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2022-05-28 ~ 2022-07-17
권오상, 권현빈, 김동희, 김인배, 서도호, 이불, 이수경, 임정수, 정지현, 조재영, 차슬아, 홍자영
02-3217-0271
전시기간│ 2022년 5월 28일 – 7월 17일
참여작가│ 권오상, 권현빈, 김동희, 김인배, 서도호, 이불, 이수경, 임정수, 정지현, 조재영, 차슬아, 홍자영
주 최│하이트문화재단
후 원│하이트진로주식회사
관 람 료 │무료
관람시간│목요일-일요일, 12 - 6pm
하이트컬렉션에서는 2022년 5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기획전 《각》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권오상, 권현빈, 김동희, 김인배, 서도호, 이불, 이수경, 임정수, 정지현, 조재영, 차슬아, 홍자영(이상 12명)의 작업을 통해서 ‘동시대 미술에서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개별적인 입장과 해석을 살펴본다. 인류 문명의 시원과 나란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장구한 전통을 가진 매체 조각은 기록, 기념, 사냥, 장식, 사치, 우상숭배, 실용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며 역사를 견인해 왔다. 전통적 조각이 공고히 해온 양감에 대한 집착은 1960년대 이래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미술의 영역 안에서의 조각은 ‘형상’을 넘어 ‘장소’가 되고 ‘건축’이 되며 ‘빛’과 ‘움직임’ 그리고 ‘상황’까지도 포괄한 채 내부논리로부터 벗어나 그 의미와 범주를 해체, 확장 시켜 나아갔다. 그렇게 (형상,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한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술계에선 국내외적으로 (20세기 혹은 더 이전의) 과거의 조각을 다시 보고, 이를 참조, 재해석하는 듯한 현상이 목격된다. 동시대 조각은 과거의 조각을 참조하되 현재 시점에서 다룰 수 있는 새롭고 유용한 것들, 이를테면 신재료나 기술, 공법, 방법론 등을 결합해 ‘더 새로운 조각’을 향한 결탁을 시도한다. 역사와 시간의 연대기적, 선형적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조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각》은 2022년 현재, 동시대 미술 안에서 조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또 어떤 모습일지, 그 변화의 흐름을 짚어보려는 시도이다. 전시는 참여작가 12명의 작업을 어떠한 흐름이나 단위로 묶어서 역사에 안착시키기보다는, 각자가 집중하는 작업의 일각을 조망하고, 이를 통해 오늘날 조각이라는 매체가 품고 있는/품을 수 있는 다단한 스펙트럼을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이러한 기획의 태도는 전시 제목과 연결되는데, ‘각’은 조각의 각(刻)이라는 의미는 물론 면과 면이 만나 이루는 모서리로서의 각, 따로 혹은 여러 개를 의미하는 각, 더 나아가 동물이 갖고 있는 뿔로서의 각 등 여러 의미를 포괄한다. 이에 전시는 ‘각’이라는 단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동시대 조각이 갖는 모양새에 덧대어보며, 전시 제목 ‘각 Kak’은 오늘날 열린 개념으로서의 조각을 아우르는 의미를 갖는다.
참여작가 12명은 돌, 모래, 나무 등 자연 재료부터 아크릴, 아이소 핑크, 스티로폼, 우레탄, 스테인리스 스틸, 콘크리트 등 산업적 재료까지 다양한 재료를, 손에서부터 3D 프린트까지 다른 기술로, 핸디 포켓 사이즈부터 건축적 스케일까지 오고가며 다룬다. 전시장에는 비인간 동/사물의 신체가 군집해 (조재영, 임정수) 질감과 분위기를 흉내 내며(이수경, 차슬아, 임정수)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과 그것의 가시적 표상을 드러낸다. 조각가의 입장에서 본다(seeing)는 행위의 역동성을 질문하고 움직임을 포착하며, 되기(being)를 자처(정지현, 김인배, 홍자영)하는 한편, 형상보단 상황에 집중해 추상적 양태로 던져두거나(권현빈), 개념으로서의 조각이 아닌 실존물을 제안(김동희)하기도 한다. 그것은 형태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에서 출발(김인배)하여 재료의 가능성을 탐구하고(권오상) 사적 기억과 경험, 역사적, 문화적 레퍼런스를 뒤섞은(이불) 조각이 되어 무시간성의 세계에 제각각 안착한다. 그렇게 제물 제단(차슬아)으로 문을 연 전시는 묘비(임정수)로 문을 닫는다. 아주 진지하거나 유희적으로, 무겁거나 혹은 조금은 가볍게. 이제, 조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각의 출발이 우상이었다면 그것은 파괴하라고 있는 것이고, 전통은 전복하라고 있는 것이며 위엄은 갱신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 이 조각들을 바라보자.
