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바이오필리아, 그 너머
지난 2020년 ACC_R 레지던시는 전 지구적 관심사였던 “바이오필리아(생명사랑)”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인류가 천착했던 “진화”는 결국 누군가는 지배당해도 된다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 이룩한 눈부신 발전이 인간의 우월함이 아닌 폭력의 역사였다는 깨달음 앞에서 탐욕스럽게 자연을 소비해온 모더니즘적 자연관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찰나이길 바랐던 어두움은 긴 밤으로 머무르고 있습니다. 임시방편은 뉴노멀이 되고 우리의 걱정은 내일, 다음 달이 아니라 내 자식의 지구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이 땅에 발을 딛고 서야 합니다. 2021년 ACC_R이 “바이오필리아”의 페이지에 머물러있는 이유입니다. ACC_R 결과발표전 <바이오필리아, 그 너머>는 복합2관의 표면(ground level)에서 펼쳐집니다. 높낮이 없는 공간은 평등한 공존을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합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는 지리적 구역인 이 전토층에는 오늘 만나는 바람, 곰팡이, 마늘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너머”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지금 눈을 마주치고 꼭 안을 수 있는 것들 너머,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들, 보이지 않지만 지구를 지탱하는 것들.
디스토피아를 예감할 때 예술의 힘은 때로 미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예술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연대는 변화를 가능케 합니다. 오늘 여기의 다양한 생명들과 함께 그 너머를 짐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임리원(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전시전경
1. 크리에이터스
로베르토 산타구이다(Roberto Santaguida) / 푸른 다리를 건너 Crossing the Blue Bridge
강이나 하천의 높이를 표시해주는 수위표를 보게 되면, 사람들은 표식선의 변화를 말없이 그러나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하얀색으로 표시된 여러 개의 경계선들과 그 아래를 잠깐 보는 것만으로 강물의 양이 그동안 얼마나 변덕스럽게 바뀌었으며, 또 주변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 작용으로 얼마나 많은 퇴적물이 물줄기를 따라 쌓여왔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5채널 서라운드 비디오 영상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이 영원함이라는 명제 앞에서 어떻게 움츠려드는지를 보여준다.
룹앤테일Loopntale (김영주, 조호연) / 고스트 Ghosts
룹앤테일은 김영주와 조호연으로 구성된 게임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듀오이다. 룹앤테일은 2021 ACC_R 레지던시를 통해 게임에서 객체로 대상화되는 NPC(Non-Player Character)의 행동 특성을 다른 맥락에서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생물종이 인간-플레이어와 어떻게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바라본다. ‘고스트’ 는 고전게임 “팩맨(Pacman)”의 유령들로부터 출발하여, 게임 속 유령들과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플레이를 통해 포스트휴먼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태도를 탐색한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가상세계 위에 모바일폰의 스크린으로 또 다른 레이어가 구성된다.
류필립 / 오케스트라적 파도 중첩 Orchestral Airflow Superposition
류필립은 사운드 및 비주얼 아티스트이다. 이번 ACC_R 레지던시의 결과물로서 여러 공간과 시간에 별개로 존재하는 기류 패턴이 디지털 기술로 한 곳에 모여 새로운 청각적, 시각적, 그리고 촉각적 상대성을 만들어내는 작품 ‘오케스트라적 기류 중첩’을 선보인다. 바람의 힘으로 자동으로 연주되었던 고대 악기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아파라투스들은 청각과 기류 패턴을, 스크린으로 구현되는 가상 정원은 가상 오브젝트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시각 패턴을 발생한다. 별개의 시간과 장소에서 도달한 모든 감각 패턴들을, 관람객들은 전시장 공간에서 중첩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으로 다중감각적-다차원적 관찰을 통해 새로운 패턴들을 발견하게 된다.
