이가 길종갑 그림의 터전인 듯하다. 이 둘이 서로를 누르고 제압할 듯 힘을 겨루지만, 이제껏 늘 승리는 전자(前者)에게로 돌아가곤 했던 전장(戰場). 사랑과 슬픔이 싸운다는 것! ‘민중’미술 아닌 민중‘미술’의 한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다.
두류산풍경 2022 캔버스에 아크릴 267cmx940cm
다산별곡 2020 캔버스에 아크릴 267cmx940cm
산치성 2009 캔버스에 아크릴 130x160.5cm
화전(畵田) 2014-2016 캔버스에 유채 160.5x130x(7)
산불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70cmx267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