한편 이번 전시는 2010년 하이트컬렉션 개관과 함께 전시장 중앙에 영구 설치된 서도호의 <인과>(2009)를 기획에 포함시킴으로써 그간 필연적으로 하이트컬렉션이라는 공간과 함께 관람객에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이 작품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시각의 단초를 마련한다. 공간의 과거, 현재, 미래와 맞물려 작동해온(작동해올) 이 조각을 중심으로 전시는 물리적 존재로서의 조각뿐 아니라 그것들이 지나온 시간, 재탄생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12명의 작가와 그들의 조각을 통해 표면과 형태(존재)의 균형과 긴장, 그것들이 섞이고 구별되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풍경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전시 《각》이 유도하는 오늘날 조각의 풍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응답으로써 전시는 동시대 조각을 하나로 꿰어내기보다는 작가들의 작업 면면을 비추는 것에 집중하는 만큼 그 작업들을 ‘한 시야’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전시장 2층 플로어(floor) 공간에 펼쳐본다. 이 조각숲 속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가능성의 풍경을 발견하길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여기 도열해 있는 조각 군상의 모습은 지금 조각의 현 상황을 지형도의 일부이자 전시 《각》을 되새김질하는 섹션이 된다. 그리하여 《각》 속 조각들이 만든 상황은 대위법적인 장이자 불/화합의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전시는 (재)하이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하이트진로가 후원한다.
작가 및 작품 소개
권오상(b. 1974)의 <힘에 관한 집착적 레포트>(1998)와 <참을 수 없는 무거움>(1998)은 이번 전시 출품작들 중에서 유일하게 밀레니엄 이전 작품인데, 사진조각이라 불리는 권오상 작업의 시작이다. 한때 권오상은 조각가로 불리기 보다 사진작가들의 전시에 더 초대된 적이 있다. 일례로 <액션 샘플러>(2003)는 사진작가 배병우, 이윤진, 이중근이 함께 참여한 《리얼 리얼리티》(국제갤러리, 서울, 2004)에 출품되었다. 작품의 실제 모델은 백현진이다. 권오상은 멀티 렌즈가 있어서 한번의 셔터로 4개의 연속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로모그래피 액션 샘플러로 백현진의 얼굴을 촬영하였다.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시점부터 지금까지 권오상은 대체로 ‘사진으로 조각한다’는 문장으로 쉬이 설명되어지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재료를 통해 조각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하고,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매체 융합을 시도했음이 분명하다. 모델 지지 하디드의 얼굴을 입힌 <비스듬히 기대 있는 형태 2>(2020)는 헨리 무어의 와상 시리즈에서 착안한 작업이다. 판데믹을 겪으며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권오상은 이를 무어의 와상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의 일상과 최근 한창 생각하는 것들을 작업에 투영하였다고 한다. 무어의 와상이 느슨하고 유기적인 청동 조각으로 공간과의 호흡을 보여주었다면, 권오상은 표면 전체를 광고 사진으로 덮어 훨씬 세속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는데 그럼으로써 관람자의 시선을 조각의 신체로 끌어당긴다.
