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란, 윤향로, 김지민, 김보경 단체전
'여성, 또 다른 추상 / Abstract Art by Woman Artists'
2022. 10. 12 (수) ~ 2022. 11. 7 (월)
1. 전시개요
■ 전 시 명: 윤미란, 윤향로, 김지민, 김보경 단체전 ‘여성, 또 다른 추상 / Abstract Art by Woman Artists’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지하 1층)
■ 전시기간: 2022. 10. 12 (수) ~ 2022. 11. 7 (월)
2. 전시서문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 회화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
1971년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왜 지금까지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나?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라는 다소 도전적인 에세이를 발표했다. 필자는 박사 논문의 지도 교수였던 노클린의 이 말을 생각해 보면서 지난 10년 동안 단색화에서 여성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지 선생님의 말을 되새겨볼 기회가 많았다. 나는 국내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해외에서도 분명 미술사가들이나 큐레이터들이 “여성” 단색화 작가가 유독 눈에 띄지 않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이러한 목소리를 찾아보기 위해 이번 전시는 도스 갤러리에서 일종의 선언문처럼, 혹은 여성미술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된 ‘여성미술가들의 추상’이라는 주제를 다루어본다. 큰 주제에 비해서 공간 등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세대별로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화를 추적할 수 없지만, 네 명의 작가들은 추상을 다루는 작가적 “특이성”과 “독자성” 하에서 선정되었다.
화가 윤미란은 2011년 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지난 10년 동안 공개적으로 작품을 보여준 적은 별로 없었다. 그의 작품은 종이 자체의 텍스트에 주목하고 있으며, 한지를 손으로 하나씩 자르고 또 붙이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서 ‘몰입’에 이른다. 화면은 크고 작은 사각형의 그리드를 구성하며 분할과 경계, 포용의 선을 만들어간다. 여성 단색화 작가를 발굴해 나가는 리서치 과정에서 새롭게 재평가할 작가로 윤미란에 주목하게 되었다. 윤미란은 한지의 표면과 물성을 이용하지만 두텁게 화면을 구성하는 단색화가 김태호와 달리, 균질적인 화면을 구축한다. 그리드 그 자체가 모더니즘 회화의 아이콘이 되지만, 윤미란은 그리드의 구성에 물리적, 심리적 시간성을 더한다. 그는 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등 다음 세대에 속하지만 다양한 추상전에 참여한 바 있다.
포스트 페미니스트 세대이자 포스트 인터넷 세대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윤향로 작가는 2020년에는 동시대 문화 내에서 여성의 일상적 경험과 삶, 미술사 등을 ‘캔버스들’이라는 주제로 다뤘다. 그는 만화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며, 대상을 스크린 캡쳐하듯이 포착하는 <스크린샷> 연작 등을 제작했다. 작가는 다양한 장르 간 실험을 통해 ‘유사 회화’의 새로운 매체성을 구축해 나간다. 그는 디지털 문맥을 회화적 실천 안으로 끌어들여 주변의 ‘그림’들이나 이미지를 회화적 스크린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디지털 세대의 회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여성미술가이다. 이미지들은 끊임없는 편집과 재가공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출현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인 <Drive to the Galaxy 2-1> 등을 전시한다. 윤향로에게 추상은 대중매체와 디지털 문화의 다양한 문맥을 읽어내는 여정이자 해석의 근거로 작용하며, 이야기가 있는 회화적 공간, 여성의 목소리를 중첩시키는 사적, 그리고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회화를 공부한 김보경 작가는 몇 년 전만 해도 모노톤의 모노크롬 회화를 제작했다. 이러한 추상 작품들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반모노크롬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작품으로 캔버스에서 흘러내리는 물성과 얼음 등 가변적이고 탈 물질적인 재료를 사용했다. 그에게 추상은 변화하는 시간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공간으로, 회화적 안료에 더해 동시대의 삶과 연관된 안료를 더함으로써 존재 의미를 더한다. 시간성을 겹겹이 쌓아나가는 회화적 행위에는 그가 사용하는 물감만큼이나 모래와 같은 다른 재료의 흔적 또한 중요하다. 그가 사용하는 모든 색채는 개인적 경험과 자연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체화된 결과물이다.
