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종말 속에서도 유머를 찾을 수 있는 아티스트!”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한 작품 통해 근본적인 질서와 존재에 대한 질문 보여줘
우리들의 삶이 지닌 특유의 이질감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재료와 탈장르로 구현한 독창적인 내러티브의 백미
독일 필립 그뢰징어 아시아 첫 개인전
‘WHY SO SERIOUS?’
2022. 7. 7 ~ 8. 25
관람시간: 화~토 10:00~18:00, 일 11:00~17:00
초이앤초이갤러리 & 호리아트스페이스 & 아이프라운지
주최: 초이앤초이갤러리ㆍ호리아트스페이스ㆍ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후원: 원메딕스인더스트리
PHILIP GROEZINGER, The thin red line 1&2, 2019, Oil on canvas, 200x170cm
■ ‘필립 그뢰징어’ 아시아 첫 개인전, <WHY SO SERIOUS?>
독일 중진작가 필립 그뢰징어(PHILIP GRÖZINGER)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서울의 전시장 세 곳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삼청동의 초이앤초이갤러리(공동대표 최진희ㆍ최선희), 청담동의 호리아트스페이스(대표 김나리)와 아이프라운지 등에서 회화작품 및 색채드로잉 각 40여점씩 총 80여점을 선보인다.
PHILIP GROEZINGER, Curious Incident, 2021, Oil on canvas, 180x200cm
필립 그뢰징어 작품의 첫 인상은 화면을 채운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로 인해 무한한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그 이면엔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고독, 슬픔과 기쁨, 혼돈 등 다양한 모든 감정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특히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나, 총체적인 불안감, 카오스적 혼돈과 낙관주의 유머가 뒤섞여 아주 흥미로운 감성적 자극을 선사한다.
특히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필립 그뢰징어식 화면구성법’을 두고, 일부에선 ‘종말론적 관념 이후의 정경―포스트 아포칼립틱(Post-Apocalyptic)’에 비유하기도 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희한한 배경으로 기이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이미 사라진 과거 문명의 유물들 사이를 거닐 듯 유영한다. 미스터리한 기계식 구조나 요새, 불타는 스카이라인 등은 공상 과학소설이나 레트로(retro) 게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뢰징어 작가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 장면들을 종합하자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범우주적 관념의 상상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셈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맴도는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 때로는 이런 인상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조차도 모를 때가 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특정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그 영감들이 어디서 온 건지를 서서히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순간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억의 파편들과 과거의 순간들을 내 그림 속에 배치하는 것! 이 과정이 정말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머릿속이 가득할 때면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그림 하나로는 그 많은 것들을 다 담기에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죠. 그러면 도미노처럼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 어느 순간 한 시리즈가 탄생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그 이야기의 해석은 오로지 관객의 몫입니다.”
필립 그뢰징어의 그림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영감과 기억의 파편들이 한데 조화를 이뤄낸 대서사시와 같다. 그리는 방식도 빠른 속도감으로 즉흥적이고 순발력 넘치는 조형어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오일, 아크릴, 파스텔, 스프레이 페인트 등 사용하는 재료 역시 제한을 두지 않는다. 또한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낭만주의 등 특정한 미술사조나 스타일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뢰징어만의 방식으로 ‘온갖 상상력의 지평’을 특유의 추상적인 내러티브(narrative)로 구현해낸 결과물을 보여준다.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감성을 특유의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한 그뢰징어의 작품들을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삼청동과 청담동의 전시장 두 곳을 소주제로 구분했다. 우선 삼청동의 초이앤초이갤러리는 ‘LONELINESS’라는 소주제로 인간감정의 고독과 외로움의 감정이 어떻게 또 다른 생명력의 원천을 이룰 수 있는지 만나본다. 다음으로 청담동의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는 ‘CURIOSITY’라는 소주제를 통해 인간적 감성의 첫 출발점인 호기심이 얼마나 자유로운 해석과 흥미로운 재미를 선사할 작품들로 승화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PHILIP GROEZINGER, Loop quantum gravity, 2022, Oil on canvas, 145x160cm
현대 사회 속 우리들의 삶은 한정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제각각의 특유한 이질적 감성들로 충만하다. 그뢰징어가 매우 다양한 색상과 기법을 혼용하여 유기적인 내러티브 화면을 만들어내는 이유이다. 인간은 전체 색의 스펙트럼 중에 매우 제한된 부분만 볼 수 있지만, 사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색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뢰징어 그림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바로 작품의 스토리 완성을 보는 이에게 맡긴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시발점으로써 단초만 제공할 뿐, 관람자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각각 다른 감상자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또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의외의 결말을 맺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PHILIP GROEZINGER, All safe, All well, 2022, Oil on canvas, 145x160cm
■ 개인전 서문
우주의 극지 탐험가
글_스테판 베르그(독일 본미술관 관장)
필립 그뢰징어가 가장 선호하는 작업의 배경은 우주인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공상과학 영화에 관한 전문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주공간은 작가에게 현실세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상과학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창작의 자유로움은 상상 속의 기술을 통한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닌,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공상과학 장르는 지구와 수천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일어나는 머나먼 미래를 보여주지만, 항상 우리의 현재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정적인 기반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리는 그뢰징어의 작업 또한 복잡한 코드와 은유적 상징들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논한다.
