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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뉴욕시대와 한용진, 문미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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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 전경 (한용진, 문미애)_2 ⓒMoon _ Han




김환기 뉴욕시대와 한용진, 문미애 
2022년 6월 2일 – 6월 30일
현대화랑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8)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를 거쳐 뉴욕에 정착한 김환기(1913-1974)에게 타향에서 만나 가족 이상의 애정을 나누던 존재가 있었다. 그들은 한용진(1934-2019)과 문미애(1937-2004) 작가이다. 한용진, 문미애 작가는 서울대 미대 선후배로 만나 1962년 부부의 연을 맺은 작가 부부다. 그들은 1964년 처음 뉴욕을 경험하고 돌아간 뒤, 한국에서의 보장된 미래를 뒤로하고 67년 본격적으로 뉴욕에 정착해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다.

김환기, 한용진의 인연은 한용진이 경기고 3학년이던 때에 홍익대학교가 주최한 <국제학생미술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던 김환기가 한용진에게 상을 수여하였다. 이후, 1963년 《제7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김환기와 한용진이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그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김환기는 《제7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대표 작가로서 <섬의 달밤>(1959)등 3점의 회화를 출품하였고, 한용진은 당시 주철조각 <무제>(1963)를 출품하였다. 이 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김환기는 1963년 10월 20일, 현대미술의 요람 뉴욕에 정착하게 되었고, 한용진은 1964년 국제교육재단(IIE: 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김환기, 김향안 부부의 예술 여정에 한용진, 문미애 부부가 함께 동행하였다. 이들은 각별한 사이로 뉴욕에서 동고동락하며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서로 힘이 들 때 위로가 되고 지원하는 사이가 되었다. 

1층 전시 전경 (한용진, 문미애)_3 ⓒMoon _ Han


갤러리현대는 뉴욕에서 활동 중이던 문미애 작가의 초대전을 1984년과 88년에 두 차례 개최하였고, 1994년에는 한용진 작가의 초대전을 개최하였다. 특히 문미애 작가의 두 차례 국내 개인전은 그가 2004년 작고하면서, 그의 생존 시기에 그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색조와 공간 세계를 한국 미술계에 소개한 유일한 전시가 되었다.

전시장의 1층에는 문미애와 한용진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이번에 전시되는 문미애의 작품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문미애는 깊은 색감과 터치로 앵포르멜 운동에 동참하던 자유 정신에 입각하여 평생 일관된 작업을 했다. 화면을 나눈 면에 과감한 붓 터치로 색면을 채워 넣은 <무제>(1980년대), 수직, 수평의 화면 분할을 중첩시켜 마치 사각형을 반복한 바탕에 물감의 중첩으로 탁하고 깊어진 색채를 채워 나간 <무제>(1980년대) 등 자유로움과 절제가 동시에 나타나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화면을 이루는 작업들이 전시되었다. 함께 전시되는 한국 추상 조각 1세대 한용진의 작업은 돌을 깎아 일정한 형태를 만들기보다 돌 자체의 재질과 형태를 존중하여 최소한의 손길로 다듬어낸 작품들이다. 이러한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한용진의 그의 작품은 다소 거칠고 투박하며, 인위적으로 조각하기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느낌을 준다. 우직한 돌 조각에서 올곧은 작가의 삶이 드러난다. 그는 2011년부터 제주도를 오가며 제주의 현무암으로 작품을 제작하여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단순한 형태의 간결한 미감이 돋보이는 한용진의 조각은 과감한 생략과 강조로 오히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단순함에 깃든 삶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身)'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 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차다." 
– 1967년 10월 13일 김환기의 일기.

전시장의 2층에는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뉴욕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963년부터 1974년의 시기에 김환기는 순수 추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김환기 말년 화풍을 대표하는 전면점화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이는 김환기의 숱한 실험과 고민의 결과였고, 김환기의 조형적, 그가 종이 작업, 신문지, 한지 등으로 작업한 재료적인 시도에서도 알 수 있다. 김환기는 종이를 이용해 공간을 탐구하는 장으로 삼았고, 섬세한 점과 선, 면을 통해서 그만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조형 공간을 다양하게 해석해냈다. 김환기는 종이가 머금은 맑고 투명한 액체가 화면에서 서서히 새나오거나 뿜어 나오는 듯한 느낌을 즐겼다. 그는 이후 캔버스 작업에서도 그 느낌을 유지했다. 