이불(b. 1964)의 <나의 거대서사: 바위에 흐느끼다…>(2005)는 유토피아에 대한 집단적 열망들(그리고 실패들)과 작가의 사적인 기억과 인식이 융합된 지형학적 서사를 구성한 설치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5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는 높이 약 3미터에 달하는 타워는 미국의 건축가이자 건축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휴 페리스(Hugh Ferriss)의 저서 『미래의 대도시(The Metropolis of Tomorrow)』(1929)에 묘사된 마천루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 타워에는 실현되지 못한 러시아 구성주의 빌딩들이 박혀 있고, 이어지는 계단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에 나오는 스타이너의 아파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중을 휘감는 고속도로에 사용된 베니어합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찰스 임스가 고안한 부상병을 위한 부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불은 17세기 영국의 의사이자 작가인 토마스 브라운의 『호장론(Hydriotaphia)』(1658)에 등장하는 구절을 인용하여 전광판의 번쩍이는 문장을 구성하였다. 토마스 브라운의 문장인 “바위에 흐느끼다”는 테베의 여왕 니오베가 자신의 오만함으로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자식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를 비탄하다가 몸이 굳어 바위가 되어서도 울었다는 신화를 연상시킨다. <나의 거대서사: 바위에 흐느끼다…>는 이불이 유토피아를 꿈꾼 모더니즘의 신념 등 거대 담론과 신화를 해체하여 이질적인 재료들로 새롭게 구축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자 서사다.
서도호(b. 1962)의 <인과>(2009)는 거대한 토네이도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첫 대면을 하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작품은 하이트컬렉션의 전시공간을 조성하면서 2008-2009년에 걸쳐 제작되었다. 토네이도 형상이자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 형태의 <인과>는 하이트컬렉션에 앞서 2007년 리만 머핀 전시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4]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 서도호의 카르마 시리즈는 우리의 인생이 인연의 결과라는 의미를 함포하고 있는데, 따라서 <인과>는 일개 개인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집단을 이루면 토네이도처럼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는 작가의 생각을 담았다.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형태와 구조로 인해 <인과>는 장소특정적인 설치작업이며,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연결된 인물상들은 업보라고 하는 불교 개념에 더욱 닿아있다. 특히 하이트컬렉션의 중앙을 차지하는 이 작업은 높이 약 8미터, 약 11만개에 달하는 인물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일 정중앙 하부에 있는 인물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 그 어깨에 올려진 무게가 거대한 업보에 비유되어지곤 한다. 한편, 이 작품의 제작 및 설치 과정은 컴퓨터 모델링, 아크릴 주물 캐스팅, 대규모 장비와 인력이 동원된 설치 진행 등 2년에 걸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하이트컬렉션의 개관전 도록으로 남긴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제작 과정에 대한 궁금증은 이때의 기록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현(b. 1986)의 근작에 대하여 전효경은 “지식 체계 안에서 형을 분류하고 정의할 수 있는 관계나 근거를 규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 사물 그 자체의 형의 문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실재하는 것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에게 사물에 대한 첨예한 감각을 고민하는 일은 명확하게 눈 앞에 있고 손에 잡히는 것이지만 일순간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고민이 된다”고 평한 바 있다(전효경, 「정지현: ‘만들기’의 실천」, 『월간미술』(2019년 3월호), p. 113). <바위책>(2018)은 철, FRP, 유리, 타일 등의 산업재료와 구부러진 형태를 유지한 채로 도장된 운동화를 하나의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성질이 다른 각각의 재료는 물리화학적으로 가해진 강제적인 접합, 결합을 최소화 하여 가볍게 얹혀 있거나 단순하게 결합되어 있다. <바위책>이란 제목이 혼합되지 않는 두 명사의 단순결합인 것처럼 작품 역시 이질적인 물질 고유의 상태를 각각 유지한다. <공공의 손 모음>(2018)은 서울 도심에 세워져 있는 전봉준과 전태일 동상의 각각 왼손, 오른손을 콘크리트로 캐스팅한 작품이다. 복제와 반복은 조각이 산포하여 존재하는 기본적인 방식이지만 정지현은 이들을 산포하지 않고 전시장 한 곳에 모았다. 그리하여 조각이 공공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이 어떤 목적인지 역으로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한편, <버드잇버드>(2013)는 정지현의 세번째 개인전 《버드 잇 버드》(인사미술공간, 서울, 2013)에 소개되었던 작가의 비교적 초기 작업이다. 새가 새를 먹는다지만 먹는 새는 눈이 가려졌다. 잔혹한 우화를 연상시키는 제목은 그러나 다소 아이러니한 형상으로 인해 의미와 형상을 어긋나게 만든다. 그의 초기작은 ‘핑-퐁’처럼 반복이나 댓구의 구조가 많지만 리시브에 대한 의심, 공공연한 어긋남으로 귀결되곤 하였다.