대중문화와 예술사의 다양한 모티브로 가득 찬 작가의 작품세계는 활기찬 에너지와 강렬한 색감이 흘러넘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낙천적이고 알록달록한 헤도니즘(Hedonismㆍ쾌락주의) 뒤에 무시할 수 없는 어둠과 우울함이 자리 잡고 있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이 행성들을 배경으로 흰색의 괴물, 그 기능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이한 구조물들, 우주의 소용돌이, 부담스러울 만큼 다채로운 꽃들, 그리고 거친 파도 속 홀로 남겨진 선원의 모습이 거듭 등장한다.
흔들리고 흐트러지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세계는 허술하고 일시적인 만남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연대가 영원함을 대체한다. 신표현주의적 감성과 아르브뤼(Art Brutㆍ원생미술/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붓 터치로 그려지는 그의 우주는 역동감에 사로잡혀 정신적 풍경으로 함축되며, 한 때 세상의 정점에 자리 잡았던 작품 속 인물은 안쓰럽고 무력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품 <I just can't get you out of my head>(2022)에서 볼 수 있듯, 나무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은 그뢰징어의 작품에서 ‘안전함을 의미하는 상징성’으로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집을 지탱하고 있는 지반은 전혀 단단해 보이지 않고, 벽난로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하얀색의 괴물로 탈바꿈하며, 홀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은 온유함 너머로부터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채고 두려움에 손을 뻗는다. 또 다른 작품 <Frank Arthur Worsley>(2022)는 이러한 자아를 향한 위협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킨다. 거대한 뱀과 같은 괴물 파도에 휩쓸린 바다에서 용감한 선원은 기괴한 우주의 현상으로 뒤덮인 하늘을 향해 SOS 플레어(Flare)를 발사하지만, 어디에서도 구원을 기대할 수 없다.
그뢰징어는 작품의 타이틀에서 또 다른 역사적 흔적을 남긴다. 뉴질랜드 출신의 극지탐험가였던 프랭크 워슬리(Frank Worsley, 1872~1943)는 1914부터 1917년까지 이어졌던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kackleton)의 두 번째 남극 탐험의 선장이었다. 유빙에 의해 배는 침몰하였지만, 워슬리는 모든 선원들을 남부 셰틀랜드군도에 있는 엘레판트 섬(Elephant Island)으로 안전하게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Returning to elephant island>(2022)에서 이 여정에 한 작품을 바치지만, 거대한 구체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우주의 파편들은 워슬리의 어려운 귀환 길에 또 다른 불길함을 선사한다. 엘레판트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펜드라곤산을 그린 <Mount Pendragon>(2022) 또한 탐험가의 도착지는 구원의 땅이 아님을 암시한다. 흰 눈이 내린 듯이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한 쌍의 눈을 뜨며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1913~1980)의 많은 후기작에서 볼 수 있는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KKK)’의 후드를 연상시키며, 산의 정상으로 향하기 위한 사다리들 사이에는 너무 큰 간격이 벌어져 있어 마치 추락을 의도한 듯 보인다.
이어 작품 <Thin red Line 1 & 2>(2019) 2점의 연작에는 흰색의 몬스터가 광선을 방출하는 수수께끼의 장치를 다룬다. 배경이 되는 우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사로잡히고,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잠시라도 멈출 수 있다면 무엇이든 유토피아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체적인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그뢰징어의 작품들은 재난과 카오스뿐만 아니라, 낙관주의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 또한 멸망의 필연성이 아닌 영국 소설가 말콤 라우리(Malcolm Lowry, 1909~1957)의 소설 『화산 아래서』(1947)에서 일컫는 ‘화산 가장자리에서의 춤’이다. 라우리의 소설은 반복, 불연속, 그리고 생각의 파편들이 흘러나오는 문체를 통해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하며 분해되는 망상적 속의 세계를 묘사한다. 필립 그뢰징어 역시 자신의 작품 속의 세계를 뒤흔들며 회화를 통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 모든 것들은 무너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우주의 종말 속에서 유머를 찾는 작가의 이러한 이중적인 시선은 전시명 ‘Why so serious?’를 통해서도 반영된다.