2층 전시 전경 (김환기)_3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이번 전시 《김환기 뉴욕시대와 한용진, 문미애》는 60~70년대 뉴욕이란 머나먼 이국에서 예술가로서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겨내고, 그 힘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서로 큰 힘이 되어 준 김환기, 한용진, 문미애 작가의 우의(友誼)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서로를 응원하며 각자의 예술을 발현한 김환기, 한용진, 문미애 작가의 각각 15점씩 총 45점이 소개된다. 






김환기, 무제 20-III-71, 1971, 종이애 유채, 55.5 x 41cm ⓒWhanki Foundation · Whanki Museum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작품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재)환기재단에 있습니다.


문미애, 무제, 1980s, 캔버스에 유채, 162.8 x 137.5cm ⓒMoon _ Han


한용진, 무제, 1985, 화강암, 청석, 위 61 x 15 x 28(h)cm, 아래 46 x 40 x 34(h)cm ⓒMoon _ Han


작가에 관하여 
김환기 (1913-1974)는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 뒤 뉴욕으로 가 작고한 1974년까지 10여년간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확고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였다. 김환기의 “뉴욕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963년부터 1974년의 시기에 그는 과도기적인 모색기를 거쳐 순수한 조형 언어인 점, 선, 면을 통해 작품 화면을 내밀화 시켜갔다. 김환기는 또한 본격적으로 1968-9년부터는 화면에서 구체성을 제거하고 완전한 추상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뉴욕시기는 변혁과 자기 완성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찬 시기였다. 이 시기 고향에 그의 내면과 상황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이다. 김환기는 머나먼 타향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며, 그의 인생 후반기의 역작들인 전면점화를 탄생시켰다.  



한용진_2000_경기도 ⓒMoon _ Han


한용진 (1934-2019)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를 졸업하고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1981년 뉴욕 컬럼비아 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1962-63년 국전에 연속 입상했으며,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국제무대에 진출했다. 그는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선정되어 작품을 출품하였고, 1964년 국제교육재단(IIE: Institute of Interntional Education)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다트머스대학 홉킨스센터에서 1년간 수학한 후 1966년 덴마크 현대작가 프로젝트에 7개월간 참여하며 헤르닝 신실험대학 화랑에서 문미애와 2인전을 개최하였다. 1967년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 정착한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김환기의 묘비, 이상의 문학비, 서울 올림픽 선수촌 한국전 추모비 등을 제작하였다.


문미애_1990년대_뉴욕 ⓒMoon _ Han


문미애 (1937-2004)는 《악뛰엘전》(1962) 등 한국의 초기 추상미술운동에 참여했던 작가로, 1964년 도미 후, 뉴욕에 정착하였다. 문미애는 1984년 갤러리현대에서의 개인전에서는 과감한 붓 터치로 캔버스를 채워 넣는 열정을 보여줬다. 1988년 개인전에서는 수직, 수평 화면 분할을 중첩시켜 사각형을 반복한 바탕에 물감의 중첩으로 탁하고 깊어진 색채를 채운 작품들을 선보였다. 문미애는 형태를 재현하고자 하는 유혹을 철저히 멀리하고, 깊어진 색감과 터치로 앵포르멜 운동에 동참하던 자유 정신에 입각한 화면으로 평생 일관하며 작업했다. 





갤러리현대
1970년 4월 4일, 인사동에 ‘현대화랑’으로 첫발을 내디딘 갤러리현대는 고서화 위주의 화랑가에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파격적 행보이며 미술계 흐름을 선도해 왔다. 이제는 ‘국민화가’로 평가받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세상에 빛을 보았고, 김환기, 유영국,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등 추상 미술의 거장과 함께 전시를 개최하며 단색화 열풍이 일기 오래전부터 추상미술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의 흐름에 발맞춰 호앙 미로, 마르크 샤갈, 장 미셸 바스키아, 크리스토 부부 등 해외 거장의 미술관급 전시를 열며 미술계 안팎의 화제를 모았고, 1987년부터 한국 갤러리 최초로 해외 아트페어인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한국 미술을 해외 무대에 소개하는 선구적 역할을 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곽인식, 이승택, 박현기, 이강소, 이건용 등 한국의 실험미술을 주도한 작가들의 작품도 갤러리현대에서 많은 관객과 만났다. 이 밖에 김민정, 문경원, 전준호, 이슬기, 양정욱, 김성윤, 이강승 등 동시대 미술을 이끄는 중견 및 신진 작가를 지속해서 발굴 및 소개하고 있다. 각각 1973년과 1988년 창간된 미술전문지 『화랑』과 『현대미술』은 한국의 동시대 아트씬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로 남아 있다. 서울 삼청로에 갤러리현대와 현대화랑이라는 두 전시장 이외에,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에 한국 미술을 알리는 플랫폼인 쇼룸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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