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과제로 가득 찬 현실 속에서, 엉켜버린 생각을 안은채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얼마나 지나왔을까 멈춰 선 곳에서 인연처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담벼락에 걸쳐진 휘어진 철사였다. 아니 휘어진 선 사이로 투영된 사람의 형상이었을 것이다.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경험한 내 감정을 ‘철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상되는 형상으로 재탄생 시켜보고 싶었다. 딱딱하게 모양이 잡힌 철봉과 달리 부드럽게 구부러지며 모양을 만들어 가는 철사는 현실을 반영한 상상의 이미지에 생동감을 불어 넣기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굵기의 철사를 부드럽게 구부리거나 선을 꼬아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낸, 조형작품 같은 철사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철사그림은 얼핏 보면 철사를 걸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림이라는 걸 알게 되고 다시 뒤돌아서서 멀어질수록 연상되는 형상이 드리워지게 된다. 일어났던 과거의 기억,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건들. 그 안에서 느낀 감정과 깨달음을 철사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을 알아 가는 시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게 되었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삶의 일부분으로 남기게 된다.
그림 속 철사의 형상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어낸 이미지들과 그 잔상을 토대로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생생한 형상은 바람을 담은 듯한 작품명과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작품을 통해 과거를 소환해 회상하게 하거나 미래에 대해 바람을 빌어보며 작품 감상의 충분한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듯 철사는 나를 아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소재가 되었으며 ‘나’라는 존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