김지민 작가는 영국에서 10대를 지내고 해외를 베이스로 활동하다 몇 년 전 국내에 귀국했다. 그는 흔들리는 샹들리에 키네틱 작업과 회화 작품, 두 축으로 작업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침묵의 선>이라는 회화를 선보인다.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침묵’이 회화적으로 묵직한 선의 먹물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천에 먹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섬세한 과정은 헬렌 프랑켄타일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의 추상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청소년기에 여러 문화에서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산 그에게 침묵은 무의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야기 공간인 셈이다. 김지민의 회화는 여러 문화권에서 생활하며 얻었던 문학적, 고전적 참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삶과 예술의 조응을 건축적 공간과 회화적 공간 내에서 담아내고 있다. 일종의 템플 구조를 가진 침묵의 선이 만들어내는 회화적 구축물은 김지민의 정신적 위안처이자 도피처이다.
이들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회화는 개인적인 독백과 내러티브가 담겨 있다. 작가 모두 자신이 속한 세대가 다르고 성장한 문화나 장소도 다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반응과 모놀로그가 이들의 회화 작품 안에 가득 차 있다. 이미지가 없는 듯, 형상이 없는 듯, 구체적 대상이 없는 듯 보이지만, 각기 다른 네 명의 여성 미술가들이 그어나가는 선과 색채, 공간 구조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일기이자 이야기 공간이다.
윤향로, Drive to the Galaxy 2-1, 2022
김지민, 침묵의 선(Line of Silence)No.43, 2021
김보경, When end comes near by 꽃이 피고 또 지듯이, 2022
3. 작가노트
윤미란의 작업은 우선 한지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물성에의 집착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한지라는 매체가 지닌 부드러움과 아름다움, 찢어지기 쉬운 연약함, 찢어진 후의 예상치 못한 결과의 대담함 등이 윤미란의 사각공간 안에 모두 담겨있다. 그의 작업은 모시, 삼베, 노방과 같은 천 위에 몇 겹의 한지를 배접 한 후 그 위에 한지를 가로지르는 실을 얹어 놓은 뒤 다시 몇 겹의 한지를 실 위에 배접하여 바탕을 만들어낸다. 그 후 한지와 한지 사이에 놓여있던 실들을 앞으로 잡아당겨 뜯어내는데, 이때 한지를 찢고 나온 실들의 배열에 따라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던 한지들은 본래의 형태를 잃고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남게 되며, 사각형의 귀퉁이를 핀셋으로 또 살짝 뜯어내면 작업이 완성된다. 이는 쉽게 찢어질 수 있는 한지의 특성을 적절히 이용한 것으로, 찢어진 후 한지가 만들어내는 대담한 절단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평온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격렬함과 파격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윤향로의 대표작인 추상 회화 연작 <Screenshot>은 동시대의 풍경화를 만들고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주목하는 것은 매체 간의 경계인데, 특히 미술 안에서 서로 다른 매체 간에, 다양한 문화의 범주 안에서 다른 문화 간에 서로의 형태를 의태 하며 생기는 경계 등이 포함된다. 초기 작품에서는 회화를 둘러싼 다양한 미디엄으로 회화 자체를 바라보는 실험을 하고자 했다. 이는 결국 회화 매체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했고, 현재 이 부분을 중점으로, 현대 이미지의 소비 방식과 나를 둘러싼 세계관, 가치관 등을 저변에 두고 작업을 한다.
