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2-10-20 ~ 2022-11-19
02.734.0440
장진 《블루스 Blue’s》
블루스 Blue's
캔버스에 혼합재료, 60×60㎝, 2022
[작품 리뷰]
어쩌다 주변이 온통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 던져졌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서귀포 하늘과 바다를 끼고 산다는 것은 변덕스런 나의 성정과 참 잘 어울려 함께 놀기에 좋다. 바다로 하늘로 혹은 들과 산으로 신나게 뛰쳐 날뛰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난 내 눈앞의 펼쳐진 대상보다는 빛에 반사된 푸른 빛깔을 향해 다른 어떤 색보다 마음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Blue’가 전해주는 다양한 변주는 나의 변덕을 잘 대변해 준다.
Blue의 한국어 표현은 ‘푸른색’과 ‘파랑색’으로 대표된다. 신기하게도 영어사전에 blue는 ‘청명한 하늘 색’ 즉 하늘에서 어원을 가져오지만 ‘파랑’은 의태어로서 ‘파도의 너울’ 즉 ‘Wave’로 묘사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하늘과 바다라는 두 대상을 ‘blue’라는 하나의 색상 개념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Color Wave가 친숙지가 않는 이유이다. 대상이 그러하듯 그것을 묘사하는 푸른색은 정적이며, 평면적인 이미지가 강한 반면에 파랑색은 동적이며, 더 입체적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과 바다 이미지가 중첩된 채로 쓰이는 BLUE는 둘의 색상 이미지가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BLUE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단정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모두 대변할 듯이 말이다.
Blue가 인간의 감정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오랫동안 그 말이 음악의 한 장르인 ‘Blues’ 어원으로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또한 위로해 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그 감정 자체인 ‘흑인 노예’를 칭하는 의미까지 이른다. 그렇다고 Blue가 어두운 감정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두운 감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Blue Sky’라는 원뜻에서 비롯되듯이 인간의 희망과 찬란한 미래를 가리키는 의미로 흔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겨운 노동을 투여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어쩌면, 유한한 생애에서 현실은 고통의 연속이며, 우리가 꿈꾸는 이상은 잠시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건, 인간의 다양한 삶의 층위와 감정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Blue는 매우 구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론 대낮 가시광선에서 반사된 푸른색은 물론이거니와 달빛이 전해주는 검푸른 빛을 통해서 또 한편으론 물리적인 색상을 넘어 각기 다른 개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영된 푸른색이라는 감정색은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게 존재한다.
내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는 장진 작가님의 ‘달빛바다 풍경’이 걸려있다. 청록색 빛깔이 물리적으로 서로를 간섭하지만 기운적으로 절묘하게 물질을 넘어서 새로운 의미를 북돋우며 나에겐 어린 시절 가슴에 박힌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앉은 자리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밤과 낮을 가로지르며 영유하는 지점이며, 공간적으로 검푸른 넓은 바다와 좁은 서재의 구분을 잊게 하는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자료를 뒤적여 본다.
장진 작가님에 대한 김정락 평론가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장진은 그가 머무는 곳에, 즉 현존의 현장에서 그리는 대상을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채취한다. 주로 시각적인 사생에 그치는 사생이 아니라, 몸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구체적이고 재현적인 조형 언어에 대해서는 관심을 약간 여민다. 오성의 개념에 기대어 언급한 것처럼, 눈으로만 대상을 관찰하지는 않는다. 그는 온몸으로 풍경이 주는 감동을 느낀다”
물론, 이에 대한 장진 작가님은 대체로 호응하는 편이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평론가님이 그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 활동 근원은 현재적 ‘몸’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체계화된 인식이 배제된 ‘몸’이면서 늘 변화를 꿈꾸는 ‘몸’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대상을 날것 그대로 들여다보고 느낄 수 있으며 그 순간들로 점철된 감정선을 육체의 무상적 반복을 통해 자신만의 의미 세계로 추밀어 올리는 노동을 겪는다. 즉, 그는 대상을 기존 개념과 의미로 찍어내려 육체적 노동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의미로 포착할 수 없는 그 대상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모든 감각을 열어둔 채로 자신만의 세계로 길들이는 반복작업을 통해 객관화된 의미 세계로 새롭게 안내해 주는 고된 노동을 기꺼이 감내한다. 이 과정에서 대상은 자연 그대로의 속성은 소멸되어 가고 그가 추밀어 올려 완성한 예술적 의미만이 작품에 남게 된다. 이 과정은 동양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이지만 그는 이를 한 걸음 더 밀어 올려 관념이 단지 관념으로서 존재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직접적인 감정이 보편화된 감정으로 승화되어 생생한 관념, 생동하는 추상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남과 다른 창의적인 궤적을 걷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변화무쌍한 감정이 장진 작가라는 프리즘을 통해 절제된 추상미로 만개되어 붉은 혈관을 푸르게 변화시키며 천천히 순환하는 말하자면 순간의 지속을 경험한다.
그의 작품 주제와 소재가 되고 있는 ‘Blue’s’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감정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이 작가 자신의 육체로 쌓아 올린 ‘노동’의 산물임을 강조하고자 함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blue’를 통해 ‘blues’를 선택하고 적극 긍정하는 이유는 두 어휘가 갖는 의미 그대로 ‘육체노동’이 노동으로만 끝나지 않고 정신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의미 세계로 진입시켜 육체적 고통을 잊은 채 ‘삶을 긍정’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즉, ‘존재로서 인간’ 그 자체를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귀인, 최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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