권현빈(b. 1991)의 <수영금지>(2019)는 행위를 추동시키는 상태로서 수영금지이고, 은유를 할 수 있는 단어로 작가가 선택한 제목이다. 작가는 커다란 육면체 스티로폼 한 덩어리를 아세톤으로 녹여서 일정하게 구멍을 뚫고 표면은 잉크, 퍼티, 레진으로 마감하였다. 아세톤과 만난 스티로폼의 화학적 변화는 자연의 바위가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겪어 형성되는 포트홀을 닮았다. 그러나 작가가 추동시키려는 행위는 최종적인 형상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를 닮은 상태 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구름, 하늘, 물 등 계속 변화하는 대상에 대한 사유와 상상에서 작업을 출발하곤 하는 권현빈은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의 상태나 가능성에 대해서 자연스레 생각하곤 하며, 주로 석재, 스티로폼, 합판, 종이 등 그때그때 적합한 물성으로 변화나 가능성을 연결하여 그 사유의 흔적을 조각적 행위로 남긴다. <허밍 파사드>(2022)는 백색 대리석에 잉크가 스며들도록 하여 선묘를 한 드로잉 작업이다. 작가가 사용한 대리석의 성질은 안료를 제법 잘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종이 위에 그은 선들처럼 두 물성은 섬세하게 반응하였다. 대리석을 사용한 또 다른 작품들인 <구름> 연작은 전시장 바닥에 흩어져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구름의 형태를 이룬다. 이전 작업들보다 훨씬 큰 규모로 제작한 <구름>(2022)은 하이트컬렉션의 지하 전시장 바닥을 하늘 삼아 둥둥 놓이게 되었다. 총 세 덩어리의 구름 중에서 두 덩어리는 하나의 큰 대리석에서 쪼개져 같은 절단면을 공유한다. 작업 진행 과정에서 작가는 큰 면을 툭툭 쳐내는 해방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관람객은 작가가 돌을 쪼개어낸 과정, 돌의 평면과 곡면, 방향에 따라 휙휙 순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대리석의 다면적인 모습 등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인배(b. 1978)의 <건드리지 않은 면>(2019)은 잘린 연근 형상으로 통 연근 형상을 만든 작업으로, 압출법 단열재인 10 cm 두께의 아이소핑크를 컷팅하여 수직으로 축적한 작업이다. 작가는 연근을 썰어놓은 형태로만 알다가 썰기 전의 통 연근 형태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 과정을 조각의 제작 방법에 도입해보기로 하고, 김인배는 썰지 않은 연근을 구하여 썰은 후의 그 모습을 보고 연근을 하나하나 만들어 쌓아서 전체 연근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는 썰은 연근을 앞뒤로 스캔하여 평면 정보를 수집한 후 그 모양을 아이소핑크에 확대 프로젝션 하여 그린 다음 외곽선과 구멍을 잘라내었다. 각각의 조각들은 서로 맞닿아 있는 면을 공유하게 되고 같은 모양을 공유하는 면들의 연쇄가 전체 연근을 세워 일으키는 구조가 된다. 작가는 연근 조각들이 각각 공유하는 면이 자르기 전에는 없고, 자르고 나면 둘이 되어버려 개념상으로는 하나이지만 실재 하나로는 존재할 수 없는 면이라고 인식한다. 이렇듯 김인배는 차원의 경계, 즉 점, 선, 면, 공간 등 2, 3 차원의 경계에서 경험하게 되는 시각적 생경함과 시각적 인식 체계의 기본 요소들에 의문을 표하는 조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삼면화: 크기, 동작, 개수>(2020)와 <일정한 거리>(2020)은 상호 형태를 공유하는 작업인데, 먼저 <삼면화: 크기, 동작, 개수>는 덩어리를 조각한 후 그 위를 카본 섬유로 된 직물로 감싸 투명한 레진을 여러 겹 적층한 후 샌딩하여 특유의 질감과 색을 갖게 되었다. 작가는 3개의 덩어리가 한 개체의 변화의 추이를 연속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각각 다른 개체를 표현한 것인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한편, <일정한 거리>는 <삼면화: 크기, 동작, 개수>를 카본 섬유와 레진으로 감싸기 전 조각된 덩어리 상태일 때 촬영한 사진들로 스캔 데이터를 만들어 3D 프린터로 출력한 작업이다. 