신시가지(김샛별, 김윤정) / 포니가든 Phony Garden
팀 신시가지는 김윤정과 김샛별로 이뤄진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으로,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하여 VR/AR과 같은 인터랙티브 작업으로 형식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번 ACC_R 레지던시 전시 ‘Phony Garden’은 모든 동식물이 멸종한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동식물이 모두 사라진 세계, 인류는 남겨진 일부 데이터를 복원해 가짜 식물원 Phony Garden을 조성한다. 관객은 전시의 관찰자가 아닌 디스토피아의 당사자로서 이 공간을 부유하게 된다. 공간 안의 인터랙티브 아트와 비디오 작업이 “인류세”를 초래한 당사자로서 공간 안의 과거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체험이라면, VR 전시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인간을 타자화함으로써 인간 너머의 차원에서의 지구의 희망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린 아그리비나(Irene Agrivina) 하리오 휴토모(M.Haryo Hutomo) / 알리신의 미시적인 힘 Microscopic Power of Allicin
예술가이자 기술 전문가인 아이린 아그리비나와 예술가이자 조직가인 하리오 휴토모는 한국 고대 신화인 웅녀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적 연구와 작업을 수행한다. 미래 항생제 종말을 예방하고자 하는 국내 의료를 위해 마늘의 알리신 성분 사용에 대한 대중 인식을 고취하는 유사과학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이유리 / 나이트 워크 Night Walk
이유리는 미디어 작업을 통해 자연과 인공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확장된 자연의 가능성,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하는 생명의 경계에 대해 묻는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번 ACC_R 레지던시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Night Walk’는 균류의 생장과 생태 특성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인간 중심의 지능에서 벗어나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다양한 지능의 형태에 감탄하고 그것에 착안한 곰팡이 로봇을 만들어 새로운 인공 생명 형태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로봇이 생명체의 생장과 변이의 개념을 구조 안에 품을 수 있도록 오리가미의 접힘과 펼침을 통해 유기체적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장수진 / 도그 에그스 Dog Eggs
장수진은 행위예술 아티스트, 영화제작자, 연구자이다. 장수진은 애니미즘적인 방법론을 이용하여 현 시대 윤리와 식민지 시대 유산과 서로 다른 생물종들 간의 상호 의존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도그 에그스’ 는 다큐멘터리와 무당의 굿을 결합한 작품으로 작가가 직접 영상에 참여했으며, 갈수록 소외되어 가는 현 시대에 여성의 몸, 개와 무당이 어떻게 인생을 지속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뛰어넘는 대리모의 새로운 정의를 모색하고 있으며 돌봄, 접촉, 친밀감, 사랑 같은 생존의 필수조건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 작업은 감각적 경험, 대중적 개입, 문서화에 초점을 맞춘 실험적인 조사로부터 발전했으며, 자연 안에서 얽힌 통제와 굴복의 측면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탐구한다.
2. 디자인
권원덕 / 궤적 Trace
권원덕은 “법고창신”을 목표로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형 실험을 통하여 옛 것에서 찾은 소재와 형태, 기법을 활용해 가구를 만들어 오고 있다. 이번 작업은 나무가 가진 물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많은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나무를 재료로 선택해서 덩어리가 크고 단순한 형태를 바탕으로 기능을 가지도록 디자인했다. 나무가 살아온 궤적인 “나이테”와 목재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궤적인 “갈라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무를 불로 태우는 작업에 중점을 두고 이번 작품을 준비했다. 사람과 나무, 환경 각각의 궤적이 서로 겹쳐 만들어낸 결과물을 통하여 바이오필리아, 그 너머의 세상을 그려본다.
오화진 / 에브리 원 Every ①
오화진은 글과 시각적 결과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작품을 통해 그동안 작가의 세계관을 꾸준히 표현해 왔다. 최근에는 이를 더 발전시켜 소설을 짓고,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21 ACC_R 레지던시에서는 “바이오필리아”라는 주제로 'Every ①'이라는 단편 소설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다라타”라는 가상의 생명체를 발표한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서글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냉소적 관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작가는 “생명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시간성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생명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진다.
