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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엽 : 거울 속 원더랜드 (Wunderland im Spie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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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뭉글뭉글한 헤테로토피아

김태훈

1.
거울은 예술에 대한 오래된 비유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가 현실을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한 모방, 즉 미메시스(mimesis)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때 텍스트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 그림에서는 색과 형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eri poietikes)>에서 말했다. 이처럼 기원전 335년쯤이나 지금이나 예술로서의 그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거울이 무엇을 비추고 있고, 보는 사람은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인지에서 나아가 테크놀로지가 거울의 기능을 다채롭게 변주하고 실천하는 것이 예술의 현재이다. 이러한 현대 예술의 지평에서 최인엽은 다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다. 흥미롭게도 거울을 가리키는 독일어 'Spiegel'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비추겠다는 언론의 소명을 피력한 전후 독일의 최고 권위 시사주간지 'Der Spiegel'의 이름이기도 하다. 슈피겔지가 대변하는 현실과 그에 대한 목소리는 작가가 보는 거울 속 원더랜드 안에서는 비치지 않는데,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전시의 타이틀을 직역한 한자어인 요지경(瑤池鏡)의 역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의 원더랜드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을까?


2.
최인엽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배적 테마는 단연코 '움직임(die Bewegung)'이다. 여기서 움직임은 드로잉의 대상에서 현재 작가가 관찰하고 포착하는 대상으로 확장된다. 전자가 신체의 동적 움직임이라면, 후자는 영어 'movement'가 그러하듯 심리적이거나 기질적인 변화나 감동, 조직적인 운동이나 특정 인물의 행동 변화, 사회 정세 등의 동향이나 진전을 아우른다. 가시적인 형태만으로 나타나는 물리적 움직임에 비해 컨텍스트를 필요로 하는 상징이나 암시적 이미지는 최인엽의 작품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수한 색과 형태만이 언뜻 유동하고 뒤섞이거나 녹아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색으로 구분되는 이 알 수 없는 무정형의 오브제들은 작가의 터치에 따라 각기 다른 물질 상태로 존재한다. 파동이나 거친 터치, 뭉글뭉글하거나 죽 흘러서 떨어지는 듯한 이 모든 색의 형태는 실제 캔버스 위에 켜켜이 쌓이며 층위를 이룬다. 마치 지층의 단면을 보지는 못하지만 정지궤도와 같은 높이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구도에서 최인엽 작품의 경위(經緯, 경도와 위도)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3.
<기억의 지층>에서 구상(具象)은 객관적 견지(見地)를 위한 거리를 버림으로써 몸집을 키우고 비대해진다. 정물이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한 원근법 대신 면 위에 자리한 구도, 형태, 색채, 그리고 이를 채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계와 층이 그림의 단면과 전면에서 실질적 공간을 차지한다. 터치에만 집중한 끝에 화면 위에 노출된 색과 물성은 거친 물질적 존재감을 피력하는데, 가장 중앙의 유성과도 같은 궤적을 지닌 검은 오브제는 유독 단단해 보인다. 그 견고한 질감은 이 추상적 구상과 무질서한 색의 파노라마 안에서 감각적으로도, 의미상으로도 균형추의 역할을 한다. 짙푸르거나 검은 반사광이 주는 광물성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액체 상태와는 상반된다. 물감으로 만든 연못에 뒤섞이지 않는 이 검은 실체는 일종의 시그니처처럼 다른 작품 속에서 등장하면서 채색 단계 이전의 단순한 검은 선이 한데 집약된 듯한, 엉뚱하고 의미 없지만 공들이고 집요한 낙서와 같은 인상을 준다.


<따뜻한 언어 속>이나 <제1층의 세계>에서도 나타나는 검은 오브제는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작가의 견지를 투영하는 한편, 기억 속 헤테로토피아를 생성시키는 주요한 행위와의 연결고리이다. <원더랜드>에서의 과밀하고 짙은 농도의 물성과 선연한 색감의 충돌은 뭉그러지고 흐르고 피어오르고 엉기고 죽 늘어나는 듯한 비정형의 집합으로 표현되는데 이 역시 검은 오브제가 지니는 집요함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최인엽의 작품은 기억 속 헤테로토피아를 묘사하기보다는 그 헤테로토피아에서의 행위와 보이지 않는 기류를 회화의 충실한 질료인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작업의 성격은 드로잉이라는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읽히는 한편, 회화 자체의 심미감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대한 알레고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결국 최인엽에게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갈망과 경험은 마치 유폐된 장소 어딘가의 벽에 그린 낙서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 말고는 누구도 찾지 못한 속마음과 목소리는 점차 광물의 시간을 따르듯 석화되지만, 우리는 사실 헤아릴 수 있는 시간 속에서 그린 최인엽의 그림을 보면서 헤테로토피아에서의 복잡하고 산란한 기분을 낯설게 공감할 수 있다. 예컨대 <원더랜드>에서는 식용 색소와 향료를 연상케 하는 선명하고 화려한 색이 이질적이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한편, 풍선껌이나 젤리에 대한 말랑말랑하고 끈적끈적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4.
최인엽의 오브제는 이러한 모종의 점성이 결집한 형태를 띈다.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고 응고될 때의 부드러운 감촉과 접착력은 음지의 작은 생명이 노니는 습기나 미끄러운 표피를 닮았다. 현미경으로 바라본 미시적 생태계와 유사한 작품의 정경은 ‘블롭(blob)’, 즉 점균을 연상케 한다. 블롭(blob)은 황색망사점균의 별칭으로 원래 액체 방울이라는 뜻이다. 곰팡이와 아메바 같은 원생동물의 중간에 위치한 점균은 단세포로 이루어진 개체가 모여서 이동하며, 포자를 통해 번식한다. 회화의 영역에서 물감이 지니는 액체성은 사실 인공적인(artificial) 것이지만, 여기서 발생한 유동성이나 점성은 무생물도 생명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성질이기도 하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에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무정형의 구상을 통해 최인엽은 현실과 닮았을 것을 모조리 해체하고 오로지 경계를 구분하는 목적으로만 선과 형태를 자유로이 활용한다. 특히 유리된 밀폐 공간의 화학 반응을 떠올리게 하는 색의 조합은 기묘한 생명의 징후나 공존으로 비치면서 촉각이 우선시되는 정경이 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나 느낌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결국 어떤 형상이 주는 은유인데, 우리가 끊임없이 호흡기를 막고 손을 닦는 촉각적 경험을 통하여 팬데믹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최인엽은 촉각의 시각화 같은 감각적 재현에서도 고유한 미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회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실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움직임에 대한 천착이 곧 작가로서의 움직임, 즉 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원더랜드, 2022, acylic on canvas, 91x116.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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