이 덩어리들 중 하나를 손에 쥐고 <삼면화: 크기, 동작, 개수>를 보게 될 때 만약 모양의 같음을 발견하여 같은 대상으로 인식하는 작용이 일어난다면 관객이 느끼는 그 하나의 대상은 관객 안에 있는 동시에 밖에도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수경(b. 1985)의 <늑대>(2010)는 개인전 《얼굴들》(갤러리 팩토리, 서울, 2012)에 소개된 작업이다. 그는 이 전시를 시작으로 패브릭 조각과 드로잉을 통해 동시대 한국, 특히 서울의 모습을 겹쳐 바라보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현대인들의 의상, 패턴, 패브릭 소재들을 통해 구조, 기능, 결합 등에 대한 조각적 사유를 해왔다. <무제(보디 파츠 시리즈)>(2013)는 그 과정에 있는 작업이다. 이후 《F/W 16》(2016)이나 〈Winter Proof〉(2016) 시리즈의 조각에서 이수경은 작품의 주제가 되는 대상이 입었을 만한 옷의 특성(기능성 소재, 페이크 퍼, 패딩 원단 등)을 발췌하여 동물 혹은 인체의 일부와 같이 어떤 형태적 유사성을 갖거나 특정한 자세를 직관적으로 구현하였다. <시간 입히기>(2020), <라벤더>(2020), <스탠더드>(2020), <미니>(2020), <핑크 블랙>(2020), <비비안>(2020), <트래디셔널>(2020), <업커밍 보디>(2020)는 모두 개인전 《Student Patterns》(원룸, 서울, 2020)에서 선보인 작업으로 그는 교복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동시대 한국에서 교복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특히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여러 트렌드에 걸쳐 소비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교복의 물질적 특징이나 패턴뿐만 아니라 의상의 핏과 관계되는 인체, 가구, 가방 등이 소비자의 심리와 선택에 따라, 또는 사회적 트렌드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반영, 조정하여 새로운 패턴으로 표출되는 상황을, 각각 사물이 지닌 패턴을 분리, 절개, 접합하여 제법 기이하지만 낯설지 않은 패턴으로 나타내었다. 한편, <시간 입히기>는 교복을 좀더 유물처럼 접근한 작업이다. 작가는 훗날 누군가가 교복을 발굴한다면 그 옷에 담긴 시간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것으로 상상될 것이라고 하였다.
김동희(b. 1986)는 공간을 구성하는 재료와 기술을 바탕으로 작업을 제작한다. 새로운 공간을 만나 공간에서 구조물을 연장할 단서를 발견하거나 흔히 쓰는 자재들이 새롭게 보일 때 아이디어를 얻으며 공간의 구조나 기능을 토대로 상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유도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 겸 전시장인 홀1의 공간 일부를 하이트컬렉션으로 옮겨와 기존 공간을 떠난 공간의 일부가 새 공간에 일시 개입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포터블 창고_좌측>(2022)과 <포터블 창고_우측>(2022)으로 명명한 이 작업은 앞으로 쭉 기존 공간을 떠나 새 공간에 일시적으로 이식, 개입하는 운명을 갖게 된다. 한편, <김익현의 리버스 마운틴 답사>(2022)는 현재 김동희가 참여 중인 《아트스펙트럼 2022》(리움, 서울, 2022)의 출품작 <리버스 마운틴>(2022)을 사진작가 김익현에게 일종의 답사 촬영을 의뢰하여 제작한 사진이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전시장의 공간적 요소를 경험케 하기를 바란 김동희는 현장을 떠나 제 3의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김익현의 답사를 통해 간접 경험케 하고, 아울러 자신의 작업 방식을 뒤늦게 인지한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단서가 되기를 바란다.