이재익 / 크레이터 The Craters
부풀려진 형태가 가지는 금속 특유의 물질성은, 유기체가 자신을 보존하는 삶의 순간으로 표현된다. 이는 한 발자국씩 진보하기 위한 생물 진화의 단편적인 모습이며, 어떠한 종이 세대를 거치며 체계가 복잡해지고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삶의 투쟁에 대입해 볼 수 있다. 2021 ACC_R 디자인 레지던시를 통해 “팬데믹의 충격이 주는 변화를 변주로 활용하기”라는 주제로, 형태적으로 생성되는 사고 과정을 보여주고, 형태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은 반복 순환 과정을 통해 다른 차원의 공간을 생성하며 일상의 모습과 변화된 모습을 입체적으로 대비시킨다. 지표면에 떨어진 운석의 흔적인 충돌구(crater) 안에 형성되는 새로운 질서의 생태계를 현대와 전통의 공예 조형기법으로 시각화하여, 긍정적 변화의 시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임영빈 / 자연, 인간 그리고 도자기 Nature, Humans and Ceramics
임영빈은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아의 고대토기에 대한 연구를 해오며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 ACC_R 레지던시에서는 ‘자연, 인간 그리고 도자기’라는 프로젝트로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라는 대상을 재조명하려 한다. 전통도자기와 현대도예가들의 작품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공예와 순수미술과 같은 개념은 홀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상호 영향을 주며 진화한다. 도자기는 자연의 원소인 흙, 물, 공기, 불이 인간의 창작행위와 만나 공진화된 산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3. 다이얼로그
박주희 / 디지털 사물의 일기: 국내 미디어아트 생태계를 조정하는 사물의 행위 능력 추적 연구
A Journal of Digital Objects: A Study on the Agency of Objects That Control the Media Art Ecosystem in South Korea
박주희는 IT 전문 지식, 뮤지엄 이론 및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 예술 분야 디지털 전환을 연구한다. 이번 ACC_R 레지던시 연구에서는 국내 미디어아트 창작자와 문화 예술 기관이 당면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복잡성을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기술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디지털 사물(소프트웨어, 컴퓨팅 언어 등)의 행위 능력 추적에 집중했다. 창작자(인간 행위자)와 디지털 사물(비인간 행위자) 간 동맹관계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서, 미디어아트 네트워크 내 만연해 있는 디지털 자본주의, 디지털 서구화를 논의하고,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미디어아트 네트워크가 보다 민주적이고 윤리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유현주 / 물질로 쓴 시(詩):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생태 개념의 관점에서 바라본 김윤철의 “매터리얼리티” 예술작업 연구
Poetry composed of matter: A Study on Yunchul Kim’s “Mattereality” from the Perspective of Bruno Latour’s “Ecology” concept
유현주는 홍익대에서 아도르노 미학을 공부한 철학박사이며 현재 생태미학예술연구소 소장이다. 연구자는 아도르노, 기술, 동시대 예술, 공동체, 생태미학과 생태예술을 주로 연구해왔으며, 이번 ACC_R 레지던시에서는 김윤철 예술의 작업과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접목시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김윤철의 핵심 개념인 매터리얼리티(Mattereality)를 인간과 비인간 혹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라투르의 생태개념과 밀접히 연관시켜 다루고, 궁극적으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바이오필리아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이광석 / 인류세 국면 기술 생태정치학의 구상
The Conception of Technology and Ecological Politics in the Anthropocene Age
본 연구는 2021 ACC_R 다이얼로그 레지던시를 통해 인류의 생태 실천 경험과 사물의 배치를 이해하기 위한 “인류세” 관련 논의를 정리해, 자연-기술-사회 생태의 선순환을 위한 생태 실천학을 구상한다. 본 연구는, 먼저 현재 지구 생태위기를 진단하는 몇 가지 이론적 지형을 살핀다. 특히 생태위기의 주요 인식론적 입장들, 인류세, 자본세, 툴루세 논의에 입각해 그에 조응한 생태 실천적 입장을 조망한다. “재난 자본주의” 아래 생태위기를 보는 상황 인식의 차이를 검토하고, 그들 입장의 차이 속 생태 이론과 실천의 통합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 본 연구의 주요 내용이다.
이와 더불어, 생태 위기를 보는 여러 입장들 속에서 테크놀로지의 생태주의적 지위를 찾는데 집중한다. 단순히 뭇 생명과 사물과의 평평한 공생론의 형식적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닌, 자본세로 뒤틀린 생태 균열적 내상과 현대 기술로 내밀해진 새로운 생태 정치의 구도를 진단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기술의 속도와 질주를 틀어 “다른 삶”을 기획하려는 새로운 생태 정치학적 실천의 방향을 범박하게 제안한다.
허상훈 / 프로젝션 매핑을 활용한 이머시브 VR 전시 시스템
Immersive VR exhibition system using projection mapping
허상훈은 미디어아티스트로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의 확장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 VR/XR 전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흐름 속에서 개인화된 디바이스 의존적인 전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아나모픽 기법을 적용해 프로젝션 매핑 공간 내의 이머시브 VR 전시 시스템을 제안한다. 이는 4면이 프로젝션으로 구성된 공간 위에 체험자의 시선을 공간 상의 매칭과 함께 투사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관객이 가상현실 체험의 공간적 맥락을 이해하고 관객순환 문제 등 기존 전시 방식의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한다.