강렬한 호러바쿠이(horror vacui*)가 지배하는 작가의 우주 속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 중 하나는 ‘롤러코스터’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옛 작품 중 하나인 작품 <Die ewige Wiederkehr>(2015)에서 등장하는 희고 붉은 루프의 거대한 롤러코스터 레일은 거미줄처럼 얇은 지지대에 지탱되어 보는 이를 불안에 사로잡는다. 레일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듯 보이는 케이블 또한 얼기설기 뒤섞이어 믿음을 주지 못한다. 무한함을 상징하는 리본 형태의 루프는 그뢰징어의 롤러코스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티브로, 또 다른 롤러코스터를 그린 작품 <Loop quantum gravity>(2022)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작품의 타이틀은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on) 감독의 획기적인 공상과학 영화 ‘그래비티’(2013)와 007 시리즈의 ‘퀀텀 오브 솔러스’(2008)을 동시에 암시하는 듯하며, 쿠아론 감독의 영화는 같은 장르의 작품들이 종종 그래왔듯이 우주의 억압적이고 반인간적인 외로움과 냉혹함을 강조한다. 흙에 덮인 땅 위에 자리 잡은 롤러코스터 레일은 이 작품에서도 텅 비어 있다. 수평선 위의 바다는 분홍색 산 군도까지 뻗어 있고, 그 중간엔 익숙한 작은 오두막이 하얀 연기구름을 내뿜으며, 롤러코스터의 루프 주변에 마치 수리공을 기다리는 듯 여러 개의 사다리가 설치 되어있다. 레일 앞 리본 위에 앉아있는 검은색 형상은 자신 앞에 놓여있는 연못 위로 낚싯대를 잡고 있다. (*공간외포/空間畏佈:일체의 허무를 싫어하는 인간본성에 바탕을 두는 심리작용)
<Loop quantum gravity> 그림 속 모든 존재는 영원히 반복되는 기다림의 순환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롤러코스터의 레일은 결코 시작되지 않을 움직임을 기다리며, 만약 기다려왔던 움직임이 시작된다 한들 그저 영원한 반복으로 이어질 뿐이다. 낚시꾼 또한 물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건져보려 헛된 기다림을 이어갈 뿐이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이 필립 그뢰징어의 작품세계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더라도 이 세상의 불합리성을 충분히 자각하며, 같은 연극을 끝없이 반복한다.
필립 그뢰징어는 전시될 모든 작품들의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하지만 어둡고 우울한 측면들을 통해, 우리의 세상은 더 이상 근본적인 질서를 따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서의 존재 자체 또한 환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현실은 조화를 이루길 거부하는 ‘겹치고 모순되는 관점들’이 지배하며, 우리는 그저 이러한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맞춰가며 생산적인 부조리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 작가약력
필립 그뢰징어 벽화 작업 @ 호리아트스페이스
필립 그뢰징어(1972~)는 독일의 구동독 브라운슈바이그 시(市)에서 출생했고, 1990~1998년까지 브라운슈바이그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1998년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州)의 장학금을 수여받았으며, 2015~2017년까지 베를린 바이센제(Weissensee) 예술대학의 회화과 강사를 역임했다.
2022년 7월 아시아 첫 개인전 ‘WHY SO SERIOUS?’를 서울의 초이앤초이갤러리ㆍ호리아트스페이스ㆍ아이프라운지 세 곳에서 동시에 개최한 것을 비롯해, 독일 밤베르크시립미술관은 물론, 베를린ㆍ뮌헨ㆍ함부르크ㆍ파리ㆍ코펜하겐 등에서 정기적으로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이외에 독일 라이프찌히현대미술관ㆍ바이덴시립미술관ㆍ압타이 리스본미술관 등의 주요 기획전에 참여했다.
특히 2022년 미술계의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독일의 81인 회화작가’를 다룬 『Dissonace』라는 책에 소개되어, 베를린 베타니엔하우스의 기념전에 초대되었다.
그의 작품은 베를린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곳의 주요 미술관ㆍ기관ㆍ개인컬렉션 등에 소장되었으며,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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