임정수(b. 1988)의 최근 일관된 주제는 부유하는 장식들에 대한 사색이다. 그는 생산, 판매, 소비, 간직되는 장식들 중에서 추모를 위한 물건, 떠난 자를 위하거나 죽음과 관련된 물건들이 특별히 더 가치를 부여받는 것에 주목하였다.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거나 떠난 이를 상기시키게 하는 것. 이러한 일은 조각의 임무이기도 하였다. 임정수는 조각인 장식, 혹은 조각과 장식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시도한다. 구체적, 실용적 목적이 없는 장식품들, 일회적인 포장지들이 갖는 찰나에 가까운 시간을 그려보며 작가는 삶의 순간은 원래 부유하는 것이라고 확언을 받는 기분이라고 언급한다. 또 사물, 동물, 공간, 인간의 정의를 구별하지 않는 관점이 조각에 부여되기를 바라며, 인간과 사물 중간 어디쯤 있는 조각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그의 <1/30>(2020)은 땅에 비친 나무 그림자의 움직임을 스티로폼을 주재료로 하여 형상화 한 것이다. 나뭇잎이 움직일 때마다 나무 전체가 출렁이는 모습을 본 작가는 이 작은 단위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시간을 1/30초라고 할 때 이 찰나가 모여 만들어낸 큰 출렁거림이 그림자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보고, 1/30초 사이에 일어난 그림자의 움직임들을 겹쳐 올렸다. <그들은 대화 중입니다.>(2022)는 돌의 표면 패턴을 가진 대상들이 나무 옆에서 나무인 척, 독립적인 개체인 척 하고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그들은 이미 이름을 잃었습니다>(2022)와 <꽃보다 아름답습니까?>(2022)는 동물의 털가죽, 털로 보이는 패브릭 소재들로 제작되었다. 이 작업들에 대해서 임정수는 ‘미리미리 신체를 잃은 것들과 함께 사는 연습을 하세요’라고 하고, <묘비명>(2022)에 대해서는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지만 묘비 하나 정도 미리 골라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시크한 멘트를 던진다.
조재영(b. 1979)은 카드보드지와 같은 가벼운 재료를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조각을 구성한다. 폴리곤 단위로 접합되는 그의 작업은 또 다른 폴리곤을 덧붙여 증식하거나 색을 칠할 수 있게끔 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종이를 자르고 이어 붙이는 제작방식은 부단한 노동이 수반되는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조각 작업을 어떤 상황을 상상하고, 이를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형태로 ‘구현’해나가는 작업으로 생각한다. <하얀 공기 속 사물>(2017)은 원래 파라다이스 집의 지하 공간에 맞춰 제작된 장소특정적인 작업이었다(《조재영: 낙원 아래서,》파라다이스 집, 서울, 2017). 당시 전시에서 작가는 기존의 인식 체계에 내재된 위계적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고, 전시장소인 파라다이스 집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설치하였다. 조재영은 당시 만든 작품들 중 일부를 가져와 하이트컬렉션의 2층 천정 들보를 떠받치는 기둥 사이에 끼웠는데, 컬러풀한 색상의 종이조각은 들보와 기둥 사이에 끼어 건축적 구조와 하중을 지탱하는 (표면적이지만) 기능적인 역할을 하지만, 백색의 구조물들과 대비를 이루어 건축과 구분되는 조각으로서의 차별성을 잃지 않는다. 들보와 기둥이 건축의 위계 질서를 상징하는 요소라고 한다면, 그의 종이조각은 날렵하면서 유연한 끼임새를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인식 체계에 틈을 만든다. 한편, <신체, 신체들>(2022)은 작가가 2021년 개인전 《보디 그라운드》(온수공간, 서울, 2021)에서부터 본격화한 신체를 소재 삼아 진행한 작업이다. 채색된 철제 구조물의 여러 포인트에 위치한 카드보드 조각들은 매우 정교하게 재단, 접합된 기하학적 형상들이다. 그 형태가 신체의 어느 부분을 대상화하여 재현했는지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이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신체의 골격, 기관을 작품에 대입하고 상상해볼 자유를 누린다.
