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2022-06-16 ~ 2022-06-26
임립
무료
041-852-6038
마음의 고향, 동심, 휴머니즘의 집(house)
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 대표)
작가 임립(林立)은 1945년 계룡산 자락 봉곡마을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는 등 자연 속에서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면서 성장하였다. 투박하고 풋풋한 어린 시절의 성장 토양은 훗날 임립의 작업 세계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화가 지망생으로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미술부에 들어갔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면서부터는 어느 미술사조에도 휩쓸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내면에서 드러나는 심상적 표상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흔들림 없이 추구해 왔다. 형상이든 비형상이든 자신만의 시각에서 순수한 조형을 창조하는 데 최선을 다해왔으며, 자연과 삶의 다양한 대상을 통해 세계 자체가 지니는 생명성을 구현하는 데 많은 관심을 지녀왔다. 그는 국내외 대가들의 작품들에서 크게 감동받거나 영향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는데, 임립의 작가적인 그릇이 그만큼 크고 깊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말(馬) 그림의 일인자라 일컬어지는 북송대 이공린(李公麟)은, 자신의 스승은 오직 마구간과 자연에 있는 다양한 말들뿐이라면서 생동하는 말들에게서 배우고 그것을 그리기에 정성을 다했는데 중국의 대가 가운데 몇 사람도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하였다. 임립 역시 이와 비슷한 경우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자신의 인생역정과 자연에서 비롯된 모티브를 중시하고 이를 스승 삼아 관조하며 응시하여 내면에서 응집시켜 표출해낸 것이다. 주된 소재는 사람을 비롯하여 새, 석류, 꽃 등 생명을 지닌 동식물이나, 돌, 토기, 집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정감을 자아내는 것들이었다.
근자에 다양한 마을과 도시의 집을 소재로 조형성을 실험해 온 그의 반형상적인 작업은 특히 희망과 평화를 꿈꾸며 ‘동심(童心)’이라는 맑은 이미지를 화면에 심도 있게 담아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화면 안의 다양한 형태의 집들에는 현대인의 아련한 추억과 감흥이 자리하고 있는데, 가족이나 고향, 모성에 대한 애틋함, 인간사 가운데서의 평화 등이 작가의 내면에서 표출되며 색다른 조형성으로 승화된 경우다. 아이들의 정감이 스며있는 듯한 여러 종류의 집들은 동심 어린 이미지들이 승화되거나, 시인의 시상(詩想)이 깃든 감성으로 대상을 담담하게 드러낸 것 같다.
그러기에 단순한 표현 행위를 넘어 동심 어린 시성(詩性)과 감흥을 바탕으로 한 조형성을 표출해내는 작가의 작업 세계는 사색적이면서도 감성이 풍부하다. 이는 다양한 집을 소재로 한 <Color Fantasia> 시리즈에서도 잘 드러난다. 삶의 흔적이 가장 잘 배어있는 여러 형상의 다양한 집들을 통해 평화를 상징화하고, 동심 어린 조형적 이미지를 드러내며, 아름답고도 신선한 조형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는 동심, 휴머니즘, 마음의 고향, 자연의 본성 등 인간적·자연적인 측면을 깊이 사색하고,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삭막한 삶에 희망과 위로와 활력을 더해준다. 더 나아가 자연의 본성에서 비롯된 이미지를 시심과 더불어 캔버스에 담아 아름다운 조형성으로 승화시킨다.
이처럼 작가는 자연과 동심에서의 감성적 이미지를 조형화시키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시성이 농후한 소재를 작품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반추상적 표현 방법을 활용한 듯하다. 알 듯 모를 듯한 형상이나 담담한 선과 색 그리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조금은 비균제성을 지닌 조형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시작한 부드럽고 온유한 <Color Fantasia> 시리즈는 아름다운 시를 감상하는 느낌을 주며, 노스탤지어(Nostalgia, 鄕愁)적인 감흥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형태의 층을 이루는 가옥들을 통해 미묘한 감흥과 정감을 드러내는 독특한 형상미에서 인간미와 자연미마저 드러난다.
마을과 도시를 해체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를 비형상적인 다시점(多視點)의 관점에서 조형화하고자 하는 그의 작품은 예술론적인 혹은 미학적인 분석 이전에 매우 세련될 뿐만 아니라 깊이감이 있고 숙련되어 시지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시지각적인 즐거움은 창의성, 독창성, 실험성, 현대적 감각의 예술성, 수준 높은 기교 등이 한데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다. 이는 현대적 감성과 더불어 우리 고유의 조형적 사고와 감흥, 문화적 이질성과 동질성 등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다원주의적 하모니즘(Pluralistic harmonism)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반구상적인 작업은 상당히 성공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진행되었으며, 독특한 예술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예술론적·미학적 분석 이전에 담론의 가치가 있고, 회화적으로도 의미를 지니며, 조형적인 이미지와 색감 등에서 깊이감과 담담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감흥은 현대적 감성과 더불어 우리 고유의 조형적 사고와 감흥, 문화적 이질성과 동질성 등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형성된, 즉 반형상적 모성애의 하모니즘(maternal love-harmonism)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때 알라 프리마(Alla-prima) 기법을 변형시킨 듯한 기법으로 내면에 감지되는 감성적 감흥을 즉흥적·순간적인 포착력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철저하게 순간적인 직관력을 필요로 한다. 튜브물감을 직접 짜서 화면에 바르거나, 나무막대 혹은 페인팅 나이프로 스크래치를 하는 등 자유롭고도 대담한 표현성은 마치 아이들이 진흙 놀이에 푹 빠지는 것처럼 자유분방하다. 이처럼 대상과의 미적 현상을 넘어, 내면의 세계로부터 더 정제된 듯한 시적 정감이 내재하는데, 사람에 대한 훈훈한 마음과 사랑, 작가의 소중한 추억 등이 시적으로 승화된 면이 강하다. 이는 내면세계의 표출이나 대상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넘어, 사랑, 희생, 아픔, 온유 등의 단어들이 작가의 회상 속에서 전율과 더불어 압축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여느 보편적·평면적 추상 작업과는 달리, 인간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조형 매개체가 새롭게 설정되어 농후한 감성으로 조형된 경우라 생각된다. 최근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술평론가 데이브 히키(Dave Hickey)는 ‘모든 예술은 관람자에게서 나온다.’라고 역설하여 주목받고 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문화이론에 미술비평이 기대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는 잊혔다고 역설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 예술 작품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상실했다고 역설하며,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한다. 이처럼 예술 작품은 총체적으로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예술가의 주관을 통해 정화된 새로운 세계이자 또 하나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임립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생명의 세계, 또 하나의 현실은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히키의 관점에서 볼 때 작가 임립의 예술관과 시각은 관람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純粹美)’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미술이 너무 많은 이론으로 범벅되어 아름다움에 진지하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여기며, 어떤 미술의 장르에 서서 자신의 작품을 합리화하기보다는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인간적·자연적인 것과 순수함에 호소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해 왔다. 그의 <Color Fantasia> 시리즈도 작가의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소박하면서도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면서 화목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꿈과 희망이 있고 조지 오웰의 파랑새가 존재하는 꿈같은 세상이 바로 화가 임립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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