4. 시어터
설유진 / 입큰 Big Mouth
907에서 극작과 연출을 하는 설유진은 ACC_R 레지던시 전시에서 ‘입큰’이라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와 그 결과는 꽤 긴 시간 동안 현대인에게 당연한 문제로 여겨져 왔고, 대중에게는 유행가처럼 패션처럼 흥미거리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당면한 지구와 인류의 존폐를 이야기하지만 듣고도 믿지 않는 듯, 대다수의 우리는 지금 집중하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다.
윤종연 / 신神 만들기 Creating the God
작가 윤종연은 물체와 몸의 배치를 통해 몸과 사물이 지닌 기억을 찾는다. 또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몸을 통해 극적인 긴장을 만들고, 물체가 지닌 다양한 속성을 연구하여 물리의 규칙을 거스르는 생소함을 만들고 있다. 더불어 개인과 사회가 감추어 둔 악몽을 시각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식할 수 없는 현실과 몸의 기억을 드러낸다.
최근에는 특정 공간에 몸이 개입하여 공간에 배치된 다양한 재료들을 재가공하는데 흥미를 갖고 접근하고 있다. ACC_R 레지던시 전시에는 ‘신神 만들기’를 통해 자기만의 신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고대인에게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광경이 곧 “신”
경이로운 광경을 보고 경험하는 행위는 곧 신을 만나는 것이다.
‘신神 만들기’는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발견하고 생명의 온기를 “감각하기”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 계단을 오르고 발 뒤꿈치를 드는 수고를 감수하여야 한다.
새는 온 몸으로 둥지를 만든다. 가슴으로 둥지의 바닥을 눌러 다지고, 보온을 위해 깃털을 깔고, 침을 발라 잇고 붙이며 몸의 모든 부위로 집을 축조하는 것이다.
수랏 케이시크람 Surat Kaewseekram / 중첩의 영역 Overlapped Territory
땅, 숲, 강 그리고 산을 경외하는 “빠까야우 까렌(Pga K’nyau Karen)” 부족은 숲과 맑은 개울로 둘러 쌓인 곳에서 땅, 숲, 강, 산을 경외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숲 파괴자가 아닌 자연을 보호하는 자들이다. 산을 터전으로 삼은 빠까야우 카렌 부족이 없었다면 북부와 서부의 더 많은 숲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위라삭 요드라붐(Weerasak Yodrabum)의 시를 읽고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며 자연을 보호함과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 방법을 탐구하는 것에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정부의 산림 보전 정책의 입장에서 빠까야우 카렌 부족의 공존은 모순으로 받아들여졌고, 숲이 훼손되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를 지키고자 원주민들이 숲에서 사는 것을 금지시켰다.
녹지 보호자들과 이전 거주자들 사이의 갈등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숲은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까? 아니면 인간과 숲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인간과의 공존이 숲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수랏은 국립공원을 모방한 인공숲 설치물과 내레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상상 속의 공간이라는 중첩된 현실을 통하여 두 이해관계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실험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세계가 더 많은 녹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기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판룻 크리찬차이 Parnrut Kritchanchai / 신세계로의 여행 Ep1: 가짜 수정궁의 시작(천사의 도시) Journey to The New Created Universe Ep1: The Beginning of A Fake Crystal Palace(City of Angels)
판룻은 태국의 환경경영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를 탐구한 후, 국가와 사람, 다수와 소외된 사람들, 인간과 다른 생명과 같은 크고 작은 단위에 이르기까지 사물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이데올로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작가는 규칙, 법률, 정책 및 관리 표준을 만드는 태국 사회에 통용되는 불교적 도덕 형태 속에서 사람들이 모든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차단하는 크고 두터운 장벽을 발견하였다. 700년 전에 쓰인 “뜨라이부미까타(Traibhumikatha)” 라는 문헌에서 나타난 이 사실은 여전히 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범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신화의 장벽은 판룻을 다음 질문으로 이끌었다. “이 신화의 장벽이 사라지고 익숙한 스토리텔링과 예술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담론이 생성되어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면 타인과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방향은 어디일까? 새로운 교범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 첫 번째 단계에서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초대하여 이 새로운 담론을 함께 창작하는 실험을 진행한다.
결국, ‘신세계로의 여행 Ep1: 가짜 수정궁의 시작(천사의 도시)’은 미래의 또 다른 담론이 담긴 새로운 에피소드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장벽 너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첫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