차슬아(b. 1989)의 <QUAD ALTAR>(2022)는 기존의 게임 아이템 시리즈를 기리는 제단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서양의 4원소설을 바탕으로 12개의 제물을 결정하였는데, 원소의 힘을 봉인한 성물을 상징하는 4개의 돌, 일종의 희생제물을 나타내는 4개의 음식, 그리고 제사 도구인 4개의 도구로 구성되어 있다. 차슬아는 미술품, 장난감, 게임 아이템 등을 모두 소장자의 인벤토리에 컬렉션 되는 개념으로 동일선상에 두고 인식한다. 특히 수직수평으로 균등하게 구획된 인벤토리 내에 게임 아이템을 선택, 수집, 그리고 정렬하는 행위나 미술품을 컬렉션 하는 행위를 대등하게 생각하고자 한다. 따라서 <토-진흙의 기도>(2021), <인큐베이터 레벨-1(보존된 알)>(2021)처럼 차슬아가 현실의 사물로 제작하는 게임 아이템이나 프랍 역시 인벤토리 자체로 조각의 지위를 획득한다. 한편, 작가에 의하면 게임 언어, 아이템이나 프랍들은 기념비적인 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데, 그는 이들이 단순한 기능을 가진 표식이 되기도 하고 게임 플레이어와 대응하여 작동하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기도 하는 점에 주목한다. 차슬아가 제작하는 사물은 일상적인 사물에 가까운데, 제작에 사용되는 재료는 아크릴, 에폭시, 목재 등으로 사물의 근본적인 성질과는 차이가 있다. 최근 차슬아는 가상 세계, 게임 속의 아이템을 현실 세계로 소환하여 그 크기와 무게를 실제로 체험해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게임 속 세계관에 맞춰 제작된 조각들은 실제 대상과는 시각적 유사성만 지니고 있지만 촉각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현실과 가상의 괴리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자영(b. 1995)은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발생하는 주체적인 감각에 관심을 가진다. 즉 대상을 오래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대상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거나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체성이 그의 주요한 관심사다. 전시공간이 눈을 위한 플레이그라운드가 될 수 있도록 시선과 행위를 품은 조각, 퍼포먼스,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해왔으며 모든 것을 쉽게 보고 잊어버리는 환경 속에서 여러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시지각’을 일깨우고 ‘보는 행위’의 역동성을 구현하려고 한다. <12개의 산 9개의 돌 6리터의 물>(2020)과 <아프로디테 송가>(2021)는 작가가 각각 전시 공간에 풍경처럼 펼쳐 놓았던 설치 작업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12개의 산 9개의 돌 6리터의 물>의 경우, 작가는 머리 속에 있는 관념적 풍경을 실재에 펼쳐 보일 수 있는 가상의 작업실로 상정하여 설계도 없이 집을 짓거나 자라는 과정이 없는 식물을 배치하듯 제작된 특정 스케일의 미니어처들로 한 폭의 풍경화를 시도하였다. 관람자의 신체는 이 풍경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작가는 동공으로 반사되는 빛, 즉 시지각을 통해 풍경의 기슭으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신작인 <기암괴석>(2022), <호>(2022), <석굴>(2022)은 홍자영이 주로 사용하는 모래와 왁스를 이용해 캐스팅하고 목재 구조물과 함께 구성한 작업들이다. 작가는 한 시점 안에서 3가지 작업이 들어오는 장면을 구상하였다. 먼저 무늬목 합판을 이용하여 세운 <기암괴석>은 근경에 해당하는데 해안가 동굴이나 해상 아치를 연상시킨다. 그 아치 너머로 보이는 <호>와 <석굴>은 <기암괴석> 아치를 통해서 보았을 때 각기 중경과 원경에 해당한다. 현재 작가는 영국식 정원과 같은 전통적인 픽처레스크 풍경에 대한 개념이나 바바라 헵워스, 헨리 무어, 이사무 노구치, 곤살로 폰세카 등 여러 작가들의 작업을 참조하여 근경-중경-원경의 요소를 실험하고 있다.
《각 Kak》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하이트컬렉션
사진 촬영: 전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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