김지민은 2020년 들어 본격적으로 회화를 시작해 현재 이 두 매체를 병행하여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명료하게 구성되는데, 설치는 <Art as Language>, <움직이는 샹들리에> 시리즈로, 회화는 <음악적 회화>, <침묵의 회화> 연작으로 나뉜다. 이번 전시 첧rototype Temple: At Night»은 김지민이 설치와 회화의 변주로 동서양의 문화적 융합을 실험해 온 연구의 소산이다. <움직이는 샹들리에>와 <침묵의 회화>로 조합된 전시는 서구 고전 문화를 상징하는 샹들리에와 먹을 사용한 동양적 회화가 어두운 무대에 등장한 것처럼 연출된다. 이에 더해진 사운드는 성가, 성당의 미사, 사찰소리, 종소리 등이 혼합된 동서양의 울림으로, 전체 공간을 공명하며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보경 Bo Kim <아로새기다, When Light is Put Away>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비롯된 자연의 미와 불교 정신에서 비롯된 비 영속성,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되는 크고 작은 흔적들과 자연 혹은 자연스러운 현상을 통해 재탄생하는 것들을 아름다움이라 정의하고 이것의 가치를 작품에 투여한다. 한지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내며 겹겹이 쌓고 비워진 부분을 모두 메꾸는 것이 아닌, 한지가 중첩되어 표현된 투명과 불투명 그 경계의 상태, 불완전한 상태를 유지하여 명상적 수행을 하는 동시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흙과 모래를 이용해 한지 사이의 경계선을 따라 반복된 선을 그리거나 모래를 한지로 감싸 안으며 발생한 잔해들과 표면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존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를 아름다움이라 여기는 정신을 투여한다.
4. 작가약력
윤미란 (Yoon Miran)
윤미란(b.1948)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와 버클리의 KALA 인스티튜트를 거쳐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3년 관훈미술관에서 1회 개인전으로 시작으로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18회 개인전을 열며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여성 추상화의 기록을 이어갔다. 1982년 한국 판화가 협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83년 서울 국제 판화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호암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윤향로 (Yoon Hyangro)
윤향로(b.1986)는 동시대 이미징 기술을 기반으로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대표작 '스크린샷' 시리즈를 '유사 회화(pseudo painting)'라는 이름 아래 회화, 인쇄물, 조각, 비디오, 가구,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하며 발표했다. 최근에는 미술사 속 작품의 이미지를 여러 층위로 다루며 작업을 시도한다. <캔버스들> (학고재, 서울, 2020), <서플랫픽터> (P21, 서울, 2018), <리퀴드 리스케일> (두산갤러리 뉴욕, 뉴욕, 뉴욕주, 2017) 등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광주비엔날레, 2018),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아뜰리에 에르메스, 2017)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굿-즈> (세종문화회관, 2015), <알아서 조심> (갤러리175, 2013) 등의 전시와 행사를 공동 기획했다.
김지민 (Kim Jeemin)
김지민(b.1993)은 동서양에서 체화한 삶의 경험을 기저로 이들이 교차, 융합하는 시점으로 목도한 문화의 다양성과 그것으로부터 파생한 언어, 철학, 신화 등의 주제의식을 작가 특유의 차분하고 숭고한 조형 감각으로 작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작가는 2019년까지 설치 작업을 했고, 2020년 들어 본격적으로 회화를 시작해 현재 이 두 매체를 병행하여 작업하고 있다.
김보경 (Bo Kim)
김보경 Bo Kim(b.1994)은 한지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모래와 안료를 더해 반복적으로 중첩하며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명상적 행위를 실현 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 교육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대표 전시로 2022년 BHAK 갤러리에서 설치미술을 기반한 <Impermanence>, 외 3회의 개인전을 진행하였으며, 올해 빌라 드 판넬에서 열린 <MIND:FULL:NESS>, <꿈과 마주치다展> 2020 갤러리일호 신진작가 공모전, 2019 <SEEA 2019> Special Exhibition for Emerging Artists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