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렬 작가의 개인전 <박제된 시대>가 3월 11일부터 4월 14일까지 아트노이드178에서 개최된다. 생경한 이미지들이 마주보는 강렬한 상하 구도의 시공간을 그려온 양경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지의 파편들이 ‘퇴적된 지층’처럼 박제된 시공간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과거엔 흔히 집에 한두 개쯤 있었다는 동물박제는 이제 그 이름조차 낯설다. 작가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집 한 켠에 치워져 있던 박제된 매를 마주한 날의 생경한 느낌을 기억한다. 방부처리까지 해서라도 ‘지금, 여기에’ 붙잡아 놓으려는 욕망조차 어느샌가 망각되고 마는 현실을 직시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것은 시대의 한 단면이 아닌가. 작가 양경렬이 주목하는 이 시대의 모습은 박제된 그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작가 양경렬의 <박제된 시대>는 90조각의 이미지를 모아 박제하듯 기록한 결과물이자 동시에, 수많은 파편적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의 모습들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서사이다. 작품 속 무아지경으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은 기억 속의 나와 친구들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날은 누군가의 운명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혹은 어떤 이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가 나온 날일 수도 있다. 다시 바라본 화면엔 나의 소중한 아이들이 있다. 아련한 이 순간은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그날의 이야기다. 거기에 모두 함께 있었다.
“아이러니한 시⦁공간은 작품 속에서 하나의 무대로 설정된다. 이 무대는 곧 회화적 가능성의 공간으로 변용(變容)되고, 이 공간 속에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서로 대립되는 이미지나 사색의 이미지로 채워진다. 그것들은 서로 반전된 장면으로 드러나거나, 사뭇 이질적이고 생소한 이야기들이 중층적으로 구축되거나, 혹은 갑작스러운 화면 전환으로 구성된다. 어떤 공간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다양한 사건을 퇴적된 지층처럼 품고 있다. 이러한 지층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 뒤의 감춰진, 잠재한 혹은 잠식된 것 같은 이면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그 이면을 보기를 기대한다.” ■ 양경렬 – 작가 노트 중에서
작가 양경렬은 광장을 연극무대 삼아 거기에 모인 군중들의 사회적 욕망과 관념들을 그려낸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그리스 조각상들이 등장한다. 시공간은 점차 모호한 은유 속으로 빠져든다. 미학의 집 임지연 소장은 양경렬 작가의 심상 속에 박제된 이 모호한 느낌이 정확히 무엇인지 묻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말한다. “세상에 정확한 것은 없다. 느낌-운동의 모호함, 그 더듬거리며 침투하는 시각 운동을 즐길 수 있다면 잠재성의 언어를 터득한 것이다.” 작가가 중층으로 겹겹이 구축한 이미지들의 이면에 내재된 잠재성의 차원은 그렇게 열린다.
전시 <박제된 시대> 곳곳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감상의 묘미가 될 것이다. 작가는 박제된 그림 속에 생기를 일깨운다. 여전히 욕망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약동하는 에너지들을 우의(愚意)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누군가 기억해 준다면 고마울 이 시대의 소리없는 외침에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려 하는 작가의 진지하면서도 위트넘치는 위로를 느껴보길 바란다.
3월 11일 공식 오프닝 행사 없이 전시가 시작되며, 전시 기간 중 12시부터 18시까지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월 휴관). 아트노이드178(성북구 삼선교로6길 8-5(B1))은 ‘경계-감각-언어’의 관계를 탐구하는 문화예술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